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주역 - 팔자, 운세, 인생을 바꾸는 3,000년의 지혜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강기진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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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은 점을 치는 책이다. 그런데, 그 책이 유교의 경정이되었다. 주역점을 치는 책이 괴력난신을 말하지 말라고한 공자가 가죽끈이 세번 떨어질 정도로 애독하던 책이라니 아이러니했다. 단순히 점치는 책이라면 공자가 이렇게 좋아할리가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주역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역이 어려운 책이라는 공포(?)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십에 읽는 주역'을 먼저 읽기로 했다. 

  저자 강기진은 어려운 주역을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한자 하나 하나를 갑골문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 뜻을 깊이 있게 설명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튜버들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쉽게 주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중에서 박막례 할머니의 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는 거이여.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치고 장구 치고 니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164쪽)


  불교에서 강조하는 주인으로 살라는 말을 박막례 할머니는 70 평생의 긴 내공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언제나 주인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남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에게는 너무도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명예와 승진을 부추겨도 이에 휩쓸리지 않는 거목이 되고 싶었다. 박막례 할머니의 말씀은 거목이 되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 주었다. 

  강기진은 '붕'과 '우'의 차이를 갑골문을 들어 설명한다. 우는 서로 손을 잡은 상태를 뜻한다. 소꿉친구들이 이에 속하는 반면, '붕'은 같다는 뜻으로 동류라는 뜻이다. 같은 도를 추구하며 가은 길을 걸어가는 도반을 붕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우를 사귀려했다. 그것이 진정 사심없는 사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삶의 의미를 생각해야하는 우리는 붕을 사귀어야하지 않을까? 같은 뜻을 같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붕을 사귀어야한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려 고민하는 붕을 사귈 때이다. 

  책을 덮었다. 두꺼운 주역을 얇은 책으로 이해하려했다. 물론, 이 책한권 읽었다고 주역의 심오한 뜻을 다 이해했다고 믿지 않는다. 공자가 인생의 여로에 주역을 읽으며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려하였듯이, 나도 언젠가는 주역을 읽으며 인생을 이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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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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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경축하고 있을 때, 서울 중구에 있는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는 한무리의 노인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이든 현수막에는 "대한민국 역사 왜곡 작가 노벨상, 대한민국 적화 부역 스웨덴 한림원 규탄한다"라고 씌여있었다. 친일 반공에 뿌리를 둔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4.3과 5.18을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라 폄하한다. 그 사진을 보며 저 늙은 보수꾼들은 한강작가의 책에 담긴 어떠한 내용이 무서워 저리도 몸부림치는지 궁금했다. 때마침 큰딸이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에게 책을 넘겨 주었다. 200여 쪽의 얇은 책을 펼쳤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낯선 것은 2인칭 시점의 서술이었다. 도청에서 군인들의 총에 희생된 시민들의 시신을 관리하는 주인공 동허를 '너'라고 작가는 불렀다. 낯설었다. 중학교에서 1인칭 시점과 인칭 시점의 소설에 대해서 배웠지만, 2인칭 시점에 관해서는 배운 기억이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2인칭 시점은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고 한다. 독자가 주인공을 자신이라고 감정이입하며 읽기에 흡입력이 강하다는 장점이 있단다. 그러나, 낯선 2인칭 시점에 나는 당황했고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 내려가는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2장 검은 숨에서는 시점이 갑자기 1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군인 트력에 실린 시민들의 시체는 군부대에서 태워지고 있었다. 순간 주인공 동호가 죽었고, 동호의 영혼이 화자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영혼은 '나'이고 동호의 육체는 '너'로 작가가 설정한 것인가? 순간 나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몸이 타들어가는 영혼은 동호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의 친구였다. 작가는 특유의 시적 언어로 타들어가는 시신과 이를 바라보는 영혼을 잔잔하게 묘사했다.

 3장에 들어서자 시점은 3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익숙한 시점이라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게다가 이책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시기 도청에 남았던 동호라는 15살 소년을 주인공으로,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각장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겪은 5.18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 5.18의 주인공은 동호 한사람일 수 없었다. 그 때 그 현장에 있었던 모두가 5.18 민주화 운동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기에 각장마다 주인공이 달랐다. 그에 따라 시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작가 한강의 탁월한 구성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3장은 이책의 하일라이트였다. 3장은 살아남은자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3장의 화자는 5.18 당시 도청에서 벗어나 병원에서 밤을 세웠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5월의 학살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깊은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며 그녀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어야만했다. 이러한 그녀의 심정을 연극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루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99쪽)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루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100쪽)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노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101쪽)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102~103쪽)


  이후 4장부터 6장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는 자들이었다. 그 고통을 참아내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우리가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고인에 대한 애도를 통해서 그들을 편히 보내고 남은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의례이다. 5월 광주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 그 지인들은 고인을 애도할 수 있는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5월이 슬플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리라...


  저자 한강은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에서 자신이 '소년이 온다'를 쓰게된 동기와 그 과정을 적었다. 여린 감성의 한강은 5.18관련 자료를 읽으며 악몽에 휩싸인다. 저자 스스로 여러번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 '전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고통을 옆에서 보거나 듣다보면 그의 고통을 상담자도 그 고통을 함께 느낀다. 5.18의 기록을 읽으며 그녀는 그 때의 고통에 전이되었다.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은 많은 독자도 그 고통이 전이되었다고 토로한다. 그 고통을 함께 느낄때, 우리 모두는 5.18의 장례식을 치룰 수 있다. 그럴때 살아남은자의 고통을 겪는 이들도 인생의 장례식을 마칠 수 있다. 스웨덴 대사관에서 어리석은 시위를 하는 이들도 함께 이 책을 읽고 5.18의 장례식에 함께하길 바란다. 우리 모두의 슬픔은 모두가 애도해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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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 - 우리가 몰랐던 해방·미군정·정부 수립·한국전쟁의 기록
김택곤 지음 / 맥스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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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미국 국립 문서고에 가야만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역사학자들은 역사는 한세대가 지나야 역사로 연구할 수 있다며 당대의 역사를 연구하지도 기록하지도 않았다. 결국,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우리를 바로알기 위해서 남의 나라 문서고를 뒤져야만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한조각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 역사학자들은 남의 나라 문서고를 뒤진다. 이책은 저널리스트 김택곤이 역사학자들이 해야할 작업을 대신했다. 우리에게 우리현대사의 조각난 진실을 찾아 책으로 묶어 냈다. 김택곤은 새로운 진실의 조각을 우리에게 던지며 생각의 파도를 일으켰다. 


  1. 하지 사령관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역사학자들은 하지를 군사적인 능력은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인 능력은 없는 존재라 평가한다. 타지역에 보내진 장군들은 해당지역에 해박한 이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능력까지 가졌다. 그러나, 하지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는 친일파와 지주가 많이 있는 한민당인사들이 요직을 장악하도록 했다. 친일파를 등용하고 이승만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며 그들이 정권을 잡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재미있는 것은 하지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밀었던 이승만을 비판하는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1948년 1월 허스트그룹 신문회장인 윌리엄 R. 허스트에게 하지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물론, 하지는 그 편지를 보내지는 않았다. 편지를 보낼 용기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암튼, 허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승만은 아집이 세고 돈을 사랑하며 친일파와 밀착해 있다고 실날하게 비판한다. "그에게 완전 독립 국가로서의 한국에 대한 고려는 없었습니다."(302쪽)라는 말과 함께 이승만은 '신콤플렉스에 사로잡혀있다고까지 표현한다.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밀었던 그가, 왜?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을까? 이승만이 하지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는 이승만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다. 그제서야 하지는 이승만의 실체를 깨달았다. 하지 그가 친일파를 등용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지 않았던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돌고 물신 양면으로 노력한 것도 그가 아닌가? 순진한 군인 하지는 노련한 이승만의 실체를 진정 몰랐단 말인가? 

  이렇게 무능한 하지를 저자 김택곤은 "한국인을 이해하고 도우려했던 우리의 친구였지 않았을까?"(455쪽)라고 평가한다. 미군범죄를 단속하려했고, 한국인을 무시하거나 인종차별하지 말것을 미군에게 당부했던 그의 모습만 본다면 그의 마음이 악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기사에 10명의 미국 흑인 병사가한국 여성을 석유 저장고에 가둬 놓고 밤마다 성폭행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소녀가 탈출해서 이 사건을 오빠에게 알렸기에 이사건에 세상에 알려졌다. 물론 미군은 한국인 여성들을 창녀로서 자발적으로 군부대에 왔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410쪽) 전형적인 축소 수사의 냄새가 난다. 이렇게 미군에 의한 범죄가 사회문제였던 당시에 한국인을 존중하고, 미군범죄를 단속하려했던 하지의 노력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 단점은 정치적으로 무능했다는 것이다. 프로이센 군사 격언에 가장 나쁜 지휘관을 무능하면서 부지런한 자라고 했다. 그러한자는 반드시 제거해야한다는 당부도 프로이센 군사 격언은 잊지 않는다. 열심히 친일파를 등용하고 이승만을 물신양면으로 등용했던 그는 부지런하면서도 무능한 지휘관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반도의 운명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2. 지청천 장군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항일무장투쟁사에 큰 족적을 남긴 독립운동가이다.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군용지도와 작전교범을 가지고 일본군을 탈출해서 신흥무관학교에 간 그는 독립군을 양성한다. 1930년대 만주에서 한국독립군을 이끌었으며, 1940년에는 한국 광복군을 창설해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의 삶이 우리 항일 무장 투쟁사의 역사였다. 사선을 넘나들며 조국 광복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던 그에 대한 평가가 상반된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그것도 동일한 인물이 그를 상반되게 평가하고 있다. 

  OSS 이글팀의 실무책임자 싸전트 대위는 지청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광복후 지청천에 대해서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왜일까? 싸전트 대위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지청천 장군이 변한 것일까?

  그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한 것이었다. 독립운동가 지청천은 광복후 극우파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동청년단을 만들어 극우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승만을 지지하며 분단을 지지 혹은 방관했다. 저자 김택곤의 글을 읽으며 탄식이 절로 나왔다. 내가 존경했던 인물의 안타까운 이면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는 듯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고포스 일병이 하지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고포스 일병은 한국의 운명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했다. 


"한국인 스스로 그들의 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미국-소련 양국 군대가 동시에 철수하면 남북간 내전이 틀림없이 발발할 것입니다."(414쪽)


  일개 일병조차도 한반도의 내전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분단은 곧 내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백범 김구가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북한에 가서 남북협상을 한 것 아닌가? 분단을 막고, 동족 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 백범이 인생의 마지막 모험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백범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지청천 장군을 어찌 분단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던가!

  철기 이범석 장군도 항일 무장 투쟁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시다. 청산리 대첩의 영웅이며, 한국 광복군 제2지대를 이끌었던 영웅이다. 그러나 그도 광복후에는 이승만을 지지하며 극우파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청천과 이범석은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항일 영웅 김좌진 장군이 안타깝게 암살된 것을 지켜보며 공산주의자에 대한 증오가 불타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광복 후, 그들에게 가장 큰 적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탁월한 군인이지만, 현명한 정치가이지는 못했다. 어디 티없는 옥구슬이 있으랴? 옥구슬의 티마져도 우리가 보듬고 끌어안아야만하지 않을까?


3. 연합국의 지위를 얻기 위한 임시정부의 처절한 투쟁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연합국의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 한편으로는 보다 치열하게 노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때가 많다. 그러나, 저자 김택곤이 소개한 임시정부의 처절한 투쟁을 읽으며 그분들도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무모한 이글 프로잭트를 추진했다. 김택곤은 "김구 주석의 마음에는 또 다른 수십명의 윤봉길 의사들이 있었을지 모른다."(101쪽)라고 표현했다. 무슨 뜻일까? 윤봉길 의사는 훙커우 공원에 입장권도 없이 갔다. 윤봉길 의사의 기지로 기념식장에 입장했고, 의거에 성공하고는 저세상으로 갓다. 국내 진공작전 즉, 이글 프로잭트도 이와같았다. 국내에 국내 정진군에 호응할 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구체적인 작전계획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젊은이들을 무리하게 국내로 보낸다는 것은 죽음의 제단에 그들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렇게해서라도 값진 피를 흘려 연합국의 지위를 얻으려했다. 심지어 광복 직전에는 광복군의 지휘권을 미군에게 넘기는 것을 제안하기도했다. 그렇게해서라도 연합국의 지위를 얻으려했다. 

  둘째, 1945년 8월 18일 국내 진공작전을 추진했다. 광복군 선발대는 미군 C-47 수송기로 미군과 함께 여의도비행장에 착륙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항복 예비 접수' 명목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의 저항으로 중국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셋째, 김구 주석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문을 보냈다. 김구 주석은 도너반 장군에게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임시정부를 승인할 것을 건의했으며, 루즈벨트 대통령이 죽자, 트루먼 대통령에게 임시정부 승인 전문요구 전문을 보냈다. 도너반 장군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건의한 임시정부 승인 요구를 읽으면 감동과 깊은 상념이 든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게 되면 일본과의대결에서 달성하게 되는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919년 한국혁명(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곳곳에 있는 한국인들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한국 국내외에서 대일 파괴 활동과 게릴라전 등 갖가지 대일항전을 벌여왔습니다. 때문에 세계의 다른 어느국가들과 달리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조직은 혁명과 파괴 활동에 대한 경험과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도너반장군의 루즈벨트에게 건의한 임정승인 요구) - P107

 

  만약, 루즈벨트 대통령이 3년만 더 살았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아니, 루즈벨트 대통령이 살았을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했다면 우리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단 말인가!


  책은 두껍지만 관련 사진과 큰 활자를 고려한다면 두껍다고 겁낼 필요가 없는 책이다. 술술 잘읽히고 새로운 사실을 안다는 점에서 큰 재미를 주는 책이다. 책을 덮고서 나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프롤로그에 일본계 미국인이 남긴 위안부 보고서였다. 


"위안부는 창녀 이거나 혹은 병사들의 편의를 위해 일본군에 부속되어 부대를 졸졸 따르는 존재일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위안부라는 단어는 일본인 특유의 것입니다." 37쪽

"낯선 사람 앞에서는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실은 여자만의 제주를 부릴줄 압니다."37쪽


  알렉스 요리치라는 일본계 미국인의 심문 기록은 그도 일본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탄식을 자아낸다. 일본을 위한 변명과 조선인에 대한 멸시가 진하게 묻어난다. 미군의 기록이 제3자의 객관적 기록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 남겨진 수많은 기록은 미국인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서 남겨진 하나의 기록이다. 그 프리즘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다른면을 바라볼 수있다. 진실의 퍼즐을 맞추며 새로운 감동과 깊은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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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 - 우리가 몰랐던 해방·미군정·정부 수립·한국전쟁의 기록
김택곤 지음 / 맥스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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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트 대위와 김구면담)
비밀 보고, 1945년 4월 3일
1945년 4월 3일 아침, 본인은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주석과 약 30분간 면담했습니다. 이 면담은 본인이 전혀 요청하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었습니다.
얼마 전 본인이 군사 관련 업무로 임시정부 본부를 방문했을 때제의를 했었는데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면담은 응접 - P46

김구 주석과 대담하는 동안 한국광복군 이청천 총사령관, 광복군 2지대장 이범석 장군, 최근 조직되어 안휘성 부양에서 주둔 중인 광복군 3지대장 김학규 소장 그리고 통역 정한범이 배석했습니다. 김구 주석은 평범한 중국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응접실에들어왔으며 몸이 불편해 잠시 쉬고 있었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구 주석은 외모나 몸가짐에서 건강하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품격 있어 보였고 절제와 점잖음을 갖춘가운데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가 25년 동안 애국적 자객이 - P47

자 테러리스트였다는 사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대담은 대부분 덕담을 나누는 수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김 주석은 미국의 관심에 감사한다고 말하고(제가 이범석 장군과 관계를 이어온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어 전면적인 협력을 할 의향이 있으며특히 최근 안휘성 부양에서 막 도착한 37명의 한국인을 포함해(광복군) 인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본인은 일반적인 동맹국 간 공유하는 가치와는 다르게 한국과의사이에서는 보다 각별한 가치를 공유해야만 한국-미국 공조를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담하는 가운데 김구 주석은 두개의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습니다.
1. 김구 주석은 이범석 장군과 본인 사이에 발전되어온 관계에 대해 기쁨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양인과의 관계에서 싹튼 모든것을 승인했다고 말했습니다.
2. 그는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섬에 진격할 때 필리핀 대통령 그리고 고위 관료들과 동행했는데 이는 필리핀 국민들로 하여금 마음에서 솟아나는 협력 정신으로 일본이 점령한 필리핀을 공격하는 미군을 돕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연합군이한국에 진격할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과 동행한다면 한국 민중들에게도 같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이와 같은 조치는 한국 민중들로 하여금 기꺼이 일본에 저항해 일어서게 하여 한국 내 미국의 작전을 지원하게 될 것으로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 P48

비밀 전문 수신, 1945년 3월 30일발산: 곤명 헬리웰 대령수신: 중경 버드 중령싸전트 대위와 이범석이 토요일(31일) 중경에 도착한다.
뒤에 언급된 인물은 이글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니, 모든 예우 - P51

를 다해 정중하게 맞아줄 것을요망한다. 이글프로젝트는 4월15일경 시작될 것이며 첩보 활동은 바로 그 뒤 절차대로 착수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 P52

본인은 안휘에서 온 37명의 광복군 병사들로부터 강력한 인상을받았습니다. 그들은 이지적이었으며 눈이 초롱초롱하고 열정에넘쳐 있었습니다. 군인 집단으로서 이들은 본인이 본 어떤 집단보다 지적 수준이 높아 보였고, 자질 역시 미국의 어떤 청년 장교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대부분은 대학 졸업자이고 몇몇은 소통 가능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중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인은 이들 전원을 이글프로젝트에 투입해줄 것을 이범석 장군에게 요청했습니다.
(싸전트 대위 보고서) - P52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의 보좌역인 정한범 박사가 오늘 아침 나를 방문해, 김구 주석과 이청천 광복군 사령관, 조소앙 외교부 장관 3인이 웨드마이어 사령관을 면담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기를요청해왔습니다. 이들 모두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최고위 당국자들이며 워싱턴 주재 임시정부 대표가 보내온 전보를 받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전보에 따르면 웨드마이어 장군이 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인을 활용하는 문제를 워싱턴에 있는 한국 관계자들과 논의했다는 것입니다. 언제가 괜찮을지 알려주면 본관이적절한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oss중국전구 부책임자 윌리스버드 중령이 미군사령부 윌리엄 맥아피 소령을통해전달) - P56

현재 우리가 교육하고 있는 한국광복군 요원 개개인에게는 많은정보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 미국 기간 요원들은 이들로부터 첩보를 얻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요원 가운데 50명은 지난해 한국또는 일본 점령지역 곳곳에서 제각기 다른 시간대에 탈출한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 65퍼센트는 일본군에서 탈출했습니다. 이들이갖고 있는 온갖 종류의 전략적 · 전술적 정보의 가치는 엄청날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이들로부터 끌어내려면 현재의 제한된 미군의 인력으로는 매우 더딜 것입니다.
(싸전트 대위보고서) - P61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게 되면 일본과의대결에서 달성하게 되는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919년 한국혁명(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곳곳에 있는 한국인들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한국 국내외에서 대일 파괴 활동과 게릴라전 등 갖가지 대일항전을 벌여왔습니다. 때문에 세계의 다른 어느국가들과 달리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조직은 혁명과 파괴 활동에 대한 경험과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
(도너반장군의 루즈벨트에게 건의한 임정승인 요구) - P107

수산: 러치 부인, 제국호텔, 도쿄
발산: 이승만, 워싱턴 DC. 1946년 12월 14일
이 전문을 러치 장군에게 건네주시기 바랍니다.
직접 문병 드리지 못해 유감입니다. 장군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저희는 장군의 계획을 지지합니다. 입법의원을 지명한 것은 실책입니다. 한국 국민은 그들을 직접 선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 사령관이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하겠다고 고집하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좌익 입법의원들은 입법을 방해하고국민을 분열시킬 것이며 그 결과는 비참할 것입니다. 하지 사령관에게 제발 좌우합작 노력 중단을 명령하라고 조언하십시오. - P224

하지 사령관은 미국 점령지역인 남한에서 온건우파와 온건좌파의정당 간 합작을 구축하고 과도입법회의를 구성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한은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에 따라 실행해야 하는 자치정부 수립의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한국 국민의 다수는 현실을 보다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좌우합작은 지난해 10월 초 발표되었으며 지난 12월 과도입법의원 구성을 위한 선거가 치뤄졌습니다.
-1947.1.3. CIG 가 트루만에게 제출한 한곡의 실태 보고서 - P229

경찰이 정치에 개입해 선호하는 한 편을 지원하고 다른 편을 가해한다면 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한국 경찰들이 목전에서 벌어지는 테러를 못 본 척하고, 실제 테러를 저지르지 않고 있다며 테러단체들을 묵인하고 있는 사례들을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 불안과 미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좌우합작위원회의 계획도실현될 수 없습니다.
현재까지 한국 경제는 친일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친일파 처리에 관한 법이 법제화되어 시행되지 않는 한 조국을 위해헌신할 애국적인 한국인은 없을 것입니다. 또다시 말씀드리지만경찰 개혁이 이루어진 후에야 공정한 선거를 치를 수 있습니다.
-미군정 정치고문 로버트 키니의 정책 보고서 - P258

동아일보 1960. 2.17.
청천벽력의 비보에 전 국민은 경악
꿈속에 사라진 지도자, 야릇한 운명만을 원망또 한 사람의 자유수호자가 이 땅에서 사라졌다. 민주당 대통령입후보자 유석 조병옥 박사의 급서를 알리는 외전은 자유와 민주를 갈망하던 이 땅의 백성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대 비보였다. 하늘이 무너진 듯 땅이 꺼진 듯한 이 비보를 들은 국민들은 4년 전 해공 신익희 선생의 부보에 접했던 놀라움보다 더 큰경악과 실망을 맛본 듯했다. 수술을 받고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고 - P554

국에 돌아오면 민주투쟁에 감연히 나서 옥쇄도 불사하겠다던 조박사. (중략) 그를 이 나라 유일의 민주주의 수호자로 아끼고 우러렀던 학자 그리고 이름 없는 시정인(人)에 이르기까지, 기구한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그의 급서 비보에 여며 그지없이 슬퍼했다. - P555

2018년 1월 16일 <연합뉴스>
강북구청, 제주 4.3 민간인 학살책임 조병옥 흉상 건립 철회
서울 강북구청이 추진하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6위 흉상 건립사업에서 제주 4.3 민간인 학살 주요 책임자로 알려진 조병옥을제외하기로 했다. 제주 4.3 희생자유족회와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강북구청이 각계와 내부 의견 수렴을 거쳐 이같이 결정·통보해왔다고 16일 밝혔다.
제주 4.3 단체들은 조병옥 흉상 건립을 제외해달라고 그간 성명을 냈고 지난 10일에는 박겸수 강북구청장을 만나 해당 사업에서조병옥 흉상 건립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강북구청은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명예를 선양하고 역사의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여운형, 신익희, 손병희, 이준 등의 흉상을 건립하기로 했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병옥은 1947년 3·1절 기념 대회 도중 발생한 민간인 대상 발포사건으로 시작된 대규모 학살 당시 경찰 지휘 책임자 중 1명이다.
고성식 기자(제주 <연합뉴스>> - P556

여순사건이 발생한 사흘 뒤인 1948년 10월 22일 미군정 G-2정보보고는 그날 오전 10시부터 11시 15분까지 실시한 항공 정찰 내용을 기록했다.

5명에서 10명 규모로 그룹을 이룬 사람들이 여수 시내 곳곳을 오가는 장면이 목격되었습니다. 여수항에는 약 200명의 군중이 모여 집회를 갖고 있고 건물 위에는 적기가 걸려 있습니다. 여수 시내 번화가에서 각각 10명과 12명으로 보이는 두 그룹의 반란군들이 줄지어 행진하고 있었으며 교룡리에서 흰옷을 입고 북한기를 들고 있는 50명의 사람들이 마을을 벗어나 남쪽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순천 시내에서는 파란 제복을 입은 청년 150명이 - P576

번화가에 집결해 있으며 5명의 무장한 군인들 두 팀이 제각기 1열로 행진하고 있습니다.
순천역에 4개 소대로 짐작되는 약 200명의 전원 무장한 반란군들이 집결해 있습니다. 또 다른 200명의 병력들이 역과 철로 사이에 앉아있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객차 8량을 단 기차가 보이는데 기관차 2량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순천 시내 건물 곳곳에 북한기가 날리고 있고 어떤 집 마당에는 모두 흰옷 차림의 시체 5구가 목격되었습니다. 구례에서는 정부에 충성하는 국군 병력를 태운 차량 행렬이 막 남원 방향에서 구례에 도착했고, 구례 시내는조용합니다. - P578

10월 27일 오후 2시경 1,500명에서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3개의 그룹으로 분리되어 각각 국방경비대의 경계 아래 억류되어있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이들은 반란군을 도운 혐의를 받는자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국방경비대의 감시를 받으며 붙잡혀 있는 사람 중에는 반란군들에게 도움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된 것으로보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관련조차 안 되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붙잡혀 있는 1,500에서 2,000명이 반란군 포로들이라는 것은 도무지 생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 P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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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티무르 - 닫힌 중아아시아를 열고 세계를 소통시키다
성동기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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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제국이 무너지고 나서 먼지처럼 그 흔적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몽골제국의 후예들은 그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분투했다. 그 한사람이 바로 티무르 제국을 건설한 아미르 티무르와 무굴제국을 건설한 바부르이다. 무굴 제국에 대해서는 인도관련 서적을 통해서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역사에 관한 책들이 너무도 적기에 아미르 티무르에 대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성동기 교수의 '아미르 티무르'라는 책을 본 순간 너무도 반가웠다. 

  이 책은 얇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절름발이 티무르의 출생부터 시작해서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들이 술술 읽혔다. 아미르 티무르 정도라면 600쪽 정도의 벽돌책을 써야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성동기 교수는 300쪽도 되지 않는 얇은 책을 펴냈다. 

 이 얇은 책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대륙을 공포에 떨도록 만든 아무르 티무르가 절름발이라는 사실이다. 보통의 영웅이 자신의 약점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아미르 티무르는 자신이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칭기스칸의 후예 답게 고난에 굴하지 않고 사막을 달리며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한 대제국을 건설했다. 한편의 장엄한 인간 승리 드라마였다. 

  아미르 티무르는 잔인한 학살자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성기동 교수는 그가 실크로드를 재건하고 올로제니아라는 아미르 티무르법전을 편찬하의 통치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오아시스 크레센트라 불리는 중세 최대의 메트로폴리탄을 건설하고, 아름다운 사마르칸트를 건설했다고 칭송한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그는 두려운 학살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인이나 우즈베키스탄인으로서는 위대한 정복군주일 것이다. 우리가 너무도 서구의 시각에 익숙해져있기에 외눈박이 역사인식을 갖을 수밖에 없었다. 아미르 티무르의 또다른면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한다. 

  이책에 아쉬운 점도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아미르 티무르의 전략을 계승하여 영국을 경영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미르 티무르의 전략을 여왕은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였던 것이다."(32쪽)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러나, 아미르 티무르의 전략을 어떻게 여왕이 계승하고 영국을 경영했는지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개정판을 낼때 반드시 보강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미르 티무르는 33세에 처음 원정을 떠나기 시작하여 67세에 떠난 원정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초라하게 죽는 것 보다 전사는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칭기스칸의 위업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서 명나라 원정을 떠났으나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아미르 티무르를 떠나 보내면서 책장을 덮는다.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공부할 때, 그를 다시 만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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