김태빈의 서양고전 껍질깨기
김태빈 지음 / 도서출판 해오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이란 제목과 줄거리는 읽히 들어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읽어 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읽을 예정이 없는 책을 말한다. 또 고전이란, 보통 사람들은 고사하고 책 깨나 읽는 사람들마저 그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책을 말하기도 한다. 의욕 넘쳐 구매한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은 독서를 종용하는 희망찬 송가가 되지만 곧 목구멍을 짓누르는 바위가 됐다 이내 실내 장식으로 전락하고 마는게, 이른바 '고전'이란 것의 운명인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고전이 너무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각 시대별로 최초의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의 저작인데, 아무래도 사람들은 '최초'라는 가치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것 같다.  

그런데 '최초'라는게 그렇게 대단한가? 서양 근대 문학의 물꼬는 셰익스피어가 아니었어도 결국 누군가는 틀지 않았을까? 시대를 송두리째 뒤집어 버리는 새로운 물결, 새로운 시도란게 과연 한 명의 천재적 인간의 힘만으로 가능한 걸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위대한 인간이란 스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기로에 들어선 시대가 우연히 빚어 내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한권의 가치가 몇 백, 몇 천년을 이어 내려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고전이, 최초라는 재기발랄함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까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는 이내 구식이 되 버리지만 '보편'은 결코 시들지 않는 법이다.   

 



 

 

 

'김태빈의 서양고전 껍질 깨기'는 이 보편적 가치를 네 개의 장으로 나눈다. 그리고 이 장들에서 각각 세 권의 고전을 소개한다. 이 책의 탁월함은 바로 이 구성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시작해 세상의 모든것을 연역하려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내가 누군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서 1장은 '나를 바라보기'다.  

 

'나를 바라보기'위해서 소개되는 책은 카뮈의 '이방인'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이다. 저자가 이 책들을 통해 제기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고 둘째는 우리가 사회적 관습과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질문을 곱씹어 보자. 그러면 어느 순간 나를 둘러 싸고 있던 익숙한 세계가 갑자기 낯설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좀더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제로는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다. 

 

철학적 사유는 바로 이 낯섬과 무지의 공포가 만들어 놓은 삶의 균열을 비집고 탄생한다. 이때 '철학적 사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금까지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괴로움을 맛보지만 동시에 우리를 둘러 싸고 있던 '당연한 진리'를 깨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흔히 이것을 '껍질 깨기'라고 부른다. 





<출처: Flickr. Sammy Naas>



'껍질 깨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비로소 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찬찬히 혹은 진지하게 그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사람과(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껍질 안의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의 진정성과(셰익스피어의 '햄릿') 세계와의 육체적 다툼을 통해 그것을 긍정하는(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인간의 모습을 인식한다. '나'를 넘어 '너'를 인식하고 비로소 '우리'의 연대가 시작되는 시간. 2장의 제목은 '우리와 마주하기'다.  

 

껍질의 실체를 깨닫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동지가 된 '나'의 두 손엔 어느새 뾰족한 망치가 들려있다. 나는 얼굴을 가까이 하여 껍질이 이루고 있는 단단한 구조의 비밀을 파악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껍질 깨기에 나선다. 튀어오르는 껍질이 얼굴에 부딪히면서 수 많은 생채기를 낸다. 손에는 어느새 굳은 살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한 '철퇴를 휘둘러 세상을 응징'하기다. 철퇴는 생명의 위협을 피해 은근한 풍자의 모습을 띄는가 하면(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조용한 묘사 속에 묵직한 메시지를 숨겨두기도 하고(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정해진 목적과 질서 속에서 세상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신과 종교에 대적하며(호메로스 '오디세이아') '확신에 찬 이 세상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제 남은 일은 폐허가 된 세상에 새로운 꽃을 피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이 소중히 간직하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구해봐야 한다. 또 새로운 세상 만들기라는 맹목적 목표가 다시금 두터운 껍질이 되어 인간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지 지켜봐야 한다. 마지막 4장의 제목은 '이상으로 나아가기'다. 

 

이 책의 구성은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가 기계 군단의 억압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하는 여정과 닮아 있다. 네오가 모피어스의 빨간약을 먹고 '나'와 '세계'의 진실을 인식한 뒤 마침내 시온이라는 이상을 지켜냈듯이 독자는 고전이 풍기는 시큼한 방부제 냄새를 맡으며 나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세계로 그리고 마침내 이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 받는다. 

 

 

 






저자는 한성여고에서 문학과 논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문장은 구어체로 읽기 쉽게 씌여졌다.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의 고전을 이렇게 쉬운 글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은 그렇게 흔치 않다. 만일 내가 고등학교 때 이런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60세로 계획한 노벨 문학상 수상을 적어도 10년은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나 자신이 읽지 않은 책을 소개한다고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저자는 매 챕터마다 등장인물과 가상 인터뷰를 진행하며 책의 줄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영리함을 보인다. 누가 선생님 아니랄까봐! 

 

보너스로 각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는 고등학생이 쓴걸로 보이는 감상문이 실려 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만만히 봤다간 큰 코 다친다. 몇몇은 정말 기가 죽을 정도로 잘 쓴 글들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게 논술을 지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활용해 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Education의 어원은 '무언가를 이끌어 낸다'라는 것이고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진실의 출산을 돕는 산파로 자처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선생 김태빈'은 Education의 화신이자 진정한 산파다. 내 일찍이 허풍으로 이름을 날려 뭇 사람들을 불신의 세계로 몰아 넣은 전력이 있으나, 그대여 이번만큼은 나의 진심을 알아 주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의 포로 아크파크 3 : 프로세스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1권에서 세계의 빅뱅을, 2권에서 색의 축복을 입은 아크파크가 이번엔 뒤틀어진 시간축에서 길을 잃은 방랑자가 된다.
  

 

 

3권의 첫 머리, 아크파크는 여지없이 꿈에서 깨어난다. 갈수록 심해지는 공간난을 해소하기 위해 아크파크의 옷장에 그의 동료가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언제나 서서 자야만 하는 불쌍한 영혼. 밤에도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현대인의 고된 숙명. 아크파크는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강조하는 동료의 아쉬운 소리를 피해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그런데 이 때 아크파크의 침대 위에서 또 한 명의 아크파크가 깨어난다. 이것은 여전히 꿈인가? 

 

 

 

이제 웬만한 사건에는 덤덤한 아크파크는 침대에 누가 누워 있든 게의치 않고 자신을 데리러 온 택시에 오른다. 방금 침대에서 일어난 아크파크는 이 상황이 무엇인지 깨닫고 출근하는 아크파크는 만류하지만 이미 택시는 떠나간 뒤다. 잠옷 차림의 아크파크는 총알 택시를 잡아 타고 자기 자신을 뒤 쫓기 시작한다.   

 

 
 

 <출처: 세미콜론 공식 블로그>

 

도시의 심각한 공간난은 도로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처럼 거대한 공간을 점유하는 운송 수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도시의 택시는 자전거다. 게다가 도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해 놓은 외줄! 심지어 이 외줄은 건물의 창문을 통과해 가정집의 부엌을 가로 질러 반대편 창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아크파크가 탄 총알 택시는 이 외줄 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며 목적지를 향해간다. 그 행위의 결과가 무엇이 될지도 모르는 채, 인간은 아찔한 외줄 위에서 광속의 춤을 춘다.

택시 위에서 스쳐 지나간 증권 거래소는 이 세계의 민낯을 잔인하게 보여준다. 거래소의 입구에 드러난 말은 '투.기.하.여.라'. 시장은 전반적으로 하락장인데 그 종목을 보면 더 가관이다. 의지, 충성, 정직, 용기, 인내, 올바름, 관용, 자비... 이 중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종목이 바로 의지와 소박함, 연대와 나눔이다. 

 

  

 

배금주의의 황야 위에서 부질없는 욕망을 끝없이 쫓아 달리는 현대인. 한 뼘의 공간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그 공간을 보장해주는 현실 권력에의 복종과 순응. 이같은 부조리는 아크파크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미 철저히 내재화되어 있어 어떠한 비판과 저항도 불가하게 만든다. 체제에 대한 저항 의지는 소박함과 나눔을 부활시키고, 이것이 곧 거대한 연대가 되어 새 세상을 끌어내는 바퀴가 되지만 이 세계에서 의지와 소박함, 연대와 나눔은 여전히 하한가를 기록 중이다. 

아크파크가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꿈 공장이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좌절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공장은, 그러나 현실을 넘어 인간의 꿈까지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아크파크는 이 곳에서 천장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로 오인되어 잘못된 꿈 시술을 처방받는다. 그가 빠져든 꿈은 바로 천장이 사라진 아크파크의 집! 아크파크가 침대에서 일어나 사라진 천장이 있던 자리로 올라서자 그 곳엔 바둑판처럼 똑같은 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어느덧 자신이 깨어난 방을 잃어버린 아크파크가 하염없이 꿈 속을 헤매고 있는데 이 때 수상한 회오리가 나타나 아크파크를 꿈의 중심 속으로 빨아 간다. 그리고 뒤통수를 강타하는 굉장한 연출! 

 

 

 

꿈의 중심에 도착한 아크파크는 바닥에 널린 컷들을 헤매는 동안 발을 헛딛어 그 중 하나에 빠지기도 한다. 그 순간 아크파크는 이것이 꿈 속의 꿈임을 깨닫는다. 꿈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아크파크가 안내소에 도착해 천장에서 떨어지는 또 다른 아크파크를 목격한 컷은 곧이어 안내소를 나와 꿈의 중심으로 이동한 아크파크가 발을 헛딛어 빠져버린 컷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번쩍 든 아크파크는 서둘러 자신의 방을 찾아 떠난다. 이 꿈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면 꿈을 마무리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방을 찾은 순간, 아크파크는 3권의 첫 부분, 바로 출근 준비를 하는 아크파크가 침대에 누운 아크파크를 발견한 컷으로 되돌아 온다. 꿈의 포로 아크파크.  

 

<이 글의 두 번째 그림과 비교해 보라>  

꿈의 포로 아크파크 시리즈 3권 '프로세스'는 무한의 프로세스를 얘기한다. 아크파크는 꿈에서 깨어나 그 무한의 고리를 끊으려 하지만 현실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또 다시 꿈으로 빠져든다. 꿈과 현실의 무한 반복. 끊임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언덕 위의 시지프스.

3권 프로세스는 카프카의 패러디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부조리'란 개념을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비록 시지프스 신화를 강조한 것은 카뮈지만 꿈과 현실, 2차원과 3차원, 허상(만화)과 실재(우리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환상적 표현법은 정녕 카프카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만화는 고작 46페이지다. 그러나 이 46페이지를 그리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얼마나 철저한 계산을 했을지, 그 땀과 노력에 경외를 바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확한 년도는 몰라, 어쨌든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에피메테우스라는 멍청한 놈의 여자친구인 판도라가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열어 버리는 바람에 세상은 온통 재해와 재앙, 증오와 질투로 가득차게 되었다. 빗발치는 여론과 댓글이 두려웠던지 제우스는 그 안에 희망이란 걸 넣어 뒀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 안에 들어있었으면 좋았을 것은 '희망'이 아니라 '무상 학자금 지원'이었다. 

 

 

 

조금 옛날이긴 하나 그래도 인간이 자본의 힘과 용도를 충분히 알고 있던 시절, 효녀 심청은 공양미 300석을 받고 봉사인 아버지와 추가 떨이로 미신을 믿는 뱃놈들까지 수십명을 구해냈다.
오늘날에는 공양미 300석으로 세 학기의 학자금을 내는게 고작이다.

모르긴 몰라도 1990년대에는 공양미 300석으로 8학기 학자금을 모두 지불하고 덤으로 국밥 수백 그릇을 사 먹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운 좋게 공립대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좀 빠듯하긴 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학교를 한번 더 다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던 시절의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다. 고작 20년 전의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머니볼 -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
마이클 루이스 지음, 윤동구 옮김, 송재우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비효율이라면 질색하는 서구 문명 사회가 자기 고유의 논리적 체계로 포섭하지 못한 영역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스포츠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부자 구단 첼시는 연간 수 백억을 들여 스타 선수를 영입하지만 여지껏 단 한번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돈 쓰기로 따지면 첼시의 엉덩이도 우습게 걷어 찰 맨시티는 같은 리그의 하위권팀 5개를 살 수 있는 돈으로 리그 3위를 얻어냈다.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날아가 보자.
  

 

 

미국에서 '돈지랄'로 유명한 곳을 꼽자면 뭐니뭐니해도 월스트리트겠지만 오늘은 스포츠에 대해 얘기하는 날이므로 미국 야구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부자 구단인 뉴욕 얭키스는-발음이 참 좋다 - 2002년 개막일 당시를 기준으로 총 1억 2,600만 달러의 연봉을 선수단에 지급했다. 그래도 이 팀은 곧잘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고 종종 월드 시리즈 우승도 거머쥐니 맨시티 보다는 봐줄만 하다. 그러나 이정도 돈이라면 편의점에서 껌을 사오듯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액수다. 공교롭게도 월스트리트와 양키스는 모두 뉴욕에 있다.   

그렇다면 이 정도 돈을 들이고도 언론과 지역 주민,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내가 이 구단의 관계자라고 자랑할만한 일을 단 하나도 해내지 못하는 팀이 있을까? LA 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그리고 뉴욕 메츠와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바로 그들이다. 이 네 팀은 메이저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부자구단이지만 메이저리그 최종 성적에서(2000년대 초반) 줄줄이 꼴찌를 차지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예전 구단주가 바로 조지 부시다!) 그렇다면 반대로 빈약한 재정 상황 속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이 있을까?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그들이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뉴욕 얭키스가 1억 2,600만 달러를 쏟아 부으며 메이저 리그에 배금주의를 실현하고 있을 때 고작 3,400만 달러만을 투자해 양키스와 맞서 싸운 전설적인 팀이다. 비록 그들은 2000년과 2001년 포스트 시즌에서 얭키스와 맞붙어 단지 아웃 카운트 몇 개 만을 남겨 둔 채 패배하고 말았지만 그 누구도 오클랜드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같은 지구에 속한 텍사스 레인저스가 한 경기 승리를 위해 무려 300만 달러를 지불할 때 고작 50만 달러만을 지불하는 팀이었다. 메이저 리그에서 오클랜드보다 많은 승수를 올리는 팀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가 유일했다. 덕분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무려 4시즌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쾌거를 거두었으며 그 중 두 번이 바로 위에서 말한 양키스와의 혈전이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이하 A's) 승리를 위해 취한 전략은 간단했다. 바로 낭비를 하지 않는 것. 메이저 리그의 부자 구단들이 선수의 타율과 도루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A's는 출루율과 사사구를 얻어내는 능력에 집중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 명료했다. 점수를 얻으려면 아웃 카운트를 낭비해선 안된다. 따라서 A's가 타자에게 요구하는
능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누상에 진출하는 참을성이었다. 아무 공에나 방망이를 휘두르는 습관은 A's에선 '지옥에나 꺼져버릴' 저주에 속했다. 

 

 

 

A's는 지난 수십년간 메이저 리그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직관적 미신을 - 수 십년간 메이저 리그에서 종사해온 베테랑들의 비과학적 직관 - 쳐부수기 위해 촘촘하게 짜여진 과학적 통계를 활용했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A's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위해 얻어야 하는 승수는 95게임 정도였다. 그리고 95경기를 승리로 가져가기 위해서 상대팀보다 최소한 몇 점을 더 획득해야 하는지 계산해 보았다. 그것은 135점이었다!  

다음으로 A's는 자신들이 보유한 인내심 많고 까다로운 선수들이 얻어올 점수와 상대팀에 뺏길 점수를 계산해 보았다. 만약 부상이나 시즌 중 트레이드 같은 변수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800점에서 820점을 기록할 것이고 650점에서 670점 사이의 점수를 내어줄 것이었다. 이로써 A's는 93경기에서 97경기를 승리할 것이고 결국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A's는 선수를 트레이드함에 있어서도 이같은 통계와 철학을 철저하게 적용했다. 특히 그들은 팬들을 비롯 야구 관계자들까지 광분하게 만드는 선수들의 갖가지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매년 3할 2푼 7리를 치는 타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 메이저리그의 톱 타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친 안타가 타점이나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3할 2푼 7리라는 기록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한단 말인가? 그래서 A's는 2할 7푼 4리를 치지만 출루율과 장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선수들을 선호했다. 앞선 타자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누상에 진출해 있었기 때문에 다음 타자의 장타는 그들을 홈으로 불러들이기가 아주 쉬웠던 것이다(혹은 장타 두개 - 2루타, 2루타면 쉽게 1점을 얻을 수 있다). 

 

 

A's의 투수 선택법은 타자와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 말은 어느 마이너 리그 투수가 4구를 잘 내주지 않고 장타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A's의 레이다망에 걸려들었다는 얘기다. 추가로 A's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투수는 경기 상황을 창조하고 게임의 색조를 설정할 줄 알아야 했다. 이 말은 투수가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게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갓 졸업한 고교생 투수들에게는 확실히 기대하기 힘든 능력이었다.

A's는 153km를 뿌리며 혜성같이 등장한 고교생 괴물 투수가 어느새 희미해진 꼬리를 끌며 메이저 리그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마는 일을 아주 단순한 통계를 통해 확인했다. A's는 이 단순한
통계를 통해 투수의 경기력이 구속이 아닌 나이와 경험에 비례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이와같은 이유로 A's의 드래프트 1순위 명단은 그들의 관점에서 언제나 굉장한 선수들로 가득 채워졌다. 한가지 다행인건 메이저 리그에 속한 나머지 29개의 구단 중 어느 한 팀도 이 명단을 굉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따르는 또 다른 행운은 A's가 지명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이 1순위에 지명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한 선수들이라는 것이었다. A's의 1순위 지명자들은 다른 구단이 지명하는 스타 선수들과 달리 높은
계약금 문제로 아웅다웅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1순위에 지명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알아준 A's에 쉴새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고, 다른 팀의 1순위 지명자들이 받는 계약금 보다 수십만 달러가 적은 계약서에 손 쉽게 서명했다. 

   

<A's에 과학적 통계와 진정한 경영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단장 빌리빈>

 

A's에 과학적 통계와 진정한 경영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수십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지배해 오던 엉터리 미신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은 인물이 바로 A's의 단장 빌리 빈이다.

빌리 빈은 선수 시절 최고의 신체 조건과 괴물같은 운동 신경을 지닌 초특급 인재였다. 스카우터들은 예의 베테랑의 직관을 덧붙여 '빌리 빈의 장미빛 미래'라는 터무니 없는 소설을 썼고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옹골찬 젊은이에게 '지옥에나 꺼져 버릴' 바람을 넣어 프로 야구팀과 계약하게 했다. 이후 빌리 빈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20대를 허비했고 27세에 이르러 야구를 그만두게 된다.

그의 통산 타율은 2할 1푼 9리, 홈런은 3개였다.

빌리 빈이 선수 시절 스카우터들로 부터 배운 건 그들이 하는 말이 모조리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A's의 단장에 취임한 뒤에도 빌리 빈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스카우터들이 고교 출신 괴물 선수를 발견해 돌아와 침을 튀기며 온갖 미사여구를 쏟아 내도 빌리 빈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수 많은 미사여구들은 바로 18세의 빌리 빈이 들었던 얘기였기 때문이다.

빌리 빈이 스카우터들의 미사여구 대신 선택한 것은 그 동안 메이저리그가 손대지 않은 먼지 묻은 데이터와(출루율과 장타, 사사구 비율) 그 데이터를 분석할 컴퓨터였다. 그는 이 둘을 이용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 A's를 2000년대 최강의 팀으로 변신시켰다.

2011년 현재, 그는 여전히 A's의 단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1-01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깨짱 2012-01-01 16:32   좋아요 0 | URL
리뷰를 재밌게 보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 책을 모으는게 취미라서요. 게다가 책을 좀 지저분하게 보는 편이랍니다. 신판 번역이 별로라니 의외네요. 알라딘 중고장터에 머니볼 정도는 꽤 있지 않을까요?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참조하여 인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첫번째 인간이 바로 아담이다.

나는 이 세상의 많은 여자들이 왜 이 수상한 대목을 한치의 의심없이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교리를 맹렬히 옹호하기까지 하는지 의아하다. 이 대목은 아무리 봐도 기독교가 남성에 남성을 위한 남성의 종교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악한 구절이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태초의 인간 아담은 남자였다. 그렇다면 그에게 형상을 빌려준 신도 남자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의심하는 건 이런거다. 신이 남자고, 그의 형상을 본따 만든 그 잘나빠진 첫 번째 인간까지 남자인데 오늘날 모든 생명은 왜,

여자의 뱃속에서 탄생하는가?

내 보기에 신은 여자였다. 열달 동안 뱃속에서 전전긍긍 생명을 빚어내 세상에 내놨는데, 젠장! 그게 아들이었다.

빨래도 청소도 요리도 못할 뿐만 아니라 주말엔 TV 앞에 앉아 축구를 볼 생각만 하고 인터넷과 컴퓨터를 발명해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일삼는 아들을 보자 신은 아들이 곧 이 세상을 파괴할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은 다시 한번 전전긍긍하여 또 하나의 인간을 낳았다. 이번엔 여자였다. 진정 자신을 닮은,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여자 말이다. 신은 이 여자를 남자에게 붙여줘 이 세상의 고요와 평화를 지키려 했다.

꿈도 참 야무지지. 


 
 

 

여자가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건 전부 헛소리다. 여자는 남자에게 진절머리가 났던 거다.

냄새나고 무식하고 게으른 남자에게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진지한 것인지 가르쳐 주기 위해 여자는 스스로 선악과를 따먹었다. 그리하여 남자는 광야로 쫓겨나 평생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이후의 역사는 힘만 믿고 까부는 남자들에게 완전히 장악당한다. 그들은 태초의 책을 꺼내 창세기에 등장하는 신을 남자로 바꿨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 만들었다고 뻥을 쳤다. 그렇게, 성스런 여성은 태초의 한 페이지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슬프지만, 이게 바로 창세기의 숨겨진 진실이자 우리 역사의 비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