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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시민강좌
이재석 외 지음 / 연립서가 / 2024년 6월
평점 :
'일본사 시민강좌'라는 제목에 딱 알맞은 책이다. 일본사 전공자가 일반 시민을 상대로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용어로 일본사를 설명한다. 어려운 일본사 용어를 가급적 배제하고 한국의 시민들이 궁금해하고 관심있어할만한 주제들을 각분야의 전문가들이 친절하게 설명한 책이다. 술술넘어가는 책장 속에서 깊이 생각해야할 몇가지가 있었다. 이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흥선대원군이 추진한 통상수교거부정책의 과정속에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발발했다. 병인양요시기에 한성근 장군이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을 요격했으며, 정족산성에서는 양헌수장군이 프랑스군을 격퇴시켰다. 상상하기 힘든 승리였다. 신미양요시기에는 비록 강화도 진지가 쑥대밭이 되었지만, 포함외교로 상대편을 협상테이블에 불러들여 불평등조약을 체결한다는 미국의 전략에 흥선대원군이 응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전략적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물러갔다.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승리였다.
그런데, 일본은 그러하지 않았다. 1863년 사쓰마번은 영국과 전투를 벌여 패배했다. 1864년 조슈번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과 전투를 벌여 처첨하게 패배했다. 존왕양이를 부르짖던 사무라이들의 코가 납작해졌다. 그런데, 이 패배가 일본에게는 약이되었다. 양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철저하게 깨달은 일본의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메이지유신을 단행한다. 일본은 근대국가로 도약하였고, 양요에서 승리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죠수와 사쓰마의 처절한 패배는 일본이 양이에서 개국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조선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분전한 것은 개국을 늦추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405쪽)
잠깐의 승리가 행복한 결말을 보장하지 못하듯이, 지금의 패배가 미래의 불행을 약속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승리와 패배가 아니었다. 승리와 패배 이후에 어떠한 대응을 우리가 선택하는가였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분전을하여 정치적 승리를 얻은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우며 척화의 기치를 드높였다. 반면,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양이를 포기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본의 근대화 성공과 조선의 식민지 전락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교훈이다.
2. 6살 여성도 유학을 보냈다!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다. 일본의 정치가 안정되지도 안은 상태일 텐데, 일본은 이와쿠라사절단을 꾸렸다. 그리고 어린이까지 사절단에 포함시켰다. 이 사절단에 6살 여성 쓰다우메코도 있었다. 6살이면 아직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을 나이인데, 일본의 정치인들은 먼 미래를 바라보고 6살 여성 쓰다 우메코를 이와쿠라사절단에 포함시켰다. 그려는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일본여성 교육에 많은 기여를 한다.
메이지 정부의 장기적 개혁과 그들의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원대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해야함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이를 행하는 정부는 드물다. 지금의 K-팝도 엔터테이너 회사들이 미래를 보고 10대 시절부터 소속사에서 노래와 춤 공부를 시작시켜서 이뤄낸 것이다. 장기적 국가 전략과 투자가 일본사회의 변화를 이뤄냈다.
물론, 이 책에는 쓰다 우메코가 미국유학에서 돌아왔으나, 일본사회는 그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현실을 지적한다. 그속에서 그녀는 방황하고 고뇌한다. 남성중심의 봉건적 관념이 깊이 자리잡은 일본 사회의 늪에서 괴로워하는 그녀가 안쓰럽기도하다. 그러나, 그녀의 방황과 고뇌가 있었기에 일본여성은 그 이전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 아직도 일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한명의 쓰다우메코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다. 수많은 쓰다우메코가 일본사회에서 탄생한다면, 그리고 그녀들이 일본사회를 변혁시키려 노력하다면 일본 사회도 변할 것이다. 변화는 단숨에 이뤄질 수없고, 변화시키는데는 노력과 희생이 필요함을 그녀들도 잘 알것이다.
3. 표리부동과 문질비빈 사이
문질빈빈 (文質彬彬)이라는 말이 있다. 외양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미가 서로 잘 어울린 모양이라는 뜻이다. 논어에서 문질빈빈은 내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외면의 옷차림에서도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야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공자는 때에 맞는 옷을 입는 스타일리스트였다.
반면 표리부동이라는 말이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우리는 문질빈빈을 좋은 뜻으로 여기고, 표리부동을 나쁜 사람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문질비빈과 표리부동의 상반된 평가가 통신부사 조경의 입에서 나왔다.
"라잔 당신은 유학자라 자처하면서 어째서 허망한 부처를 믿는 중의 모습을 하고 있느냐" 라고 묻자, 하야시 라잔은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라고 맞받아친다. 물론, 이렇게 직설적으로 묻고 답하지 않았다.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대충 이러한 의미였다.
유학자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일본의 현실에서, 겉모습은 승려이지만, 내면은 유학자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하야시 라잔의 말에서 표리부동이 욕이되지 않는 일본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혼네와 다테마이로 대표되는 속마음과 겉마음이 다른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생각이 유학자이면서 스님의 모습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문질빈빈이 맞을까? 표리부동이 맞을까? 아니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다를까? 속마음만 중요할 뿐 겉모습은 아무래도 상관없을까? 표리부동과 문질비빈 사이에서 깊은 상념에 빠져든다.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일본사를 알기 위해서 어려운 일본사를 읽으며 고통받았던 적이 많았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본사 용어를 끌어안고 끙끙대며 끝까지 책을 읽었던 적도 있었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었던 분들에게 '일본사 시민강좌'를 추천한다. 이책이 우리를 일본사에 잘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