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노 건강법 - 이재동 교수가 알려주는 내 몸 에너지 혁명
이재동.이수지.홍예진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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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도움되는 얘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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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타서전 - 백골단에서 국회해산령까지, 대한민국 파시즘의 기원
김흥식 엮음 / 그림씨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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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우리나라의 위대한 국부야. 이런 책 쓰려면 중국이나 북한에 가. 난 이승만 같은 어마어마한 천재가 기독교 정신으로 세운 대한민국이 몸서리 칠 정도로 너무 사랑스러워.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의 체제로 대한민국을 세운 이승만 대통령이 너무 감사하고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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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 프로메테우스의 꿈과 좌절
테리 이글턴 지음, 박경장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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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자본론을 읽었는데 지금은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 것 같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자이고 노동자를 대변했지만 진짜 마르크스는 귀족이고 하인을 두고 일했고 일을 별로 안 했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사회주의에서 가장 극좌가 되면 공산주의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유토피아가 있다고 했다. 마르크스가 뭐가 옳았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원하고 추구한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대가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론을 주창한 마르크스와 그의 이론에 대해서 잘 알고 싶다. 세계가 점점 사회주의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회주의가 뭔지 잘 알고 대처할 건 대처해야 할 것 같다. 월남의 공산화, 홍콩의 공산화, 캐나다의 사회주의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아프리카의 중국 간첩들의 침투, 지금 우리나라도 법이 사회주의화되었다고 하니까 체재의 인식은 무관심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공산화는 같은 분배를 키치로 내거는데 분배를 받으면 별로 일을 안 하고 창의력이 떨어져서 국고는 줄어들고 나중에는 분배될 게 없을 것 같은데 그 자원은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하다. 마르크스가 그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는지도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다.

저자 테리 이글턴은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학 평론가, 1943년 영국 샐포드에서 태어났다. 영국 신좌파의 대부이자 문화 연구의 창시자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제자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옥스퍼드대학교와 맨체스터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거쳐 현재 랭커스대학교 영문학 석좌 교수로 있다.

19세기 이후 영미 문학을 주로 연구하며, 문학사상론, 포스트모더니즘, 정치, 이념, 종교 등의 분야에서 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중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미학이론 」 「마르커스주의와 비평」 「우리시대의 비극론」 「성좌와 학자」 「성스러운 테러」 「진실 말하기」「포스트모니즘의 환상」 「비극」등 30여권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는 말은 전 세계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귀에는 음악처럼 들릴 것이다. 그들은 행진과 피켓 시위 현장에서 짐을 챙겨 걱정 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또 다른 지루한 위원회모임에 참여하는 대신, 집에서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원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를 그만두는 것뿐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은 불교 신자나 억만장자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의사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여 더는 자신을 필요치 않게 함으로써 스스로 직업을 박탈하는, 비뚤어지고 자기 파괴적인 존재다.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급진주의자들의 임무는 자기네 목표가 달성되는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지점에 이르는 것이다. 20년 후에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나 페미니스트가 존재한다면 유감스런 전망이 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자들은 이 점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마르크스 시대 이래로 자본주의 체제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기 때문에, 이 주장을 보다 상세히 검토하기 앞서, 마르크스가 도전한 이 자본주의 체제가 항상 변화는 성격을 지녔다.



자본의 다양한 역사적 형태라는 개념-상업적 *농업적* 독점적* 금융적*제국주의 등은 마르크스주의 자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면 자본주의가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형태를 바꾸었다 해서 자본주의 본질을 변화로 본 마르크스 이론을 왜 불신 한다는 것인가?

마르크스 자신은 노동계급이 쇠퇴하고 화이트칼라 노동이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고까지 했다. 어쩌면 마르크스의 이 ‘낡은’ 면모야말로 오늘날에도 그를 여전히 유효하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빅토리아 왕조 수준의 불평등으로 급속히 회귀하는 자본주의 옹호자들한테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난 받고 있으니까.

사회주의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탈자본주의 경제의 세부 사항에 대해 계속 논의할 것이다. 이런 불완전성을 자본주의 경제-흠잡을 데 없이 작동하면서 이제껏 소규모의 빈곤이나 쓰레기나 불황에도 단 한 번 책임져 본 적이 없는 체제-와는 사뭇 대조 된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는 어마어마한 실업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된다.

그러나 결함에 대해서도 세계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국가는 기발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옥에 있지 않다면 일자리를 찾고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단지 역사적으로 본다. 자유와 개성을 박탈한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철칙을 믿었는데, 이 법칙은 거침없는 스스로 실현하며, 어떤 인간적 행위로도 저항할 수 없다. 봉건주의는 자본주의를 낳을 운명이었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에 자리를 넘겨줄 것이다. 이처럼 마르크스 역사이론은 섭리나 운명의 세속 버전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그 이론도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것은 어려움이나, 고통, 폭력이나 갈등이 없는 완벽한 사회의 가능성을 믿는다. 공산주의의 아래서는 어떤 대립이나 이기심, 소유욕, 경쟁, 불평등도 없다. 누구도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누구도 일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은 서로 완벽한 화합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물질적 재화의 흐름은 끝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어떤 사회공학도 이것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 된다. 마르크스의 천진난만한 미래 비전은 그의 정치학 전반에 걸쳐 터무니없는 비현실성을 반영한다. 다른 대부분의 유토피아 작품들과는 달리 정치적 변화의 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자세히 보여 주었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 마르크스는 고통, 죽음, 상실, 실패, 갈등, 비극, 혹은 심지어 노동이 없는 미래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것을 경제로 환원한다. 경제 결정론의 한 형태다. 예술, 종교, 정치, 전쟁, 법, 전쟁, 도덕, 역사적 변화, 이 모든 것들을 가장 조악한 관점에서 단지 경제나 계급투쟁의 반영으로 간주한다.

참 착한 마르크스는 자신이 반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거꾸로 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에게는 모든 것이 ‘경제’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단순화이다. 그의 관점에서 역사의 진로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은 계급투쟁이며, 계급은 경제적 요인으로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 집단을 계급으로 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혁명뿐만 아니라 ‘사회적’ 생산관계에 대해 썼다. 사회적 관계가 생산력보다 우선한다면, ‘경제력’ 이란 노골적인 딱지가 뭍은 것이 어떻게 역사의 제1동력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자였다. 인간의식 단지 물질세계의 반영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인류에 대한 음울하고 영혼 없는 관점에서 스탈린이나 다른 마르크스 제자들의 잔혹성으로 이어지는 명백한 노선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계급에 대한 지루한 강박보다 더 낡은 것은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글을 쓴 이래로 사회계급의 풍경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그들이 사회주의로 안내해 주리라고 즐거이 상상하는 노동계급은 거의 흔적 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계급은 점점 덜 중요해지고, 사회적 유동성은 더욱 심해지며, 계급투쟁 이야기가 마녀를 화형시키는 이야기만큼이나 구식이 되어 버린 세계에서 살고 있다.

사악한 자본가만큼이나 혁명 노동자도 마르크스주의 상상력이 낳은 헛것이다. ‘계급주의’라는 괴상한 미국식 개념은 계급이 대체로 태도의 문제인 것처럼 암시한다. 백인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느끼는 우월감을 버려야 하듯이, 중간계급은 노동계급을 경멸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마르크스주의는 전능한 국가를 믿는다.

사유재산을 철폐한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전제 권력을 사용해 통치할 것이고, 그 권력은 개인의 자유를 끝장낼 것이다. 인민이 당에 양보하고, 당이 국가에 양보하며, 국가는 괴물 같은 독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논리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감히 야만적이고 권위적인 정부를 비판했다고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보다는 무한히 낫다.

마르크스는 국가에 대해 반대했다. 그가 국가가 시들어 사라지기를 고대했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당치도 않는 유토피아적 희망이라고 반마르크스주의자들이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그가 전체적인 정부를 열망했다고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더 이상 보지 않기를 희망했던 것은 폭력의 도구로서의 국가이다.

공산주의에서 공적 권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잃게 될 것이다. 당대의 무정부주의에 반대하면서, 마르크스는 오직 이런 의미에서 국가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라져야 할 것은 특정 종류의 권력으로, 지배적 사회계급의 통치를 떠받는 권력이다. 국립공원과 운전면허 시험 센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냉정한 리얼리즘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국가가 당파적이라는 개념에 무슨 내밀히 공모 같은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 최근에 정치 시위에 참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자유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와 그 비판자 사이에 비판자가 이길 것처럼 보이는 순간까지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비판자 쪽이 이길 것 같은 순간이 되면, 국가는 물대포와 무장 경찰부대를 앞세워 쳐들어간다. 탱크를 밀고 들어간다.

어느 누구도 국가가 폭력적일 수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단지 이런 폭력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봉사하느냐 하는 질문에 새로운 답을 제시할 뿐이다. “정부가 국제 자본을 위한 업무 대리인이라는, 한때 추문이 된 마르크스의 명제는 오늘날 ‘자유주의’ 와 ‘사회주의’ 둘 다 동의하는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와 자본 경영의 절대적 동일화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형식’ 뒤에 감추어진 수치스러운 비밀이다.

오히려 이는 공공연히 선언된 진실이며, 정부는 이를 수단으로 정당성을 흭득한다.” 그렇다고 경찰, 법원, 감옥 심지어 특수 부대까지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특수 부대는 화학무기나 핵무기로 무장한 테러리스트 집답이 날뛸 때는 필요하며, 온화한 성향과 좌파일수록 이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국가 폭력이라고 해서 모든 명분이 현 상태를 보존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자본」 제3권에서 국가가 계급을 특정하는 기능과 계급 중립을 지키는 기능을 구분한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는 차별없이 누구나가 일 안하고 잘 사는 세상을 꿈꿨다는 것인데 그 꿈을 꾼 것만 옳앗지 진짜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일한 만큼 공정한 댓가와 기회를 원해야 한다. 공산주의는 모두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만 잘 사는 세상이 되어 있는 걸 공산주의 나라가 증명하고 있다.마르크스는 생각한 저의만 옳고 실질적으로 완전히 틀렸다.



서평단 이벤트에 참여하여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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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 인격이다 - 임상심리전문가 김선희가 전하는 다정함의 심리학
김선희 지음 / 나무생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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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나는 책을 많이 봐서 대화도 잘 통하고 잘 맞는데 아빠는 박사이기는 하지만 책을 우리보다는 많이 안 봐서 그런지 대화가 트렌트를 못 쫓아가서 엄마랑 나한테 쿠사리를 드신다. 아빠가 다정하고 글도 잘 쓰기는 한데 더 대화가 잘 통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보고 도움을 받고 싶다.

저자 김선희는 한국임상심리학회 공인 임삼심리전문가이자 보건복지부 공인 1급 정신건강임상심리학을 토대로 정신병리와 심리치료, 대인관계 적응 및 역동을 탐구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지식을 풍부한 경험으로 내담자를 돕고 있다. 특별히 부부심리치료 분야에 전념하여 부부와 가족관계 전문 임상가로 내담자를 돕고 있다. 연세대학교 학사, 석사를 거쳐 동대학원 임상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저자는 ‘김선희’부부상담 센터를 개소했다. 저자의 책으로는 ⟨가까운 사람들과 편하게 지내는 법⟩⟨내 남자 안아주기⟩가 있다. 저자는 인간답게 그리고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감을 전제로 한다. 부부 상담을 받고자 내담하는 많은 이들의 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편의 거친 말로 인해 오랫동안 상처를 받았다.” 아내가 거침없이 막말을 한다. 서슴없이 모욕적 언사를 쏟아낸다. “날카로운 말로 내 나음을 후벼 판다.” “내 말은 무조건 자르고 윽박지른다.” “욱하며 욕설을 내뱉는다.”라고 호소한다. 장기간 말로 난도질당했다며 아파한다. 이 모두 언어적 학대에 해당한다. 언어로 무기 삼아 학대자가 되었고 또 피해자가 되었다.

사연을 들어보면, 관계를 표현해 내고 마음을 드러내는 언어 본연의 순기능을 파괴당한 이들의 이야기다.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 역기능적으로 망가진 이들 관계 속에서 빚어내는 뼈아픈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자신의 말과 행위가 언어적 학대인지 알지 못한다. 화가 나서 그런 거라며 가벼이 넘기려 한다.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언어적 학대는 심리적 정신적 학대의 한 유형으로, 폭력에 해당한다. 애정의 토대 위에 세워진 부부관계, 가족 관계에서라면 더욱 심각하다. 신체적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언어적 학대도 폭력이며 그 위해는 명명백백하다. 한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무너뜨리고 영혼을 황폐화시킨다. 말의 본산은 마음이다. 입과 입술의 뿌리는 마음에 있다.

마음을 정비하지 않으면 말, 말투, 어법은 변할 수 없다. 많이 배우고, 지식이 많다고, 대화법 책을 통달했다고 말을 잘하거나 다정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마음과 마음의 연결이다. 우리는 그 방식과 마음이 정감있고 다정하길 원한다. 유대감이 필요하다. 그것이 말에 담겨져 나오길 소망한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다.

성장기 동안 우리는 부모로부터 사랑과 훈련을 받는다. 사랑만으로도 안 되고 훈련만으로도 안 된다. 보통의 건강한 아동기, 청소년기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사랑도 필요하고 사랑을 전제로 한 일관된과 돌봄과 훈련도 필요하다. 사랑이 전제된 훈련은 어루만짐으로 작용한다. 어루만짐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랑이 전제된 돌봄과 훈련을 경험한 아이는 애정 어린 학습과 격려를 통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어른이 될 수 있는 토대를 갖춘다. 어릴 적 부모의 사랑 안에서 훈련 없이 자라면 가족의 소중함 보다 자랄 때 자신을 이용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런 자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져도, 아내의 옳은 말 하는 것을 잔소리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마저도 소중함을 모르고 자신을 이용한 여자의 말을 듣는다. 어릴 적 곁에서 지켜주는 부모가 없다고 무시하고 이용한 자를 분별하지 못한다. 바로 어루만짐없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사랑과 훈련 중에서 부모랑과 훈련이 중요하다는 건 모든 심리학자가 동의하는 바다. 아이는 본능과 충동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기 전에 주변 어른의 도움을 받는 상황에 맞게 행동을 조절하고, 나아가 이를 말로 표현하는 법도 배운다.

이런 훈련이 부족했던 아이들이 여러 복합적인 경로를 거치면서 막말하는 어른이 되고 자기 주변 소중한 이에게 언어적 학대를 행하는 이로 살아간다. 어릴 때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폭력적인 말과 독선적 언사가 튀어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경우에 따라 막말이 매우 세련되고 지능적인 방식을 취할 때도 있다.

사랑이 전제된 훈련과 징벌은 필요하다. 무분별한 징벌은 지양되어야 한다. 기다림과 인내가 사랑인 이유다. 섣불리 엄한 처벌을 받은 아이는 생명력과 도전정신, 탐험 욕구, 모험심이 죽는다. 사랑이 전제된 훈련이 아니라 처벌을 지배적으로 가혹하게 받은 아이는 ‘으깬 감자’처럼 짓눌리고 어그러진 채 세상살이를 밀고 나가는 힘, 도전정신의 싹이 잘려 나간다.

자존감이라는 용어는 심리학 용어로 긴 시간이 지나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다 못해 일상의 단어로 정착했다. 자존감은 자기존중감의 줄임말로,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판단, 태도를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다. ‘내가 나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와 같은 평가 개념이 들어가 있다. 자존감은 타인, 환경 그리고 세월 속 복잡단한 경험과 상호작용을 하며 조성된다.

성장기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지고 고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 심리적 훈련,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일정 부분 조정되기도 한다. 자존감은 높낮이를 표현할 때 이는 진짜 자존감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순간의 ‘기분’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 자존감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다. 성장 배경 속에 비밀의 열쇠가 있다. 어렵더라도 그 배경에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

나를 정확히 알기 위해 자신의 성장사와 그 경험에 다가가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자존감의 높낮이를 가늠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자신과 자신에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 연민의 마음을 갖고 출발하는 게 필요하다. 자존감의 높낮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올가미가 될 수 있다. 호기심과 탐구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 사랑이자 자기존중이다. 중요한 건 자존감의 높낮이가 아니라 인간미와 개성이다. 좌절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성숙에 대한 믿음, 실패 속 깨달음을 환영하는 배움의 자세, 자기 성찰과 개인적 통찰에 대한 사랑, 즉 심리적 마음가짐이 관점이다. 희생 중에 건강하지 못한 희생이다. 맹목적 희생은 독성이 강하다.

부모-자녀 관계나 일대일의 애정 관계에서 맹목적인 희생을 흔히 관찰할 수 있다. 맹목적인 희생만으로는 사랑의 결실을 이루기 어렵다. 오래된 희생은 분명히 알리고 보상받고 더 강렬히 희생하며 집착한다. 응어리가 점점 커지고 있음에도 더 격심하게 희생하며 질주한다. 자기연민에 깊이 빠져들 뿐이다.

그렇게 참다보면 결국 화산이 되어 폭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알지 못한다. 왜 자신이 그런 어려움을 당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과를 바라면 다 지나간 일을 들추어서 잔소리 하다고 적반하장으로 큰 소리 친다. 폭발하거나 원망을 하면 생색낸다고 한다. 맹목적인 희생은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



부부 관계는 참으로 어렵다. 결혼 후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부딪친다. 갈등과 실망, 분노와 환멸을 불러일으키는 시간들이 일어난다. 배우자의 뚜렷한 불찰로 관계가 망가지기도 하지만, 어느 한쪽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하였는데 부부 생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도 한다. 부부는 연인 관계와 달리 서로에게 차원이 다른 의존을 발생시킨다.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력도 남다르다. 연인은 자기 필요한 것만 이용하기 때문에 언어를 다정하게 할 것이다. 자신의 필요한 만큼 이용하고 나면 안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는 그렇지 못한다. 서로 책임을 져야 할 게 있지 않을까? 부부는 결혼할 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고 깊은 부분도 공유하기에 거꾸로 서로를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관계다.

결혼은 연애의 연장이 아니다. 결혼과 연애는 차원이 다르다. 연애와 차원이 다른 부부 관계의 난이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결혼은 고난도라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배우자와 함께 한 지붕 아래에서 오순도순 살며 얻어지는 그 결실에 감사할 뿐이다. 긴 세월을 함께한 부부가 힘있게 살아낸 시간으로 아로새긴 두 사람의 대서사 결혼과 부부에, 그것에 어울리는 기쁨과 보람의 결실, 영광의 결실을 기대한다.

다정함의 근원이자 필요조건인 돌봄! 부부애의 정수도 돌봄이라 생각한다. 특히 배우자가 아플 때의 돌봄이 그렇다. 일대일 애착 관계의 주요 기능을 궁극적으로 역경을 헤치고 살아남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즐거움과 행복, 성공 경험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사의 실제인 역경과 고난을 배우자와 함께 손잡고 헤쳐 나가는 것이 애착 관계의 목적이자 목표이자 이유다.

역경과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선 단기 관계가 아닌 장기 관계 속 두 사람의 안전한 결합과 결속, 협력, 애착이 필수다. 부부에게 닥치는 수많은 역경 중 배우자가 병든 것만큼 애통한 것이 또 있을까? 인간이 더없이 약해지는 순간, 스스로 뭔가를 하기 어려운 상황, 어쩌면 죽음 앞에 한 발짝 다가선 그 시범에서 의미 있는 타인의 함께함, 돌봄은 불가피하다.

이때 부부애의 정수가 드러난다. 헌신적 사랑으로 배우자를 돌보는 것 이것이 인간의 참사랑이다. 신체의 아픔은 단순히 육신의 고통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신체 질환으로 아픈 당신의 몸과 그 여파에 압도된 고통스런 마음은 당신의 삶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당신의 배우자는 아픈 몸과 마음을 넘어 고난의 인생마저 끌어안은 역사적 사랑의 증인이다. 이는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며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실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 거룩한 다정함이다. 교회 언니 오빠들의 부모님이 병원원장이고 700억의 재산이 있는 분들인데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인생에 대해서 배우자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짧은 인생에서 성공하고 많은 걸 가졌다고 안 죽는 것도 아니고 가진 돈을 전부 쓰고 가는 것도 아니다. 다정함을 가지고 진정한 사랑으로 가꾼 가족만이 마지막에 남고 영원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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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히는 글쓰기 끌리는 말하기 - 실전에서 바로 써먹는 글쓰기와 말하기
김대근 지음 / 보아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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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고 말 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도 글 잘 쓰고 말을 잘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저자 김대근은 YTN 방송기자이자 앵커, 기자로서 사회부와 정치부를 오가며 여러 현장을 누볐다. 또 앵커로서 새벽부터 밤까지 여러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다양한 인터뷰로 시청자들의 아침을 깨웠다. 이후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거쳐 사건 데스크로서 후배들의 기사를 검토하고 다듬는 일을 하고 있다. 언론사 시험 4수 끝에 방송기자가 된 만큼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해왔다. 이 책은 그간 현장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한 노하우가 담김 결과물이다. 현장에서 익히고 사용해온 글쓰기와 말하기의 기술을 전달하기 위해 독자가 직접 써보고 말하기의 실용서다.

글쓰기와 말하기에는 정답은 없지만 정도(正道)는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현장에서 글을 쓰고 말을 해오며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을 사로잡고,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는 글과 말은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글을 쓴다고 하면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글에도 뭔가 특별하고 차별화된 내용을 담고 있어야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SNS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채팅창에 단문으로 소통하는 것이 무슨 글쓰기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문장이 글쓰기라 할 수 있다.

또한 유튜브 영상을 만들 때는 어떤 제목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어 클릭을 유도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또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업로드 할 때는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해시태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글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제는 글쓰기가 소통의 수단이자 나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글은 곧 내 얼굴이자 나라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쓰면 쓸수록 능숙해지게 된다. 일상에서 기본적인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제목이 좋은 책이 수많은 책 속에서 독자의 눈길을 끌 듯이 잘 쓴 소개글이 많은 사람을 자신의 SNS로 끌어들인다.



자신만의 이야기는 곧 자신의 퍼스널 브랜드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 자신만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이 특별히 더 잘 쓸 수 있는 주제는 글쓰기의 경쟁력이 된다. 자신이 가진 경험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글을 통해 유형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잇다. 자신만의 이야기는 곧 자신의 브랜드가 되고. 그것은 여러 가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창조의 샘이 될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글의 소재와 주제 발굴을 위한 세상사에 대한 관심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어느 날 갑자기 글감이 머릿속에 번득이는 일은 없다. 만약 뇌리를 스치듯 주제가 떠올랐다면, 그것은 평소 쌓아온 지식과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결과 물이다. 그래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세상을 끓임없이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언론 기사들을 보고, 거기에 달린 댓글까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관심과 공감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을 여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상대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거나 내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한다거나 마음이 통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를 받으며 문제 해법에 대한 기대도 생기게 된다. 글쓰기에서 공감은 독자의 호응을 끌어내는 필살기와도 같다. 당신 삶에 대한 스토리도 공감을 줄 수 있는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다.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헤아려본다.

글을 읽는 상대의 입장에서 글을 쓰면 저자의 입장에서 글을 쓸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많은 부분이 보이게 된다. 글을 읽는 상대가 원하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공감은 상대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공감의 글쓰기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을 쓰는 것이다. 공감의 글쓰기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살아 있는 글을 써본다.



이러한 연습은 기사를 쓰거나 원고를 쓸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 구상 노트를 쓰던 버릇은 제보자의 이야기를 비롯한 여러 케이스에서 핵심적인 문제를 찾고, 그 원인을 짚으며 해법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기사 개요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글의 흐름을 잡는 과정은 실제 글을 쓰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논리적 글쓰기에서 중요한 점은 주제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 글의 포인트가 뭐지?’ 기사 데스킹을 할 때 저자가 자주 묻는 말이다. 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이냐는 의미다. 글쓰기에서는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하려고 하는 이것이 중요한데, 작가가 그렇지 못할 경우 독자도 당연히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구성 노트를 쓰는 과정에서 주제를 명확히 하는 연습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글쓰기는 자신이 잡은 주제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논리적인 흐름을 잘 보여 줘야 독자가 주제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주제를 정했다면 한편의 글은 이 주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쓰는 글도 그래야 한다. 전 국민을 상대로 국가 비전을 발표하는 건 아니지만 소중한 독자가 내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동시에 한 줄 요약을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문단마다의 핵심 주제를 파악할 정도는 되어야 혼자 보는 글이 아니라 대중에게 내놓는 글이 될 수 있다.

모든 문단에는 저마다 주제가 있다. 이 문단이 전체 주제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를 위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분명히 한다. 각 문단의 주제만큼 중요한 것이 그 문단의 역할이다. 각 문단에는 저마다 역할이 있다. 보통 글을 구상할 때 ‘서론-본론- 결론’을 떠올릴 것이다. 근데 글이 길어질수록 이렇게 3문단으로 구성되기는 어렵다. 특히 본론의 경우 주제에 따라 여러 문단으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중요한 점은 각 문단 모두 주제를 끌어내고 부각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글쓰기에서 퇴고가 중요한 이유는 글은 고치고 다듬을수록 좋아지기 때문이다. 또 글의 첨삭은 실력의 향상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자신이 쓴 글을 혼자서 스스로 수정을 하면 부족한 부분은 그대로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만큼 퇴고도 매우 중요하다. 대중 앞에 당신의 글을 펼쳐 보이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평가를 거쳐봐야 한다.

상대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면 짧고 핵심적으로 말을 해야 한다. 좋은 글은 군더더기를 없앤 이해하기 쉬운 글이라고 말했는데, 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이 필요한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압축적이면서 중요한 ‘한 문장’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상대의 말을 정리하며 다시 한 번 의미를 묻기도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쉬운 말을 정리하며 이게 맞느냐고 물어보는 식이다. 대화를 할 때 상대와 교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인 태도 역시 조심해야 한다. 청중과 교감하는 발표나 강의는 분명 청중을 향한 당신의 말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원고만 다급하게 읽으며 억지로 청중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교감을 통해 청중이 자연스레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 답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지키는 편이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다 정확하지 않은 답변으로 상황을 더 않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한다, 때로는 솔직한 것이 섣부른 것보다 낫다는 점을 기억한다.

너무 지엽적이거나, 핵심에서 빗나간 질문을 할 때도 있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무조건 빨리 많이 물어보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수많은 경험과 고민을 통해 자신이 느낀 한 가지를 ‘잘 알아야 질문도 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질문을 하기 전에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한다. 또한 적절한 대상에게 알맞은 질문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포괄적으로 묻지 말 것, 질문하기 전에 내용의 핵심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것,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궁금한 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리할 것, 적절한 상대에게 알맞은 질문을 할 것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글을 잘 쓰기 위한 전반적인 얘기들을 해주는 것 같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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