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달러 체제로 돌아가는 글로벌 경제 속에서 위안화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라와 외화 유동성이 고갈되면 얼마나 허무하게 미국과 서구 열강에 휘둘리는지 똑똑하게 지켜봤다. IMF를 앞세운 미국,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에 가혹한 구조조정과 금융시장 개방을 강요했고, 이는 ‘경제식민통치’에 가까웠다. 그러한 상황에 빠져들면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중국 정책의 배경에 짙게 깔려 있다.
일대일로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제안한 현대판 실크로드 프로젝트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고대 동서양을 연결한 교통로인 실크로드를 현대에 재현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담겼다. 실제로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인프라 개발을 추진해왔다. 도로, 철도, 항만 등 건설뿐만 아니라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거나 디지털 분야 정보가 추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일대일로는 시진핑 주석의 꿈인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외 정책의 큰 그릇이자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 내용만 봐도 그 핵심은 자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들이 추진 중인 공동통화 구상에 대해 “달러를 대체하려는 통화를 만든다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공식적인 정책을 발표한 바는 없지만, 그가 관세율 ‘100%’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브릭스 공동통화가 미국입장에서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미국이 어느 나라에 부과했던 관세보다도 훨씬 더 징벌적인 수치로,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관계 단절을 불사하겠다는 메시지로 읽는다. 미국은 그간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어떤 시도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대응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크 저커버그가 주도했던 글로벌 디지털 화폐 리브라 프로젝트다. 페이스북 메신저,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수십억 명이 사용하는 플랫폼과 연계해 디지털 공간에서 간편하게 결제, 송금할 수 있는 리브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비춰졌다.
하지만 미국 의회와 정부는 이 계획을 달러 기반의 기존 결제시스템을 위협하는 시도로 간주했고, 저커버그는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강도 높은 질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리브라 프로젝트는 전 세계 단일 디지털 화폐가 아닌 각 나라별로 디지털 화폐를 만드는 것으로 후퇴했고, 이름도 디엠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마저도 규제와 정치적 반대에 부딪혀 2022년 아시아 외환위기 초기에 일본은 아시아통화기금을 창설해 위기에 처한 아시아 국가들을 구제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달러 패권이 미국 정부와 기업, 금융회사, 그리고 미국인들에게 주는 이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하다. 우선 단순하게 보더라도 미국 정부는 대규모 재정적자를 국채를 발행해 메우고, 월가 금융회사들은 달러 중심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큰 돈을 벌고, 미국인들은 달러 중심의 움직임이라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아주 초기에 제거하는 원천봉쇄 작전을 펼친다. 달러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 개인들의 정치적 성향, 어느 경제 주체를 막론하고 일치단결하는 모양세다.
미국의 달러 패권 수호 전략은 이제 디지털 세계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개발, 발행, 유통,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국은 대체로 CBDC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실용화, 국제결제은행의 CBDC보고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적극적인 개발 등 다른 흐름이 보이자 미국 내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미국이 소외된다면 달러 패권이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에 바이든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인 2022년, 디지털 자산에 대한 ‘책임 있는 개발’을 내세운 행정명령을 발표하면 CBDC관련 보고서를 내놓았고, 증권거래위원회 등이 다양한 관점에서 CBDC는 금융 안정성, 소비자보호, 국가 안보 등 여러 이슈와 연계되어 중요한 정책 과제로 부상했다. 이 책을 보니까 화폐전쟁에서도 어떤 스탠스를 잡아야 할지 눈에 보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