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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ㅣ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박단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평점 :
홍세화의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책을 통해서 프랑스를 알았다. 그후로 프랑스의 교육을 소개한 책들을 읽으며, 자유, 평등, 우애라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이 사회 곳곳에 스며든 이상적인 나라로 프랑스를 인식했다. 우리의 현실이 고단할수록 프랑스는 이상적인 나라로 다가왔다. 군사정권시기 프랑스로 망명했던 홍세화가 보기에 프랑스는 자유로운 이상형의 나라였다. 주입식교육, 입시교육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의 교사에게는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의 교육이 이상적인 교육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펜데믹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나라에 비해서 결코 뒤쳐지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했다. 그럼,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프랑스도 달리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 역사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어느 학자는 중세시기 위그 카페 왕조에서 찾기도하고, 어느 학자는 프랑크왕국에서 찾기도한다. 또 어떤 사람은 로마와 맞서사원 골족의 베르생 제토릭스에서 찾는다. 베르생 제토릭스를 모델로 만든 만화가 '아스테릭스'이다. 프랑스인들의 역사는 시작부터 논쟁꺼리다.
그러나, 우리에게 프랑스 역사의 진정한 시작은 프랑스 대혁명이다. 그 이전의 프랑스 역사는 보통의 주변 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은 프랑스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주변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우애'라는 이념은 아직도 지구촌 사회가 도달해야할 과제이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이 잘 구현된 나라 일까? 내가 읽은 책들에서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이 녹아있는 나라였다. 똘레랑스의 나라이며, 모든 프랑스인들이 바캉스를 갈 수 있도록 국가가 신경써주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들여다본 프랑스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유', '평등', '우애'라는 이념이 현실에 잘 반영된 나라이기 보다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 보다 치열하게 전진하는 나라였다.
프랑스가 당면한 수많은 문제중에서 프랑스가 당면한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히잡 사건'이다. 학교에서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학생을 퇴학시킨 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에 뿌리내린 "정교분리 원칙"을 예외없이 적용해야한다는 주장과 "똘레랑스" 정신을 발휘해야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저자 박단은 학교에서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프랑스에서 "똘레랑스 정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 무슬림의 폭동과 자생적 IS 조직원들이 벌인 테러사건 이후, 프랑스는 피부색과 종교의 차이에 똘레랑스를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아니, 그 이전부터 무슬림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곪아 터진 것이다. 종교와 피부색의 장벽에 프랑스의 삼색기는 가로막혀있었다. 그들이 피부색의 장벽을 넘지 못한다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프랑스에서 완벽하게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이 1944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몰랐을 것이다. 정식 의회를 거쳐서 참정권이 여성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 법률 명령에 의해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화주의자들에게 여성은 가톨릭 신부의 영향을 받아 왕당파를 지지할 염려가 있는 어리석은 존재들이었다. 진보적 인사라해서 모든 분야에서 진보적이지는 않다. 혁명중에서 가장 힘든 혁명은 자신을 혁명하는 일이다. 혁명하기 가장 힘든 분야는 생활속 혁명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정치적 혁명이라면, 지금의 프랑스는 생활속 혁명을 해야한다. 생활속 혁명은 일회성 혁명이 아니라, 지속적인 혁명이어야한다. 그래서 생활 속 혁명이 힘든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 속에도 흑역사가 있다. 나치에 협력한 비시 프랑스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전쟁의 재앙에서 프랑스를 구했다며 패탱이 이끈 비시 프랑스를 농민과 부르주아는 지지했었다. 그렇게 된다면, 프랑스는 전범국가가 된다. 그에 비해서 드골이 이끈 자유 프랑스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면 프랑스는 승전국이된다. 역사는 기록하는자의 것이고,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 가는 프랑스의 오늘을 결정하고, 미래의 방향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을 구현할 자격이 있는 국가인지, 아닌지도 결정지을 것이다.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라는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나와 같이 프랑스에 대한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만 있는 사람에게는 프랑스에 대한 균형잡힌 지식을 알려주는 소중한 책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바로잡아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와 조선과의 만남이다. 보통 병인박해로 인해서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킨 것은 프랑스와의 첫만남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의 만남은 헌종시기까지 올라간다. 기해박해 시기에 조선은 프랑스 신부 3면을 처형했다. 이에 대해서 프랑스는 군함 2척을 이끌고 조선에 왔으나, 한강입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듬해 새만금 근처 고군산도에서 강풍과 암초로 난파당한다. 만약 1846년 프랑스군과 조선정부의 만남이 이뤄졌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일본에 의해서 강제 개항되지 않고, 프랑스에 의해서 개항을 이뤘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세도정치의 모순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조선은 현명한 대응을 했을까? 일본보다 먼저 개항해서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ps. 프랑스 역사에서 관직매매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절대왕정 시기, 왕실은 관직매매를 통해서 왕실제정을 확충하고 대영주 귀족을 견제할 수 있었단다. 우리 역사에서 관직 매매는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한국사의 상식을 가지고 프랑스의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정 국가의 사례가 타국에서는 예외적인 사례 일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