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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착각 -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그레고리 번스 지음, 홍우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소설의 구성을 아시나요? 너무 어렸을 때 배워서 희미할 수도 있지만 기승전결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소설 속 단락마다 번호를 매기고 중심 내용을 적습니다. 그리고 몇 번부터 몇 번까지가 기승전결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 묶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소설의 내용을 요약합니다. 요약본에는 소설 전체를 뒤흔들지 못하는 캐릭터들은 등장하지 못합니다. 주인공, 주인공과 밀접한 관계인 인물, 주인공과 대척하는 인물 등이 주를 이루지요. 왠지 평범한 인물들의 힘을 지우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반발심에 주인공뿐만 아니라 환경을 구성하는 인물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와 반대에 따라 주인공의 앞날이 바뀌기도 하니까요.
<나라는 착각>은 이 바람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지 말합니다. 뇌는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기억하지 않습니다. 압축해서 기억합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단편적으로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떤 의견을 내고 찬성했는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찬성 의견을 생각하기까지의 과정과 원인을 선명히 떠올리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현상은 소설의 요약본을 적는 과정과 비슷해 보입니다. 중심인물(뇌가 생각하는 중심인물은 자신)을 세우고 중심인물의 언행에 집중합니다. 중심인물의 변화에 집중합니다. 중심인물과 밀접한 배경을 상세히 묘사하지만, 그렇지 못한 배경을 단순화합니다.
자, 그렇다면 중요도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책에서는 그 기준을 사람이 최초로 접한 서사로 정의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이 최초로 접한 서사에 요소들을 끼워 맞춥니다. 만약 최초의 서사에 적용할 수 없는 요소는 버리거나 요소를 왜곡해서 기억합니다. 사람마다 최초로 접한 서사는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현상을 두고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최초로 접한 서사에서 ‘최초’는 어느 시기를 말하는 걸까요?
태어난 직후부터 겪는 모든 감각을 말할까요? 아니면 듣기, 말하기, 읽기를 수행할 수 있을 때부터일까요? 저는 태어난 직후부터라고 생각합니다. 표현할 방법이 우는 방법뿐이라고 해서 느끼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환경이 자신에게 우호적인지 비우호적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들려오는 소리가 즐거운지 험악한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 느낌이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최초의 서사로 자리를 잡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이 ‘최초’의 서사가 되는 셈이지요. 태어난 직후부터 사람들은 다른 서사 앞에 놓입니다. 사회인이 되어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최초의 서사에 어울리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개인조차도 최초의 서사와 어울리게 상황을 해석하고 적용하려고 합니다. 그런 개인이 모인 집단 역시 서사를 형성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집단이 올바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구성원은 대표자를 뽑습니다. 집단을 이끌 권력을 쥐어주는 셈입니다. 당연히
대표자와 구성원의 서사 차이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 때, 대표자가 어떻게 서사를 완성시킬지가 포인트입니다. 구성원이 형성하려고 하는 서사를 대표자가 탄압할지 경청할지에 따라 집단의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대표자와 구성원 간의 선을 지키는 행위이고, 하나는 그렇지 않은 행위입니다.
만약 대표자가 선을 넘는다면 구성원은 어떻게 할까요? 그냥 무기력하게 물러설까요? 아닙니다. 자신의 서사를 이루기 위해 반발하겠지요. 권력이 없는 구성원이 모여서 대표자와 맞먹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권력을 형성합니다. 평범한 구성원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순간에만 평범한 구성원에 주목하는 시스템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집단은 평소 구성원 개인의 서사를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구성원의 서사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집단의 이익이 무너지려고 할 때, 구성원에 호소합니다. 집단이 무너지면 개인의 서사가 무너진다고. 구성원은 생각합니다. 집단이 살아난다고 내 서사가 살아날 것 같지는 않지만, 서사를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고 싶어서 도우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