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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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신작이 드디어 출간됐습니다. 무려 <여자들의 등산일기> 속편입니다. 출간이 안 될 줄 알았는데 했어요!! 짝짝짝!! 미나토 가나에의 일상소설을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거기에 여성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더 많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첫 번째 시리즈와 달라진 점은 산의 정의라고 생각해요. <여자들의 등산일기>에서는 고민이 있는 여성들이 등산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의 이유를 발견합니다. 그에 반해서 <노을 진 산정에서>에서는 여성들이 산을 오르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어떻게든 혼자서 오르려고 노력하는 여성, 친구나 가이드와 같이 오르는 여성 등. 산을 오르는 다양한 방식을 그립니다. 누구에게나 오르고 싶은 산이 있다는 뜻입니다. , 산은 이루고 싶은 무엇입니다. 그 무엇을 이루는 방법을 등산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혼자서 등산로를 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산을 오르고 싶다는 열망에 산을 탑니다. 그만큼 빨리 지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합니다. 그 때 등산로에 설치된 쇠사슬은 최소한의 안전망입니다. 쇠사슬을 붙잡고 천천히 회복한 다음 나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혼자 오를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최소한의 복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자신이 오르려는 등산로가 험난해 보일 때 사람들은 등산로 입구에서 망설입니다. 혼자서도 오를 수 있도록 조치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 때 선례를 찾아봅니다. 나보다 먼저 이 산을 올라봤던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는 거지요. 환경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도 있고, 때때로 경험자들의 팁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찾는 셈이지요. 이 때, 자신과 상황이 가장 비슷한 선례를 찾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도록 계획해서 등산로를 오릅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는 쇠사슬을 붙잡고 쉬면서 가이드라인을 찾아봅니다. 계획을 다시 수립합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쫓아서 올라가는 만큼 부담을 덜 느끼겠지요.

 

위에서는 혼자서 등산하는 사람을 거론했습니다. 이번에는 누군가와 같이 등산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등산 가이드와 같이 오를 수도 있고, 똑같은 무엇을 꿈꾸는 동료와 오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등산 가이드와 함께라면 매우 편하겠지요. 발자국이 선명해서 안전하게 발을 디딜 곳을 빨리 찾을 수 있으니까요. 길이 막히더라도 가이드가 먼저 뚫어주니 힘이 많이 들지도 않습니다. 가이드와 같이 오르는 것은 최적화된 등산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가이드의 등산 방식이 자신과 맞는다는 전제하에서.

 

이제 동료와 같이 오르는 경우를 살펴볼까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혼자라는 두려움을 덜 느낍니다. 힘든 순간도 생기겠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목표지점까지 갈 수 있는 등산로를 함께 찾고 나아가고 실패하면 다시 찾고 나아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의 빈도가 낮아집니다. 비록 길을 헤맬지라도 끝까지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게다가 동료와 함께 남긴 발자국은 혼자서 올라갈 때보다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혹시 같은 꿈을 꾸는 다른 등산객에게 가이드라인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가이드가 있어도 없어도 산을 오를 수 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도 없어도 산을 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 자신에게 맞는 등산법이 될 수 있는지는 올라가보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당사자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오를 지 고민조차 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일단 가이드라인을 알아보고 가이드의 이야기도 들어보면서 준비를 시작합시다. 모든 걸음의 첫걸음 전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 책은 준비를 시작하자고 다짐할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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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문답법 - 개싸움을 지적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
피터 버고지언.제임스 린지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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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실시간으로 서로 반응하며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 이 방식에 얼마나 적응하셨나요? 저는 여전히 서투릅니다. 단어 선택을 잘못 선택하지 않을까, 아까 한 말과 모순되는 의견을 말하지는 않을까 같은 걱정 때문에 말을 꺼내기 어렵습니다. 이 책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직접 마주보고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표정, 제스처, 강세, 억양을 통해 상대 의견의 핵심, 이야기의 이해도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류가 생기면 바로 정정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와 의견을 주고받는 방법을 설명한 책입니다. , 토론·토의·대화에 최적화된 말하기 방법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말하기 방식을 단계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 단계에 익숙해지면 다음 단계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읽을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데 섣불리 고급 단계의 말하기 방식을 활용하다 자신이 오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규칙을 따르며 상대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말하기 방식도 글쓰기 방식과 꽤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쉽게 의견을 제시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온라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시대에는 온라인에 글을 써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소셜미디어에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소셜미디어에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견해를 자기 개인 페이지에 올릴 만큼 그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이라면, 그 견해를 남들에게도 알리려는 것이지 비판을 청하는 건 아닐 것이다.(81)’

 

과연 소셜미디어에 글을 쓰는 사람들만 이럴까요? 직접 육성을 제시하는 사람도 비판을 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사람들은 비판을 원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며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과정이 이어질 따름입니다. 이 책의 핵심과도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이 소셜미디어에서도 효과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는 논쟁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육성을 나눌 때도 용어의 정의, 배경지식 습득 여부 등에 따라 의견 제시와 이해를 위한 설명을 끊임없이 주고받습니다. 그렇게 해도 오해의 소지가 생깁니다. 반면에 소셜미디어에서는 즉각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오해가 생길 여지가 더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소셜미디어에서는 논쟁을 피하는 편이 좋다고 말했겠지요.

 

그러나 소셜미디어는 필터를 거치는 공간입니다. 공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여러 요소를 검토합니다. 자신의 주장과 근거가 정확한지, 논리에 어긋나지 않는지 고려합니다. 이런 용어를 써도 좋은지 검토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정제해서 제시합니다. 지적으로 논쟁하기 위한 최소한의 밑바탕을 갖춘 셈입니다. 더불어 저자가 강조했던 침묵의 시간을 저절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의견을 읽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다시 검토합니다. 의견을 바꾸기도 하고 바꾸지 않기도 합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검토 과정을 거친 뒤, 소셜미디어에 올라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셜미디어는 논쟁하기에 적합한 공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셜미디어를 논쟁의 공간으로 활용하려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셜미디어의 종류는 많아집니다. 필터를 거치지 않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는 자신의 의견을 어떻게 제시해야 하는지 배우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규칙을 지키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방법을 익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름길은 없습니다. 꾸준히 필터를 거치면서 자꾸 써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비판을 받고 수용하며 발전해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 모두에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충실한 이야기가 오가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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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작성 최소원칙 - 보고서 기획서 제안서 글쓰기, 개정증보판 최소원칙 시리즈
정경수 지음 / 큰그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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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이 책이 노리는 독자층을 알 수 있습니다. 문서를 처음 작성하는 독자에게 기본을 알려주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 이상한 독자가 있습니다. 자필로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하는 독자입니다. 자필로 글을 쓰다 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완성된 기록을 보면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글을 막 썼을 때는 바로 압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어떨까요? 아마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간결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요? 그 때, 비즈니스 문서를 떠올립니다. 간결하게 주제를 정확히 전달하는 글쓰기. 비즈니스 문서입니다. 개인 기록을 위해 이 책을 읽는 이상한 독자는 어떻게 읽었을까요?

 

비즈니스 문서는 의견을 먼저 제시하고, 의견을 지탱하는 자료를 근거로 제시합니다. 마지막에는 의견을 다시 강조하면서 마무리합니다. 문서의 종류에 따라서 디테일 요소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파트는 어떤 부분일까요? 제 생각에는 근거 제시 파트입니다.

 

근거 제시 파트는 크게 자료 수집, 선별, 재가공 과정을 거칩니다.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기는 쉽습니다. 온라인 검색을 하면 됩니다. 검색 결과가 주르륵 나옵니다. 그 결과를 전부 활용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근거는 정확성, 전문성, 객관성, 출처의 신뢰성 등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검색 결과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자료를 선별해야 하는 셈입니다. 선별해서 자료를 고르는 단계가 끝이 아닙니다. 선별한 자료를 재가공하는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글로 전달할 것인가. 그래프나 그림으로 전달할 것인가. 어떤 순서로 나열해야 효과적인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을 문서를 쓸 때마다 반복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른 업무도 같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 번거롭기 짝이 없습니다.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평소에 자료를 수집하고 선별해 놓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자도 자료 관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 속에서 최신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방법까지 놓치지 않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제텔카스텐. 메모를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직접 쓴 글만이 메모가 아닙니다.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려고 모아둔 자료 역시 메모입니다. 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견에 어울리도록 자료를 더하거나 빼는 과정을 거칩니다. , 비즈니스 문서 역시 제텔카스텐을 기반을 두고 작성되는 셈입니다. 제텔카스텐이 정교할수록 근거는 탄탄해지고, 구성은 간결해집니다. 간결한 글쓰기 비법을 배우고자 했던 독자는 정교한 제텔카스텐 구축의 필요성을 깨닫고 책을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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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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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을 꿉니다. 꿈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꿈을 꾸는 행위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겠다는 뜻입니다. 경험해 보지 않았으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자신이 되려고 노력을 기울입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을 맛보겠지요. 이런 과정은 어떻게 느낄까요.

 

소설에서 다미코는 병원에 병문안을 갑니다. 그곳에서 소원나무를 봅니다. 소원나무에는 소원쪽지가 달려 있습니다. 대체로 병을 낫게 해달라는 쪽지입니다. 다미코가 생각할 때, 환자에게는 병이 낫거나 낫지 않거나 두 가지 가능성만 있습니다. 당연히 환자의 소원은 완치입니다. 그러나 완치할지 어떨지 분명하지도 않습니다. 다미코는 소원쪽지를 환자에게 밝은 생각을 하라고 강요하는 요소로 느낍니다. 그래서 소원쪽지를 적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병원에 청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사람은 심신이 건강해야 원만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다양한 자극을 받으며 꿈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병원을 다닌다는 것은 심신을 다루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자연스럽게 완치에 집중합니다. 꿈은 멀어집니다. 이것을 포기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났을 뿐입니다. 완치하면 다시 꿈이 고개를 들겠지요. 그런데 완치되기 전에도 꿈을 떠올릴 때도 있습니다. 치료 경과가 좋을 때입니다. 다시 꿈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병이 낫게 해 달라고 직접 소원쪽지를 쓰면서 긍정적 마음이 생깁니다. 환자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버팀목이 생기는 셈입니다.

 

어쩌면 완치는 운에 달린 일인지도 모릅니다. 치료 경과가 좋아도 마지막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기도 합니다. 전혀 완치할 가능성이 없었는데 기적처럼 완치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환자가 모를 리 없습니다. 완치하지 못하면 자신이 꿨던 꿈도 운이 따라야 꿀 수 있다고 씁쓸해 할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환자가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면 다미코의 말대로 소원쪽지를 못 쓰게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이 낫게 해 달라는 직접 써 보는 경험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아시나요? 존시는 거친 비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를 보고 살아갈 희망을 발견하고 완치합니다. 베어먼이 그린 잎새가 살아있는 잎새로 바뀝니다. 존시는 왜 잎새를 보고 희망을 느꼈을까요? 비바람에 떨어지지 않는 잎새를 보아서요? 아닙니다. 베어먼이 잎을 그려주었다는 운 때문입니다. 비바람 속에서도 자신의 걸작을 완성하고 싶었던 베어먼이 그린 잎새. 그 잎새는 소원나무의 소원쪽지와도 동일하지 않을까요? 소원쪽지들을 보면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굳건히 버티는 환자가 나 이외에도 또 있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직접 병이 낫게 해 달라고 쓸 때 그 마음은 확고한 버팀목이 되겠지요.

 

소원나무는 단순히 완치를 바라는 소원쪽지를 걸어두는 나무가 아닙니다. 당신처럼 병 탓에 꿈을 꿀 기회를 놓친 사람이 많으니 낙담하지 말라고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맡은 나무입니다. 혼자서 앞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우니 같이 앞으로 걸어가자는 메시지입니다. 누군가 손을 내밀었을 때, 기꺼이 그 손을 붙잡고 같이 걸어가면 어떨까요? 세상은 혼자서 걸을 때보다 같이 걸을 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다미코, 레이, 사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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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미용실 -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박성신 지음 / 북오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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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오랜만에 들른 오프라인 서점에서 발견한 책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입니다. <로라 미용실>입니다. 요즘 국내에서 자주 출간되는 힐링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집어 들었는데 그 한 문장이 꽤 강렬했습니다. 당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데이트폭력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던 시기였습니다. 데이트폭력이 발전한다면 교제살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인상 깊었던 대목은 찬서가 경찰로 일을 하다가 관두는 대목입니다. 경찰은 법을 근거로 해서 피해자를 돕는 직업입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구출하고 가해자를 처벌합니다. 기본원칙입니다. 찬서는 기본원칙이 데이트 폭력과 교제살인이라는 죄 앞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보지 못합니다. 법은 가해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기도 합니다. 설령 벌을 준다고 해도 솜방망이 형식에 불과합니다. 찬서는 경찰로서 법률 안에서 피해자를 구하는 데 한계를 절실히 느낍니다. 결국 경찰을 관두고 무산에 내려갑니다.

 

찬서는 어렸을 때 교제살인으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찬서는 법률 안에서 가해자에게 벌을 주려고 경찰이 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법률로 가해자에게 제대로 벌을 주려고 경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환멸만을 느끼고 그 방식을 버리게 된 셈입니다. 찬서는 로라 미용실에서 탐정으로 일을 구하며 데이트 폭력 상황에 놓인 사람을 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법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직접 가해자에게 벌을 내립니다. 처음 법에 호소했지만 법이 들어주지 않았던 경험이 만들어낸 현상입니다.

 

어쩌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현상을 염려하는 시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법이 만들어진 이유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법률은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선이 있습니다. 그 선을 벗어나면 너에게 이렇게 벌을 주겠다고 경고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런데 법률을 벗어난 방법으로 벌을 준다면 법을 제정한 의미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법률 개정을 추구하여 절차를 밟아 사회 전체에 도입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더 낫다고도 말합니다. 절차를 무시한 사적복수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꿀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선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법을 바꿔달라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준 적이 있었나요? 사람들이 처음부터 사적복수를 하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법에 말합니다. 저 사람이 이런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합니다. 법이 처벌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벌을 제대로 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 규정된 법률의 처벌도 약한데, 그보다 더 낮은 수준의 벌을 줍니다. 그러면 가해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법의 강도가 생각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법이 경고의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면 데이트 폭력과 교제살인을 저지르면 진짜 큰일이 난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처벌이 약하고 죄를 아예 묻지 않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을 봤을 때, 법이 경고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걸까요? 회의적입니다.

 

법률 바깥에서 사적복수를 하는 행위는 분명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로 바뀌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적복수를 다짐하며 움직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법률 내에서 벌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면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법률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고 연대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절차를 밟아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은 지금도 많습니다. 그 목소리를 법이 외면해 오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가해자가 되려는 피해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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