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직후사 - 현대 한국의 원형
정병준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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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희망찼다. 1945년 8월 15일 민중은 광복이 찾아온줄 몰랐다. 그러나, 이 시기 조선총독부 관리들과 접촉하며 광복을 준비한 여운형은 8월 16일 서대문감옥 문을 열고 독립투사들이 새시대의 빛을 보았다. 환희에 찬 민중들은 온몸이 땀으로 젖는데도 만세를 불렀다. 건국 준비위원 안재홍은 경성중앙방송국을 통해 라디오 연설을 했다. 광복의 기쁨을 용솟음치게하는데 여운형과 건국 준비위원회가 그 중심에 있었다. 8월 17일 전국에서 해방경축식이 열렸다. 일제의 패망을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로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자 칼자루는 우리 민족의 손에서 벗어나 미군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칼자루를 쥔 미군은 1945년을 광복의 환희에 찬 해에서 뒤틀리고 비틀린 한국사의 시작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여운형이 총독부와의 협상을 통해서 행정권을 이양받았고, 여운형은 건국동맹을 기반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고 배웠다. 그러나, 이 설명에는 수많은 진실들이 묻혀있었다. 여운형이 일제강점기에 건국동맹을 만들어 광복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총독부는 치안협조를 여운형에게 요청했고 그 협상장에서 여운형은 5개의 요구조건을 관철시켰다. 광복이 다가오자 민중의 열망을 등에 업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환희에 찬 광복의 물결은 여운형이 준비하고 대비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 환희의 순간에도 총독부는 가만있지 않았다. 자신들이 원하는 치안유지를 위한 협조가 조선건국준비위원회로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자 곳곳에서 공작을 시작했다. 우리 교과서에 적혀있지 않지만 경무국장 니시히로 다다오는 조선은행에서 돈을 찍어내어 비자금을 만들었다. 미군은 이를 경제적 사보타주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만들었고, 정치적으로는 친일파를 위한 공작을 초래했다. 친일파 김계조, 한치진, 박석윤 등에게 제공된 이들 돈은 공작금으로 활용되었다. 친일파뿐만 아니라 일본 헌병대와 경찰의 공작이 지속되면서 광복의 그날에도 총독부는 현실이 자신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악마의 칼날을 휘둘렀다. 일제는 광복된 그날에도 순순히 물러가지 않았다!!

  9월 6일 미군이 한반도에 왔다. 미24군단이 남한에 진주하고 군사적으로는 유능할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무능한 하지가 한국운명을 결정하는 칼자루를 쥐었다. 하지는 한국어를 할줄 몰랐다. 인종적 편견에 빠진 그는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이해하려하지도 않았다. 결국, 영어를 할줄 아는 한민당과 연희전문학교 출신, 기독교인들을 가까이하려했다. 미군 통역을 맡으면서 문고리 권력을 쥔 이묘묵이 대표적이다. 광복후에도 나가사키 유조의 지시를 받아 공작활동을 한 그가 친미파가 되어 항일투자 여운형을 친일파,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했다. "미영타도, 귀축영미"를 열성적으로 외치던 친일파가 문고리권력을 쥘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으로 무능하다 못해서 어리석은 하지가 강력한 미4군단을 이끌고 한국의 정치을 마음대로하려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 군사 격언에는 유능한데 게으른 지휘관을 최상으로 쳤으며 무능한데 근면한 지휘관을 반드시 사라져야할 인물로 꼽았다. 하지는 무능한데 근면한 지휘관이었다. 

  결국 무능하면서도 근면한 하지는 친일 반공집단 한민당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법조, 경찰, 학무, 도지사등 거의 모든 요직을 한민당 혹은 한민당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소위 미군의 자문위원회를 한민당 인사들이 장악했고 그들에 의해서 엽관행위가 벌어졌다. 한민당은 초기 임시정부 절대지지를 외쳤으나 이는 건국준비위원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레토릭이었을 뿐이다. 임시정부 요인이 귀국하자 종래의 태도를 바꾸었고 자신들이 모든 권력을 쥐려했다. 그랬기에 이승만은 한민당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으려 대통령이 되자 한민당을 팽시켰다. 기독교를 믿으며 외국 유학을 갔다온 친일파 출신의 인사들이 미군정에게 사탕발림말을 하여 권력쥔 우리의 해방직후사는 너무도 슬프면서도 우습다. 

  놀라운 일은 한민당에 친일파들만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항일변호사 이인, 한국 사법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병로, 사도법관 김홍섭은 1946년 한민당 사람이었다. 버치중위 같이 하지의 최측근 조차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은 이승만과 한민당을 위해서 부자들을 사법적으로 협박해서 강제로 정치자금을 모금했다. 항일투사가 친일파가 득실대는 한민당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행위는 민족분단과 친일파의 권력장악, 나아가서 이승만 독재의 길을 터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항일 투사였던 그들에게 광복된 순간부터 친일은 트집잡을 꺼리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일까?

  여운형, 김규식이 중심이 되어 추진한 좌우합작운동을 미군정도 지지했다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러나, 미군정의 속내는 그러하지 않았다. 미군정은 극우 이승만보다 중도우파 김규식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길 바랬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정병준 교수는 그것이 우리의 착각임을 미군정이 이들에게 보낸 정치자금 액수를 통해서 증명했다. 미군정을 이승만에게는 +1,000만원을, 김규식에게는 +300만원을, 김구와 여운형에게는 0원을, 그리고 박헌영에게는 -24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제공했다. 미군정의 좌우합작운동과 김규식 지지는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들의 속내는 이승만과 한민당 절대지지였다. 교과서에서 드러나지 않은 미군정의 검은 손길이 얼마나 더 클까를 생각하며 소름이 돋는다. 


  정치적으로 어리석은 하지는 이승만과 한민당을 절대지지했다. 불법을 저질러가면서 이승만에게 =1,000만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자신의 간과 쓸개를 모두 이승만에게 바쳤으니 이승만의 절대 신임을 얻었을 것이라 그는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 9단 이승만은 하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미국에 가서는 하지를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했다. 어리석은 하지는 현실 정치의 매서움을 맞닥드리고는 깊은 좌절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회고록 한장 남기지 않은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광복이라는 환희의 순간을 민족의 자주독립으로 이끌려했던 여운형은 극우파 한지근의 총탄에 저세상으로 갔다. 어리석은 하지는 떠나고 이승만은 절대권력을 쥐었다. 우리의 비틀리고 뒤틀린 역사를 이제는 바로잡아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죽은 이승만을 소환하며 친일 발언을 쏟아내는 뉴라이트 인사들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1945년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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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선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8.15 해방 직전인 8월 10일경이었다. 장소는 혜화동의 남상일(南相) 씨 자택이었다. 그는 당시어느 통신사의 사장이었는데, 몽양과의 관계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그는 나를 알고 있었다. 거기서 조동호를 위시해 이강국, 최용달 등건국동맹의 대물급이 출입하고 있는 것을 보고 몽양이 신뢰하는 아지트임을 알았다. 나에게 말한 것은 "인간관계를 정리해보게"라는것이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각계각층 인명의 정리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해방 후에 등장 배치될 인명록을 만드는 것이었다. 단 무엇보다 친일파는 배제하고 유능하고 청결한 (흠결이 없는), 우선 중앙부터, 이어서 전국에 달하는 독립운동에 공로가 있는 인물의 명부를만드는 것이었다. (...) 몽양이 알고 있는 것은 1923~1929년까지로당시 서대문감옥에 빽빽이 들어차 있던 제1, 제2, 제3(ML당), 그리고 신간회의 광주학생대회사건, 간도공산당의 폭동에 관련되어 연행되었던 무리 등의 인명과 그 인품을 내가 점검하는 것이 목적이었을지 모른다.
-이천추 8월 10일경 건준 활동 시작 - P57

A우선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일본의 항복과 동시에 일시적으로 조선에무정부상태가 이어질 것을 걱정했는데, 민중의 안녕질서를 어떻게지킬 것인가가 제1의 목적이었다. 나는 1919년 3월 1일의 독립만세운동의 정황과 조선 민중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는 독립의 열망을 알고 있었기에, 만약 해방된 기쁨과 동반해 흥분하게 되면 무질서한 폭동도 일어날 우려가 다분했기에, 날짜는 분명히 기억할 수 없으나 확실히 13일에 경무국장을 중심으로 최고재판소의 검사장, 헌병대장등 치안 관계자의 회의를 소집해 그 대책을 토의했다. 거기서 당시조선 민중 사이에 명망이 높고, 과거 독립운동의 경력으로도, 그리고나도 깊은 우정을 가지고 있고, 내가 평소 씨의 민족운동에 대한 이해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여운형 씨에게 치안 문제를 위탁하게 되었다. 그래서 8월 15일에 씨를 총독부에 초빙해, 정치범을 석방하는 것과 동시에 치안 문제에 대해 책임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원등유작 - P60

해방 직전 당시 여운형은 분망해서, 때때로 엔도 류사쿠(조선총독부정무총감)로부터 호출이 있으면 회합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8월15일 아침, 또한 엔도로부터 전화가 있어서 몽양은 엔도의 관사에 갔다. 그날 정오에 일본 천황의 ‘포츠담선언‘을 무조건 수락한다는 방송을 나는 남상일의 자택에서 들었다. 때는 왔다. 나는 준비를 완료해서, 후에 몽양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음 날 계동의 임용상의 옛 저택(건국준비위원회 사무소)의 작은 서양식 건물로 출근했다.
-이천추 - P61

조선 민족해방의 날은 왔다. 어제 15일 아침 8시 엔도 조선총독부무총감의 초청을 받아 지나간 날 조선 일본 두 민족이 합한 것이선 민중에 합당하였는가 아닌가는 말할 것이 없고 다만 서로 헤어오늘을 당하여 마음 좋게 헤어지자. 오해로서 피를 흘린다던지 불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민중을 잘 지도하여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이에 대하여 다섯 가지 요구를 제출하였는데 즉석에서 무조응락을 하였다. 즉(1) 전 조선 각지에 구속되어 있는 정치 경제범을 즉시 석방하라.
(2) 집단생활인만치 식량이 제일 문제이니 8월, 9월, 10월의 3개월치 식량을 확보 명도하여달라.
(3) 치안유지와 건설사업에 있어서 아무 구속과 간섭을 하지 말라.
(4) 조선 안에 있어서 민족해방의 모든 추진력이 되는 학생 훈련과청년조직에 대하여 간섭을 말라.
(5) 전 조선 각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를 우리들의 건설사업에 협력시키며 아무 괴로움을 주지 말라.
이것으로 우리 민족해방의 첫걸음을 내디디게 되었으니 우리가 지난날에 아프고 쓰렸던 것은 이 자리에서 모두 잊어버리자. 그리하여 이땅을 참으로 합리적인 이상적 낙원으로 건설하여야 한다. 이때 개인의 영웅주의는 단연코 없애고 끝까지 집단적 일사불란의 단결로 나
-8월16일 휘문중에서 여운형 연설 - P72

아가자. 머지않아 각국 군대가 입성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들어오면우리 민족의 모양을 그대로 보게 될 터이니 우리들의 태도는 조금도부끄럽지 않게 하여야 한다. 세계 각국은 우리들을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백기를 든 일본의 심흉을 잘 살피자. 물론 우리들의 아량을보이자, 세계 신문화 건설에 백두산 아래에 자라난 우리 민족의 힘을바치자. 이미 전문대학 학생의 경비원은 배치되었다. 이제 곧 여러곳으로부터 훌륭한 지도자가 오게 될 터이니 그들이 올 때까지 우리는 힘은 적으나마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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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읽는 손자병법 -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심리 전략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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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명을 할때, 무조건 좋은 이름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그에게 좋은 이름이다. '심리학으로 읽는 손자병법'이라는 책이름은 너무도 좋왔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책이름의 무게를 따라가지 못했다.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손자병법을 새롭게 재구성한 책으로 기대했으나, 손자병법에 관한 해설에 심리학을 약간 언급한 정도의 책이다. 손자병법 원전을 공부하고, 손자병법에 관련된 책을 꾀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실망감이 크게 감도는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키루스의 교육'이라는 책을 읽었다. '키루스의 교육'에서 제시되는 수많은 키루스의 말들이 사실은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내용과 흡사한 내용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중 한가지 예를 들겠다. 키루스는 자신이 거느린 장졸들과 자신의 동맹들에게 많은 선물을 준다. 특히 자신의 장졸들 중에서 가장 용감히 싸운 사람에게는 특히 많은 상을 내려주었다.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지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금고를 만들고 금고를 지키기 위해서 창고를 짓고 병력을 배치하는 수고를 하기 보다는 자신의 것을 나눠줌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얻는다. 제국의 모든 것이 키루스의 것이기에 신하들과 장졸들의 것은 키루스의 것이기도했다.


  故車戰 得車十乘以上 賞其先得者 而更其施旗 車雜而來之 辛善而養之 是謂勝敵而益强(손자병법 작전편)


  적의 물자를 빼앗으려면 물자를 상으로 주어야한다. 키루스는 부하들과 상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법을 토론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자신의 식사에 중대를 초청한 것도 상을 주어 군대를 강화시키기 위해서였다. 키루스는 탁월한 전략가임을 손자병법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손자병법에는 학급의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가에 대한 조언도 있다.


  厚而不能使 愛而不能令 亂而不能治 臂如驕子 不可用也-306쪽


  후하게 대하면 시킬 수 없고 사랑하면 명령을 내릴 수 없으며, 혼란이 발생하여 다스릴 수 없다. 비유하자면 교만한 자식이되어 쓸모없어진다. 그렇다. 학생에게 너무 잘대해주면 학급일을 시킬 수 없다. 학기초에 홈베이스 청소를 맡은 한학생이 교실 청소지도를 하고 있는 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나의 딸같아서 홈베이스에 갔더니 사물함 위에 올려져 있는 책을 내려달란다. 이를 내려주고 나서 과연 이것이 내가 잘한 일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여학생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담임 교사에게 요청만한다면 이 학생은 과연 자신이 맡은 일을 스스로하는 책임감을 언제 배울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랑으로 대하되 규율을 엄격하게 하라(엄율자양)는 손자의 원칙으로 학급을 운영했다. 학교의 교칙을 지켜야하며 자신이 맡은 일은 스스로 완수하도록지도했다. 손자병법은 우리 생활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지침을 지시하고 있었다.

  손자병법은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한 안목을 넓혀주기까지한다. 


  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백번싸워 백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레이건이 1982년 소련붕괴작전(NSDD-66)에서 사용한 방법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최고의 승리였다. 원유를 4배 증산하여 유가를 30달러에서 7달러로 추락시켰다. 원유수출로 지탱하고 있던 소련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결국 소련은 무너졌다. 

 이러한 현상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무리하게 전쟁을 끌고 있다. 이제는 헤즈볼라에 까지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인구가 얼마되지 않는 이스라엘이 미국에 기대어 1년이상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도 마찬가지도 전쟁초기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국으로 남는 것을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려했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지원약속만 믿고 어이없게도 러시아 불곰과 전쟁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그 결과는 참담하다. 전투병력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전쟁을 이어가려해도 전쟁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서 우크라이나가 패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선이이라는 손자의 격언을 따르지 않고 전쟁의 길을 걷고 있다. 이는 이들 국가가 비록 승리하더라도 치유하기에는 너무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커다란 상처를 남길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 손자병법을 읽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손자병법 원전을 읽었다. 그 후로도 손자병법을 해설한 책들을 탐독했다. 때로는 k-mooc에서 손자병법 강의를 들으며 손자병법의 심오한 뜻을 머릿속에 새기려했다.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손자병법을 읽으려는 나의 기대는 무너졌지만, 새롭게 손자병법과 열애의 시간을 보낸 것은 행복했다. 


ps. 이책에 옥의 티도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조조는 삼국 통일의 위엄을 세울 수 있었다."-150쪽


  중국 삼국통일은 조조가 이루지 못했다. 조조의 후손이 세운 위나라에서 우리지도 못했다.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에 의해서 삼국통일이 이뤄진다. 바로 진나라가 촉을 멸망시키는데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어 허술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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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의 교육 - 키로파에디아 현대지성 클래식 51
크세노폰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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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로파에디아' , 키루스의 교육이라는 제목은 참으로 낯설다. 교육관련 서가에 꽃혀 있어야할 책이 최고의 리더십 서적으로 소개되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책의 목차를 보고서 이 책의 제목이 적절한지에 관한 의문은 더 깊어졌다. 키루스 대왕의 일대기를 서술한 평전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렇다면, 크세노폰은 왜? '키루스 대왕의 일대기'라는 제목을 쓰지 않고, '키루스의 교육'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아마도, 키루스 대왕의 일대기를 통해서 그의 리더십을 배우라는 의도에서 이러한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키루스 대왕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1. 베풀어라! 그러면 더 차오를 것이다!

키루스는 12살까지 페르시아의 강건한 교육 속에서 자랐다. 그는 어머니 만다네를 따라 메디아의 왕 아스티아게스의 궁전에 간다. 탁월한 말솜씨로 키루스는 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의 마음을 훔친다. 아스티아게스가 키루스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은 키루스의 행동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 상으로 받은 음식을 키루스는 할아버지를 모시는 시종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이를 통해서 할아버지의 마음뿐만 아니라 메디아의 궁전을 돌보는 시종들의 마음까지 얻는다. 이것은 키루스가 서아시아를 통일하는 기본바탕이 되었다.

많은 수확물을 얻고 싶다면 봄철, 밭에 많은 씨앗을 뿌려야한다. 어린 키루스는 이를 알았다. 그래서 정복전쟁을 수행하면서 얻은 수많은 전리품을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에게 나눠주었다. 황금을 창고에 넣고 도둑으로부터 자신의 보물을 지키려 고뇌하기보다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의 마음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물을 그들이 잘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었다. 키루스는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베풀고 사랑을 나눠주면 상대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며 은혜를 갚기도한다. 그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아브라다타스와 판테에아의 사랑 이야기이다. 정복지에서 키루스의 군대에 짓밟히지 않으려 노력한 판테이야는 키루스의 배려로 사랑하는 아브라다타스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당신이 키루스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녀의 남편 아브라다타스는 자신이 키루스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차를 몰고 이집트 병사의 팔랑크스 대형에 돌진했다가 장렬히 전사한다. 그리고 그녀도 남편과 한벌의 외투로 덮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한다. 키루스의 베품에 아브라다타스와 판테이야는 둘의 목숨으로 보답했다.

항우가 유방과의 대결에서 실패한 것도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나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방보다 지략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사람이 없었던 이유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주먹세계를 주름잡았던 김두한도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을 따르는 어깨들에게 아낌 없이 나눠주었다. 어느 세계에서나 리더는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눌줄 알아야한다. 그것이 황금일 수도 있고 마음 일수도 있다.

 

2. 타인의 말을 맹신하지 말라! 자신이 직접 진실을 듣고 해석하라!

영화 '파묘'에서 신세대 무녀가 등장한다. 과학문명의 시대에 살면서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속인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명문대학을 나온 지식이들이 점술사의 말을 믿고 손에 왕자를 세겨 넣는다던지, 점술사가 하는 말을 그대로 실행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한다. 우리 사회에 속물들의 행태를 미리 알았는지 키루스의 아버지 캄비세스는 출정하는 키루스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반드시 네 자신이 신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직접 보고 신들이 들려주는 것을 직접들어서 신들의 뜻을 알아야한다. (중략) 예언자들이 신들의 징조가 보여주는 의미와 다른 것을 말해 너를 속이려할 때는 흔들려서는 안된다." -50

 

자신의 지혜를 믿고 자신의 눈과 귀로 진실을 보고 들어서 자신의 판단력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한다. 신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시대! 신의 뜻을 전달하는 제사장의 권위가 막강했던 그 시대에 이미 캄비세스는 아들에게 타인의 눈으로 진실을 보려하지 말고 자신의 지혜와 판단력을 믿고 진실을 직접 보고 들으라 말하고 있다. 이는 무속에 메달리는 일부 정치인들과 일부 연예계 인사, 그리고 무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무지목매한 시민들에게 들려주는 따뜻한 경종이다.

 

3. 천하를 먼저 근심하고 앞장서라!

북송의 명재상 범중엄은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나중에 즐기리라.(先憂後樂)'라고 하였다. 리더는 만민 위에 군림하며 편안함에 취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미리 다가올 환란에 대비하는 존재이다.

 

"통치자는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점에서 신민들과 달라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미리 내다보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에 누구보다 앞장선다는 점에서 달라야한다."-32

 

키루스는 노빌레스 오빌리쥐를 실천하는 자가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 처럼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국민의 안전과 나라 경제의 건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몇수 앞을 내다보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한다.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특권의식을 집어 던지고 솔선수범하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한다. 이러한 모습은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어 위기를 모두가 함께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는 과연 그런 리더가 있는가? 벤츠나 50억 퇴직금, 명품백을 강한자가 받으면 무죄이고, 약한자가 받으면 강력범죄인 세상이 아닌지 묻고 싶다.

 

4. 현명해져라!

리더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한다. 최고 의사결정자의 경우,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한다. 특히 훌륭한 참모진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에는 리더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한다. 아시리아 정복 전쟁에 나서면서 키루스는 병사들에게 세세하게 지시한다. 책을 읽는 동안 키루스 대왕이 이 모든 것을 다 섭렵하고 세세하게 지시한 것이 실제로 가능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키루스 대왕은 전쟁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통치 제도를 만들어 제국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탁월한 리더이다.

 

"통치자가 신민들보다 더 현명해 보이는 것보다 그들을 복종시키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60

 

그렇다! 현명한 키루스 대왕의 명령에 누가 불복종하겠는가! 백성들이 키루스를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추대를 받아 메디아인의 지도자, 히르카니아인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서아시아를 통일했다. 사보이아 공국의 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모든 국가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Every nation gets the government it deserves)”라고 말했다. 페르시아인들은 강건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페르시아인은 소변보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남몰래 소변을 본다. 그것은 운동을 열심히하여 땀으로 수분을 배출해야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소변을 본다는 것은 운동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이럴 정도로 강건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에 페르시아인은 키루스 대왕을 지도자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키루스와 같은 리더를 가지고 있는가? 대통령이 경제를 잘 안다고 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있다. 유시민 작가는 A급 밑에는 A급 혹은 B이 모이지만, C급 밑에는 절대 A급 인물이 모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탐욕에 눈이 멀어 현명한 리더를 뽑을 눈을 갖지 못한 우리는 현명함을 먼저 갖추려 노력해야한다. 국민이 현명해질때만이 현명한 리더를 볼 수 있고, 리더를 현명하게 만들 수 있다.

 

5. 나의 사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고 행동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라는 속담이 있다. 선의에서 한 일이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키루스는 메디아아의 왕 키악사레스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여 페르시아군을 이끌고 아시리아군을 패퇴시켰다. 많은 연합군을 이끌고 수많은 성채를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디아의 왕 키악사레스는 키루스를 외면하며 눈물을 흘렸다. 당황한 키루스는 야자나무 밑으로 가서 키악사레스의 진심을 들었다.

 

"누군가가 너의 아내에게 잘해주어서 너의 아내가 너보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너는 그 사람이 네 아내에게 잘해준 것을 기뻐하겠느냐?"-246

 

메디아의 왕 키악사레스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아시리아를 격파하고 적의 성채와 보물을 빼앗아 키악사레스에게 주었지만, 이것이 키악사레스에게는 '왕이 될 자격도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조가 이순신 장군을 미워한 것도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두어 백성들이 이순신 장군을 찬양할수록, 선조에게는 자신이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행위로 느꼈을 것이다. 선의로한 일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를 현명한 리더라면 예측해야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도 대비해야한다.

 

키루스와 같은 훌륭한 리더가 세운 페르시아 제국도 초기의 강건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국의 풍부한 자원과 안락함에 취해서 사치와 향락, 권력 암투 속에서 서서히 병들고 있었다. 크세노폰이 이 책을 쓰고 있던 시기의 페르시아 제국은 키루스 대제 시기의 페르시아가 아니었다. 결국, 100여년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공격에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외부의 충격이 있기 전에 내부가 썩어들어가고 있었으니 페르시아 제국은 알렉산드로스가 몰고온 충격을 버텨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외부의 충격이 언제 불어닥쳐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내부는 키루스 대왕의 페르시아의 상황인가? 아니면, 크세노폰이 본 곪아가고 있는 페르시아인가?

 

 

ps. 이 책에는 "제우스신에게 맹세하건데', '헤스티아신에게 맹세하건데' 등의 관용구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우스나 헤스티아는 그리스의 신이아닌가? 서아시아 지역에서 과연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크세노폰의 각색일까? 아니면 그리스의 12신이 서아시아에서도 널리 믿어진 것일까? 아시는 분이 조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ps. 이 책에는 "제우스신에게 맹세하건데', '헤스티아신에게 맹세하건데' 등의 관용구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우스나 헤스티아는 그리스의 신이아닌가? 서아시아 지역에서 과연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크세노폰의 각색일까? 아니면 그리스의 12신이 서아시아에서도 널리 믿어진 것일까? 아시는 분이 조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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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양장)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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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를 말하는 '아비투스'라는 단어를 알기 전까지 그러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단지 고루한 상류층의 문화가 있을 뿐이고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라는 책을 읽자, 기존에는 보이지 않았던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자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존재하지만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던 아비투스!! 

  

  이 책은 아비투스를 설명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순간 미래가 결정되는 점박이 하이에나를 예로든다. 왕자와 공주로 태어나는 세끼는 안전하게 보호받고 더 좋은 먹이를 안전하게 많이 먹고, 상류층의 전형적인 행동방식을 배운다. 아들들은 우두머리 암컷을 유혹하는 방법을 일찍이 터특하기에 경쟁자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번식한다.

  우리 인간의 세계도 점박이 하이에나와 같다. 상류층 부모로부터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물려받은 자녀는 보다 쉽게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흡수하여 상류층의 삶을 누리며 여유롭게 살아간다. 하류층의 아비투스를 물려받은 자녀는 치열하게 노력하여 계층 상승을 노리지만 상류층 자녀보다 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며, 때로는 상류층 아비투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것에 익숙해져라(Life is no fair, Get used to it)" 빌게이츠의 말이다. 그렇다!! 세상은 불공평했다. 어느 아비투스를 체득하느냐가 우리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 물론, 이 책에서는 상류층 아비투스를 소개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책은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자본을 소개한다. 이러한 자본에 따라서 하류층 아비투스에서부터 상류층 아비투스가 결정된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문화자본이다. 

  교사 발령을 받고 많은 소개팅을 했다. 그때 가장 당황스러운 장소는 햄버거 가게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주문을 받고 햄버거를 쟁반에 담아 소개팅녀와 식사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식사 후 쟁반과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와 대화에 집중하기 보다는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이 공간을 떠날때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탐색했다. 물론, 소개팅이 잘 진행될리는 없었다. 

  시골에서 자라서 햄버거를 먹을 기회도 없었으며, 햄버거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서민의 문화자본조차 없었다. 평범한 중류층 여성과의 데이트 조차도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나의 문화자본은 너무도 심각하게 부족했다!! 이러한 내가 임용고사를 통과해서 교사가 되었더라도 쉽게 중류층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던 이유는 나의 문화자본이 너무도 터무니 없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면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이라는 책에 소개된 청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는 풍부한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서민의 문화자본이 없기에 퇴위 이후의 삶이 쉽지는 않았지만, 푸이가 만주국 강덕제로 즉위하는 것을 지켜본 외국인은 푸이에게서 기픔있는 모습을 보앗다고 전한다. 찌질해 보였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푸이는 청나라 최상위츠의 문화 자본을 풍족하게 갖고 있었다. 그것이 못난 푸이를 기픔엤게 보이게했다. 아비투스의 힘은 정말 강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니체가 말한 '아모르파티'를 달리 해석하게 되었다. 부르디외는 "주어진 상황과 계급에 순응하는 태도"를 아모르파티라고 말했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름다운 말은 곧 네 운명에 순응하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아비투스에 순응하며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도전을 멈춰야할까? 운명에 순응한다면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처럼 계층 상승을 위해서 과잉교육열에 학생들이 혹사당하지 않아도 된다.


  "위로 올라가는 문을 열려면 최소한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한다." (128쪽)


  학벌 사회, 입시문제를 지적하며 외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외국의 최상류층은 자녀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자녀의 생존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세련된 아비투스를 얻기 위해서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고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해서 최상류층들은 자녀 교육에 올인한다. 

 피터지게 7가지 자본을 획득하여 1퍼센트의 상류층 사회에 진입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일까? 차라리 그러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각자의 삶의 의미에 따라서 선택하면 될 일이지만, 나에게는 상류층 사회에 진입하는 도전이 더 가치있어보이는 것은 왜일까?

  

  책장을 덮고 7가지 자본 중에서 한국 사회에서 중시여기는 자본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단연 경제자본이다. 경제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 지식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입시과열이 발생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도 상류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왜곡된 지식자본 축적과 물질만능에 빠져 경제자본 축적을 위해서 영끌해서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를 하기 때문이 아닌가? 나의 자녀에게 7가지 자본을 골고루 축적하도록 하여 최상위 계층으로 상승시키고자하는 열망이 책을 읽는 불타올랐다. 그러나, 책장을 덮자, 그것이 자녀를 행복하게 하는 일일지에는 의문이들었다. 자녀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려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 7가지 자본을 획득하는 이유가 최상위 계층으로 계층 상승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라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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