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풀어낸 고려 왕 34인의 이야기
석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역사학에도 심리학을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사 강의를 듣던중, 문철영 교수가 던졌던 화두였다. 역사학은 딱딱하고, 대중의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고민이 깊어가던 시기였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라 생각했던 역사가, 재미없고 딱딱한 학자들만의 이야기 남아 있는 현실은 너무도 안타깝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심리학과 역사학을 접목시킨다면, 역사속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그러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고, 역사학의 재미는 배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감돌았다. 드디어 심리학의 눈으로 역사적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본 책을 만났다. '심리학으로 풀어낸 고려왕34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문종을 재발견하다.

  고려시대,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장수왕시기, 백제는 근초고왕시기, 신라는 진흥왕 시기, 발해는 선왕시기, 조선은 세종대왕 혹은 영정조시기를 전성기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려의 전성기는 언제였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한국사 교과서를 펼쳐보자. 태조왕건이 나라를 세우고 광종과 성종 치세에 국가 기틀을 잡다가, 거란과 여진의 침략을 물리치지만, 몽골의 오랜 침략 속에서 결국 굴복한다. 그 굴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민왕이 노력했지만, 결국 고려의 혼란은 수습되지 않고 조선왕조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고려는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혼란기에 접어들었다는 인상을 주는 서술이다.

  사실 고려왕조의 전성기는 문종시기였다. 조선 세종이 셋째이듯이, 문종도 셋째로서 왕위를 계승했다. 문종시기 학문은 발전했고, 여진족은 고려에 복속되었다. 고려의 기미주로 편성된 여진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백성들의 삶도 편안해졌다. 학문이 발전하고, 정치가 밝아졌으며, 국제 정세도 고려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종시기 역사에 대해서 교과서에서는 서술이 안되고 있다. 조선에 비해서 너무도 홀대받는 고려의 모습을 바라보며, 혹시! 식민사학의 그늘이 고려에 드리워졌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유독 고려에 대한 차별 대우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망상일까?

  문종치세를 재발견하고, 교과서 서술의 문제점가지 생각한 것은 이 책에서 문종의 심리를 분석하며 문종치세의 업적을 제시한 부분을 읽으면서부터이다. 다른 고려사 관련 책들에서 발견하지 못한 보석을 '심리학으로 풀어낸 고려왕 34인의 이야기'에서 발견했다.

 

2. 마음속에 어린 아이가 울고 있는 궁예

  드라마 '태조왕건'이 한창 방영되던 시기!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태조 왕건'인지, '궁예'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왕건보다 궁예라는 캐릭터가 주는 강렬함은 많은 시청자들을 텔레비젼앞으로 모이게 했다. 마치, 중국의 초패왕 항우와 한고조 유방의 싸움을 보면서, 승리한 한고조 유방보다, 패배한 초패왕 항우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 즉, 어려운 환경에서 악전 고투를 하거나, 게임에서 지고 있는 자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기대심리가 작동했을 것이다. 궁예는 왕족이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한쪽 눈까지 잃었다. 반면, 왕건은 송악의 호족 출신이다. 아버지에게 살해라는 위기에 빠져 악전고투하는 궁예를 자신에게 투영하며 사회적 밑바닥에 있는 인물이 승리하길 바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건의 승리로 결말이 지어질 것을 알고 있다. 결말을 알면서도 궁예를 마음속에서 버리지 못한 것은 궁예에 대한 미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궁예가 승리하기를 바랐지만, 궁예는 왕건을 넘어서기에는 너무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러레노어 테어는 '유아시절의 외상은 잊히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런 경험을 지닌 사람들의 일상은 단조롭고 냉혹한 면이 있으므로 잘 관찰하면 외상의 유무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궁예의 가슴속에서 커다란 상처가 있다. 그 내면에는 '버림받은 아이' 궁예가 울고 있었다. 결국,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지 못한 궁예는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간다. 관심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부인과 자식도 죽인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자신에게 일어난 상처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으나, 회복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한쪽 눈을 잃고, 힘든 삶을 살아야했던 것은 궁예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 아이'를 달래고, 스스로를 치유할 의무는 궁예 자신에게 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궁예는 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도 수많은 궁예가 있다. '울고있는 내면아이'를 달래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아이를 달랠 줄도 모른다. 그렇다면, '울고 있는 내면아이'를 달래고 치유하는 의무를 사회가 나눠 수행할 수는 없을까? 생애전환기 검사를 하듯, 정신과 진료를 받고, 내면 아이를 치유하는 시스템을 우리도 갖길 바란다.

 

3. 절대지존! 그러나 나약한 인간! 

  전통시대! 제왕은 절대지존이다. 그 누구도 감히 그를 무시할 수 없다. 한생명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해서일까? 고려의 왕들중에는 자신의 막강한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많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이들 왕의 묘호앞에는 '왕'자가 붙는다. 원나라 황제에게 충성하라는 의미이다. 고려의 왕은  고려에서는 절대지존의 자리에 있지만, 원나라 황제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부인 제국대장공주에게 매까지 맞은 나약한 충렬왕! 아버지와 아들이 왕위를 두고 경쟁했던, 충렬왕과 충선왕! 자신의 아들까지 죽이고,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도 조카를 세자로 삼아 아들을 견제했던 충선왕!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체장애자로 모함받은 충숙왕! 부왕의 첩과 외숙모를 겁탈하며 향락에 빠져 살다가 타국에서 죽은 충혜왕! 어린나이에 죽은 충목왕과 충정왕! 이들의 삶은 애잔한 느낌까지 든다. 그들은 몽골과 몽골출신 부인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야했다. 그리고 고려 백성에게는 한없이 강한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얼마나 한심했으면, 제국대장공주가 사냥을 즐기는 충렬왕에게 사냥을 하지 말고 백성을 돌보라했겠는가?

 

  "자신이 기대는 대상에게 비굴해질수록 자신에게 기대는 사람의 단점을 들춰내고 더 모멸하는 것이다. 이는 의존할수밖에 없는 자신의 객관적이고 명시적인 열등 상태를 극단의 주관적 우월감으로 표출하면서 억압 에너지를 해소하려는 행동이다."(261쪽)

 

  강자에게 비굴한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자에게 강해진다. 자신의 삶에 당당한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강한자에게 기대어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고려왕들의 모습은 백성들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백성들이 고통을 받더라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도! 힘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권력을 지키는 것도 버거웠을 테니까...... 타인의 힘에 의지한 정치는 충혜왕의 폐륜적인 모습으로 극에 달한다. 당당한 주인으로 살지 못하면, 그 고통은 대를 이어 유전된다.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 자녀들도 주인으로 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타인에 의존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왕은 비단, 원간섭기에만 있지 않았다. 수동의존형 왕 '인종'도 그러했다. 처음에는 이자겸에 의존해서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했고, 이자겸을 제거하고 나서는 묘청에 기대어 정치를 하려했다. 결국에는 김부식을 비롯한 문벌귀족에게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게 되었고, 경계선 성격을 지닌 의종 시기에 무신정변이 발발하여 고려왕의 권력은 무너진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정치를 하지 못하는 왕은 그 권력을 쥘 자격이 없다. 절대자를 추종하는 맹목적 신도처럼 그들은 나약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권력은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게 된다. 인종의 나약한 자아는 경계선 성격을 지닌 인종으로 이어졌고, 자신이 관심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마치 트럼프처럼! 

  권력을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없는 왕들에게 통치를 받고 있는 백성들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왕조시대! 제왕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어떠한 제왕을 만났는가에 따라서 백성의 삶이 많이 달라진다. 무당에게 의사결정을 맡기며 푸른집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두었기에 우리가 겪어야했던 고통을 생각한다면, 고려시대 백성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4. 상처받은 자들!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없는가?

  제왕에서 평민까지, 아니 노비까지! 사람은 나약한 존재이다. 사랑을 갈구하며 부모라는 존재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한다. 어른이 되면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다시 자신의 삶을 옥죄게 된다. 하인츠 코헛은 "전능한 줄 알았던 부모가 능력의 한계가 있고 자신의 이상과 기대에도 못미치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고 했다. 그리고 이것을 건강한 자아상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최적의 좌절"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제왕의 아들에게는 "최적의 좌절"을 해줄 아버지가 부재한 경우가 많다. 아버지의 한마디에 만백성의 생명이 달렸기에 그들의 도덕성 발달은 좌절될 위험이 상존한다.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을 비롯한  대기업 자녀들의 갑질은 "최적의 좌절"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제왕들의 자녀와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그나마, 제왕의 자녀들은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많은 스승과 신하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기업에는 제왕의 자녀를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스승과 신하들'이 있는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부모라는 존재에 의해서! 강한 힘을 가진 어른이라는 존재에 의해서! 불의의 사고에 의해서! 힘쎈 친구에 의해서 겪게된 고통을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치유의 방법을 살펴보자.

 

  "트라우마를 말살하기 보다 그것과 더불어 살며 그 트라우마를 발전과 성숙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방법까지 익혔을 때 마침내 내면의 상처가 완치된다."

 

  '상처를 받은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지만, 상처를 치유할 의무는 나에게 있다'는 말처럼, 트라우마를 겪은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 트라우마를 치유할 의무는 나에게 있다. 트라우마를 없애려하기 보다는 트라우마와 더불어 살며 그 트라우마를 발전의 발판으로 삼으라! 성숙된 인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 또한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다. 그리고 그 왕따의 그늘은 나의 삶을 그늘지게했다. 나는 과연 트라우마와 더불어 살며, 그 트라우마를 발전과 성숙의 원천으로 사용했는지 자문해본다.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살고 있는 것도 그 트라우마를 성숙의 원천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때론 초등학교 시절의 일들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미병의 상태'!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병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우리 조상들은 강조했다. '위생가설'에 따라서 병균을 없애면 인간이 건강해질 것이라고 서양의학자들은 말했다. 그리고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항생제 남발은 우리에게 유익한 유산균들도 죽였다. 무균실에서 자란 아이는 오히려 면역력이 낮아져 질병에 시달리기 쉬워진다. 병을 없애기 보다는 병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 즉 미병의 지혜를 터득할 시간이 왔다.

   정신분석학자 로버트 존슨은 그림자를 대하는 원칙을 "우선 직면해서 수용하고, 그다음으로 함께 가볍게 춤을 추는 것이다."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이때 "내가 주체가 되어 그림자와 춤을 춰야지 그림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로버트 존슨도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려하기 보다는 아픔을 직면하고 주인이되어 아픔과 가볍게 춤을 추라했다. 어린시절, 나를 괴롭혔던 '친구'라는 괴물들을 직면하고 그들이준 상처와 가볍게 춤을 추어야겠다. 나의 내면에서 울고있는 아이를 달래며 내면아이와도 함께 춤을 추어야겠다. 그리고 나의 내면아이를 끌어 안겠다. 눈물을 흘리며.....

 

  "(윌리엄 제임스) 삶이 변화되기를 원하면 이유나 변명을 달지 말고 열정적으로 살라.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

 

  그래, 나의 내면아이를 끌어안고 이제 열정적으로 살아가자! 지금 당장! 행동이 변해야 삶이 변하고 인생이 변한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쉬운 '이유나 변명을 달지 말고 열정적으로 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열정적으로 살자!!

 

5. '옥의 티'를 찾아서

  이 책의 저자 '석산'은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고 있다. 자신의 전공도, 자신의 출신 대학도 책에는 적혀있지 않다. 아마도 경제분야를 전공한 다방면에 박식한 사람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심리학과 고려사에 대한 상당한 실력이 있음을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그러나 '석산'의 책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몇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첫째, 동북9성의 위치능 어디일까? 어린시절, 동북구성의 위치를 천리장성밖의 함경도 지역으로 배웠다. 그러나 이 설은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며, 우리학자들은 길주설과 두만강 유역설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 영토를 축소시키려는 일본인 학자의 설을 궂이 적었어야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길주설과 두만강 유역설을 소개해주었다면 이 책이 더욱 빛났을 것이다.

  둘째, 광종은 숭유억불책을 썼는가? 이 책에는 "신정왕후 황보씨의 딸이 노골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을 편 광종의 아내였다."라고 적고 있다. 광종은 최승로의 시무28조에도 나오듯이 말년에 불사를 많이 일으킨 왕이다. 광종이 숭유억불책을 썼다는 말은 수정해야한다.

  셋째, 충선왕은 원나라가 좋아서 고려에 안왔을까? 이 책에서는 "충선왕은 어릴때 부터 원나라생활에 젖어 있던 터라 고려보다 원을 더 가깝게 여겼다."라고 적고 있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다. 그러나 충선왕이 연경에서 전지정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원나라 생활에 젖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의 정치변동에 따라서 왕권의 향배가 달라지는 고려의 뼈아픈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부분까지 지적해주었다면, 이 책이 더 빛났을 것이다.

  작지만, 아쉬운 '옥의 티'를 잘 닦아 준다면, 이 책은 더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수록 절대적 카리스마로 혼돈을 잠재울 영웅을 기대린다." 바로 '알파형 리더'를 기대한다. 전통시대! 그러한 알파형 리더가 나타나길 바라며 '제왕'이라는 존재를 만백성들은 우러러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왕'들도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알파형 리더'가 나타나기를 바라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어 삶을 개척해나갈 때만이, 참다운 주인으로 살수있다.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은 신화를 만들어 낸다. "집단 무의식에서는 신화의 진위가 중요하지 않다. 그 의미와 지향하는 바가 중요한 것이다." 신념은 집단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 '알파형 리더'를 바라는 잘못된 심리는 잘못된 집단 무의식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잘못된 집단 무의식은 '제2의 박정희'와 '제2의 히틀러'를 만들어 낸다. 우리사회는 과연 그러하지 않는지, 우리는 스스로 주인으로 살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이 책은 묻고 있다. 34명의 고려왕의 심리를 해부함으로써 그들을 저 높은 좌대에서 끌어 내어 우리 곁에 다가서게 했다. 그리고 묻는다. 민주주의 시대! 우리는 주인으로서 살고 있으며, 주인으로 살 준비개 되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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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 - 생생한 사진과 깊고 넓은 해석으로 경험하는 고구려 역사 현장 다큐멘터리
윤명철 지음, 윤명도 사진 / 참글세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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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남편은 고구려새입니다."라고 시작하는 시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고구려새"라고 부른다. 얼마나 고구려의 옛땅을 돌아 다녔는지, "날개뼈에 금이 가도 날아다니다가 뚝 부러져버렸습니다. / 기부스통 속에서 날개는 다시 살아났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얼마나 그의 고구려 사랑이 광기에 가까웠으면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그의 아내가 그를 위해서 '고구려새'라는 시를 지었겠는가? 그의 아내로서는 속상할 수도 있지만, 윤명철과 같은 학자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행운이라 생각한다. 고구려에 미쳐서, 고구려 연구에 한평생을 바치고 있는, '고구려새' 윤명철이 말하는 고구려의 역사를 만나보자.
                                        

1.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다.

  이 책은 다른 역사책과 달리 저자의 감상이 많이 묻어난다. 마치 자신이 살았던 아름다운 고향을 기억하며 떠나버린 사람과 퇴락해버린 오늘을 못내 아쉬워하하며 발길을 돌리는 고향떠난 이의 아픔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의 감상은 장군총과 고구려 산성을 보면서 느낀 소감을 표현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고구려 사랑이 남다르기에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남다르다. 그는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국사를 바라보고 있다.

  고구려는 어느 나라를 계승한 나라일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부여를 계승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윤명철은 고구려는 원조선과 부여를 계승한 나라라고 말한다. '다물'이라는 고구려말 자체가 원조선의 땅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고구려의 원조선(고조선) 계승의식을 주장하는 윤명철의 주장에는 자못 결기가 느껴진다.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을 '부족국가'에서 출발했다고 국민을 가르쳤던 시대'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원조선의 역사를 삼국시대와 단절해서 서술하는 한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을 서술하고나서, 고조선의 역사적 경험은 깡그리 무시되고, 다시 군장국가에서 연맹왕국으로 연맹왕국을 거쳐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윤명철의 지적은 아쉽게도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고조선과 삼국의 역사를 일맥상통하도록 서술하지 못하고 단절적으로 서술하는 배경에서는, 고조선을 당당한 국가로 인정하지 못하는 고루한 자들의 인식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조선을 실체적 국가로 보고, 한나라와 당당히 맞섰던 강력한 국가로 보면, '재야사학자' 혹은 '유사사학자'라 매도하는 현실에서 어찌 고조선과 삼국의 역사를 누적적으로 발전한 우리역사로 서술하겠는가?  

  그러나 윤명철은 다른다. 그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주몽을 단군의 아들이라 기록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고구려는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임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전률이 느껴졌다. 그는 동천왕 28년조 '왕검선인의 예터'라는 기록을 인용하며 평양의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외교적 중요성을 지적한다. 고구려가 원조선을 계승했다는 그의 주장을 읽어가며, 고구려가 평양성을 중요시하고, 장수왕시기에 평양천도를한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삼국사가기 동천왕 28년조에 편양을 왕검선인의 옛터 라고 서술한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이는 삼국사기를 서술한 김부식조차도 고구려의 원조선 계승의식을 모두 없애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장천 1호분 벽화에 신단수 아래의 곰이 그려져있다. 또한 각저총에는 곰과 호랑이가 그려져있기도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구려인들이 단군신화에 대해서 이미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윤명철!! 그는 우리 역사를 단절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누적적! 발전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고구려를 중심에 둔 역사 인식은 삼국통일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다.

 

  "우리 민족은 대륙을 상실하고, 해양에 대한 군사적 정치적 주도권을 일부 빼앗김으로써 동아지중해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중핵조정역할 또한 빼앗겨버렸다. 만주 지역은 우리 민족사에서 멀어졌으며, 우리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거란 선비 말갈들으이 종족들은 그 후에 오히려 우리를 압박하는 존재로 변했다. 한편 일본 열도에서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과 신라계도 참여한 '일본'이라는 국가가 670년에 탄생했다. 싸우고 갈라진 형제는 남보다 못한 법이다."313쪽

 

   남한의 많은 학자들이 신라의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평가하기 위해서 당시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삼한일통'이라는 개념도 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라 주장한다. 삼국이 통일 되었기에 '민족'이라는 개념이 나타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고조선과 삼국을 계승적 관계로 이해하지 않고 단절적으로 이해하는 그들에게는 삼국은 같은 동류의식을 가진 존재로 보기보다는 서로 다른 각각의 국가로 보일 수밖에 없다. 서구의 '민족'이라는 잣대로 우리 역사를 재단하려하니, 우리에게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서구와 동남아시아는 1민족 1국가라는 개념이 근대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한반도라는 비좁은 곳에서 오랜 동안 살아오면서 일찍부터 동류의식이 싹텄다. 우리에게 동류의식과 같은 맹아적 '민족'의식이 없었다면, 과연 외적의 침입에 대해서 자발적으로 '의병'을 일으켰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무조건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삼국통일을 하고 신라의 영토는 3배로 늘어났는가? 통일전의 신라의 영토와 통일 후의 신라의 영토를 비교하면 신라의 영토는 3배로 늘지 않았다. 백제를 병합하고, 고구려 땅의 일부를 흡수한 것 뿐이다. 한반도 북부와 광활한 만주벌판을 중국에게 내어주고, 그속에 살았던 고구려인도 넘겨주었다. '통일'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삼국의 땅과 백성을 모두 통합했어야했다. 통일이라고 보기에도 부족하며, 그로 인해서 '중핵조정역할'을 비롯한 너무도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싸우고 갈라진 형제는 남보다 못한 법이다."라는 윤명철의 말이 뼈를 때린다.

  고구려를 중심에 둔 역사서술은 발해를 거쳐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진다. 발해와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조선은 고구려에 '반역'한 나라로 평가한다. 이러한 조선의 한계를 깨닫고 고구려를 다시 환생시킨 사람들이 있다. 윤명철은 그들을 '독립군들'이라 지적한다. 독립군을 가르칠 정신교육 교재를 집필하기 위해서, 독립운동가들은 고구려를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신 단재신채호 선생을 비롯해서, 발해사를 연구한 장도빈 선생은 독립군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주목했다. 대종교 또한 고조선을 비롯한 우리역사에 관심을 갖고 일제와 맞서 싸웠다. 우리에게 힘이 필요할때!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그때 고구려는 힘을 주었다. 고구려는 사라진 역사가 아니었다. 우리와 호흡하며, 우리에게 힘이 필요할 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우리곁에 살아 있다.

 

2. 돋보이는 윤명철의 역사관!!

  역사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역사관과 개성없는 서술에 실망할 때가 많다. 그런데 윤명철이 바라보는 역사는 달랐다.

  '동아지중해 중핵 역할'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보통의 학자들이 고구려를 철갑기병을 앞세워 땅을 넓힌 나라라고 바라본다. 육로교통보다 수로교통이 발달한 우리의 역사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육지를 중심으로한 역사인식을 하고 있는 학자들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윤명철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를 육지와 연결시켜 '해륙사관'을 완성했다. 땟목을 타고 고구려가 항해했을 바닷길을 탐험하기도 했다. '해륙사관'은 바다 뿐만 아니라 '강'에도 주목한다. 윤명철은 만주일대를 '수륙적 시스템'으로 바라보았다. 배가 다닐 수 있는 60여개의 강에 주목하며, 육군이 출동할 때, 강상 수군이 강을 이용해서 보급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고구려는 모든 강들을 자국이 계획하고 건설할 교통망 속에 편재했다 주장한다. 국내성을 비롯해서, 평양성, 한성은 항구도시라 지적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라는 사료의 틀에 갖히지 않고, 실제 고구려의 땅을 밟으며 고구려의 역사를 찾으려 노력한 그였기에 남들이 보지 못한 고구려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남다른 그의 눈은 여타 학자들이 애써 무시하는 기록에도 주목한다. 5대 모본왕 49년 북평, 어양, 상곡, 태원 습격기사를 그는 부정하지 않는다. 이덕일의 지적에 의하면 강단 사학자들은 고구려 본기의 이 기록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측 기록에도 나오는 이러한 기록을 믿지 않는 강단사학자들을 이덕일은 '식민사학자'라 말하며 비판한다. 그런데, 윤명철은 이덕일의 비판을 빗겨가며, '기마군단' 즉 기병을 중심으로한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해당 기록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걸어다니는 농경민족의 시각에서, 면을 중심으로 한 지배에 익숙한 기존사학자들의 해석에 구애받지 않았다. 고구려는 점과 선의 지배를 했으며, 빠른 기마전술을 구사했던 나라이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를 벗어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조선 세종 시기에 4군 6진을 개척하면서도 너무도 고난을 겪어야했는데, 4군 6진보다 몇십배는 많은 영토를 광개토태왕시기 단시일 내에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면을 지배하기 보다는 선과 점을 중심으로 지배체제를 구축했던 고구려의 점령방식 때문이 아닐까?

  연개소문을 당신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상당수의 학자들이 연개소문을 독재자로 평가한다. 그의 대당 강경책으로 인해서 고구려가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윤명철의 평가는 어떠할까?

 

  "시대의 흐름과 고구려인들의 자유로운 기질이 연개소문이라는 인물과 그가 지향하는 적극적인 항전을 택한 것이다." 294쪽

 

  고구려 멸망의 원인을 연개소문 개인에게 돌리는 단순한 역사인식에서 벗어난 그의 시각이 다시한번 돋보인다. 연개소문이 죽인 영류왕은 고구려 1급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지도 '봉역도'를 당에게 바쳤으며, 전승기념물인 '경관'을 허물어뜨리고, 당나라 진대덕이 고구려를 정탐하도록 했다.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고건무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고구려 중심의 세계관과 중국중심의 세계관의 대결에서 고구려가 고개를 숙인다고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삼국이 하나로 통일 되지 못하고, 분열되어 외부의 적을 끌어들인 역사를 뼈아프게 생각한다. 만약 삼국통일이 이뤄졌더라면, 고구려는 당나라에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통일된 중국 대륙의 당나라와 분열된 한반도의 고구려의 싸움에서 당나라가 유리한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이러한 현실은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음을 윤명철은 지적하고 있다.

  윤명철!! 그는 우리의 눈으로 우리역사를 바라보는 몇안되는 역사학자이다. 윤명철은 중국의 시각! 서양의 시각! 미국의 시각! 심지어는 일본의 시각!으로 우리역사를 바라보는 자들과 차원이 다른 학자이다. 그는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자취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기존의 강단 사학자들이 그들의 독립운동을 인정하지만,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역사연구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던 것과 너무도 차이가 난다. 우리 역사학계의 태두인 두계 이병도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그를 '진정한 역사학자는 이러해야하는구나'라는 가르침을 주신 분이라고 찬양하는 학자들과 너무도 차이가 난다.

 

3. 윤명철이 던져준 화두들!!

  '지식인이란 당연한 것에 시비거는 자'라는 말이 있다. 윤명철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지나쳤던 일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삼국사기'에는 적혀있지 않은데,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등장한 것은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증거라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 대학시절 서영수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노교수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먼 훗날, 누군가 의도적으로 내다버린 글귀를 찾아내 우리 역사 속에 살려낸 것이다." 302쪽

 

  이 글귀를 읽으며, '열하일기', '동국통감'에 적혀있는 글귀를 믿지 않은 이유가 과연 정당하지를 생각했다. 역사책을 편찬하면서 기존의 모든 서적들을 살펴보지는 못한다. 모든 비석들을 살펴보지는 못한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모든 역사책을 보았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생각이었다. 김부식이 당시에 있었던 삼국의 기록 모두를 '삼국사기'에 담지도 않았다. 윤명철의 지적은 나의 안일한 기존 관념에 비수를 꽃았다.

  "한국사 교과서에는 '광개토태왕'이라 하지 않고, 왜? '광개토대왕'이라 하지요?" 어느 학생의 질문이었다. 광개토태왕릉비에는 분명, '태왕'이라 적혀있지 않은가? 국사편찬 위원회에 질문을 했더니,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왕명을 적고 있습니다."라는 답년이 왔다. '삼국사기'보다 더 가치가 있고 정확한 광개토태왕에 대한 기록이 '광개토태왕릉비'아니던가? 그렇다면 '광개토태왕'이라 교과서를 서술해야하지 않을까? 윤명철은 '광개토대왕'이라 적지 않고 '광개토태왕'이라 적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고구려 부흥운동을 주도한 왕족 '고안승'을 '안승'이라고 서술한 현행교과서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윤명철은 '고안승'을 '안승'이라고 기록한 것은 '성을 뺀 하칭으로 기록'한 것이라 한탄한다. 지금도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고안승'을 '안승'이라 적고 있다. 교사의 설명이 없다면, 안승의 성이 '안'씨로 착각하기에 딱 좋다. 일부 EBS 강사는 안승이 백제 땅에서 부흥운동을 일으켰다며 신기하다는 듯이 설명하기도 한다. 고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투항한 사실을 알지 못하니, 엉뚱한 설명을 하는 일도 벌어진다.

  공자의 '정명'사상을 말하지 않더라도, 역사에서 정확한 명칭을 사용해야한다는 상식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광개토태왕'과 '고안승'에게 어울리는 정확한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지 물어본다.

  윤명철은 고구려의 후예인 고선지와 이정기에 대해서도 눈길을 돌린다. 헝가리 출신의 역사학자 오렐 스타인이 '카르타고의 '한니발',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뛰어 넘는 위대한 군인으로 고선지를 평가했다. 탈라스 전투의 영웅 '고선지'를 기억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강한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망국의 후예로서 누명을 쓰고 죽는 그에게 동정의 눈길을 던진다. 윤명철은 질문을 던진다. "그의 삶속에서 고구려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대학에서 동양사 개론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고선지는 중국인이다."라고 단정하는 노교수의 말은 매정한 느낌마져 들지만,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는 '현종에게 충성'을 간직한채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덕일의 '장군과 제왕'이라는 책이 더오른다. 이덕일은 고선지와 이정기를 묶에서 '장군과 제왕'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 1권에서는 고선지를 2권에서는 이정기 일가를 다뤘다. 고선지가 당 현종의 장군으로서 억울한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면, 이정기를 고구려의 후예로서 당 조정과 맞서며 독립왕국을 건설했다. 이덕일의 탁월한 필력이 빛난 책이었다. 그렇다면, 고선지와 이정기는 자신이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했을까? 윤명철의 지적대로 그들은 고구려와 옷을 얼마나 입어보았을까? 한국계 미국인 골퍼가 LPGA에서 우승한 것을 보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열광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를 시키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한국인 2세 3세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고선지에 대해서 씁쓸한 생각이든다. 고선지 보다는 이정기 일가에게서 고구려인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4. 동의하지 못하는 것들

  윤명철이라는 탁월한 역사가의 책을 읽으면서 못내 아쉬운 점이 몇개 발견됐다. 그중에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몇가지를 살펴보자.

  윤명철은 장군총을 동명왕릉이라 주장한다. 장군총은 장수왕릉일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현실에서 윤명철의 주장은 다소 쌩뚱맞았다. 그는 평양천도 후에, 기존 기득권세력이 강력하게 자리잡은 국내성에 장수왕이 자신의 무덤을 만들리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단군신화와 주몽신화의 논리가 담긴 건축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윤명철의 주장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가장 왕벽하고, 태왕릉보다 정교하게 건설된 장군총은 동명왕릉일 수 없다고 본다. 동명왕릉은 태왕릉보다 앞서 건설되었다고 본다면, 태왕릉 보다 건립시기가 늦을 것으로 추청되는 장군총은 동명왕릉일리 없다. 태왕릉 이후에 건설된 큰 규모의 무덤은 장수왕릉일 수밖에 없다. 그가 평양으로 천도하였지만, 이미 살아 있을때, 능을 건설했을 것으로 본다면, 죽어서 국내성에 묻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더욱이 국내성 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그는 국내성에 묻혀야했을 것이다.

  백제와 신라의 무덤에는 벽화가 없을까? 물론 신라에는 벽화가 없다. 그러나 백제의 무덤에는 벽화가 있었다. 공주 송산리 제6호분에는 사신도가 있으며,  능신리 동하총 석실분에는 사신도와 연화와 구름이 그려져있다. 비록 많이 훼손되어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백제와 신라 조차도 무덤안에 그림을 그려 놓지는 않았다.(242쪽)"는 윤명철의 지적을 명백한 오류이다.

   신라와 발해는 서로 대립만했을까? 윤명철은 "비록 유민들의 피눈물 바다에서 발해라는 새나라가 태어났으나, 그들은 신라와는 영원히 적대적인 관계를 가졌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발해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 신라와 발해는 교류를 했다고 적혀있다. 그 대표적인 근거가 '신라도'이다. 발해와 신라 사이에 길이 있었다는 사실은 두나라가 교류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어찌 옥의 티가 없는 책이 있겠는가? 윤명철의 주장에 일부는 동의하지 않고, 일부는 오류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역사관은 나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역사는 기억하는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중국의 동북공정이 맹위를 떨치고 있을때,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 후, 과연 우리는 고구려에 대해서 얼마나 더 알고 있을까? 한때의 관심이 일시에 지나가고 다시 고구려를 잊어버리지 않았는지 걱정이된다. 이러한 시기에 윤명철의 책을 읽는 것은 고구려를 다시 기억하는 길이된다. 기억하자! 잊지 말자! 영화 '암살'에서 영화속 주인공들은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암살'의 주인공들이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했던 애원은 고구려인들이 우리에게 하는 절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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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징조를 읽고 대처하는 45가지 방법 - 누군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
모리 모토사다 지음, 채수환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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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날마다 흉악범죄 뉴스가 TV에서 흘러나온다. 나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안전이 걱정된다. 범죄의 조짐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다면, 큰불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범죄의 징조를 읽고 대처하는 45가지 방법'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읽으면, 범죄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과연 나의 기대에 부흥했을까?

 

1. 범죄자의 표적이 되지 마라!

  범죄자가 먹이감을 선택하는데 7초면 충분하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범죄자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행동과 마음가짐을 조심하라한다. 나도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으며, 시야를 확보하며 리듬감 있게 걸으라한다. 우발적인 범죄도 많지만, 범죄자는 주도면밀히 범죄를 준비한다. 범죄자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나도 범죄자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의 일상에 대비해야겠다.

 

2. 범죄자의 수법은 마술사와 같다.

  마술사는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볼꺼리와 미녀를 무대에 등장시킨다.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마술을 성공시킨다. 범죄자도 마찬가지이다. 삿대질을 한다면, 삿대질하는 손만바라보면, 범죄자가하는 범죄행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시야를 확보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이 있는 집에 돌아가겠다는 신념을 잃지 말아야한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거리를 확보하고, 가족을 생각하자. 나에게는 살아야할 이유가 있으니까....

 

3. 아쉬운점.

  이 책은 나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일으킬 수 있는 범죄자에게 대처하는 방법이 적혀있다. 그러나, 나가 기대했던 사기를 비롯한 금융범죄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주택 침입범죄를 예방하는 방법과 각종 사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이 적혀있지 않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낯선 범죄자를 만났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문답식으로 적혀있어 이해하기 쉬운 책이다. 특히 4지 선다형 객관신 문제를 자녀와 함께 묻고 답하면서 놀이하듯 공부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아주 작고 얇은 책이라 부담도 없다. 그러나, 일본인 모리 모토사다가 일본의 현실에 맞추어 쓰다보니, 2%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현실에 맞는 책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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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 - 무늬와 소재를 통해 살펴보는 색다른 역사 문화탐험
박영수 지음 / 내일아침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수많은 그림과 유물들을 보면서, '왜? 이동물이 여기에 있을까?'라는 물음이 생기곤했다. 그때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문화재 속에 그려진 동물들을 일목 요연하게 설명해 놓은 책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번해왔다. 문화재 속 동물들의 상징을 알 수 있다면, 그들과 대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라는 책을 펼쳐들었다. 그렇다면,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동물에 새겨진 조상의 염원

  연인과 선물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는다. 우리 조상들은 연인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일상의 장식과 그림에 자신의 소망을 담았다. 여성용 경대에를 비롯해서 노리개에 박쥐 무늬를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산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았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일상의 생활용품에서 궁중 장식무늬까지 동물 무늬를 장식했다. 다양한 동물들 하나하나에는 다양한 의미와 소망을 담았다. 섬세한 무늬의 용, 박쥐, 학 등의 동물들의 무늬를 그려 넣은 도공, 화사, 장인들의 노력을 생각하며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소원들을 상상하게 한다.

  조상들은 수많은 동물들을 섬세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그 특징을 파악해서 동물 문양을 세겨넣었다. 특정 동물의 문양을 그려 넣으면 그 동물과 같은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절대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꿩을 그려 넣어 꿩의 용맹함을 닮고 싶었고, 부부금슬 좋은 기러기를 그려 넣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지길 기원했다. 그뿐인가?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가져와, 그와 같은 일이 현실세계에서 다시 반복되길 기원했다. 문자도 '효'에 잉어를 그려 넣어 효자가 많아지길 기원했고,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는 개를 그려 넣으며, 충직해지기를 기원했다. 작은 생활도구에서 웅대한 궁궐건축에 의미와 뜻을 담는 조상의 모습이 개성없는 콘크리트 아파트가 즐비한 현대인의 생활공간과 차이를 드러낸다.

 

2. 동물에 대한 관념 변화

  작년 '미투'운동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때,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구지가에 나오는 거북 머리는 남자의 성기를 뜻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가 부적절한 성적 표현을 수업시간에 했다고 징계를 받았다는 기사가 뉴스를 장식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거북이과 관련된 설명을 유심히 보았다.

 

  "여기에는 남성 우월적 사고가 숨어 있으니 거북 머리 모양의 구지봉은 남성 성기를 상징하며 여섯 아이 모두 남자라는데서 그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71쪽)

 

  징계를 받은 국어교사의 수업내용은 정확히 근거가 있는 내용이었다. 사실 조상이 남긴 유물 유적 중에는 '성'과 관련 있는 상징들이 많이 있다. 기자석 처럼 남자의 성기를 모델로 돌을 쪼아 많들어 놓고, 다산을 기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안양의 삼막사에는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다. 남근석과 여근석을 만지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를 외설로 보아야할까? 고려 가요를 남녀 상렬지사로 내몰고, 고려가요 대다수를 없애버린 조선시대 성리학자의 우매함을 우리는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조상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것이 성추행일 수있을까? 사회는 개방되고, 대중문화 속에서 성적 표현이 지나칠 정도로 개방화된 현대사회에서, 성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박쥐!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드라큘라백작을 떠올리며 몸서리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의 생각은 달랐다. 오복과 장수, 다산의 상징물이 박쥐였다. 추한 동물이 아니라, 복을 가져다주는 영물로 받아들여졌기에 신선도에도 박쥐가 등장한다. 신선로 손잡이와 여성용 경대에 박쥐가 장식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서운 동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기 싫은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 박영수는 '서양에서 들어온 이솝 우화와 드라큘라의 영향으로 박쥐를 오복의 상징보다는 불길한 동물로 여기는 까닭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리고는 '우리 옛 문화가 점점 더 멀어지는 세상이 안타깝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서양의 패권은 단순히 정치와 경제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관념에도 영향을 미치며 서구의 관념을 우리의 머릿속에 이식했다. 용에 대한 이미지 마져 바꿔 놓고 있지 않은가? 공룡을 닮은 서양의 용이 뱀처럼 생긴 우리의 용을 밀어 냈다. 어린이들이 많이보는 '뽀로로'의 드라곤은 더이상 뱀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서구의 입맛에 맞춰 만들어진 드라곤의 모습을 보면서 조상의 생각을 베어내고 서구의 관념을 이식하는 현실이 씁쓸해진다.

 

3. 동의하지 않아요.

  동물의 특성과 동물이름의 어원까지 섬세하게 조사해서 읽기 쉽게 서술한 저자 박영수의 노력에 감탄한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듯이, 박영수의 글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 몇가지를 살펴보자.

  삼족오는 동이족의 것일까? 저자 김영수는 삼족오를 동이족의 것, 용은 중국의 것이라 규정한다. 삼족오는 봉황의 시초가 되었는데, 봉황이 용보다 낮은 단계의 영물로 인식한 이유는 '동이족이 중국의 한족에게 밀리면서 마치 용보다 낮은 단계의 영물인 것 처럼 여겨진 것'이라 진단한다. 삼족오는 신석기 시대 중국의 양사오 문화, 한국의 고구려 고분 벽화, 일본의 건국 신화 등 동아시아 고대 문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상의 새이다. 한나라 벽화에도 등장하는 삼족오를 동이족의 것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저자가 삼족오를 동이족의 것으로 단정한 근거가 궁금하다.

  몇해전에 '천마도'를 '기린도'로 바꿔 불러야한다는 주장이 학계에 발표되었다. '천마도' 속의 천마를 적외선 촬영해서 자세히보면, 천마의 머리에 뿔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유사한 주장을 이 책에 소개된 '신라 도제 기마 인물상' 설명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말 이마의 양쪽 귀 사이에 뿔이 튀어나와 있다. 말은 원래 뿔 없는 동물이므로, 이 외뿔은 상상 동물인 해치의 상징을 요점만 따운 셈이다."(91쪽)

 

  저자 박영수의 주장데로 '말 이마의 양쪽 귀 사이'의 튀어나온 것은 뿔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KBS 역사 스페셜에서 천마도 속 동물이 말인지 기린인지를 다룬적이 있다. 북방 유목민족은 말머리의 털을 묶는 습성이 있다. 천마도 속의 뿔로 보이는 것은 뿔이 아니라 말의 털을 묶은 것이다. 이는 '신라 도제 기마 인물상' 속의 말에게도 적용된다. 물을 다루는 북방 유목민족의 습성을 이해한다면 '뿔'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청자 상감 운학문 술병'이라는 표현도 동의할 수 없는 표현이다. 정식명칭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靑磁象嵌雲鶴文梅甁)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한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선생이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던가?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과 유물이라 하더라도 그 의미를 모른다면, 아무 감흥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를 읽고, 그림 속과 유물 속의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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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의 언어 - 촌철살인 이낙연에게 내공을 묻다
유종민 지음 / 타래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국회 대정부질문이 진행되고 나서 이낙연 총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야당국회의원들의 예의 없으면서도 조롱섞인 질문을 유연한 화술로 빗겨가간다. 심지어는 할말을 잃은 야당 국회의원들이 질문을 하다말고 "총리들어가세요."라고 말하며 항복한다. 이낙연! 그의 화술을 배우고 싶어졌다. 그의 촌철살인 내공을 배우고 싶었다. 나의 눈에 '총리의 언어'가 드러왔다. 이 책을 읽으면 이낙연 총리의 탁월한 화술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이 책은 이낙연 총리의 화술을 온전히 알려줄 수 있을까?

 

1. 중언부언은 이제 그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거슬렸던 것은 '중언부언'이었다. 읽었던 이야기를 또 읽어야한다는 것은 술주정꾼의 말을 듣는 것과 같았다. 술취한 아버지께서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자신의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도 싫었다. 아버지의 술주정은 언제 끝날지 몰랐다. 어린시절, 술마시는 아버지가 싫었다. 농촌의 어른들은 너무도 술을 좋아했다. 힘든 농삿일을 술로 풀어버리는 모습이 과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총리의 언어'에는 어렸을 때, 술주정을 들어야했던 나의 괴로움을 다시 떠올릴 정도로 했던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었다. 그중 몇가지를 소개해보자. 이낙연 총리의 아들은 젊어서 뇌수술을 받아야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천주교 세례를 받는다. 이 이야기는 한번으로 족하다. 그런데 이것이 두번 이상 반복되어 서술되었다. 이낙연의 좌우명인 '근청원경(近聽遠見)'도 책에서 여러번 반복되었다. 열린 우리당 입당을 하지 않고 민주당에 남은 이유도 어머니의 전화 때문이라는 일화도 여러차례 반복되었다. 전남도지사 시절 별명이 '이주사'인 것도 만찬가지이다. '이낙연의 낮은 목소리', '농업은 죽지 않는다.'라는 책이 대변인실, 지방의원들에게 참고자료로 활용된다는 내용도 중복, 사복되고 있다. 이밖에도 셀수 없이 많은 일화들이 반복된다. 일화가 반복될 수록, 이 책에서 느껴지는 술주정꾼의 느낌도 더해졌다.

  단순히 중복, 삼복, 그 이상의 이야기가 반복된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라는 속담이 어느나라 것인지 아는가? 79쪽에는 중국 속담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121쪽에는 일본속담으로 적혀있다. 같은 저자가 쓴 책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는 계속 고사하다 2000년 16WW대 3선땐 3개가 됐고 4선땐 4개가 됐다."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이부분을 읽으면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인터넷 글쓰기도 아닌데 독자가 알아볼 수 없는 글들을 아무런 설명없이 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부족한 점들이 책속서 반복될까?  이낙연 총리의 화술이 인끼를 얻자, 이를 빨리 책으로 써야한다는 조바심이 만들어낸 촌극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복된 부분을 삭제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정제해서 보다 맛깔나는 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2. 인간 이낙연을 만나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예순을 넘기시면서부터 음식이 짜졌습니다. 어떤 때는 쓴맛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어머니께서도 곧 아시게 됐습니다. 한번은 저희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음식이 내가 먹어봐도 맛이 이상하다. 너희들도 멋없으면 먹지 마라.' 그 말슴을 하시는 순간의 어머니 얼굴은, 제가 본 어머니 얼굴 가운데서 가자 ㅇ외로운 얼굴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추억>, '큰아들 낙연이의 추억'중에서-

 

  이낙연이 쓴 '어머니의 추억'중 일부분은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나이든 노모를 생각하는 이낙연의 인간적 애틋함이 느껴졌다. 곧이어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몇일전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으며, 김치가 너무 짜다는 사실에 놀랐다. 고혈압이 있으신 어머니인데, 음식이 짜지고 있다. 건강진단에 혈압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소견이 적혀있었다. 음식이 짜진다는 것은, 혀의 '미뢰'라는 음식맛을 느끼는 세포가 죽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짠맛을 느끼지 못하니, 짠맛을 느끼기 위해서 소금을 더 넣을 수밖에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지 않았던가! '부모의 나이는 알지 않으면 아니된다. 한편으로는 (오래 살아계신 것을)기뻐하고, 한편으로는 (부모가 나이들었음을) 두려워해야한다 (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세월이 덧없이 지나감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3. 이낙연은 승천할 수 있을까?

  TV여론조사에서 이낙연 총리는 여권의 강력한 대선주자로 자리메김을 하고 있다. 이 책에 나와있는 정보를 근거로 추리해보자. 

  이낙연 총리는 '현장형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리더로서, 전남 도지사시절 그의 별명이 '이주사'였다. 주사는 6급 공무원이다. 그정도로 열심히 도전에 전념하고, 현장을 속속들이 찾아갔다. '내부자'라는 케이블 프로에서는 '밑에있는 사람들은 힘들어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휴일없이 일을 했다. 유능하면서 부지러한 그는 차기 대권 주자로서 매력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프로이센군의 격언이 생각나다. '유능하면서 게으른 사람은 탁월한 지도자 이다. 유능하면서  부지런한사람은 참모로 제격이다. 무능하면서 게으른 사람은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다. 무능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은 조직에 위해를 가하는 사람이다. 반드시 제거해야한다.' 이낙연 총리는 이중에서 탁월한 참모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잘 보좌하면서 국정의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그의 부지런하면서도 꼼꼼한 문재인 대통령이 놓치기 쉬운 일들을 잘챙기며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유능한 참모일뿐 유능한 '대통령'은 될 수 없을까? 그것은 그의 손이 달렸다. 그가 새로운 대권후보로 진화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부하를 믿고 부하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기다려주는 유능하면서도 게으른 리더의 모습을 갖춘다면 그는 여의주를 얻어 승천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을 고수한다면, 그는 유능한 참모일 뿐이다.

  이낙연 총리가 유능한 '대통령'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 책 곳곳에 보인다. 몇가지 예를 살펴보자. 이 책에서 '섞어번개팅'이 여러 차례 소개되어 있다. 부처간 벽을 허물기 위해서 남녀, 부서, 지위고하를 뛰어 넘어 치킨집에서 만나는 그의 모습에서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의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았다. 학문이 융합되고, 지식이 새롭게 창조되는 시대에 부처간의 칸막이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도전을 감당할 수 없다. 이 벾을 허무는 일들을 그는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전남도지사 마지막날! 그는 팽목항을 방문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서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주면서 "총리가 돼도 이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을테니 언제든 전화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참다운 리더는 권력을 누리기 보다는 자신에게 권력을 준, 시민을 섬기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낙연은 그것을 갖췄다. 물론, 이낙연이 총리가 된 후, 유가족들이 이낙연 총리에게 전화를 했는지, 많약 했다면 이낙연 총리가 어떻게 응대했는지가 궁금하다.

 

 

  책을 읽으며, 중언부언하는 내용에 심한 불편함을 느꼈다. 리더로서의 이낙연의 화술의 비법을 얻고자 했던 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결어'를 읽으면서 저자 유종민에게 깜짝 놀랐다. 저자는 이낙연 총리의 '100원 택시' 정책을 이어받아 '100원 특강'을 하고자 했다. 최소인원 50명 이상일때 언제든지 불러주면 '총리의 언어'를 주제로 강의를 하겠단다. 그것도 1인당 100원이 아니라, 통틀어 100원에 강의를 한다고 한다.!! 이낙연 총리의 인품과 화술에 감화된 저자 유종민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을 한권내서 책의 인쇄보다는 강의료에 더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에서 유종민 저자의 이러한 포부는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이 중언 부언된 부분을 깔끔히 덜어내고 새롭게 출판된다면,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주제로 책을 읽고, 저자 유종민의 강의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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