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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임희선 옮김 / 청미래 / 2024년 6월
평점 :
미우라 시온 작가의 소설은 늘 새로운 세계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직업군의 일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묘사해 줍니다. 일하는 과정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지 않고 세세하게 모두 묘사합니다. 과거 <사랑 없는 세계>를 구매하면서 과학 분야의 소설이 재미있을까 고민했는데, 꽤 빠른 속도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는 임업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독자들을 매료합니다.
이 소설은 파트를 쪼개어 보면 제목처럼 느긋한 나날을 보내는 일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일을 배우며 고군부투하는 히라노 유키. 일을 할 때만큼은 진지하게 임하는 선배. 다른 사람을 짝사랑하는 히라노 유키가 반한 여성. 가무사리 마을에 전해지는 전설과 전통. 일상에서 쉽게 접할 만한 에피소드로 가득합니다. 웃으면서 볼 수 있습니다.
미우라 시온 작가는 이걸로 끝내지 않습니다. 삶에 대한 위로를 숨겨 놓습니다. 제가 발견한 위로는 가무사리 마을에서 전해지는 전통입니다. 마쓰리 마지막 날, 숲에서 제일 몸통이 굵고 거대한 나무를 베고, 그 나무를 타고 산을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이 때, 숲은 마을이 관리하지 않는 숲을 가리킵니다. 가지치기를 하지도 않고, 솎아내지도 않습니다. 나무의 가지들은 서로 뒤엉킵니다. 이름 모를 풀들도 함께 자랍니다. 마치 정글 같습니다. 그 정글 속에서 가장 굵은 나무를 고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베기 쉬운 나무도 있을 텐데.
가장 굵은 나무는 오랫동안 깊이 묻어뒀던 꿈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처음 꿨을 때의 설렘, 꿈을 이루려고 노력해 왔던 시간, 벽에 부딪쳐서 좌절했던 경험,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미뤄놓은 나약함……. 감정이 복잡하게 엉켜 있는 나무. 멋대로 자란 가지와 뿌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도 큽니다. 그 크기만큼 느껴지는 미련, 후회, 자책……. 그냥 두면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키 작은 나무를 차지 못하겠지요. 그래서 가장 굵은 나무를 베어야 합니다.
그 나무를 타고 숲을 내려갑니다. 복잡하게 뒤얽힌 숲을 내려가다 보면 빠른 속도에 나무에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히기도 하지요. 숲을 다 내려갔을 때, 아래쪽에서는 잔치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왜 잔치를 벌일까요? 무언가를 포기한 사람을 위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숲을 내려오면서 떨어지거나 상처 입었을 용기, 향상심, 도전 정신……. 그것들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걸을 뗄 수 없기 때문에 잔치를 하며 같이 기다려줍니다. 잔치를 하다 보면 숲에서 잃었던 감정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상처가 아물어 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길을 골라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라면 현대사회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빠르게 적응하고 빠르게 회복하고 빠르게 나아가야 하는 속도전이 벌어집니다. 회복되기도 전에 발을 떼어야 합니다. 자정작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인 부정적 감정은 어디로 내려갈까요? 아마도 굵은 나무가 가득한 또 다른 숲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