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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임정재 옮김 / 타커스(끌레마) / 2016년 3월
평점 :
'사람을 얻는 지혜'는 무엇일까?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지혜를 얻고 싶은 마음에 책을 꺼내들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예수회 신부란다. 1601년 태어난 그의 저서가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읽히고 있다고하니, 한번 읽어 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럼, 한번 책을 살펴보자.
1. 유가보다는 도가에 가까운 발타자르 그라시안
'사람을 얻는 지혜'를 읽다보면 유가와 도가를 비롯해서 동양의 사상가들이 전했던 인생의 지혜와 흡사한 것들이 많았다. 동양과 서양의 지혜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기도했다. 그러면서도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동양의 어느 사상에 가장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만약 당신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오히려 호의를 베풀어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라!'(17쪽)고 말한다. 당신은 나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것인가? 동양의 철학자 공자와 노자가 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노자의 말을 살펴보자. 『도덕경』 63장 恩始章(은시장)에 ‘하는 것이 없음을 실천하고, 일이 없음을 일삼으며, 맛이 없음을 맛보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며 많은 것은 적게 여기니,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라고 하였다.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는 보원이덕(報怨以德)이라는 말이 놀랍도록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과 일치한다.
반면, 공자는 『논어』 헌문편에서 어떤 사람이 "은덕으로 원수에 보답하는 것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렇게 한다면 무엇으로 은덕에 보답하겠느냐? 정직함(곧음)으로 원수에 보답하고 은덕으로 은덕에 보답하는 것이다." (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라고 말하였다. 나는 공자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에게 호의를 베품면, 그들은 오히려 그 사람을 이용한다. '어금니 아빠' 사건과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의 경우 타인의 동정과 호의를 범죄에 이용한 대표적 사건이다.
이밖에도 『도덕경』에서 보았던 글귀와 유사한 문장이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양보는 뜻을 이루는 최고의 위장술이다.(22쪽)"와 "먼저 베풀고 보상은 나중에 받아라."(27쪽)의 표현도 『도덕경』의 표현과 유사하다. 『도덕경』 제74장에 "남들로부터 존경 받으려거든 먼저 그들을 존중하라"는 문장이 있다. 물건을 움켜쥐려면 먼저 손을 펴야한다. 상대를 쓰러뜨리려면 먼저 상대를 일으켜세워야한다. 상대에게 얻으려면 먼저 상대에게 베풀어야한다. 노자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생각은 놀랍도록 맞닿아있다. "나중에 베풀면 대가가 되지만 먼저 베풀면 호의가 된다."라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지혜는 약한듯 보이지만, 강함을 숨기고 있는 노자 철학을 보는듯하다.
오랫 동안 예수회 신부로 활동한 발타자르 그라시안이기에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본 지혜가 노자의 철학과 통한 비결이 아닐까?
2. 한비자의 지혜를 품은 발타자르 그라시안
『도덕경』에 대해서 최초로 주석을 달았던 사람이 바로 한비자이다. 그래서인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은 한비자의 말과 유사한 점이 있다.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마라."(20쪽)는 표현도 한비자가 군주가 신하를 대할 때 지켜야할 유의사항 중 하나로 제시했다. 군주는 신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이지 말아야한다. 신하가 군주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이를 이용하여 아첨하며 군주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군주는 신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말고, 신하의 말을 경청하며 그들의 지혜를 이용해야한다.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용기를 절대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51쪽)고 말했다.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할 때, 타인은 우리를 더욱 존경하게 한다. 한비자가 군주에게 했던 당부를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우리에게 하고 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이러한 말도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실의 날카로움은 유지하되 부드럽게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128쪽) 타인에게 직언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한비자는 '세난편'에서 진실로 군주에게 간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한비자도 진시황제와 대화를 나눈 이후에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군주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나누는 모험이다. 그러하기에 『한비자』에는 군주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가 서술되어 있고, 지혜롭게 자신의 의견을 군주에게 제시한 사례가 적혀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날카로움은 유지하되 부드럽게 전달"하라는 대화의 기술을 한비자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원칙을 아는 것과 이를 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인가보다. 자동차의 운행원리를 아는 것과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맞닿아있으면서도 같은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는 상대를 설득시킬때,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공감을 한 후에 자신의 말을 하라한다. 이것이 '날카로움'을 유지하면서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지혜가 아닐까?
3. 발타자르 그라시안! 동의할 수 없어요.
'신독'이라는 표현이 있다. 중학교 도덕시간에 혼자 방안에 있으면서도 사거리에 있는 것 처럼 조심히 행동하라는 교과서 내용을 배웠다. 마치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조심 살아가라는 '신독'을 당연시 배웠는데, 국어선생님은 그렇게 살면 정신병에 걸린다고 말씀하셨다.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비슷한 말을 했다. "혼자 있을 때에도 몸가짐을 조심하라."(65쪽) 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표현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살아야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의 표현대로 이렇게 살면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된다. 이렇게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의 주장을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라"(152쪽), "언제나 최선의 결정을 내려라(192쪽)"는 표현은 좋은 표현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지,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비결은 무엇인지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누구인들 본질를 파악하고 싶지 않을까? 누구인들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하지 않을까?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누구나 원하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표현중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표현도 있다. "운의 흐름을 읽어라"(161)는 표현은 요행수를 추구하는 듯한 표현이라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 표현은 거부감이 덜했다. 그러나, "지는 해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마라"라는 명제를 제시한 다음, "미인은 늙어서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적절한 시기에 거울을 깨뜨린다."라는 설명을 한 것은 너무도 황당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나이듦이 곧 추해지는 것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일까? 거울을 깨뜨리면 더 이상 '추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철학자 강신주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대중강연에서 '나이듦은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이듦을 거부하고 주름살을 추함으로 인식하지 않고, 인생의 지혜가 익어감으로 파악한 강신주와 나이듦을 추함으로 인식하고 이를 거부하려 거울을 깨뜨리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어리석음이 너무도 대비를 이룬다. 우리는 곱게 나이드는 지혜를 얻어야한다. 인생의 무상함을 거부하며 영생을 누리려하다가 오히려 일찍 죽음을 맞이한 시황제를 보면서 우리는 인생의 지혜를 얻어야할 것이다.
이밖에도 "백번 성공하는 것보다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138쪽), " 실패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것도 능력이다."(230쪽)는 표현도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실패가 없이 어찌 성공하길 바라겠는가! 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가! 실패의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비열함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 탁월한 철학자의 말이라도 버려야할 것과 취해야할 것이 있다.
4.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 중에는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지혜가 담긴말도 많다. 이를 살펴보자.
첫째, "신을 신성한 존재로 만드는 사람은 신상을 장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다."(15쪽)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이 옳다면, 인간에 대한 권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에게 권위가 있는 것을 그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는 존재에게 풍자를 던진다면 그는 더 이상 우리에게 권위를 가질 수없다. 그가 그 자리에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존중하며 그의 권위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
둘째,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어울려라"(110쪽) 한국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융통성이 없다고 비난한다. 가장 부패한 후보가 당선되는 초유의 사태도 종종 일어 난다. 우리 사회의 탐욕이 얼마나 흘러넘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한다. 이러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인격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려야한다. 근묵자흑이라했던가! 세상이 혼탁할 수록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자!
셋째, "사악한 고집쟁이는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130쪽) 사악한자가 더 권세를 누리고, 세상이 사악한자에 빌붙어 탐욕을 채우려하고 있다. 겉으로는 고고한척하면서도 탐욕스러운 사람에게 투표하며 자신의 탐욕을 대리충족시키고 있다. 사악한 고집쟁이에게 진실을 말하려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탐욕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하며 당당히 외치기까지 했다. 이제는 사악한 고집쟁이를 피하고 싶다.
넷째, "부당한 상황에서도 화를 낼줄 모르면 무능한 사람이되고 만다."(208쪽)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조금만 참으면 편한데 왜? 오지랖 넓게 나서냐고 말한다. 정의로운 사람이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는 현실을 바라보며 탄식이 나온다. 우리가 부당함을 당하면서도 이를 참고 편히 살아갈 수록, 그들은 우리를 개, 돼지로 취급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때로는 진정한 분노가 덕(德)이다.
책은 거울이다. 자신의 고민을 가지고 책을 읽으며, 책속에 고민이 떠오르고 해답도 떠오른다. 요즘처럼 답답한 시기가 또 있을까? "자기 혼자만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미치는 것이 낫다."(112)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되게하려 노력하는 공자처럼 오늘을 바꾸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의 벽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끌어 안고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야하는 우리 소시민이기에 한권의 책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책속에서 우리의 답답함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엄청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책속에서는 우리의 답답함에 한줄기 위안은 발견할 수 있다. 긴한숨을 쉬며 오늘도 새로운 한페이지를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