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일본사 시민강좌
이재석 외 지음 / 연립서가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사 시민강좌'라는 제목에 딱 알맞은 책이다. 일본사 전공자가 일반 시민을 상대로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용어로 일본사를 설명한다. 어려운 일본사 용어를 가급적 배제하고 한국의 시민들이 궁금해하고 관심있어할만한 주제들을 각분야의 전문가들이 친절하게 설명한 책이다. 술술넘어가는 책장 속에서 깊이 생각해야할 몇가지가 있었다. 이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흥선대원군이 추진한 통상수교거부정책의 과정속에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발발했다. 병인양요시기에 한성근 장군이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을 요격했으며, 정족산성에서는 양헌수장군이 프랑스군을 격퇴시켰다. 상상하기 힘든 승리였다. 신미양요시기에는 비록 강화도 진지가 쑥대밭이 되었지만, 포함외교로 상대편을 협상테이블에 불러들여 불평등조약을 체결한다는 미국의 전략에 흥선대원군이 응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전략적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물러갔다.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승리였다. 

  그런데, 일본은 그러하지 않았다. 1863년 사쓰마번은 영국과 전투를 벌여 패배했다. 1864년 조슈번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과 전투를 벌여 처첨하게 패배했다. 존왕양이를 부르짖던 사무라이들의 코가 납작해졌다. 그런데, 이 패배가 일본에게는 약이되었다. 양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철저하게 깨달은 일본의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메이지유신을 단행한다. 일본은 근대국가로 도약하였고, 양요에서 승리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죠수와 사쓰마의 처절한 패배는 일본이 양이에서 개국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조선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분전한 것은 개국을 늦추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405쪽)


  잠깐의 승리가 행복한 결말을 보장하지 못하듯이, 지금의 패배가 미래의 불행을 약속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승리와 패배가 아니었다. 승리와 패배 이후에 어떠한 대응을 우리가 선택하는가였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분전을하여 정치적 승리를 얻은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우며 척화의 기치를 드높였다. 반면,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양이를 포기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본의 근대화 성공과 조선의 식민지 전락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교훈이다. 


2. 6살 여성도 유학을 보냈다!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다. 일본의 정치가 안정되지도 안은 상태일 텐데, 일본은 이와쿠라사절단을 꾸렸다. 그리고 어린이까지 사절단에 포함시켰다. 이 사절단에 6살 여성 쓰다우메코도 있었다. 6살이면 아직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을 나이인데, 일본의 정치인들은 먼 미래를 바라보고 6살 여성 쓰다 우메코를 이와쿠라사절단에 포함시켰다. 그려는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일본여성 교육에 많은 기여를 한다. 

  메이지 정부의 장기적 개혁과 그들의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원대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해야함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이를 행하는 정부는 드물다. 지금의 K-팝도 엔터테이너 회사들이 미래를 보고 10대 시절부터 소속사에서 노래와 춤 공부를 시작시켜서 이뤄낸 것이다. 장기적 국가 전략과 투자가 일본사회의 변화를 이뤄냈다. 

  물론, 이 책에는 쓰다 우메코가 미국유학에서 돌아왔으나, 일본사회는 그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현실을 지적한다. 그속에서 그녀는 방황하고 고뇌한다. 남성중심의 봉건적 관념이 깊이 자리잡은 일본 사회의 늪에서 괴로워하는 그녀가 안쓰럽기도하다. 그러나, 그녀의 방황과 고뇌가 있었기에 일본여성은 그 이전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 아직도 일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한명의 쓰다우메코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다. 수많은 쓰다우메코가 일본사회에서 탄생한다면, 그리고 그녀들이 일본사회를 변혁시키려 노력하다면 일본 사회도 변할 것이다. 변화는 단숨에 이뤄질 수없고, 변화시키는데는 노력과 희생이 필요함을 그녀들도 잘 알것이다. 


3. 표리부동과 문질비빈 사이

 문질빈빈 (文質彬彬)이라는 말이 있다. 외양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미가 서로 잘 어울린 모양이라는 뜻이다. 논어에서 문질빈빈은 내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외면의 옷차림에서도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야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공자는 때에 맞는 옷을 입는 스타일리스트였다. 

 반면 표리부동이라는 말이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우리는 문질빈빈을 좋은 뜻으로 여기고, 표리부동을 나쁜 사람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문질비빈과 표리부동의 상반된 평가가 통신부사 조경의 입에서 나왔다. 

  "라잔 당신은 유학자라 자처하면서 어째서 허망한 부처를 믿는 중의 모습을 하고 있느냐" 라고 묻자, 하야시 라잔은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라고 맞받아친다. 물론, 이렇게 직설적으로 묻고 답하지 않았다.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대충 이러한 의미였다. 

  유학자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일본의 현실에서, 겉모습은 승려이지만, 내면은 유학자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하야시 라잔의 말에서 표리부동이 욕이되지 않는 일본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혼네와 다테마이로 대표되는 속마음과 겉마음이 다른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생각이 유학자이면서 스님의 모습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문질빈빈이 맞을까? 표리부동이 맞을까? 아니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다를까? 속마음만 중요할 뿐 겉모습은 아무래도 상관없을까? 표리부동과 문질비빈 사이에서 깊은 상념에 빠져든다.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일본사를 알기 위해서 어려운 일본사를 읽으며 고통받았던 적이 많았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본사 용어를 끌어안고 끙끙대며 끝까지 책을 읽었던 적도 있었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었던 분들에게 '일본사 시민강좌'를 추천한다. 이책이 우리를 일본사에 잘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화유산으로 일본을 말한다 - 일본 문화재 이면에 도사린 복제와 조작의 관행을 추적한다
김경임 지음 / 홍익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경임을 '클레오파타라의 바늘' 인터넷 강연으로 처음 만났다. 우리 문화재 반환에 대한 탄탄한 놀리와 세계 문화재 반환에 운동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다. 그후,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1,2'를 읽으며 저자 김경임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일본 문화유산에 대한 책을 썼다. 머뭇거림없이 그녀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은 크게 세가지이다. 일본인과 문화재의 어떤면이 나를 놀라게했을까?

  첫번째는 폐불훼석이다. 일본사 수업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일본의 폐불훼석을 소재로한 그림을 보았다. 신불습합 즉, 하치만신상에서 보듯이, 불교의 영향을 받아 신토의 신은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교와 신토는 서로 융합하였다. 그런데,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불상을 부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불교와 신토는 한몸에 서로다른 얼굴을하고 있었는데, 신토라는 얼굴을 내세우기 위해서 불교라는 얼굴을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수많은 문화재가 사라졌다. 신토를 국가 종교로 만들어 천황중심의 국가 이념을 굳건히하기 위한 메이지 정부의 어리석음이 수많은 문화재를 다시는 복구할 수 없게 훼손했다. 일본의 심리학자 기시다 슈는 이를 "'페리 쇼크'로 인해 굴욕적인 개국을 강요당하고 침투하는 서양 세력에 의미 있는 항거 한 번 못해 보고 스스로 선택한 맹목적인 서구 추종의 결과, 자존심과 자기 정체성이 상실되어 나타난 정신분열 병자의 행동"이라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폐불훼석을 그치게한 것은 서구와 맞서기 위해서는 일본만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전통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물'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문화재'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일본은 임신검사라는 일본 최초의 문화재 조사를 시작했다. 더욱이 1873년 빈 만국박람회 출품물 확보를 위해서라도 일본 문화재를 조사하고 폐불훼석을 막아야만했다. 일본의 문화재 정책은 철저히 일본 근대가 만들어낸 정책이다. 일본의 근대화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 어떤 것도 파괴해야했다. 그러나, 그것이 천황중심의 일본을 만드는데 필요하다면,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게 정책을 바꾸어 보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은 보존에서 그치지 않았다. 

  둘째, 일본은 수많은 복제품을 만든다. 일본은 문화재를 복제하여 국내에 전시할뿐만 아니라, 해외에 팔기도했다. 문화재 복제를 단순한 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산업으로 생각해서 많은 문화재가 복제되었다. 과거의 사라진 기술을 문화재 복제 산업을 통해서 계승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문화재 복제를 하나의 산업으로 여기는 일본인의 정신세계가 자못 흥미롭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본 천황가의 보물이 잠들어 있다고 알고 있는 '쇼소인의 보물 대부분(95%)이 박래품이 아니고, 일본제 복제품'이라는 사실이다. 외부의 선진 문물을 재빨리 복재해내는 그들의 장인정신(?)이 놀랍기도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2019년 NHK의 다큐멘터리이다. 


  "8세기 일본이 이같이 막대한 외국제 보물을 복제한 배경에는 일본의 국가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것이다. 거대 제국 당나라에 맞서려 했던 쇼무천황은 신생 일본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획기적 전략으로서 보물을 국산화했다는 것이다.박래품 보물을 대량 복제함으로써 일본을 보물의 제작국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설명인데, 이른바 오늘날 '물건을 만드는 나라'로서 장인정신에 충만한 일본의 원형은 8세기 쇼무천황의 국가프로젝트에 기원이 있다는 것이다."(229~230쪽)


  사료로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을 펼치는 NHK 다큐멘터리의 대담성이 놀랍고, 복재품을 잘 만드는 일본의 저력(?)을 이렇게 미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놀란다. 

  세번째, 일본의 이웃나라 문화재 약탈과 활용이다. 일보은 동양의 오래된 문화와 동양문명의 진수를 보존 계승하여 독자적으로 문화를 발전시켜온 맹주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시아의 변방에 자리잡은 일본은 자신의 바램을 이웃나라의 문화재로 증명하고 싶었다.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은 일본이 이웃나라의 문화재를 약탈하는 호기를 마련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임나일본부를 증명해줄 수있는 유물을 찾기 위해서 마구잡이식 발굴이 이뤄졌으며, 중국에서도 도굴과 약탈이 행해졌다. 때로는 파괴되어 없어질뻔한 문화재를 일본이 보관하다 돌려주었다는 선전도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약탈된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문화재들이 아직도 본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를 천황제국가 일본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재를 그 노획물로 여기는 일본인들의 삐뚤어진 문화재 관념이 바뀌지 않는 이상, 문화재가 본래의 자리를 찾기는 힘들것같다. 


  '워너 전설'이라는 것이 있다. 나라와 교토가 미군의 공습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워너의 노력 덕분이라는 전설이다. 일본 미술을 존경했던 랭던 워너가 일본문화재 목록을 작성하여 일본의 고도에 간직된 고대 문화재의 중요성을 미국에 호소하여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전설을 일본인들은 듣고 싶었다. 일본인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던 GHQ의 민간정보교육국 홍보담당관 헨더슨 중령은 일본인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줌으로서 미군정에 대한 성공적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문화재는 과거의 것이라기보다는 현재 필요에 의해서 복제되고, 새로 창조되는 것이라 믿는 일본인들의 심성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서구인들에게 '저펜이 넘버워(Japas is number one)'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그들은 필요에 따라서 문화재를 훼손하기도하고, 필요하다면 부수었던 문화재를 다시 복재하여 재탄생시키기도한다. 때로는 자신들의 문화재를 서양인들이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내면의 자존감을 키워서 당당히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아름다워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들의 애처러운 모습이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메라 -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윤대석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주국에는 박정희와 김일성 그리고 기시노부스케가 있었다. 그들은 만주에서 만주군으로 항일빨치산으로 만주경영의 실질적 책임자로 살았다. 광복후에는 남한과 북한, 일본의 최고 지위에 까지 올랐다. 만주국은 동아시아 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만주국에 대해서 우리는 잘알지 못한다. 이 책은 그 만주국을 키메라에 비유하며 우리에게 그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만주국은 오족협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다섯민족인 화합하며 공존하는 이상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상은 일본의 새로운 식민지일 뿐이었다. 중국인 관료와 일본인 관료의 급료차이는 물론이고, 생도들의 생활 차별도 심각했다. 


  "군관학교 생도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절반씩 차지하고 있었다. 커리큘럼, 교재 등은 똑같았지만 생활에 대한 대우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있었다. 복장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본인 생도는 위에서 아래까지 전부•신품이었지만 중국인 생도는 외출복 외에는 대부분이 낡은 것이었다.
침구와 그 외 생활용품도 복장과 마찬가지로 일본인 생도는 새것, 중국인 생도는 낡은 것이었다.
식사에도 차별이 있었다. 일본인 생도는 주식으로 쌀밥, 반찬은 영양이풍부한 것을 먹었다. 중국인 생도의 식사는 고량뿐으로, 그것도 말과 소에게 먹이는 사료용의 붉은 고량이었다. 그때 위병이나 위궤양에 걸린생도들은 사십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것이 ‘민족적 억압‘이 드러난 한 사례임은 명백하다 - P310

  

 오족협화는 허상이었고, 실제 생활에서는 야마토인의 우월성과 타민족에 대한 차별과 무시가 일상화되었다. 땅을 일본인에게 헐값에 강제 매각당하는 중국인과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겨울에 일본인에게 집을 빼앗기는 조선인들의 모습에서 오족협화라는 슬로건은 타민족 압살로 바뀌어야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모든 것을 빼앗겨서 한겨울에 알몸으로 살아가는 중국인 아이! 아버지는 강제 노동에 끌려가서 생사를 모른다! 저자는 아마도 군사 진지 구축에 동원되어 비밀유지를 이유로 학살당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것이 오족협화의 진실이었다. 

  오족협화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만주국 황제의 자리에 오른 푸이는 그 자리에 만족했을까? 비루한 푸이! 일본의 침략주의에 기대어 청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야심도 있었겠지만, 그는 꼭두각시 제국의 꼭두각시 황제였다. 만주국의 관료는 일본인들이 장악했다. 국방은 일본제국에 의탁했다. 만주국에는 헌법조차 없었다. 푸이의 비루함의 극치는 일본천황과 같은 지위를 획득하려 청나라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포기하고 일본의 아메타라스오오카미를 제사지내는 것으로 정점을 찍는다. 신토를 국교로 삼으며 일본천황에 기대어 강력한 지위를 얻어려했던 푸이는 꼭두각시에서 벗어나 꼭두각시 공연자가 되려했다. 그러나, 그는 꼭두각시를 벗어날 수없었다. 청조를 부흥시키겠다는 그가 청조를 부정하고 일본인이 되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느 학자는 만주국을 동아시아의 인큐베이터라 말했다고한다. 만주국은 일본제국의 각종 정책 실험장으로 활용되었으며, 일본 관리는 만주국 관리로 파견되었고 일본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실험을 일본에 다시 펼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만주국의 경제 정책을 비롯한 각종 정책은 1945년 이후에도 시행된다. 

  저자는 "평화주의를 이념으로 내걸고 국방을 타국에 위임하고 자신의 국토를 전략 기지로 제공한다"는 전략이 "전후 일본이 선택한 방향과 어딘가 상통하는 점이 있지 않은가?(106쪽)"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식민지 혹은 그에 상응하는 국가를 가진 국가의 국민은 식민지를 지배하는 원리에 의해 아무래도 스스로가 지배를 받게 된다.(300쪽)"라고 지적한다. 괴물과 싸우며 괴물과 닮아가듯이, 꼭두각시 만주국을 지배하며 일본은 만주국을 닮아갔다. 일본제국 없이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 만주국이 일본제국이 멸망하면서 사라졌듯이, 미국 없이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 일본이 미국의 하수인이되어 꼬리를 흔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일본의 다리밑을 기며 배를 드러내고 아양을 떠는 친일주구가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일본이 무너지면 생존할 수 있으까? 

  

ps. 번역가가 일본신 한자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여 책읽기가 무척 힘들었다. 주석이라도 제대로 달아주었다면 조금 나았으리라,...

  예를 들어 "대어심"이라는 단어는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없다. 큰 물고기의 마음이라는 설명을 빙이 할뿐이다.  또한 "착종" 처럼 잘 사용하지 않는 일본식 한자는 '혼종'으로 순화하여 번역하는 친절함을 발휘할 수는 없는지 저자에게 묻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일본 - 일본에 대한 편견이 아닌 편견 같은 진실
김교수 지음 / 그린하우스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인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얽혀버린 한일관계를 풀 수 없다! 그래서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은 책은 호사카 유지 교수의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책은 학자가 쓴 책답게 조선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하며 조선과 일본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여져있다. 그후, 심리학을 전공한 유영수의 '일본인 심리상자'를 읽었다. 일본에 살기도했던 작가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분석했다.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일본은 거대한 정신병원이라는 것이다. 사무라이의 칼이 지배하는 극도의 공포사회를 천년이상 지내오다보니 그들의 정신세계는 역사적 집단 트라우마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염종순의 '일본관찰 30년'을 읽었다. 일본에서 30여년을 살면서 깨달은 일본인의 심리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리고 이제, 롯본기 김교수의 '굿바이 일본'을 읽었다. 이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작성해보자.


1. 같기도하고 아니 같기도하고...

  사람은 보이는데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 따라서 다른 해석을 한다. 같은 일본에 관한 책이지만 다른 견해들이 있다. 

  '일본인 심리 상자'라는 책에서 일본인은 지하철에서 유모차를 끌고오는 엄마들을 민폐라고 생각한다. 아이에 대한 따뜻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사적공간을 침해했음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일본인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오직 자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는 일본인의 모습을 롯본기 김교수도 언급한다. 

  롯본기 김교수는 일본에서 무거운 물건을 가지고가는 노인분들의 물건을 들어 드린단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서 이러한 선행은 보기 힘들다. 심리학적 접근보다는 일본인들의 국민성에 촛점을 맞추어 자신의 경험을 해석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타인의 은혜는 같은 크기로 갚아야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우리의 노인공경 문화를 기대하는 것은 돌맹이 갖다 놓고 닭알 되기를 바라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약자에 대해서 배려를 하는 따뜻한 나라라고 서술한 책도 있다.  '일본관찰 30년'이라는 책의 저자 염종순은 일본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중증 지체장애자인 염종순의 아들은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장애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한국을 떠나 일본에 갔다. 그곳에서 외국인인 자신의 아들에게도 전동 휠체어를 무료로 나눠주는 일본의 따뜻한 행정 시스템을 만났다. 이에 감동한 염종순은 일본의 중고 휠체어를 한국의 장애자에게 기증하는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일본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체험담이다. 

  반면, 롯본기 김교수는 일본은 한국보다 장애자의 수가 두배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장애인을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싫어하는 일본인의 종특(종족 특성)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과연 일본인은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하는 종특을 가진 사람들일까? 아니면 롯본기 김교수가 편견을 가지고 일본인을 보았기에 벌어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까? 타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에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도 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따른다면, 일본인은 시스템으로 약자를 배려할지는 모르지만, 개개인이 서로에게 배려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태려하기 싫어하는 일본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시스템으로 배려하는 일본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참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일본인 같기도하고 아니 같기도하다.


2. 일본은 침몰하고 있는가?

  롯본기 김교수는 갖가지 수치를 증거로 일본 사회가 침몰하고 있다고 말한다. 초고령 사회, 높은 자살률, 심각한 저출산 문제, 심각한 국가 부채, 수습되지 않고 있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등등.... 롯본기 김교수의 일본에 망조가 들었으며, 아베 노믹스는 타는 불에 기름을 붓듯이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다고 지적한다. 특히, 반도체 핵심 소재 3가지를 수출금지를 한 것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기술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며, 일본 중소기업으로서는 수출길이 막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웃을 수 없었다. 초고령화와 높은 자살률, 심각한 저출산 문제는 우리 대한민국에도 해당되지 않는가! 더욱이 저출산 문제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심각하다. 그러니, 초고령화의 속도도 우리가 빠를 수밖에 없다. 이러다가 우리 대한민국인이 멸종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 의식이 든다.

 아울러, 롯본기 김교수는 일본인은 건강수명과 수명과의 차이가 10년이라며 이로인해서 요양원에서 보내는 일본인이 많으며 이로인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운동하지 않고 약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노인분들이 우리나라에도 많다. 급속한 초고령화 속에서 우리도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한다. 

  일본이 침몰할 것이라면, 대한민국도 침몰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일본호와 대한민국호가 서로를 바라보며 '네가 먼저 침몰할 거야!'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 같아 무척 침울하다. 더욱 침울한 것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위기 경보를 울려야하는 언론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일본의 방송과 언론 현실은 보도하지 못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이다."-310쪽


  롯본기 김교수는 방사능의 영향으로 심각한 질병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가 한달 후에 폐간된 '타카라지마'라는 잡지를 예로들며 일본의 언론을 매섭게 질타한다. 일뽕 방송을 만들고, 한국인에 대한 모멸적 방송을 송출하는 일본방송을 질타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수구 신문과 기레기들이 한국의 심각한 경제 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 권력을 견제하는 감시병이 되기 보다는 권력의 나팔수가 되려한다. 일본의 핵폐수가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과연 일본과 무엇이 다른가? 침몰하는 일본보다 더 늦게 침몰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인가? 긴 한숨이 나온다. 


  책을 덮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인간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일본인을 대하면 반대로 무시당하고 엄격한 규율과 경직된 조직문화를 만들어줘야 순종하는 일본인이 된다."-47쪽


  자율보다 통제에 중점을 두어 교육한 결과 일본은 갑질을 하는 사람에게 순종한다. 인간적으로 대해주면 자신이 갑인줄알고 갑질을 한다. 칼의 문화와 붓의 문화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하며 롯본기 김교수의 말을 받아들이려하면서도 '과연 그런가?'라는 반문이 밀려온다. 우리 사회에도 만만치 않은 갑질이 있지 않은가? 서이초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생님은 왜? 자살했는가? 자신의 많이 배우고 변호사라며 갑질해서는 안되는 선생님에게 갑질을 하지 않았는가? 무엇이 일본보다 낫다는 말인가? 나쁜 정치인과 블랙기업이 일본에 많다고 지적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나쁜 정치인과 블랙기업이 없는가? 

  롯본기 김교수의 지적이 일면 타당하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일본보다는 덜하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은 결점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친구는 바꿀 수 있어도 이웃나라는 못바꾸는 법이다. 못된 일본을 교화시켜 좋은 이웃으로 만드는 법은 없을까? 롯본기 김교수는 일본이 미국에 절대 복종하는 모습을 예로들며 일본의 갑이 되라 말할 것이다. 과연 그길밖에 없을까? 긴 한숨이 몰려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 관찰 30년 - 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
염종순 지음 / 토네이도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경일 교수가 학생들에게 한모둠은 강아지와 고양이의 차이점을 쓰라고 했고, 다른 한모둠에게는 테블릿과 고양이의 차이점을 쓰라고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너무도 다른 테블릿과 고양이의 차이점은 한가지도 쓰지 못했는데, 비슷해 보이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차이점은 너무도 잘 써내려갔다. 김경일 교수는 말했다. 다른점은 비슷한 사이에서 발견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점이 많기에 다른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다른점이 편견을 만들어내고 아픈 역사를 만들어냈다. 

  저자 염종순은 일본의 후진적인 정보화 현실과 우리의 앞선 정보화 시스템을 거론하며 일본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다. 유튜브 '선대인 TV'에서 '디지털 조선통신사' 코너에서 일본의 현주소를 낱낱히 소개해주었다. 난 그것을 너무도 재미있게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산업화 시대에는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일본이 앞서지만,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는 한국이 앞설 수밖에없다는 지적에 희망을 갖았다. 그 내용을 제1장에 정리해 놓았다. 

  제2장과 제3장에서는 한국인이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두어야할 것들에 대해서 서술했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같은 한자 문화권이기에 발생하는 오해였다. 한국에서 친일파 재산 환수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일본인이 염종순의 걱정을 했다. 염종순이 친일파이기에 그의 재산이 몰수될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친일파'는 한자를 풀이하면, 일본과 친한 사람무리이다. 염종순이 일본과 친하기에 그의 재산이 몰수될 수도 있다고 일본인은 판단한 것이다. '친일파'라는 단어 대신 '민족 반역자'라는 용어를 나부터 사용해야겠다. 같은 한자이지만 너무도 다른 의미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사용하는 단어는 많다. 정말 말 같은 한자문화권이기에 같은 한자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차이점이 발생한 것이다. 

  저자 염종순은 민간 외교관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의 다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는 믿음으로 통교하는 사신이라는 뜻의 민간 통신사이다. 그러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도 서슴치 않는다. 


  "우리는 자국민들에게는 사과와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일본정부'와 자국정부에게 전쟁에 대한 책임과 사과를 요구할 줄 모르는 '일본국민들'과 과거사를 논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154쪽


  가해자이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몇몇 정치인이 사과를 하고서는 그 이후 다른 정치인이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일본 정부'는 자국민에게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다. 언제나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갖기 마련이다. 일본 국민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정치인을 갖은 이유는 그들이 정치인들에게 반성을 요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반면 교사로 삼아야한다. 우리도 우리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두고 있는지... 그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긴 한숨이 나온다. 

  역사를 가르치는 내가 일본사에 대해서 나름 잘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고 1868년 도쿄로 천도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천도를 단행했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한다. 공식적으로 교토에서 도쿄로 천도한다고 정치인들이 선포하지 않았다. "한번 천황을 도쿄로 출장" 보냈고, 천황은 도쿄에 눌러 앉아 버렸다. 천도 반대론자는 천도를 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천도론자는 실질적 천도를 이루었으니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일본인들의 일처리 방식이다. 문제를 정면으로 직면하기 보다는 슬그머니 처리를하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이해해야만 일본을 이해할 수 있다. 

  염종순은 마지막 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공존을 말한다. 그에게는 중증 신체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자비로 구입해야한다. 허기사, 나랏돈이 복지비로 쓰이는 것을 자기돈 나가는 것보다 더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내주변에 많으니....... 한국은 그의 아들이 살기에는 힘든 나라였다. 그런데, 일본에 이주하자, 외국인인 그의 아들에게도 전동 휠체어를 일본이 무상 지급했다. 염종순은 비틀어진 한일간의 역사문제로 고민하면서도 자신의 아들에게 전동 휠체어를 선물해준 일본이라는 나라의 따뜻함에 감사하고 있다.  "한나라의 문명 수준은 노인과 약자를 어떻게 대하느냐로 측정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양면적인 일본은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징용 피해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사과요구는 묵살하면서도 중증 장애자인 염종순의 아들에게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친절하지만 잔인하고 대단한 보수적이면서도 유연한 모순된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