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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7월
평점 :
<리버스> - 누구를 알아가는 여정
사람은 무생물과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는 생물의 이름을 지어 부릅니다. 그것들을 더 쉽게 부르기 위해서 특징과 역할을 살려서 붙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딸, 아들, 유치원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교직원, 회사원, 직장인, 사원, 주임, 과장, 사장, 통역사, 번역가, 의사, 간호사,……. 셀 수 없이 많은 호칭으로 부릅니다. 특징과 역할에 따라서 지어진 호칭들입니다. 호칭이 곧 사람의 역할을 드러내기도 하는 셈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 역할에 어울리는 행동하려고 합니다. 역할뿐만 아니라 자신이 있는 장소와 자신과 같이 있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행동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알려고 할 때 직업, 직위처럼 객관적인 요소는 금방 알아도 취향, 성향처럼 주관적인 요소는 알기 어렵습니다. 만일 나와 상대가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역할과 특징을 뚜렷이 설명할 수 없는 ‘친구’일 경우라면 어떨지 궁금합니다.
리버스는 ‘친구’라는 호칭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어느 날 주인공 후카세와 사귀던 여성, 미호코에게 ‘후카세는 살인자다.’라는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 탓에 후카세는 과거에 있었던 어느 일을 떠올립니다. 그 일과 연관된 사람은 총 넷. 히로사와, 다니하라, 아사미, 후카세다. 후카세 뿐만 아니라 다니하라와 아사미에게도 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사실 편지를 받은 세 사람에게는 그들끼리만 공유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들의 주위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믿으며, 후카세가 직접 두 팔을 걷고 나서서 그 범인을 찾기 위해 떠납니다. 하지만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하는 과정보다 후카세가 자신의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여정을 더 자세히 묘사합니다.
후카세는 히로사와의 부모님, 히로사와가 참여했던 동네야구 선수, 히로사와의 여자친구, 히로사와와 같은 반이었던 학생들에게 히로사와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각각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히로사와의 모습은 후카세가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히로사와와 시간을 보내면서 히로사와에 대해 이러할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딱히 이렇다 할 재주가 없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서투르고 존재감이 약하다. 덩치는 크지만 운동신경은 그렇게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몸집은 그냥 그렇지만 나머지 요소가 비슷한 자신과 친구로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어느 한 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른 시대에 다른 공간에서 다른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자신과 긴 시간 친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그 친구에 대해 잘 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은 셈입니다. 그로 인해 열등감과 안도감을 오가는 감정의 파도를 타면서 친구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후카세의 이 여정은 친구를, 사람을 함부로 속단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듯합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 자신이 있는 공간,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과 자신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점만, 보여줄 수 있는 만큼 보여줍니다. 따라서 그 모습을 믿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좋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맡게 되는 역할, 머물게 되는 공간, 만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떻게 변해 왔는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어서입니다. 문득 수많은 기능이 숨겨진 스마트한 무생물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한 무생물은 자신을 다루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객관적인 지표로 자신의 몸속에 저장하고 있을 테니까요.
* 본 글의 내용은 개인 블로그에 올린 내용과 동일함을 밝힙니다.
* 본 감상문의 내용은 소설의 주제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감상문에는 도서 표지 및 내용의 일부를 그대로 빌려쓴 부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