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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진화하는 페미니즘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평점 :
‘길드’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아마 게임 또는 에니메이션을 좋아하시는 분은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길드는 어떤 곳일까요? 주민들이 일을 의뢰합니다. 모험가들이 그 의뢰를 처리하고 돈을 받습니다. 길드는 의뢰에 등급을 매깁니다. 난이도가 낮은 의뢰, 난이도가 높은 의뢰가 있습니다. 길드는 모험가들에게도 실력에 따라 등급을 매깁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험가들이 어떤 등급의 일을 하려고 해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이 시스템 속에서 길드는 모험가의 나이, 성별을 따지지 않습니다. 모험가가 이 길드에 가입할 실력이 있는지를 확인할 뿐입니다. 길드가 마을을 관리하고 지키기 위한 수단인 셉입니다.
이 길드를 현대 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작게는 지방자치단체가 있겠고, 크게는 국회와 정부가 있겠지요. 그러나 이 두 조직과 길드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길드는 집단을 구분합니다. 이에 반해 국회와 정부는 집단을 구분합니다. 성별, 나이, 직업, 거주지 등에 따라 구분합니다. 구분한 집단별로 특성을 부여합니다. 이것의 취지는 특성에 맞게 제도를 구비하여 집단, 나아가 주민을 지키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신문기사를 보면 이 취지를 지키는 행보를 볼 수 없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를 많이 접합니다.
기사들을 읽다 보면 왜 이런 수많은 사건 앞에서 여성은 소리를 냅니다.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예방책과 철저한 규명, 죄의 무게에 맞는 처벌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성들이 힘을 모아 통과한 청원을 미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사례의 총집합입니다. 굵직한 사건들을 예로 들면서 여성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독자는 자신이 겪은 시선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습니다.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방법을 찾습니다. 그 방법은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여성주의 심리학’이 아닐까요?
여성이기에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생리전 증후군, 생리통, 출산 증후군, 출산 우울증 등이 있겠지요. 거기에 성폭력, 성희롱, 불평등한 관습, 임금 차별까지 더해집니다. 이런 요소가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진정으로 ‘공감’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같은 여성 중에도 공감해 주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약물 치료를 권유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약을 복용하면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생겨서 괜찮아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그 방법을 모를까요? 아마 이미 약을 복용 중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아픔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방법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성의 아픔을 지식으로만 아는 치료자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하며 같이 방법을 찾아줄 치료자, 둘 중 어느 치료자가 환자를 잘 이해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저자는 치료자를 환자의 증언을 기록하고 경청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정의합니다.(156쪽) 당연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마음을 보듬을 방법을 환자와 치료자가 ‘같이’ 찾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자의 치료자는 어떨까요? 약을 증량하거나 다른 약을 처방합니다. 아니면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권유합니다. 부정적 사고를 하지 말라고 권유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원인을 추적해 보면 어떨까요?
그 끝에는 아무리 의견을 제시해도 들어주지 않는 사회가 있습니다. 사회는 개인의 생활 속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 구조에서 발생하는 차이 역시 원인입니다. 사회가 사회 구조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심리 치료를 완치할 날은 오지 않습니다. 문득 4월에 읽었던 <정신병을 팝니다>라는 책 1권이 떠오릅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정신질환을 사적 영역으로 발전시켰을 ㄹ수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구조, 예를 들면 채용 불평등·임금 불평등·죄에 따른 형벌 불평등, 같은 문제를 사회는 외면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성은 ‘같이’ 자신의 일상을 발전시킬 여성 치료자를 찾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같이’ 제도를 공부하고, 활용하고,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는 진정성을 나눌 여성을 만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