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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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학살이 자행되었다. 여기에 동원된 트럭은60대가 넘으며 한 트럭에 50명 이상의 죄수들을 실어 날랐다. 따라서3일간 처형된 죄수는 적어도 3000명 이상으로 여겨진다. (중략) 16일밤에 인민군은 금강 전선을 돌파하고 대전 북쪽 20킬로미터까지 진출했다. 17일 새벽에 지프차들이 도착하고 이어 트럭들이 계곡으로 들어
-데일리 워커 - P281

왔다. 이때에도 트럭에는 100명 이상의 죄수들이 앞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인민군대가 들어오기 전까지 별로 남은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37대의 트럭에 3700명의 애국시민들이 실려 있었으며 학살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진행되었다.
-데일리 워커, 대전 골령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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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우리돌의 들녘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러시아, 네덜란드 편 뭉우리돌 2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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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우 작가는 비싼 카메라만을 사용한다. 돈이 많아서 일까? 아니면 독립운동가를 만나러 가는 현장에 싸구려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었서일까? 모두 틀렀다. 싸고 기능도 좋은 일제 카메라를 독립운동가 묘소에 들이밀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전범기업 미쓰비시 카메라를 어찌 독립운동의 고귀한 현장을 담는데 들이밀 수 있겠는가? 국가가 돈을 대주는 것도 아닌데, 집까지 팔아가며 예술가로서, 독립운동 현장을 기록하는 역사가로서, 독립운동의 현장을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작가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오늘도 독립운동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래서 그가 펴낸 '뭉우리돌' 스리즈는 깊은 감동이 묻어난다. 

  김동우! 그는 역사에만 관심이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이 책 곳곳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말들을 잘 녹여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었다. 그중에서 '윤슬'과 '지박령'이라는 단어가 가장 인상 깊게 남는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아름다운 순 우리말이다. 그리고 지박령령은 땅 지(地)+ 묶을 박(縛)+혼령 령(霊)으로 이루어진 한자어로 땅에 얽매여 있는 영혼이라는 뜻의 단어이다.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은 조국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자신을 한탄하며 유언을 남겼다.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유고는 모두 불태우고 그 재마져 바다에 뿌린 후에 제사도 지내지 말라."-251쪽


 조국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 그는 편히 잠들어도 되리만, 그는 자신에게 그것 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동우 작가는 자신에게 묻는다.


  "이상설은 지금쯤 고향에 갔을까. 아니면 지박령이 되어 강가를 맴돌고 있을까."-253쪽


  1917년 3월 2일 이국땅 우스리스크에서 순국한 이상설은 조국이 광복되기 전까지 지박령이 되어 구천을 맴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조국 광복이 이뤄졌으니 편히 천국으로 가셔되 되지 안을까? 혹시 분단된 현실을 분개하며 천국으로 가시는 것을 통일의 그날까지 미뤄두었을 수도 있겠다.

  "단지는 단지가 아니다."(86쪽) 이라는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김동우 작가는 효보다 독립을 더 중요시하는 당시 상황에서 독립운동가분들이 보인 결기라고 말한다. 13도 창의군 총대장 이인영이 서울 진공 작전을 앞두고 아버지의 3년 상을 치루기 위해서 집으로 갔던 사실을 떠올려 본다면 독립을 효보다 앞세우는 것이 당시로서는 얼마나 큰 결기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김동우 작가의 설명을 읽고 그가 찍은 단지 동맹 기념비를 바라보니 기념비가 자못 웅장하면서도 비장해 보이다. 

  작가 김동우는 독립운동현장과 독립운동가 후손을 카메라에 담는 뭉우리돌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 현장을 사진 기록으로 남기고 아름다운 우리글로 우리의 역사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건들의 깊은 의미를 곱씹게 한다. 김동우 작가를 응원하며 그의 뭉우리돌 다음 프로젝트를 따라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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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 70여 년 동안 이어진 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왜 끝나지 않는가
김재명 지음 / 미지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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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이 있다.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핍박을 받았으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드디어 신께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했다!!' 소년 시절, 탈무드를 읽으며 이스라엘인들을 응원했다. "땅 없는 민족에게 주인 없는 땅을"이라는 테오도르 헤르츨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주인이 있었다. 성경을 보더라도 출애굽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 불렛셋이라는 팔레스타인 선주민이 있었다. 2천년 후, 유대인들이 다시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에도 그 땅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땅의 주인을 몰아내고 학살했다. 그러면서 성서에 기록된 약속의 땅이라는 점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인종 청소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인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바라본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담은 책이다. 


1. 악마와 싸운 그들이 악마가 되었다!!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라는 저서에서 "악마와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악마가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악마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히틀러라는 악마와 싸운 유대인들은 히틀러와 싸우며 그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히틀러도 유대인의 심연을 들여다 보았다. 결국, 유대인들은 히틀러를 닮아가지는 않았을까? 이 책에서 이 물움에 대답을 찾아보자.

  1948년 5월 14일 나크바라는 대재앙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이르군, 하가나 같은 이스라엘 민병대가 팔레스타인을 학살했다. 그들을 패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피난을 떠나야했다. 그들의 손에는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열쇠와 집문서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중동전쟁에서 아랍국가들은 패배했고 이스라엘은 승리했다. 아랍국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만들어 독립전쟁을 했다. 마치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와 연해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 수시로 강을 건너 국내 진공 작전을 수행한 것과 비슷한 활동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도 전개했다. 

  그런데, 1982년 9월,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믿고 철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브라, 사틸라 난민촌을 에워싸고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할 수 있도록 아리엘 샤론의 명령에 따라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았다. 마치 청산리 대첩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그 분풀이로 간도의 조선인 동포를 학살한 간도참변 처럼 말이다. 전시라 할지라도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며 전쟁 범죄이다. 그런데, 아리엘 사론은 "나를 괴물이나 학살자로 불러도 좋습니다. 이스라엘을 유대인 나치 국가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죽은 성자보다는 그게 낫습니다."(121쪽)라고 말했다. 그렇다. 아리엘 샤론의 말처럼 그들은 유대인 나치국가가되어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했었던 만행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하고 있었다. 악마와 싸우며 악마가 되어 약자를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그들의 섬뜩한 모습에 히틀러는 지옥에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에 이스라엘군이 주둔하면서 식민지배를 한다. 이에 대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제1차 인티파다 시기에 그들이 가진 것은 돌밖에 없었다. 일제의 무단 통치에 대항해서 우리가 3.1 운동을 했듯이, 그들은 인티파다를 전개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아리엘 샤론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철수시킨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필요시마다 가자지구를 F16 전투기로 폭격했다. 

  2009년 저자 김재명은 가지구를 방문했다. 그 때 팔레스타인 주민은 "우리가 하마스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총을 들고 싸운 전투원이 아닌데, 왜 마구잡이로 폭격해 집을 부수고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가느냐?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76쪽)며 울분을 토했다. 탁트인 시야를 확보하겠다며 불도저로 올리브 농장을 밀어붙이고, 응급차의 마을 진입을 막고, 부모의 주검 옆에서 굶주리는 아이 4명을 나흘이나 내버려둔 이스라엘군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은 존재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는 인간이 아니라 제거해야할 블렛셋인들로 보였던 것인가?

  이스라엘군의 정신상태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이스라엘 군인이 단체로 티셔츠를 맞추었다. 그런데 그 티셔처에 인간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팔레스타인 임산부 배에 총으로 조준을 을 해 놓고는 "1 shot 2 kills"라 적어 놓은 것이다. 1발로 2명을 죽인다는 섬뜩한 글귀를 적은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입고 sns에 자랑하며 올린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다. 

  이러한 사실을 유엔도 알고 있다. 2009년 3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 라디카 쿠마라와미는 제10차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이스라엘군이 가지지구 침공 당시 11세의 팔레스타인 소년을 '인간방패'로 활용하는등 많은 인권 유린을 저질렀다."(101쪽)는 내용의 43쪽 보고서를 제출했다. 임산부와 배속의 태아에게도 총을 조준하며 "1 shot 2 kills"을 외쳤을 그들에게 팔레스타인 소년들은 인간 방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분노에도 거칠 것이 없다. "UN 마크가 뚜렷이 달려 있는데도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소속 직원의 차량이 부서졌고, 난민촌은 파괴되고, 점령지역 민간인은 강제로 이동당했다. 이는 제네바 조약 규정 위반이며 명백한 전쟁범죄이다.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를 저질러도 그들에게는 미국이 있다. UN에서 미국은 거부권이라는 무기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눈감아 주었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외교정책'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국익보다 이스라엘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외교를 지적했다. 유대인은 유대인 로비단체를 이용해서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을 움직이고 있다. 어쩌면 반유대 정서를 확산시키는 일등 공신은 이스라엘일지도 모른다. 


2.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슬람 지식인은 저자 김재명에게 "이스라엘은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내 민족만 잘났다고 타민족을 압살해선 안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우기는 커녕, 나치의 악랄한 수법을 그대로 배워 중동땅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211쪽)고 토로했다. 히틀러의 수제자가 이스라엘이라는 그의 지적에 의문이 들었다. 과연 구약에 의해서 모든 것을 약속 받았으며, 고통이 끝나고 약속의 땅으로 그들이 귀환하여 이스라엘을 건국했다는 그들의 신화는 진실일까?

  저자 김재명은 아서 쾨스틀러의 '열세번째 지파'라는 책을 인용해서 이스라엘의 신화를 걷어낸다. 현대 유대인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740년 무렵 카자르 왕국의 불란왕이 유대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탄생했다.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독일 히틀러에 의해서 희생당했다.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로마에 의해서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겪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고,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화를 기억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인을 박해하고 학살하고 있다. 

  그뿐아니다. 유대인은 동유럽에 분포한 아슈케나짐, 스페인을 중심으로 분포한 세파르딤, 이슬람인들과 조화롭게 지낸 미즈라힘으로 나뉜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은 미즈라힘의 역사를 지워버렸다. 박노자 교수의 '하얀 가면의 제국'이라는 책에 의하면, 이스라엘인들은 로마에 의해서 디아스포라의 고통, 히틀러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고통을 거쳐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슬람인들과 이웃하며 조화롭게 살았던 미즈라힘을 역사에서 지워버렸다고한다. 조화롭게 더불어 살았던 역사를 버리고 박해받았던 고통의 역사를 모든 유대인의 기억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피의 복수가 벌어질 수밖에.....

  이러한 이스라엘의 박해의 기억은 이스라엘을 제대로된 민주국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시민권을 갖은 21%는 아랍인이다. 그들은 병역을 면제 당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 어렵다. 취업해도 똑같은 일을 하는 유대인 입사 동기와 임금 및 승진에 차별을 받는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고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또한 유대인 사회 내에서도 피부색에 따라서 차별이 존재한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1등 시민 유대인과, 2등 시민 아랍인, 그리고 죽여도 비난받지 않는 호모사케르보다 못한 팔레스타인인으로 구성된 비민주적인 국가이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의 의해서 강제 점령당하고 있다. 곳곳에 검문소가 있고, 서안지구 내에 분리장벽이 존재한다. 땅의 주인이 자신의 땅에서 죄수 취급을 당하고 있다. 불법 정착촌 사람들이 달리는 차에 돌을 던져 팔레스타인인을 위험을 빠뜨리고, 이스라엘군이 난민촌에 총을 쏘아 댄다. 팔레스타인인이 저항하면 그들을 테러리스트라며 감금한다. 랄프 쇤만은 '시오니즘의 숨은 역사'라는 책에서 일제 강점기 일본인 순사가 독립운동가에게 했던 '성폭행과 전기고문'을 비롯한 악랄한 고문을 소개했다.(169쪽) 열악한 감옥에 인권을 유린하면서 감금당하는 팔레스타인이들에게서 우리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국가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만행이 이스라엘에서는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저자 김재명은 이스라엘을 민주국가라기 보다는 "군사 파시스트에 가깝다."라고 단언한다. 그 근거로 "이스라엘은 21세기에 식민지를 두고 있는 유일한 국가"(331쪽)임을 지적한다.김재명의 날카로운 지적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스라엘은 아테나 보다는 스파르타에 가까운 나라이다. 스파르타도 그들 내에서는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그리고 소수의 스파르타인이 반자유민인 페리오코이와 예속농민인 헬일로타이를 지배했다. 그리고 반란의 기미가 있는 건장한 청년들을 주기적으로 살해했다. 이는 이스라엘을 '군사 파시스트에 가깝다'고 지적한 김재명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이후 지금까지 '국가 비상 사태'아래 있지 않은가!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2년 동안 팔레스타인 희생자는 최소 1만 2600명이고 이스라엘 희생자는 1700명 가량이다. 사망자 비율로 따지면 유대인(이스라엘) 1명당 아랍인(팔레스타인) 7.4명 꼴이다."(33쪽) 이러한 사상자 비율은 일제의 의병 학살에 맞먹는 교환비율이다. 이는 전쟁이 아닌 학살이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현재에도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한 유엔 차량을 폭격하고 난민촌을 폭격하고 있다. 전기가 끊겨 인큐베이터에 있던 아이들이 침대에 눞혀져야만 했다. 2014년 프란시스코 교황이 세월호 가족을 만났을 때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15쪽)이라는 말을 했다. 저자 김재명은 기계적 중립을 거부한다. 악과 선 사이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중립이 정의가 될 수 없다. 일제에 대항한 우리의 의병투쟁과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가 오버랩되기에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우슈비츠의 피해자였기에 가해자가 되어 버린 그들은 용서 받는 것인가? 히틀러의 뒤에 서서 팔레스타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동을 이제는 그만두어야한다. 그들이 인간적 양심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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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
도브 왁스만 지음, 장정문 옮김 / 소우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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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브 왁스만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이라는 책제목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쉽게 설명해줄 책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도브 왁스만이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죄를 저지른 영국 출신이라는 사실에 불안감이 들었다. 과연 도브 왁스만은 그의 조국 영국이 저지른 원죄에서 벗어나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실을 우리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도브 왁스만에 대한 불신은 한국어판 서문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과 친한 한국과 팔레스타인과 친한 북한의 구도를 설명하는 도브 왁스만의 글을 읽으며 그가 객관과 중립이라는 미명하에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거짓과 섞어서 우리에게 전하진 않을까? 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사람들은 갈등이 있을 때, 그 안에 숨겨진 복잡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어느 한쪽편을 드는 경향이 있다. 분쟁에 대해 단순하고 편향된 관점을 취할 뿐 아니라, 선과 악 사이의 일종의 도덕적 게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16쪽


  달리는 기차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중간은 기회주의자들의 선택일 뿐이다. 아일랜드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가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양비론, 양시론으로 양쪽의 비판을 피해가며 악이 승리하도록 방조하는 우를 도브 왁스만이 저지르지는 않을지 내심 불안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모스 오즈의 말을 저자가 인용할 때는 그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은 비극이며, 정의와 정의의 충돌이다. 따라서 흑백으로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불의와 불의의 충돌이기도하다."-19쪽


  전형적인 양비론, 양시론이다. 양쪽을 긍정하고 양쪽을 비판하는 전형적인 미꾸라지들의 행태이다. 논어에 자공이 마을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는 사람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자공이 마을 사람이 모두 싫어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라고 다시 묻자 역시 좋지 않다고 말했다. 공자는 마을 사람중 착한 사람은 그를 좋아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그를 싫어해야한다고 말했다.(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중립을 지키는 책보다는 정의를 말할 용기가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랬기에 이 책을 읽는 초반에 도브 왁스만의 글을 의심의 눈초리를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이 책은 생각보다 객관적으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었다. 1994년 헤브론의 이브라히미 모스크에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이 기도하던 팔레스타인인 29명을 총으로 쏴죽인 사건을 도브 왁스만은 과감하게 소개했다. 팔레스타인의 가해는 대서특필하면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서방 언론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서술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빼앗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민족은 없다.'라고 선전한다. 심지어 "땅없는 민족에게 민족없는 땅을"(94쪽)이라는 구호는 초기 시오니스트들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극명히 보여주며 팔레스타인이라는 민족이 실존하지 않다는 프로파간다를 갖게한다. 더욱이 서아시아 역사와 문화에 정통한 박현도 교수님도 팔레스타인 민족은 없다고 팟캐스트에서 지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도브 왁스만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인정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한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이지역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고 신뢰하는 박현도 교수님도 팔레스타인 민족은 없다고 말했는데, 영국 출신의 도브 왁스만이 이를 인정하다니! 이는 충격이었다. 

  보드 왁스만은 근대민족주의가 18세기 이후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라면 1834년 대규모반란과 1948년 5월 15일 나크바 이후 팔레스타인 민족이 탄생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스스로를 팔레스타인 민족이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주인없는 땅에 옛주인이 다시 돌아왔다는 그들의 서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레토릭일 뿐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인정할 때만이 평화의 대화가 가능하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졌다. 땅의 주인이면서도 땅을 빼앗기고 그땅에 죄인처럼 창살없는 거대한 감옥에 살아야했던 우리의 근대사와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오버랩되었다. 만약 우리가 독립을 성취하지 못했다면, 팔레스타인인 처럼 창살없는 감옥에 살거나 전세계에 흩어 뿌려져서 뿌리내리지 못한 민족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하신 선열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한편, 강경파 팔레스타인이들에 대한 아쉬움도 들었다. 팔래스타인 지역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UN에서 고민이 있었다. 이때 팔레스타인 아랍지도자들은 팔레타인 특별 위원회(UNSCOP)에 참여를 보이콧했기 때문에 특별 위원회는 시온주의자들의 발표만 들었다. 결국,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결정이 내려졌다.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UNSCOP)의 결정에 시온주의자들은 예루살렘 헤브론 등 유대의 역사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아랍 국가 영토에 포함되어 불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UNSCOP)의 분할 계획을 수용한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에 반발하며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과는 나크바(대재앙)으로 이어졌다. 

  이 부분은 5.10 총선에 참여하지 않은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행동과 오버랩된다. 결국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가 5.10 총선을 거부하자, 한민당과 이승만 계열은 선거에서 승리한다. 그후, 친일파에 의해서 독립운동가가 역청산되는 비극이 벌어진다. 현실을 무시한 선명성 경쟁이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지금 100%를 갖지 못한다해도 이를 받아들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 노력하는 영리함을 독립운동가와 팔레스타인인들은 갖지 못했다. 

  오슬로 협정에 대해서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에 굴복한 굴욕적인 협정으로 서술되어있다. 그러나, 도브 왁스만은 오슬로 협정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오슬로 협정은 폭력에 대한 외교의 승리이자, 이스라엘 정부와 PLO 지도부가 만들어낸 정치적으로 대담한 이니셔티브의 상징이다."- 209쪽


  PLO가 패배한 협상을 정적으로 바라보는 도브 왁스만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이협정에 도장을 찍은 아라파트도 결국은 암살당하지 않았던가? 팔레스타인 인들은 정부를 구성하지도 못했다.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서 인권을 침해당하며 생명까지도 잃는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인들의 모습을 도브 왁스만은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헤르츨은 '오래된 새로운 땅'이라는 글에서 "이루고자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목표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대인의 의지가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재앙의 시작이 되었다. 도브 왁스만이 이 책에서 말했듯이,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유전자가 상당부분 겹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두 민족이 유전적으로 서로 관련이 있음을"(68쪽) 알려준다.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살았던 두 민족이 이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며 불행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이 '평화'라는 목표를 같이 이루고자 노력하길 바란다. 그런다면 두민족은 더 이상 한민족의 의지가 타민족의 재앙의 시작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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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인논술 2024-06-30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타인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준은 그 역사를 통과한 사람들의 흔적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나루님의 걱정에 저 또한 더욱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세계사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2016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브런치 시리즈 2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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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을 곁들'이지 않은 세계사 브런치! 이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영어번역본을 곁들인 세계사 브런치'라는 제목이 정확한 제목일 것이다. 공자님의 정명사상을 굳이 들이대지 않더라도 명칭이 정확해야 독자가 올바로 책을 선택할 수 있음에 작가도 동의할 것이다. 이책은 영어원문을, 혹은 영어로 번역한 번역문을 곁들여 세계사의 고전을 소개한책이다. 그리스어나, 라틴어, 프랑스어 원문을 제시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너무도 큰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는다면 실망감이 클 것이다. 

  그럼에도 책벌레라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역사 전공자의 무거움이 느껴지지 않기에 경쾌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물론,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아마츄어가 쓴 글이라 책에 오류가 있기도하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함무라비법전을 "인류최초의 법전"(44쪽)이라고 소개한 글을 읽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인류최초의 법전은 우르남무의 법전이다. 또한, 246쪽에는 "성군의 대명사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린 하나라가 있었다고 한다."라는 웃기 힘든 오류도 있다. 전설상의 임금인 요가 세운 나라는 당이고, 순이 세운 나라가 우이다. 우가 세운 나라가 하이다. 전설상의 임금인 요임금과 순임금을 우가 세운 하나라 임금이라고 소개한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저자는 '서경'이라는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이러한 오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아하는 책벌레들이라면 자신의 독서를 토대로해서 경쾌한 책들을 쓰고 싶은 욕망을 대리 충족해주는 책이라 웃음을 띄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그래, 나도 언젠가는 정시몬 처럼 책을 출판하고 나와 같은 책벌레들에게 지적질을 당하겠지.....

  탁월한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종횡무진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많은 사색을 했고 이를 책으로 엮었다. 한글 번역본을 보는 것보다 영어 원문을 보는 것이 이해가 더 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암튼, 한가지 언어를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한세계를 더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를 활용해서 자신만의 책을 썼다. 물론 영어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는 있지만....(물론 동양 서적들은 한문을 곁들이기도 했지만, 저자가 한문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세계사 브런치'를 읽으며 한가지 큰 수확이 있다. 네루의 '세계사 편력'을 내가 읽을 책 목록에 추가한 것이다. 저자는 세계사 편력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산업화를 착수하기에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고 이미 말했다. (중략) 영국이 산업과 공장을 개발하기 위해 자금이 가장 필요했던 참에 인도로 부터 이런 거액을 가져왔던 것은 특별한 행운이었다."-518쪽


  네루는 인도의 독립을 꿈꾸고 이를 이뤄낸 혁명가이다.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독서를 하며 독립의 방향을 모색했듯이, 네루도 책을 읽으며 인도의 독립을 꿈꿨다. 그리고 영국 제국주의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네루의 '세계사 편력'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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