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만나는 세계명언
최용훈 지음 / 종합출판(EnG)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논어를 영어로 무어라 번역할까? '대화'라고 번역하지 않을까? 라는 추측을 했던 나는 'The Analect of Confucius'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공자의 명언'!! 동양을 대표하는 '논어'는 사실 공자의 명언을 모아 놓은 모음집이었다. 또한 노자의 '도덕경'도 명언을 묶어 놓은 책이다. 그렇다면 서양의 명언을 묶어 놓은 책이 있다면, 이 책 또한 고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어 명언을 읽기로 결심했다. 인터넷 서점을 써핑하면서 가장 좋은 영어 명언집을 찾으려 노력했다. 결국 '영어로 만나는 세계 명언'을 읽기 시작했다.

 

1, 탁월한 구성

  영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영어가 그릇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영어라는 그릇에 담기 주옥같은 명언들이 한가득 담겨있다. 단순히 영어명언들을 소개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명언의 유래를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영어공부와 인문학적 소양을 같이 쌓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러나, 부록으로 제시한 '행복한 삶을 위한 명언'은 단순히 명언을 나열하는데 멈추었다. 책값이 좀더 지출되더라도, 책의 부피가 조금 커지더라도 부록으로 제시한 명언에도 그 명언의 유래와 의미를 되새김할 수 있는 서술이 이어졌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2. 오늘을 되새긴다.

  논어를 읽으며 무릎을 탁치는 경험을 이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경험했다. 셰익스피어가 '헨리4세'에서 'The better part of valour is discretion'이라는 말을 했다. 용기의 대부분은 조심성이라는 말이다. 알렉산더 포프는 'Fools rush in where angels fear to tread'라고 말했다. 천사들이 발 들여 놓기를 꺼려하는 곳으로 바보들은 뛰어든다.는 뜻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에 뛰어드는 가미가제 특공대를 보면서 공감하다고 감탄하는가? 셰익스피어와 알렉산더 포프는 이를 진정한 용기로 보지 않고 있다. 만용은 용기가 아니다. 진정한 용기있는 자는 순간의 분노를 억누르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병법 '36계'에도 36번째 계책이 줄행랑이 아니겠는가!

  스페인계 미국 사상가인 조지 산타야나는 'The young man who has not wept is a savage, and the old man who will not laugh is a fool.'이라 말했다. 울어본 일이 없는 젊은이는 야민인이며, 웃으려 하지 않는 노인은 어리석은 자다.라는 말이다. 이 명언을 읽는 순간, 오늘날의 노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젊어서는 산업화시대를 몸으로 이겨내며 열심히 앞만보고 살아왔다. 그러나 시대는 독재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변했다. 그런데 P집회에 나가는 노인들의 머릿속은 독재시대, 아니 전제군주정의 시대에 머물러있다. 노인이 되었는데도 여유롭지 않고 503호에 목메여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진정 어리석은 자들인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2030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었다. 그런데 비트코인 열풍을 문재인 정권이 잠재우자, 비트코인 열풍에서 빠나오기 싫어하는 일부 젊은 세대들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웃지 못할 행태를 보였다. 구약선경 '잠언'에는 'Go to the ant, thou sluggard; consider her ways, and be wise.'라는 말이 있다. '너,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라는 이 말은 비트코인 열풍에서 벗어나길 거부하며 아직도 현실로 나오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부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비트코인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다. 비트코인이라는 거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자신이 파멸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냐고.... 루신이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침탈이라는 현실을 바라보며, 아직도 잠에 취해있는 중국인들을 위해서 '아큐 정전'을 썼다. 혹시 비트코인 거품에 취해있는 당신이 아큐는 아닌가? 루신은 고민한다. 철로된 방에 자신만이 깨어있다. 산소는 줄어드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모르고 잠에 취해있다. 이들을 깨워야할까? 어자피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이대로 행복하게(?) 죽도록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좋지 않은가? 당신이라면 어떤 답을 내놓겠는가? 깨워야한다.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다할지라고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치료는 시작된다. 병든 비트코인 세대로 치료하기 위해서 문재인 정권은 강력한 칼을 빼들었다. 환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

  오늘도 인문계 고등학교의 불빛이 운동장을 비춘다. 교실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을 보면서, 자유를 억압당하고 닭장에서 자라야하는 양계장의 닭들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앨빈토플러가 한국은 미래사회에 유용성이 없는 과거의 지식을 배우는데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어느 랍비의 격언에 'Don't limit a child to your own learning, for he was born in another time.'라는 말이 있다. '아이에게 자신이 배운 것만 가르치려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귀에 부던히도 맴돌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공포와 기대를 가지고 관련 서적을 뒤적였다. 그러나 우리 교육현장은 아직도 4차산업혁명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미래에 대한 대비를 잘해야하는 교육현장이, 가장 완고하게 일제식의 수업을 하며, 야간자율학습을 반강제로 시키고 있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시대에 태어나 미래사회를 살아가야하는 학생에게 우리는 기성세대가 배운 것만을 가르치려한다. 우리 교육의 화두는 과연 우리 교육이 미래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어야함을 알아야할 것이다.

 

3. 아쉬운점.

  명언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은 이책의 강점이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는법! 이책에도 옥에 티가 있다. '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가? 손자병법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그러나 '손자병법'에는 '백전백승'이라는 구절은 없다. 단지 '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구절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잘알고 우리에 대해서 잘안다 한들 세계 초강대국 미국가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있겠는가? 적을 알고 나를 안다면 위태롭지 않을 뿐이다. 즉, 초강대국 미국을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아,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책에서는  동야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백전불태'라 적지 않고, '백전백승'이라적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손자병법'을 쓴 사람은 '손빈'이 아니다. 손빈은 '손빈병법'을 저술했다. '손자병법'을 저술한 사람은 손빈의 할아버지인 '손무'이다. 영문학에는 조예가 깊은 저자가 동양고전에 대해서는 실수를 연발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영어로 옮기면 'Seeing is believeing'이다. 한나라 선제가 흉노를 토벌할 계책을 묻자, 조충국은 "백번 듣는 거이 한번 보는 것만 같이 못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적지에 잠입해서 계책을 모색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세운 전략을 반란을 진압시켰다.'라고 적고 있다. 다분이 중국중심의 서술이다. 흉노와 강족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조국충이 흉노와 강족의 침임을 물리친 것일 뿐이다. 온 천하가 중국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려야한다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책을 쓰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중국의 서적을 읽을 때, 조심해야하는 '중국중심의'사고관이라는 덧에 저자가 걸린 것은 못내 씁쓸하다.

  Never too late to mend.(잘못을 고치는 것은 뒤늦은 것이 아니다.) When youhave faults, do not fear to abandon them(잘못을 고치는 데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은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동양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동양고전의 원문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크나큰 아쉬움이다. 이들 명언들이 논어의 어느 구절인지 안내해주고, 한문 원문을 적어주었더라면 나에게는 크나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배려를 해주지 않았다.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중국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라 한다. 그러나 중국의 고시중에서 누구의 시이며, 그 원문이 무엇인지는 소개되어 있지 않다. 영어 속담으로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동양의 시라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지만, 저자의 불친절한 설명에 아쉬움이 켜졌다.

 All men know the utility of useful things; but they do not know the utility of futility.(세상 사람들은 모두 유용한 것의 쓰임은 알면서 무용한 것의 쓰임은 알지 못한다.)라는 말은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쓸모없는 나무가 살아남아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쓸모있는 나무들은 목재로 쓰기 위해서 베어가기에 쓸모없는 나무만 남게 되고, 그 쓸모 없음이 쓸모가 되어 나무가 살아 남게 되었다. 장자가 친구의 집에 갔더니, 친구가 집에서 기르는 새를 잡아 친구를 대접하려 했다. 하인이 어느 새를 잡을지를 물었다. 친구는 울지 못하는 새를 잡으라했다. 쓸모없음으로 인해서 울지 못하는 새는 일찍 죽었고, 쓸모 있는 새, 즉 울수 있는 새는 살아남있다. 제자가 장자는 쓸모있음과 쓸모 없음 중에서 어디에 있으려하는지 묻자, 자신은 그 가운데에 있겠다고 대답했다. 이것이 장자의 유명한 쓸모없음의 쓸모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장자 철학의 깊이있는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무가 집을 짓거나 배를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을 알고 기름은 연소시키는 것에 쓴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나무와 기름이 유용한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 구실도 못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들도 많다.'라고 피상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탁월한 영문학 교수이지만, 동양고전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4. 이의 있습니다!!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말은 마태복음에 있는 말이고, Life is short and Art is long.(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한말이다. Art는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의미로 처음 쓰였다. 무심코 쓰던 말들의 뿌리를 알아가는 여행은 너무도 즐겁다. 그러나 이러한 명언을 읽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삐딱한 생각을 하곤한다. 마태복음에 'Love your enemies, and bless them that curse you.(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라는 말이 있다. 과연 적을 사랑하면 정의는 지켜질까? 적을 사랑하라고 적폐세력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나의 왼쪽 뺨을 내밀면 이 사회의 정의는 바로세워질 수 있을까? 진정으로 참회하는 적을, 진정으로 참회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사랑하고 용서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저들은 참회할 마음도 없으며, 다시 권력을 잡으면 엄청난 정치보복을 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로마 황제에게 탄압 받던 시기의 초기 기독교가 용서 밖에는 달리 로마군에 대항할 무기가 없었던 현실 속에서 그들이 택한 가장 탁월한 무기가 사랑과 용서가 아니었을까? 그 시대에 유용한 무기를 시간이 지난 지금에 아무런 고려 없이 사용한다면,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줄 것이다.

  An empty bag cannot stand upright.(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뜻이라한다. 영문학에 대가이신 저자의 말이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삐딱한 생각은 이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단순히 밥을 먹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식이나 도덕적 심성이 차있지 않으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나름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If it be true that good wine needs no bush, 'tis true that a good play needs no epilogue.(좋은 술에 간판이 필요 없듯이, 훌륭한 연극에는 에필로그가 필요 없다.'라는 셰익스피어의 이 말은, 놀랍게도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대사가 나오는 '뜻대로 하세요'라는 연극은 좋은 연극이 아니란 말인가?

 

5. 동서양 명언 비교

  이 책을 읽다보면, 동서양의 명언을 넘나들면서 때로는 너무도 흡사한 말이 동서양에 존재하고, 때로는 서로 상반된 명언이 동서양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란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Do to others as you would be done by.(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반면에 공자는 What you do not want done to yourself, do not do to others.(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라는 말을 했다. 어느 문장이 마음에 와닿는가? 개인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공자의 말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여러가지 일로 싸웠다. 그중에 하나가 나의 옷차림에 아내가 간섭한 일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옷차림을 나에게 강요하는 모습이 너무도 부당했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호랑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를 말에게 주며, 말 너는 왜? 내가 준 음식을 먹지 않냐며 화내는 것과 같은 경우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기 보다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 나의 무의식적 폭력을 줄이는 방법은 아닐까?

  There are two kinds of failure: those who thought and never did, and those who did and never thought.(두 종류의 실패하는 사람이 있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자와 실천은 하되 생각하지 않는자.) 피터가 한 이 말은, 논어 위정편에 나와 있는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과 너무도 흡사하다. 생각과 실천을 강조한 피터와 생각과 배움을 강조한 공자는 표현 구조는 너무도 유사하다. 피터가 생각과 실천의 조화를 강조한 반면, 공자는 배움과 생각을 강조했다. 피터와 공자의 말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격언이다. 배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배우지만, 이러한 배움의 과정은 실천으로 이어져야한다. 또한 실천을 통해서 배움이 다시 일어나야한다. 끊임 없는 배움과 실천, 생각과 배움의 순환구조가 계속되어야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성서 명언에 나오는 고어들이다. thy(너의), thou(you), shalt(이리라)라는 고어들은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1년여 동안 하루에 한문장 혹은, 일주일에 한문장씩 책을 읽고, 썼다. 그러면서 나도 한껏 성숙했다. 저자 최용훈이 '영어로 만나는 세계 명언'의 개정 증보판을 내주길 바란다. 논어가 공자의 어록을 모아 놓은 것이 듯이, 최용훈의 '영어로 만나는 세계 명언'이라는 책은 21세기에 또다른 고전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군과 제왕 2 - 중원의 고구려, 제왕 이정기
이덕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이덕일의 주요 글쓰기 소재는 웅장한 한민족과 비운의 죽음을 이룬자들에 대한 장송곡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비통함과 웅대함을 느낄 수 있다. 그가 기획한 '장군과 제왕 1,2'도 이러한 그의 글쓰기 소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구려계 당나라 사람으로 살았던 고선지 장군의 비운의 죽음을 소재로 1편을 썼으며, 그에 이어 고구려계 당나라 사람이기를 거부하며, 당당히 고구려의 부활을 꿈꿨던 이정기의 치청왕국을 소재로 2권을 썼다. 1권에 비해서 2권에서는 이정기와 그의 치청왕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 이정기 없는 이정기 평전의 비극을 모면하고, 광활한 중국 대륙을 휘달렸던 고구려후예들의 웅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 이정기는 진정 고구려인이었을까?

  이덕일은 '장국과 제왕2'의 곳곳에서 이정기를 고구려를 부활시키려는 웅대한 의지가 있었던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고선지가 당나라 사람이 되려 했으며, 당나라 현종의 부당한 죽음의 명령도 달게 받는 당나라의 충신으로 그려진 반면, 이정기는 장군의 길을 걷지 않고 제왕의 길을 걷는다. 웅대한 고구려의 부활을 꿈꾸는 이정기와 그를 따르는 20만 여명의 고구려의 후예들은 치청제국을 세운다. 여기에서 더 나가서, 발해의 피지배층이 말갈족이라면, 치청제국의 피지배층은 한족이라고 말한다. 치청제국과 발해의 공통점은 지배층이 고구려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과연 이정기는 스스로를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했을까? 여러대에 걸치면서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재미교포 2세 골프선수 중에서도 스스로를 미국인으로 생각하는 행동과 말을해서 신문지상에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는데, 더구나 나라마져 망해버린 고구려의 유민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었을까? 이정기의 아들 이납은 나라이름을 '고구려'가 아닌, '대제'로 정하지 않았던가? 이정기 스스로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힌 글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스스로를 고구려인으로 생각했는지, 아니면 고구려계 당나라 사람으로 생각했는지는 전적으로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가 고구려인으로서의 뜨거운 피를 느끼고 있었으리라 믿게 된다.

 

2. 역사속에서 배우는 교훈

  역사를 배우다 보면,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이 책 또한 나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첫번째 교훈은 외세를 끌어들이면 그 댓가를 톡톡히 보게 된다는 점이다. 당나라 숙종은 안녹산과 사사명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서 위구르군을 끌어들인다. 그 댓가로 위구르군이 철저히 장안을 약탈하도록 허용한다. 외세를 끌어들인 댓가를 무능한 지배층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당의 백성들이 겪어야했다. 임진왜란때, 명나라를 끌어들였다가, 명군의 횡포에 조선 백성이 약탈과 살육을 당해야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역사로 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부의 일에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인다면, 참혹한 댓가가 뒤따른다는 점을 지금의 수구세력들을 알아야할 것이다. P집회에 나갈때마다 성조기도 모자라서 이스라엘 국기까지 가지고 나가는 불쌍한 수구들은 언제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까?

  일을 이루려면 속도전에서 승리해야한다. 머리에 먹물을 들인 선비들하고는 일을 같이할 수 없다고 유응부가 말했던가?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죽음을 맞이해야했던 유응부의 이 한탄스러운 말은 일을 결정하고 그 일을 이루는데 얼마나 속도가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당나라와 이정기 왕국과의 대결에서 당나라는 내부의 반란으로 스스로 몰락할 수 있었다. 주차가 당나라 덕종에게 반기를 들어 대진을 건국했다. 수도를 버리고 도망치는 덕종을 재빠르게 추격했다면 당나라는 멸망하고, 대진의 생명도 연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에 취해서 때를 놓치고, 결국 반격을 허용하게 된다. 마치 안녹산이 당나라의 수도를 목전에 두고, 눈병으로 인해서 당현종 추격 명령을 제대로 내리지 못해서, 아들의 손에 죽는 비운을 당한 것도 어쩌면 눈병으로 인해서 속도에서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명이 주어졌을때, 이를 실행해자. 천명의 때를 잃어버린다면, 그화가 다시 자신에게로 향한다고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다.

 

3. 아쉬운점.

  이덕일은 다작을하고 있다. 그의 역사 서술에서 너무도 뻔한 그의 스토리 전개가 읽혀져서 박진감보다는 식상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그의 다작이 불러온 역효과일 것이다. 이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이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한국사보다 일천한 나에게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다. 그중에서 너무도 많은 인물들이 이를 힘들게 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역사를, 그것도 당나라 현종을 중심으로한 당나라 덕종까지의 역사를 이렇게 세세하게 알게 된 점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팟캐스트 '역사를 찾아서'에서 이정기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때문에 이정기에 대해서 왼만큼은 잘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이정기에 대한 지식은 얼마나 일천한 것이었는지를 새삼깨달았다. 망국의 한을 안은 고구려의 후예들이 겪어야 했을 비애를 생각하며 이 책을 덮는다. 한사람은 장군의 길을 걸으면서 당나라인으로 인정받으려 했다. 그리고는 비참한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서 자신이 당나라인임을 인정받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사람은 당나라에 굽신거리며 살기를 거부했다. 당당히 독립왕국을 건설하여 제왕의 길을 걸으려했다. 그리고 4대 6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당당히 하나의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정기 왕국은 멸망의 길을 걷는다. 그와함께 고구려 후예의 자취도 사라진다. 장군의 길을 걸었던 고선지와 제왕의 길을 걸었던 이정기의 역사는 해외교포들이 걸어야할 길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군과 제왕 1 - 대륙의 별, 장군 고선지
이덕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덕일'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탁월한 필력'이 떠오른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 조차도 그의 탁월한 글재주는 인정한다. 기자들이 이덕일과 인터뷰를하면서도 이덕일에게 좋은 글을 쓰는 비결을 묻기도 한다. 그만큼 이덕일의 탁월한 글재주는 역사의 대중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새우깡에 소주를 먹을 돈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역사를 공부했다는 이덕일은 일약 스타 역사 작가가 되었다. 나도 그의 글재주를 배우고 싶다. 내가 이덕일에 비해서 못한 것이 무엇일까? 역사에 대한 열정? 역사에 대한 지식? 여러가지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덕일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글재주가 부족하다는 점을 절감한다. 그의 책을 20여권을 탐독하며 그의 글재주를 배우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덕일! 그의 글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탁월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책!

  '장군과 제왕'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별로 쌕시해보이지 않는 제목이라는 생각을 했다. '칼날위의 역사'와 같은 제목 도발적인 제목에 비해서 대중을 끌어당기는 힘이 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프롤로그를 읽으며 뒤집혀 버렸다. 포롤로그에서 고선지 장군은 당제국의 장군으로 삶을 마칠지, 당을 버리고 제왕이 되어, 잃어버린 고구려부흥운동의 길을 떠나는 제왕의 길을 갈지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프롤로그는 마무리되고 '1장 당현종의 고구려인 동지 왕모중'이야기로 넘어간다. 얼마나 극적 구성인가! 이 프롤로그 하나로 왜? 제목이 '장군과 제왕'이어야하는지! 왜? 고선지 장군과 이정기 장군의 이야기가 한데 묶여 두권으로 출간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프롤로그에서 느껴지는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문체와 현지를 답사하고 관련 사진을 첨부하여 현장감을 높였다. 이 책의 가장 강렬한 문장들로 프롤로그가 꽉채워져 있다. 이덕일은 영화를 만들듯이 역사책을 구성하고 글을 쓰고 있다.

  이덕일의 탁월한 필력은 책 구석구석에서 돋보였다. 적절히 사료를 제시하여 역사적 사실성을 높이고, 적절한 역사적 상상력을 덧입혔다. 역사적 상상력과 사료 제시의 균형을 절묘하게 잡았다. 덕욱이 탄탄한 현장 답사를 통해서 생동감 있게 사건을 묘사했다. 특히 고선지 장군이 사막의 모래 돌풍을 뚫고 진군하는 모습을 마치 당시 현장을 직접 보는듯했다. 이덕일이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책을 서술하면서 그의 서술에 커다른 사실성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이덕일이 역사적 인물의 행동이유, 당시적 정치적 역학구도 파악이 탁월하다는 점도 있다. 측천무후, 당현종, 왕모중, 양국충, 이림보 등의 인물들의 역학구도를 내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책에 녹여낸 이덕일의 필력은 과히 역사가가 가질 수 있는 통찰력에 극치를 보는 듯했다.

  이덕일은 한장의 호흡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다음장에 전개될 이야기를 암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도록한다. 나도 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게 된다.

 

2. 고선지 없는 고선지 평전

  이 책의 주인공은 고선지 장군이다. 이책을 고선지 평전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고선지 장군의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온 부분은 프롤로그와 4장 '고선지시대가 열리다.',  6장 '장군 고선지의 길'이다. 시작과 끝부분을 제외하고는 고선지 장군 보다는 당나라의 역사가 상세히 펼쳐져 있다. 당나라의 역사를 드라마틱한 소재를 중심으로 엮으며 고선지가 활약하던 시기 이전과 당시대의 중국과 비단길 주변의 광대한 나라에 대한 소개로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고선지 평전이 아니라, 당나라 현종의 역사라 해도 별 무리가 없는 책이다. 닭튀김에 닭살은 없고, 밀가루만 듬뿍 입혀 튀긴 '닭튀김' 같았다. 고선지의 등장을 갈망하면서 이책을 읽으며 지루함을 여러차례 느꼈다.

 

3. 3천 궁녀는 중국에 있었다.!!

  3천 궁녀!! 라면 누가 떠오르는가? 당연히 '백제 의자왕'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아무리 찾아봐도 3천 궁녀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백제 멸망의 원인을 마지막왕인 의자왕에게 떠넘겨, 후세왕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3천 궁녀가 있었다. 당현종은 황후 외에 귀비, 숙비, 덕비, 협비의 4부인을 둘 수 있었고, 소의, 소용, 소원, 수의 등 9명의 빈이 있엇다. 여기에 첩여, 미인, 재인이 각각 9명, 그 아래 보림, 어녀, 채녀가 각각 27명이었다. 이렇게 법적으로 규정된 121명의 후궁이외에, 통칭 3천명이라 불리던 궁녀들이 있엇다. 그리고 30황자와 29명의 공주를 생산했으며, 당황제 30명 중에서 가장 많은 생산력을 자랑했다. 역시 중국은 스케일이 크다. 우리의 기준으로 분다면, 왕조가 항상 망해야하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은 그정도는 애교였다.

  딸같은 어머니를 보았는가? 중국에는 딸같은 어머니를 둔 경우가 존재한다. 안녹산은 양귀비를 어머니로 모셨다. 양귀비가 29살, 안녹산이 45살!! 딸 같은 어머니를 둔 것이다. 심지어는 양귀비가 아이(안녹산)을 목욕시키는 놀이를 했으며, 당현종은 이를 보고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권력을 위해서는 자신의 자존심도 버리는 모습을 보며 권력이란 것이 그리도 좋은가?라는 반문을 해본다. 그렇게 안녹산이 지키려했던 권력도 양국충에 의해서 허물어져 버리고, 그는 반란을 일으킨다. 권력은 손으로 움켜쥔 바닷물과 같은 것이다. 쥐려할 수록,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며, 더 큰 권력을 쥐려할 수록 더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조차 잃어버린다.

 

  이덕일의 여타 책에 비해서 그의 문장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러나 고선지 없는 고선지 평전의 한계가 너무도 켰기에 이 책에서 느껴지는 실망감도 너무도 켰다. 고선지 장군에 관한 사료가 너무도 적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해보려하지만, 밀려드는 실망감은 어쩔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개의 한국 - 개정판
돈 오버도퍼 & 로버트 칼린 지음, 이종길 외 옮김 / 길산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두개의 한국'인가? '두개의 한국'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함의하고 있을까?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을 이루는 흘려 넘겨서는 안된다.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은 '하나의 한국'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만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교전략을 구사하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은 분단을 영구화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분단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강대국의 시각을 이 제목에서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팟캐스트 '일당백'에서 정박이 이책을 소개했을 때 부터 이책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워싱턴포스트지기자로 25년을 근무한 돈 오버도퍼와 미CIA 동아시아 담당 국장이나 대북협상 수석 고문을 지낸 로버트 칼린이 썼다는 것 자체가 이책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무려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볼륨과 태극기와 인공기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놓은 표지 또한 강렬했다. 분단된 '두개의 한국'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남북한의 대립을 중심축에 놓고 분단현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피해국 한국을 '두개의 한국'으로 만드는데 일정한 책임이 있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한국의 현대사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1. 외국인이라는 한계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외국인의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당연시되는 것들에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미쳐 보지 못했던 진실을 그들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이라는 한계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이 책에서도 외국인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 NBC 해설자 조슈아 쿠퍼 레이모가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해설을 하면서 일본이 입장하자 모든 한국인들은 식민지배에도 일본을 본받을 나라로 여긴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것은 외국인이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예이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시각은, 과거 필리핀을 식민지배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호감이 갈 수도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 '돈 오버도퍼'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그의 입장을 읽을 수 있는 문구는 없다. 그러나, 일본이 과거 한국에 했었던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사과했으며, 8억 상당의 무상원조를 제공했다고 오류를 적고 있다. 우선, 액수부터 오류이다. 일본이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장기저리 정부차관 및 3억 달러 이상의 상업차관을 공여하기로 합의했다. 무상원조는 8억이 아니라, 3억달러에 불과하며, 3~4년의 식민지배를 받은 다른 식민피해국가들이 3~4억달러의 배상금을 받은 반면, 우리는 36년의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억달러의 무상자금을 '독립축하금'의 명목으로 받았다. 일제는 식민지배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으며,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지금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는 망발을 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서 돈 오버도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돈 오버도퍼의 잘못된 역사관은 한일관계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 우리 고대사에 대한 지식은 오류 그자체이다. 그는 한반도에 2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구석기 시대가 70만년전부서 시작되었음을 떠올린다면, 실소가 저절로 나온다. 그뿐이니다. BC4세기경 중국과 경계를 이루는 한반도 북부에서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탄생했다고 적고 있는데, 고조선의 존재는 중국의 '관자'라는 책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성립을 AD300년 으로 적고 있으나, 신라가 BC57년, 고구려가 BC 37년, 백제가 BC18년에 건국되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오류들이다. 외국인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에 대한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역사를 공부하길 바란다.

  한국의 정치인들을 많이 인터뷰한 '돈 오버도퍼'의 인터뷰와 사람을 바라보는 탁월한 식견에 때로는 감탄하지만,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는 박정희를 청렴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물론, 박정희가 언론에 농민들과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을 보며 자라온 분들은 박정희를 서민적이며 청렴한 대통령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10.26사태가 발발하던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는 막걸리가 아닌, 양주를 연예인과 여대생을 들을 불러 놓고 마시다가 죽었다. 또한 청와대 박정희 집무실에서 발견되었다는 돈다발들과 '스위스 비밀계좌설'등을 토대로 볼 때, 과연 그를 청렴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재미있는 것은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군사적 경험이 부족하며, 정치경력도 짧고,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서 수완이 부족하고, 적대적 언론과 대결하려는 모습을 근거로 들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중진국으로서 '동북아 균형자'가 되려했던 그를 '로버트 칼린'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인의 시각이 아닐까? 콘돌리자 라이스의 경우도 노무현 대통령을 이상주의자로 평가한 반면, 이명박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는가?

  육영수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은 북한의 사주를 받았을까? 돈 오버도퍼는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라는 다큐멘터리에는 북한의 사주로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했다는 설명은 없다. 한홍구 교수의 '유신'이라는 책에도 문세광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재일동포가 벌인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다. 단순히 남한의 커다란 일을 일방적으로 북한이 했다는 쉬운 도식으로 설명한 점은 한국사회를 깊이있게 살피지 못한 그의 한계일 것이다.  아울러, 판문점 무력시위 이후 치뤄진 15대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것에 대해서, 항간에 떠도는 '북풍 조작설'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것도 못내 아쉽다.

  그러나 돈 오버도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변호하는데 많은 급급한 모습이다. 이책의 저자가 미국인이기에 미국을 변호하는 글들이 많다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로당 중책을 맡은 박정희의 감형에 미 대통령 군사고문관 제임스 하우스만의 역할을 강조하여 서술한 것은 애교라고 볼 수 있다. 좀 심각한 예를 들어보자. 5.16쿠데타 당시 '미 대사관측은 한국의 민선 정부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발표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켜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미CIA국장 덜레스가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우리가 아무일도 않앴다면 한국은 급진파가 장가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은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몰랐고, 민선정부를 지지하려 노력했다는 변명이 무너진지가 오래되었는데, 돈오버도퍼는 이러한 학계의 연구성과를 알지 못하는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가?

  미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돈 오버도퍼의 노력은 박정희 정권과 12.12사태의 전개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태도를 설명하면서 극에 달한다. 미국은 좀더 민주적이고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정치체제 진입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하나, 베트남 파병시기 미국은 국익을 앞세워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던가? 또한 12.12사태를 역전시킬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김대중 VS 김영삼'이라는 책에서는 미국이 전두환 제거 계획을 세웠으로 실패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5.18민주화 운동에 신군부가 군병력을 파병하고 유혈진압한 것에 대해서도 당시 군작전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유주의 국가의 맹주인 미국의 책임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점도 못내 아쉽다. 한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고 미국의 절대선으로 한국을 인도하려했으나 한국인들이 미국의 뜻에 따라주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읽히는 것은 왜일까?

  이러한 의문은 7.4남북 공동성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극에 달했다. '김일성은 남한 정권을 미국과 일본으로 부터 떼어 놓고 미군 철수를 성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대화를 활용했다.'라는 서술은 충격적이었다. 보통의 한국의 역사교과서에서는 7.4 남북 공동성명이 통일의 3원칙을 천명한 중요한 일대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서술하면서 어느 부분에 촛점을 맞추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과연 7.4 남북 공동성명을 우리민족은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통일로 다가가는 징검다리 하나를 놓은 사건일까? 아니면, 북한의 공세에 이용당한 사건일까? 이 대답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당신의 역사관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94년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론은 북한이 수세적 입장에서 한 말이라는 사실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다큐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그런데, 돈 오버도퍼는 당시 언론에 발표된 표면적인 내용을 소개할 뿐, 새로 밝혀진 심도있는 내용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개정판을 내면서도 이부분에 대한 심도있는 취재를 통해서 보강하지 않은 점음 못내 아쉽다.

 

2. 외국인이기에 알 수 있었던 새로운 진실들.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로 25년을 일한 돈 오버도퍼와 미 CIA 분석관, 스탠포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한 로버트 칼린의 생생한 기록들은 이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저자들의 살아있는 기록들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생생한 장면으로 나를 인도했다.

  지난 2017년 7월  충북지역의 기록적인 물난리가 일어났다. 그때 자유한국당 소속 충북도의원으로 국외연수를 갔던 김학철 의원은 ‘국민이 레밍 같다’는 발언을 했다. 그럼, 당신은 '레밍'이 어떤 동물이며, 누가 대한민국 국민을 '레밍'에 비유한 최초의 인물인지 아는가? '레밍'(lemming)은 나그네쥐라고 불리기도 하는 설치류의 일종이다. 레밍은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면 집단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데, 특히 노르웨이 레밍의 경우 맹목적으로 선두를 따라가다가 레밍들이 바다에 빠져 죽기도 한다. 김학철 충북도의원의 '레밍' 발언의 기원이 전 주한미군사령관 위컴이었다는 사실도 이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국민에게 실망할 수는 있으나, 국민 모두를 모욕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또다른 레밍이 아닌지를 반성해보아야 한다.

  독재자들의 호화생활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아는가? 북한은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곳이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북한의 지도자는 두뇌에 해당하며 의사결정을 담당한다. 노동당은 신경계에 해당하고 균형과 중재를 담당한다. 인민은 두뇌가 내린 명령을 신경계를 통해서 전달받고 이를 이행하는 골격과 근육에 해단한다.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연상케하는 이러한 이론이 20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한반도의 북쪽에서 믿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친다. 남북한을 통털어 가장 강력한 독재자는 김일성이다. 김일성, 그를 위한 전용도로가 있으며, 그를 위해서 키워진 채소를 먹었고, 1984년 소련을 방문했을 때에는 그의 이동 여정에 따라 모든 열차를 운행 중지시켰다. 같은해 동독을 방문했을 때는 특별 제작한 침대가 도착하기도 했다. 503호가 화장실을 새로 만들고 거울방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김일성은 침대를 가지고 다녔다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더욱 놀라운 일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이같은 조취를 취한 바 있다는 돈 오버도퍼의 짧막한 첨언이다. 지배층의 사치화 특권은 어느 사회나 있는 일반적인 일일까? 그렇다면, 서민행보를 하고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인 노무현과 문제인이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1972년 60회 생일을 기념해서 김일성은 20m의 동상을 제막한다.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진 이곳은 놀랍게도 일본 천황을 경배하기 위해서 설치한 신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천황에게 참배해던 장소가 광복된 후에 김일성을 경배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속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괴물심연을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볼테니'라는 말을 했다. 일제가 일본 천황을 신적인 존재로 우상화했듯이, 김일성도 북한에서 우상화 되었다. 김일성은 일본 천황과 싸우며 천황과 닮아간 것일까?

  북한의 군사력을 두려워하는가? 그런데 미국의 정보 분석결과는 충격적이다. 71~72년에 북한은 7백개 대대병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10년전의 2배에 이르는 숫자이다. 인구가 배나 많은 남한보다 군병력이 많으며, 26명당 1명이 현역군인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군인의 숫자는 노동인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김일성과 호네커 회담에서 김일성은 농부의80%, 경공업 노동자의 90%가 여성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남자는 군복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경제가 힘들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허장성세라는 말이 이때 어울리는 말이다.  

  북한은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일까? 놀랍게도 북한은 지구상에서 미국을 가장 두려워하는 국가중에 하나이다. 특히 팀스피리트 훈련을 하면 북한은 '북한을 핵공격하기 위한 연습'이라고 비난하며, 지하 벙커로 대피한다. 92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자, 북한은 IAEA 핵사찰을 수용했다가, 93년 훈련을 재개하자, IAEA 사찰 거부를 경고한다. 1985년 남측의 장세동 박철언, 북한의 한시해 허담이 특사로 파견되며 남북 정상회담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86년 팀스피리트 훈련 문제로 좌초 되었음을 음미해본다면, 북한이 얼마나 팀스피리트 훈련을 더나가서 미국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강한 공격적 말투 속에는 엄청난 두려움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모두가 바라고 있을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망명전 황장엽, 북한 외교관들과 군장성들은 사석에서 미국인들에게 주한 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한다며 그 필요성을 말했다고 한다. 주한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함으로서 동아시아의 전쟁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북한의 모험주의자들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그들로서도 강력한 미군이 안전판으로 계속 주둔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분단체제 속에서 반미주의를 통해서 북한 주민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도 있다.

  박정희가 핵개발에 몰두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데탕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뒤이어 주한미군을 철수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박정희로 하여금 핵개발에 몰두하게 했다. 그런데 박정희가 그토록 염려하던 주한미군 철수를 막은 사건은 놀랍게도 '코리아 게이트'사건 때문이다. 주한 미군 철수 댓가로 19억 달러상당의 군사지원을 한국에 제공하려 했으나, 코리아 게이트로 인해서 미하원에서 이 계획이 통과되지 않았다. 미국 정치인들도 돈으로 매수하려했던 박정희의 추악한 모습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막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엄한 선생님을 학생들 중에서 존경하는 학생이 많다. 스톡홀룸 증후군!! 인질범들에게 인질이 되고 나서 오히려 자신을 해치려했던 그들의 편이되어 인질범을 추종하는 현상을 흔히 본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노인분들에게서 보이는 이러한 모습이 박정희의 최측근에게서는 보였을까? 10. 26 이후 박정희를 오랫 동안 보필한 공직자에게서 진심어린 애도의 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돈 어버도퍼는 놀란다. 홀브룩도 '서울에서 슬픔에 젖은 눈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스톡홀룸 증후군이 그의 측근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박정희는 인간적으로 존경받을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을까? 최측근도 그를 보고 슬퍼하지 않다니...

  5.18 민주화 운동에 북한이 배후에 있다는 말의 원조는 누구인지 아는가? 일베들이 하는 이런 막말의 근원이 전두환에 있었다. '학생시위 배후에 평양이 있다.'라는 말을 했고, 정보담당 장교에게 북한 위협설을 조작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광주의 시민을 두번 죽이는 이같은 일을 전두환은 서슴치않고 자행했다. 정통성이 없는 전두환은 미국으로 부터 인정받고 싶었고, 김대중을 풀어주는 댓가로 백악관이 초청된다. '김대중 VS 김영삼'이라는 책에서는 밥도 우리돈으로 먹고와야할 정도로 레이건 행정부로부터 무시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레이건은 전두환을 환대했다고 한다. 더욱 올라운 사실은 1980년 11월 20일 정권 인계를 하는 과정에서 카터가 남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자, 레이건이 '대통령 각하, 저도 한국의 대통령들 처럼 시위 가담 학생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는 그런 권한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레이건으로서는 전두환을 푸대접할 이유가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이 전두환 시기부터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박정희가 김일성을 왜? 만나냐며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반면에, 전두환은 88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 북한과 밀사를 주고 받으며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 서울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개최하려 전두환도 북측과 접촉했다. 그리고 지금의 평창 올림픽을 통해서 보듯이, 스포츠 경기가 평화의 전령이 되기도 한다. 정쟁에 휩싸여 평화의 무대인 평창 올림픽을 색깔론으로 흠집을 내려는 일부 정치인들은 깊이 반성해야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로 이어진다. 1991년은 남북 정상회담이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노태우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의 캐릭터이다. 편모슬하에서 자라 시와 음악을 좋아했으며, 집권시에는 북방외교를 추진할 정도로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는 12,12 쿠데타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암튼, 남측에서는 서동권 안기부장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북측에서는 윤기복 조선노동당 서기가 서울에 방문했다. 만약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한편, 돈 어버도퍼는 88올림픽에서 미국과 소련의 경기가 펼쳐질 때, 한국인이 우방인 미국을 응원하지 않고, 소련을 응원한 것에 대단히 놀라고 있다. 88 올림픽 시기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도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으니 말이다. 왜? 한국인은 소련을 응원했을까? 83년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소련에 의해서 격추되었고, 소련은 공산권국가의 맹주인데, 왜? 한국인은 소련을 응원했을까? 반공 교육에 대한 반발심때문일까? 그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어째든, 이때의 진심어린 응원은 소련이 한국에 대해서 우호적인 생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진심이 상대의 마음을 연 것이다.

 

3. 외국인이 가장 관심있는 주제 - 북핵사태!!

  돈 오버도퍼와 로버트 칼린은 이책의 20개장(후기 포함) 중에서 절반정도를 할애 해서 북핵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만큼 그들의 시각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가장 관심이 가는 문제일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가장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에 이부분을 읽으면서 때로는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 핵문제가 언론에 발표되고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정권 말기부터이다. 91년 비핵과 공동선언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핵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대응책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장기적 전략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5년마다 혹은 4년 마다 정권이 바뀌는 한국과 미국의 특성상, 들어서는 정권에 때라서 핵문제 풀이의 해법이 달랐고, 그에 따라서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지 못했다. 그뿐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보수와 진보 정권이 서로에게 갈등을 일으키며 엇박자를 키웠다.

  김영삼 정권시기 한승주 장관이 북미회담을 미국에 제안했고, 클린턴행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북한과 직접대화를 했다. 여기에서부터 남한의 외교력 부재가 시작됐다. 북미대화를 촉구한것 자체가 한반도의 운전대를 미국에게 넘긴 중대한 일이다. 스스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미국에 기대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하는 어리석음은 북한의 '통미봉남정책'의 빌미가 되었다. 최소한 북한과 미국의 협상에 한국의 대표가 배석하여, 회담을 남북교류의 지렛대로 삼지 못한 것은 매우 애석하다. 김영삼 정권의 외교 실책에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93년 북-미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김영삼 정권은 이에 격분한다. 김영삼 정권에서 북-미 회담을 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비판에 김영삼을 자신의 정권에서 한 정책의 결과에 분노한다. 노태우 정권시기 북한을 고립 시키는 정책에서 북한이 자유세계와 교류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며, 북방외교를 전개한 탁월한 외교적 감각을 김영삼정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북 대결을 조장하며 서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지도자의 무능과 무지가 한반도를 얼마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김영삼에게도 기회는 왔다. 특사로 파견된 카터가 남북정삼회담을 제의했고, 김영삼과 김일성의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남북의 정상들을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만약 이때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한반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김일성은 무리를 하게 되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영삼 정권은 김일성 사후, 공안정국을 형성해 갔으며,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내팽겨쳤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시기 외교적인 유능함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뒤이어 들어선 보수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기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게 된다.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서 외교전략이 바뀌어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어려웠고 그에 따라서 외교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낼 수 없는 구조를 남한은 가지고 있다. 서독이 정권이 뀌어도 '동방정책'이라는 외교적 기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대한민국 정치인들을 마음속에 새겨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떠했는가? 북핵사태를 비교적 유능하게 다뤘던 정권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라 할 수 있다. 물론 클린턴 행정부도 94년 영변핵시설을 타격하는 무모한 정책을 검토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된다면 500만명이 죽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와 있는 미국인들과 주한미군 가족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기에 쉽게 선제타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돈 오버도퍼는 미국이 쉽게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를 한가지 더 제시한다. 미국의 우방인 일본이 '평화'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미군을 돕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글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이 있다. 이후 벌어지는 일본의 우경화와 평화헌법 개정에 미국의 용인 내지 묵인이 있는 것을 아닐까?

  클린턴 행정부의 인내심있는 외교로 북핵사태는 해결 직전까지 간다. 북한은 미국이 합법국가로 북한을 승인하는 의미로 클린턴의 방문을 갈망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시절 북한을 방문하지 못하고, 퇴임 후에 미국인 기자를 석방하기 위해서 특사로 북한 땅을 밟는다. 만약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민주당 정권이 백악관의 주인으로 계속 있었다면 북핵문제는 보다 수월하게 풀려나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뒤어어 들어선 부시정권은 한반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두리운다. 부시 행정부는 구체적인 정보 없이 북-미 대화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당시 북한은 일본과 수교하고, 미국의 인정을 받고, 내부경제 개혁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려했다. 부시행정부는 그러한 북한의 손을 잡아줄 마음이 없었다. 2004년 존루이스 교수에게 영변 핵시설을 공개하고, 이후 6년간 여러차례 미국 대표단을 초청해서 현장을 방문시킨다. 핵을 무기로 미국에 부던히도 구애의 노력을 했지만,  미국은 이를 외면했다. 제네바 합의가 파국으로 치닫지만, 미국은 이를 대체할 외교적 노력도 없었고 전략도 없었다. 이러한 부시행정부의 전략은 오바마 행정부로 이어진다. 오바마는 이를 '전략적 인내'라고 말했다.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무관심도, 전쟁도 아닌, 외교라는 교훈을 그들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배우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소련과 이라크를 대체할 악의 세력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럼 북한과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을 통해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첫째 '회유'와 '체면 살려주기'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하면서 이를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한 비결이 바로, '회유'와 '체면 살려주기'이다. 북한은 '체면'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없는 사람일 수록 자존심이 쎈 법이다. 북한을 무시하기 보다는 적당한 '체면'을 살려주면서 실리를 얻는 방법은, 북한을 상대하면서 갖추어야할 필수품으로 보인다.

  둘째, '기미'를 알아차려라! '한비자'라는 책에서도 제왕은 '기미'를 알아차려 미리 일을 대비해야한다고 말한다. 이 교훈은 대북관계에서도 적용된다. '특별 사찰을 용납할 수 없다.'라는 북한의 말을 듣고 CIA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로버트 칼린은 '기미'를 알아챘다. 북한의 '군'과 '외교부'간의 마찰이 표면화된 표현으로 해석했고, 결국 로버크 칼린의 판단은 적중했다. 북한에서 '군'과 외교부'의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도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갈등표출은 때로는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좋은 힌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을 자유세계로 나오도록 손을 잡아주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유세계로 나와야한다. 그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대화와 교류의 손길을 끊임 없이 내밀어야한다. 북한을 궁지로 몰 수록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높아진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북한을 자유세계로 나오도록 우리가 손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

 

 

  900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탁월한 네러티브 구성으로 책의 내용은 이해하기 쉽다. 물론 흥미를 위해서 시간순으로 서술하기 보다는 플래쉬백 방식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때로는 사건이 뒤죽박죽 되었다는 혼란을 주기도 했다.

  로버트 칼린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대해서 '한반도와 주위 관련국들은 암묵적으로 이를 문제 없는 사태로 받아들였다. (중략) 적대적인 정권이 한반도 양국에 이어진다면 한반도 전체 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에도 비극이 될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두개의 한국'!! 한반도의 분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이 분단체제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강대국들과 남북한의 일부 세력들이 우리주변에 존재한다. 이러한 분단체제의 지속은 언제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의 상존을 뜻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두개의 한국'이 '하나의 한국'으로 바뀌기를 소망해본다.

 

ps.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담겨있어 이를 소개한다.

 

  공수부대원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포에 질린 군중과 함께 내달렸다. 나는 또 다른 평화봉사단원 한명을 포함한 약 15명의 사람들과 어느 작은 가계로 피신했다. 한 군인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곤봉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내리쳤다. 마침내 그는 우리 평화봉사단원들 앞에 다가와 섰다. 그는 잠시 멈칫하고 주저하다가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중략) 한 학생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는데 이마가 깊이 패여서 피가 줄줄흐르고 있었다. 그는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공수부대원이 난입해 머리를 곤봉으로 세게 내려친 후 물러났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중략) 대다수는 각자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쳐들어온 공수부대원들로부터 무차별 구타를 당한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8-02-24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NBC 해설자의 발언이 제국주의적 시각과 유사하게 느껴졌어요. 영미권 사람들은 제국주의 시대를 번영과 진보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강나루 2018-02-24 08:22   좋아요 1 | URL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정조 이산 어록
손인순 지음 / 포럼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 전서부터 다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다산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그가 어버이처럼 생각했던 군주! 정조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그의 생각이 묻어나는 책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일득록'!! 생소한 책이었다. 정조가 책일 읽고, 신하들과 대화한 것들을 모아서 기록한 책이 일득록이다. 매일 읽기를 썼고, 이것이 '존현각일기'와 '일성록'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정조는 '일득록'도 작성했다.정조 그의 엄청난 독서력과 기록 정신은 정말 신기! 그 자체이다. 애민군주, 정조의 생각을 읽어 보자.

 

1. 독서광 정조!!

  조선시대를 통털어 책읽기를 즐긴 왕을 꼽으라면, 조선전기는 세종이요, 조선후기는 정조를 꼽을 수 있다. 정조는 책을 어떠한 순서로 읽었을까? 그는 경전을 중심으로 하고, 역사책을 먼저 익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책과 경전을 같이 두루 읽어야 세상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정조의 생각은 지금의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대학을 다닐때만 하더라도 역사책만 두루 읽으며 세상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단히 역사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역사의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심리학책과 철학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심리학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고, 철학서적을 통해서 인생의 지혜를 얻어갔다. 나의 독서는 자연스레, 역사와 심리학, 철학을 머릿속에서 엮어가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철학을 현실과 괴리된 학문으로 생각했던 내가, 철학을 통해서 역사와 세상을 꿰뚫어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역사와 철학, 심리학 책들은 우리가 항상 옆에 두고 읽어야할 보배이다.

  그럼, 정조는 역사책을 읽을 때, 가장 경계해야할 점이 무엇이라 했을까? 사사로운 생각을 조심하라 했다. 유명인이 말을 하면, 의심할 만한 것도 옳은 것으로 이해하고, 명성이 보잘 것 없는 자는 취할 만한 것도 싸잡아 나쁘게 평가하는 세태를 조심하라고, 정조는 말하고 있다. 문학의 거두가 성추행을 했는데도, 이를 쉬쉬하는 것은 그가 유명하기에 흠결이 있더라도 덮어 주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일 수록, 힘없는 사람의 말은 좋은 말이라도 귀담이 들으려하지 않는다. 문학계 뿐만 아니라, 학문세계의 권력도, 유명한 스승 밑에서 배운 자들은, 그가 스승이기에 그의 학설을 함부로 부정하려하지 않는다. 정조는 우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배경에 집중하여 그사람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조선후기는 성리학이 절대화되고 교조화된 시기였다. 윤휴가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사실을 떠올린다면, 성리학 이외의 서적을 읽는다는 것은 자칫하면 이단을 공부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런데, 조선후기의 군주, 정조는 장자를 인용했을 뿐만 아니라, 금강경 주를 인용하기도 했다. 성리학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장자와 금강경까지 섭렵하는 그의 넓은 시야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럼, 정조는 암기력도 좋아서 책을 많이 암기했다. 그럼 그는 몇번 이나 읽었을까? 10번이면 충분할까? 아니 너무 적다고? 그런데 정조는 '마음이 바르면 어찌 열번이나 일어야 외워진단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책을 10번 이상 읽어도 많이 잊어버리는 나로서는 정조의 물음이 황당하기까지하다. 정조대왕님! 대왕님의 총명함으로 타인을 재단하면 곤란합니다. 저와같은 우매한 백성은 어찌하란 말이십니까?

 

2. 정조와 혜경궁의 마음을 읽다.

  '느닷없이 화를 내는 병통이 많다.' 정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탓닛한 스님이 우리는 화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하라했다. 어린아이가 울면, 혼부터 내기 보다는 왜? 우는지 물어야한다. 화를 내는 사람을 본다면 그 사람이 왜? 화를 내는지, 그의 무의식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한다. 12살의 어린나이에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혀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했던 정조! 그의 가슴에 울분이 얼마나 컸겠는가? 이를 억누르고 성군이 되어야했다. 그러나 무의식속으로 억누른 분노가 억누른다고 잠잠히 있겠는가? 그의 분노는 느닷없이 화를 내는 병통으로 표출된다. 정조의 위대성은 그러한 병통을 스스로 고치려 노력했고, 그 분노를 딛고 성군이 된 것에 있다.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하려고 하지 말라' 이 글을 정조는 벽에 써 놓고 자신을 살폈다. 자객이 난입하는 밤을 지세워야했던 정조는 밤새도록 책을 읽었다. 그러하기에 누구보다 많은 독서를 했고, 학문은 신하들보다 한참은 위였다. 정조의 눈에는 신하의 일처리가 완벽해보일리 없다. 정조는 신하에게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말은 다해서는 않된다. 노론 벽파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의 감정을 모두 쏟아낸다면 노론의 쿠데타를 초래하게 된다. 정조는 살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감정을 절제해야했다. 원수와 웃으며 궁궐에서 만나야했다. '평생에 하지 않은 것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정조! 아버지의 원수를 아직 일망타진하지 않은 뒤에야 그 누구도 못한 조선왕조의 개혁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현실의 힘을 가진 노론 벽파를 일망타진하지 않고 있지만, 왕권을 강화시키는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여 언젠가는 천개의 강을 비추는 성군으로 우뚝서겠다는 포부를 정조는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릉을 참배하고 돌아가면서 비를 만나자, 비 때문에 행차가 더디어진 것을 오히려 기뻐한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사랑이 비가오는 현실도 기뻐하게 만들었다. 일생을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의 원수에 대한 분노를 안으며 살아야했던 인간 정조의 아픔이 느껴진다.

  혜경궁 홍씨는 역대 왕들의 제도 수십권을 언문으로 번역하고 손수베끼기 까지했다. 왜? 역대 왕들의 제도를 번역하고 손수베끼기 까지 했을까? 혹시 정조의 개혁정치에 참고자료로 제공할 의도에서 한 작업이 아닐까? 자신의 남편이 하지 못한 제왕의 모습을, 아들을 통해서 보고 싶었던 혜경궁의 바램이 역대 왕들의 제도 번역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3. 시대를 읽다.

  '지금 사람이 사리에 밝지 않은 것은 글을 읽지 않아서이다.' 정조대왕의 말이다. P를 위한 집회에 나오는 노인들을 보면서, 정조대왕의 말을 해주고 싶다. 우리나라 10대의 학습능력은 세계 최고를 달린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20대 초반에 꺾이기 시작한다. 30대 후반을 넘어서서는 세계 평균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여, 50대가 되면, 하위권으로 밀려난다. 10대에 열심히 공부를 시키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책을 읽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자신이 10대에 배운 지식과 신문으로 주입된 지식이 세상의 진실이라 믿는 노인들이 양산되는 비참한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한다. 저 불쌍한 노인들에게 무슨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가?

  정조는 크게 간사한자(대간)은 용남해서는 안되며, 조그만 허물이 있는자(소과)는 용서해야한다고 말한다. 대간을 용서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이요. 소과를 용납하지 않으면 온전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정조는 우리가 적폐세력을 왜? 처단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명확히 말해주고 있다. 대간이 법원에 의해서 풀려나고, 소과는 법에 따라 엄벌에 처해지지는 않는지 생각해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던 지강원이 지금 이시대에는 없을까?

  그럼 정조는 소과를 저지른 신하를 어떻게 깨우쳤을까? 책을 베고 자는 규장각 각신에게 정조는 복숭아를 소반에 담아 선물하였다. 복숭아는 맛있게 먹고, 소반은 남겨서 경계토록한 정조!! 매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신하를 대했다. 보통의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한자에게 호통을 치면서 쾌감을 얻으려한다. 정조는 '사람은 언어로 한대의 쾌감을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정조는 마부에게도 이놈 저놈이라 부르지 않았다. 강자가 약자의 소과는 불같이 호통치면서, 자신보다 강한자의 대간은 용서하는 현실!! 갑질하는자여! 정조의 말을 귀담아들어라!

 

4. 정조의 사생활과 잡설

  우리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도교의 양생법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를 조선의 왕도 했을까? 조선시대 양반들이 했던 양생법을 정조도 했다. 취침전에 두발바닥 가운데를 마주 문질러 비비기도 했으며, 담배를 피우더라도 침을 뱉지 않았고, 머리를 많이 빗었다.

  정조의 개혁정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화성건설이다. 정조는 화성건설에 인중기와 치원거를 사용했다. 신하들이 문집에 이들 기구를 싣자고 주장했지만, 정조는 백성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실을 필요가 없다며 거절한다. 백성의 성쌓는 고통을 줄여준 기구가 백성을 위해서 왜? 필요하지 않겠는가? 정조를 존경하지만, 정조의 이번 의견을 동의할 수 없다.

  한편, 정조는 경기 산군에 장용영의 산군 2초를 두고 둔전을 설치한다. 이는 정전제와 뜻을 같이한다고 정조는 말한다. 장용영을 운영하면서 그 운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조는 다양한 토지개혁 방법을 모색한다. 우리는 실학자들의 토지개혁론과 정조의 개혁정치를 분리해서 배우고있다. 박제가를 비롯한 많은 실학자들이 정조시대 활약했다는 점에 유의하여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개혁론과 정조의 개혁정치를 유기적으로 연구해야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한다.

  마직막으로 조선시대 잠채의 성행, 민영광산의 발달을 알 수 있는 생생한 글을 소개하겠다.

 

  경연 신하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은점을 금하기 때문에 은값이 매우 올랐다고 우러러 아뢰니, "관점은 금하여 막는다 하더라도 사적인 채굴은 낭자할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마다 사행의 역관이 포은 외에 몰래 들여오는 것이 몇만 냥이 되는지 알 수 없고 잠상이 왕래하며 들여오는 것 또한 몇만 냥이 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기명과 패식에 순은을 쓰는 것이 그 수효를 알 수 없을 정도인데 이것이 모두 어디에서 생산된 것이겠는가? 만약 사점이 아니라면 강남에서 얻어오겠는가, 일본에서 얻어오겠는가? 관청에서 채광을 허락하지 않아 나라에 은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 게다가 은을 캐는 놈들이 모두 무뢰하고 놀고먹는 무리들이니 지금 만약 은점을 설치하도록 허락한다면 그 폐단을 만드는 것을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일득록

 

  영정조시대 잠채의 성행을 예측할 수 있는 생생한 사료이다.

 

 

  누구나 다 알듯이 정조는 애민군주이다. 적임자를 지역에 보내지 못한다면 자신이 백성을 구덩이에 멀어 넣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정조! 이 책은 정조의 인간적인 매력에 마음껏 빠져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책의 아쉬운 점도 많다. 정조의 '일득록' 모두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 첫번째 아쉽움이다. 두번째 아쉬움은 박지원이 규장각을 통해서 배출된 당대의 문장가라 설명한 부분이다. 정조가 반성문을 쓰라고 명했는데도 박지원은 이를 거부했다. 벼슬을 주겠다는 정조의 회유책도 거부한 박지원이 규장각을 통해서 배출되었다는 설명은 명백한 오류이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생각을 살펴보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