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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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라는 강력한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책은 진지하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블랙 코미디'였다. 첫문장에서부터 작가의 남다른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은 아버지 초상을 치루는 삼일 동안의 일을 담담하게, 때로는 냉철하면서도 가슴 뜨겁게 그린다. 저자 정지아는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그러하기에 그녀가 소설에서 그리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사랑과 용서는 우리 이야기이기도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아픈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보통 웃음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에서 나온다. 이 책 속의 아버지는 자본주의가 승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언젠가는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이상주의자의 삶을 살고 있다. 부인과 싸울 때에도 사회주의 논리를 들이댔다. 방물장수 여인을 좁디 좁은 자신의 집에 재우려하자 어머니가 성화를 냈다. 그러자, 아버지로 어머니를 제압했다.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는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했던 민중이여, 민중!"

 

이글을 읽을 때 웃음이 튀어나왔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느껴졌다. 현실에 이상의 공간을 옮겨 놓으니 코미디가 될 수 밖에 없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이라는 말이 있다. 방안에서 책만 읽어 얼굴이 하얀 선비가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 경우에 쓰는 말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전형적인 백면서생이었다. '공산당 선언'을 읽고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자신의 이상을 굳게 믿었다. 농사도 '새농민'을 탐독하며 '새농민'이 하라는데로 했다.

강을 건넜으면 배는 버리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고 책의 뜻을 취했다면 책은 버려야한다. 책의 본질을 나의 가슴속에 담아 두고 그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현실의 길을 모색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현실과 괴리된 책 속의 이상에 얽매여 살아간다. 세상을 잘못 만난 자신의 불운을 탓하면 한세상을 한탄한다. 책속의 아버지는 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책의 노예가 된 전형적인 백면서생이다.

그래도 소설속의 아버지는 인텔리이다. 나는 그런 인텔리 아버지를 둔 사람을 부러워했다. 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학교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도 동생들은 교육시키겠다며 도시에서 노동을 해서 두 동생을 공부시켰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배우지 못한 형에 대한 무시였다. 자신이 동생을 어떻게 교육시켰는데 자신을 무시하냐며 술을 마시며 명절 분위기를 공포분위기로 만드는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주경야독하며 배우려하지 않고, 동생을 가르쳐 덕을 보며 살겠다는 얄팍한 아버지의 생각에 몸서리가쳐졌다. 소설 속 고아리는 어쩌면 그래도 부러운 인텔리를 아버지로 두었다.

아버지 고상욱은 동네의 모든 일을 자신의 일처럼한다. 아니, 자신의 일을 제처두고 동네 머슴이 되어 일을 한다. '사회주의의 이상을 품고 혁명을 꿈꾸었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아버지 고상욱이 내뱉은 말은 '사회주의 이상'이라는 나의 생각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민족이고 사상이고 민심만 안잃으면 난세에도 목숨은 부지허는 거이여"

 

그렇다. 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빨치산 출신의 빨갱이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머슴이 되어야했다. 동네 머슴이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는 그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내기를 해야하는데도 이를 내 던지고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의 뒷처리를 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그의 투쟁이 보엿보였다.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겠다는 그의 이상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자라는 생물학적 특징은 사라지지 않는다. 책속의 주인공 고아리는 하동댁 궁둥이를 뚜딜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아버지는 혁명가이기 이전에 보통 남자였다. 아니,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남녀가 이성에게 관심이 없을 수 있을까? 대중강연에서 공지영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영화화하면서 배우 강동원을 직접보았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들뻘되는 강동원을 보면서 자꾸 눈길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단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간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인데 인간의 본성을 없앨 수는 없다. 오히려 소유욕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없애려했던 사회주의가 역사에서 퇴출되지 않았던가?

책을 읽는 내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아버지 장례식에 군수, 국회의원, 총장, 학장, 학과장의 화안이 답지했다. 심지어 한때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가 빨치산 아버지를 고기 몇근 들고 찾아 오기도 했다. ? 그들은 빨치산을 존경하는 것일까?

대학시절, 어느 단과대 학우가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그 당시 치열하게 투쟁했던 빨치산의 모습을 보고 각성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나는 빨치산들은 '민족'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보지 못하고 이념의 노예가 되어 동족의 가슴에 총뿌리를 들이댄자들이라고 비판했다. 내말에 할말을 잃은 학우는 그후로 나와 관계를 끊었다. '이념'이라는 허상에 홀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아귀다툼을 하는 자들을 과연 긍정할 수 있을까?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정지아는 말한다. 그와 비슷한 말을 나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외숙모께서 하셨다. '죽은자는 저 세상으로 떠나면서 자신에 대한 나쁜 감정까지 가져간다.' 아버지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면서 무던히도 그를 원망했다. 그런데, 아버지를 떠나 보내자, 그가 좀 더 살아 우리 곁에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꿈틀거렸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였다. 산업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정부는 저곡가 정책을 실시했다. 농사를 지어도 항상 적자일 수밖에 없는 산업정책과 산업 구조 속에서 힘든 노동을 잠시 나마 잊을 수 있는 것은 한잔의 술이었다. 농촌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알콜 중독이 되어갔다. 간경화로 이 세상을 뜬 사람이 우리 마을에는 많다. 그 한사람이 나의 아버지이다. 지긋지긋한 술을 좋아한 나의 아버지는 술을 핑게로 가족에게 상처를 안겼다. 담석증으로 쓸개를 떼어냈는데도 아버지는 꿋꿋하게 술을 드셨다. 어머니의 성화를 피해서 몰래 소주를 사다가 숨겨 놓고 먹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저자 정지아도 아버지가 남긴 '빨갱이'라는 주홍글씨가 그녀를 옥죄었다. 이 소설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소설로 작품활동을 한 그녀가 빨치산 출신의 아버지를 떠나 보내기 위해서 쓴 소설 같다. 정지아는 조문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들을 떠올린다. 그 과정을 통해서 주인공은 아버지와 화해한다. 나도 그랬다. 애증이 교차하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나보내며, 못난 당신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절규하면서도 그가 그리운 것은 당신에 대한 용서를 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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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혜문 지음 / 금강초롱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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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궤'반환, 문정왕후 어보 반환, 응답하라 오바마 프로젝트 성공 ...... 하나의 문화재를 반환 받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는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이땅에 다시 모셔왔다. 그리고,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라는 책은 문화재 반환을 위한 그의 노력과 결실, 실패와 좌절, 산적한 과제를 그의 호소력있는 필체로 써내려갔다. 팟케스트를 통해서 그의 강의를 많이 들었지만,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흘러 넘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그가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왜? 자신의 모든 것을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에 쏟아붓고 있는 것일까??


  혜문스님이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혜문스님이 어느 비구니 스님의 개인차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흥국사 지장전에 있어야할 탱화 두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혜문 스님은 그 탱화가 밀반출된 탱화임을 알았고, 그 탱화를 회수했다. 그런데, 여론은 옳은 일을 한 혜문 스님을 칭찬하지 않았다. '문중 어른의 약점을 캐내 까발린 하극상'이라며 여론은 그를 매몰차게 나무랐다.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오히려 몰매를 맞는 억울한 일이 벌어졌다. 정의가 힘을 갖지 못해 비열한자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것보다 서글픈일이 없다. 혜문 스님은 그 서글품을 안고 도망치듯이 일본에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만났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되찾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어떤이는 시련에 용기를 잃고 좌절한다. 어떤이는 시련을 딛고 일어선다. 혜문 스님은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오히려 그 시련이 그를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이라는 숭고한 가시밭기를 가도록했다. 우리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시련에 좌절하기 보다는 그 시련이 나를 더 크게 만들수 있다. 그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그 시련으로 부터 교훈을 얻어 삶의 밑거름으로 삼는다면 말이다. 

  문정왕후 어보를 환수한 혜문 스님은 대한제국 국새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그런데, 반환 받기로 한 국새를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가져오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작전명 '응답하라 오바바'이다. 어짜피 반환받을 것이면 형식이 뭐가 중하겠는가! 굳이 오바마 대통령을 자극할 필요가있을까? 이러한 회의 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에 대해서 혜문 스님은 강대국들에게 짓밟힌 민족적 자존심, 상처받은 민족혼을 치유하기 위해사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문화제 반환운동사에서 세계사적 사례를 만듦으로해서 제3세계 국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큰 뜻을 밝히다. 역시, 혜문 스님은 달랐다. 단순히 우리 것을 되찾겠다는 일차원적 생각에서 머무르지 않고, 상처받은 민족의 역사를 보듬고, 강대국의 군화발에 위축된 제3세계 국가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하고 있다. 그가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사명감에 다시금 감탄을 한다. 

  그의 문화재 반환 운동은 반드시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쿠라 컬렉션 반환 소송에서 그는 승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법정에서 이겨야만 이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강단있는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자신의 노력이 뒷날 누군가의 길이 될 것이라 믿으며 묵묵히 문화재 반환 소송을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금 당장 결실을 맺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혜문 스님의 뒤를 따르는 뜻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추진하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혜문 스님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수만은 없다. 혜문 스님은 명성황후를 살혜한 히젠도를 환수하려하고 잇다. 히젠도 환수 위원회 발대식 사진에는 "국치의 상징, 히젠도를 즉가 폐기하라."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히젠도가 본래 우리것이라면 '환수'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그러나 히젠도는 우리것이 아니기에 '환수'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부적합하다. 

  또한, '즉각 폐기'하라는 글귀도 이해할 수 없다. , '국치의 상징'이기에 '즉각 폐기'해야할까? 오히려 히젠도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증거이기에 폐기 보다는 보존하면서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학습교재로 사용해야하지 않을까? 



  혜문 스님은 이 시대의 안용복이 되어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 고분분투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청하여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불만 가득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 이모교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토히로부미가 대출해간 규장각도서를 반환하기 위해서 서울대에서 한일이 없다고 따가운 질문을 기자가 했다. 이에 대해서 이모 교수는 '한일 협정'과 예산 타령을 하며 민간은 '감정적'이라고 질타했다. 나태한 소위 명문대 교수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무엇무엇 '때문에'할 수 없다는 말보다 무엇무엇 '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옳기에 우리는 간다는 시민 단체의 뜨거운 감정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혜문 스님은 그 뜨거움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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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 - 쓰기에도 근력이 필요하다
이수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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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라는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아름다운 표지 때문이다. 동화같은 몽환적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답게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저자의 말이 귓가에 들리는듯했다. 

  저자는 치유로서 글쓰기를 한 사람이다. 대인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책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 고통의 긴 터널을 뚫고 '외로움을 마주하는 자세'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리고 '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는 자신이 어떻게 그 긴 터널을 뚫고 글을 썼는지를 고백한 고백서이자, 글쓰기 안내서이다.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책을 좋아하는 이수아 작가의 성격이 나와 닮았다. 물론, 이수아 작가가 그 증상이 더욱 심각해 보인다. 그 고통이 심했기에 고통에서 벗어나려 책을 붙잡고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리고 두권의 책을 낳았다.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프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치열하게 발버둥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이수아 작가가 글쓰기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쓰기에도 근력이 필요하다.' 이 말을 이수아 작가는 여러번 강조한다. 그녀는 매일 빠듯한 시간을 쪼개며 글쓰기에 매진하며 천여편이 넘는 에세이를 창작했다. 그녀는 한권의 책을 출간하기까지 수많은 글을 쓰면서 근력을 기르고 있었다. 많은 글쓰기 책들이 강조하는 글쓰기 비법이있다. 


일단 쓰라! 

쓰고 나서 고쳐라! 


  이수아 작가는 이를 실천했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서 나답게 살기 위한 길을 걷게 되었다. 공지영작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서 사형수들의 수기를 여러편 읽었다. 그러면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범죄에 반성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수기가 중반을 넘기자,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론부에서는 반성과 후회를 적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게 해준다. 감정의 분출이 끝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글쓴이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병이 치유의 단계에 접어든다. 

  이수아 작가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대인공포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고쳤다. 글쓰기 근력을 길러서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책일기와 글쓰기는 그녀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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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04-05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많이 좋아하면 결국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 ㅎㅎㅎ

강나루 2023-04-05 21: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는데, 책읽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멋진 일이지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4-05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게 해준다는 말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간혹 감정이 상하는 경우에 간단한 일기 같은 것을 쓰면서 안좋았던 감정들이 어느정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랬던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나루 2023-04-07 13:02   좋아요 2 | URL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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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엘의 '1984'와 대비되는 미래사회를 그린 소설 '멋진 신세계'의 모습은 멋지지 않았다. 가족도 고통도 없다.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하는 사람도 없으며, 가족 때문에 상처받을 사람도 없다. 물론, 가족으로 인해서 생기는 행복감과 푸근함도 없다. 대신 '소마'라는 해롭지 않은 마약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조건 반사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를 통제하며 자신의 계급에 맞는 일을 즐겁게해낸다. 1932년에 출간된 이 책은 콘베어밸트로 대표되는 대량생산 자본주의의 극단적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다. 소설 속 미래사회에서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사회와 공산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상 사회에 대한 민낯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민낯도 보였다.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국가는 세 계급으로 구성된다. '수호자 중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통치자와 전사 계급에 해당하는 수호자, 평민 계급인 생산자가 그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지도층인 '알파', 증산층 '베타', 하류층 '감마', 단순 노동을 담당하는 '델타''엡실론' 계급으로 나뉜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사회보다 계급이 보다 세분화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가족을 이루지 않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영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지 않는다. 플라톤이 우수한 남성과 우수한 여성이 성교하도록 유도하고, 열등집단이나 장애아는 유기되어 죽도록 방치했다면, '멋진 신세계'는 태아 때부터 영양 공급을 조절하여 우수한 계급과 열등한 계급을 조절한다. 이렇게 생산된 사람들은 고통이 스며들 때마다 소마를 마시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히 따른다. 플라톤이 상상한 이상 국가를 '멋진 신세계'는 첨단 과학과 이성의 힘으로 보다 구체화하고 보다 안정된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대공황이 불어닥친 1929년을 지나 아직도 대공황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대공황을 겪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1932년에 출간된 '멋진 신세계'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의 이름 '버나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을 만든 '마르크스'에서 가져온 듯하며, 그와 잠시 교제했던 '레니나''레닌'의 여성화 표현으로 보인다. 주인공 마르크스는 멋진 신세계의 모습에 의문을 품으며 레니나와 함께 야만인 사회에 가서 ''이라는 야만인을 데려온다. 포디즘이 지배하고 있는 미래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마르크스였다. 그리고 그에 의해서 ''이라는 야만인이 멋진 신세계에 돌풍을 일으킨다.

야만인 ''이 본 멋진 신세계는 새로운 지옥이었다. 촉감 영화를 보며 쾌락의 절정에 이르며, 파트너를 건너뛰며 새로운 쾌락을 즐긴다. 무료함을 느낀다면 소마를 마신다. 멋진 신세계는 포드탄신일을 기념하며 공동체 찬가를 부른다. 콘베어밸트에서 필요한 제품을 대량생산하듯, '런던 중앙 인공 부화 조건 반사 양육소'에서 쌍둥이들을 대량생산한다. 아기들에게는 조건 반사 훈련과 수면시 교육법을 통해서 자신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본능적으로 수행하도록 한다. 그들은 늙음과 죽음도 모른다. 호르몬제와 소마 덕분에 60세까지 젊음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죽는다. 그들에게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 아니다. 가족이 없으니 애도해줄 사람도 없다. 야만인 ''은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울분을 터트린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D 사이의 C이다.'라고 말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멋진 신세계는 B (Birth, 탄생)D (Death, 죽음)를 빼앗아 갔다. 그로인해서 C (Choice, 선택)도 할 수 없게 했다. 죽음을 직면하지 못한 신세계인들은 각성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직면한 야만인 ''은 각성했다. 그리고 소마 배급을 받는 그들에게 달려가 각성하라고 울부짖으며 몸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소마 배급을 받으려 늘어선 인간들을 보면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인간들이 생각났다. 교주가 예수라고 세뇌 시키고 가스라이팅을 통해서 복종을 주입시킨다. 아름다운 그녀들이 교주를 위해서 나체로 교주를 영접한다. 교주가 원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교주의 방에 밀어 넣는 신도들의 모습에서 멋진 신세계가 보였다. 수면시 교육법과 조건 반사 훈련으로 본능적으로 복종하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멋진 신세계와 사이비 교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행복해하는 불쌍한 신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야만인 ''은 총통 무스타파 몬드와 만난다. 재미있는 것은 총통의 이름이 '무스타파'라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시기, 갈리폴리전투에서 오스만제국을 구한 전쟁 영웅이자,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수립하며 튀르키예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이 총통의 이름이라니! 총통 무스타파는 논리적으로 야만인 ''과 대화한다. 그리고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

이 부분이 이 책의 하일라이트이다. 완벽한 쾌락이 주어진 사회에서 스스로 '불행해질 권리'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가? 성공만이 행복을 약속하며, 돈이 곧 성공을 뜻한다고 주입시키는 우리사회에서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는 사람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다큐멘터리에 열광하는 수많은 남성들을 바라보며,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 길이 사실은 모두 불행해지는 집단체면의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혹은 그것을 알지만, 선듯 야만인 ''처럼, 자연을 선택한 '자연인'처럼 선택지에 없는 새로운 길을 걷지 못한다. 닭장에 갖힌 닭은 닭장에 불만을 품지 않고 맛있는 사료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혹시, 우리는 집단 체면에 걸려 현대 물질 문명의 닭장에 갖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닭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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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 - 디지털 시대,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존 카우치.제이슨 타운 지음, 김영선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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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라는 책은 곧 닥칠 미래 학교에 대한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대비해서 꼭 읽기를 권하기에 읽기시작한 책이다. 도전기반학습, 메이커 운동, 코딩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을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없다. 왜일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쳇GPT가 나오기 전이다. 개학 준비를 하는라, 개학후 3월의 고단함을 견디느라 이 책을 마져읽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서야 책을 마져읽으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책을 중간정도 읽을 때 쳇GPT가 세상을 요란 스럽게 했다. 이 책도 구시대 책이 되어버렸다. 저자가 "기술이 우리를 위해 일하도록 해야한다."(265쪽)라며 기술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하는지를 안내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많이 변했다. 코딩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우리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코딩해줄테니 말이다. 

  어느 학부모가 나에게 푸념섞인 말을 했다. 딸이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쳇GPT에게 자신이 원하는 컵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쳇GPT는 자신이 원하는 컵을 자신보다 더 잘 그렸다. 인공지능 컴퓨터와 인간이 경쟁해야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인공지능 컴퓨터와 경쟁하지 말고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위해서 일하도록해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인공지능과 경쟁해야하는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서 인공지능 전문가는 특이점을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김어준은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스카이넷이 출현한 것 같다며 걱정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스스로 새로운 학습하고 새로운 것을 터득한다. 그러나 인간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어떠한 원리로 새로운 사실을 터득했는지 알 수 없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공격하는 생각하기도 싫은 미래가 펼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공지능 윤리를 만들어야한다고 전문가는 말했다. 교실이 변하기 전에 우리의 미래는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우리 인류가 놓여져있다. 

  수행평가 논술 주제를 알려주자, 학생들은 쳇GPT에게 물어보겠다고 답한다. 성장을 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활동을 수행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생각을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맡기고 있다. 인간을 위해서 만든 돈이 인간을 지배해듯이, 인간을 위해서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 이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기술이 인간을 위해서 일하도록 만들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기술을 인간을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갖추어야한다. 그런데, 쳇GPT가 등장한 현시점에서 인간은 쳇GPT의 노예가 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카이넷의 노예가 되지 않고 스카이넷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 교육은 무엇을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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