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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바로 세우기 - 성경의 렌즈로 세상을 보다
류현모.강애리 지음 / 두란노 / 2021년 9월
평점 :

기독교 세계관을 정립하는데 부부가 같이 했다는 얘기가 멋있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책은 나오면 항상 읽는데도 세상과 충돌이 일어날 때 내가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자는 성경이라는 렌즈로 대처를 한다고 했다.
우리의 신앙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저자가 도와 준다.
요즘 기독교는 세상의 적이 된 것 같다.
세계관이 충돌할 때 믿음을 지키고 기독교 세계관을 변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10대 학문을 바라본다는 것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기독교 세계관이 시대를 뛰어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모순되지 않고 일관성 있는 우월한 세계관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저자가 멋지다.
나도 멋져지고 싶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이 세상에서의 전쟁은 무역전쟁, 경제전쟁, 군사전쟁, IT전쟁, 문화전쟁, 세계관전쟁인 것 같다.
저자 류현모와 강애리는 경북대 치과대학을 같이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부부가 살아온 흔적이 전부 일치한다.
세계관 정립은 기독교인이라면 의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성 윤리의 문제가 기독교적 가치를 반대하는 수단이 되었다 -모드리스 액스타인, 캐나다 역사학자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 알프레드 킨 제이는 록펠러 제단의 지원을 받아 남성 매춘부, 소아성애자, 성범죄자, 노출증 환자, 교도소 수감자 등 성도착자의 비율이 높은 집단을 전체의 1/4이나 되도록 의도적으로 많이 포함시켰고 이를 통해 미국인의 10%가 동성애자라는 통계 수치를 만들어 냈다.
동성애 운동가들은 미국의 정책을 친동성애적으로 전환하고 유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거짓 주장으로 동성애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라이스먼의 고발로 킨제이의 자료에 의심을 품게 된 여러 국가들이 199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대규모 조사를 실시했고 유럽과 미주에서의 동성애자들은 1%도 안 되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법률과 제도들이 친동성애 편으로 돌아서고 난 후여서 기울어진 경사면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경험자를 포함해서 2%이하이다.
성경은 동성애를 명백한 죄로 규정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실정법상 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그들을 비난할 합의된 윤리적 기준조차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명령은 영속적인 부부 관계를 통해 가정에 안정성을 부여하신다.
하나님은 가정에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의 생육 및 문화 명령을 내리셨다.
나도 혼자서 성경을 읽는데 누가 몇살까지 살고 누구의 아들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얘기가 계속 나온다.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는 결혼을 통해 세상을 그 자손들로 채우고 다스리라고 분명히 명령하셨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가정의 구성과 역할이다.
게이커플들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면 그들도 안정성을 원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정서적 신뢰가 있는 중에도 외도를 지속으로 한다고 한다.
156쌍의 게이 커플 중 7쌍만이 성적인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이성 부부처럼 독점적 사랑의 관계를 갈망함에도 불구하고 더 자극적인 성적 즐거움을 위해 게이 집결지에 자기 파트너를 데리고 가는 등 비인격적인 성관계에 상대방을 이용한다고 한다.
나의 시각으로는 그들이 엄청난 범죄자들 같다.
그 관계는 점점 강압적이 되고 과도한 성행위에 몰두한 나머지 3년이내에 대부분의 관계가 파탄난다고 한다.
동성애자들은 나이가 들면 가족도 없고 성적인 매력이 없어져서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동성애자들은 알코올 의존성이 이성애자보다 2배 이상 많고 자살 시도는 3배이상 많다.
AIDS를 비롯한 여러 성병과 암으로 인해 기대 수명이 30년정도 짧다.
성전환자도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문제가 있다.
반대 성의 호르몬을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육체적 성징을 유지할 수 있다.
반대 성의 호르몬을 지속적으로 투여받으면 당뇨, 고혈압, 비만 등 만성 대사 질환에 걸리기 쉽다.
대부분 50대 가까이 이르면 병들고 성 정체성을 잃어버린 몸과 마음만이 남는다.
동성애는 일종의 성중독이고 치료가 가능하다.
유전이 아니므로 정신과 치료를 통해서 80%정도까지도 치유된다.
동성애는 다른 중독들과 마찬가지로 순간의 짧고 강렬한 쾌락과 점점 더 강한 것을 반복적으로 찾는 중독 뒤에 평생에 걸친 길고 긴 고통이 따른다.
차별금지법으로 동성애 행위를 보호하는 것은 마약, 도박, 알코올 같은 중독 행위를 장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짓이다.
성의 결정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순간에 일어나고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바꿀 수 없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성을 마음대로 바꾸려는 것도 그만한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밑의 세대들에게 타락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히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길은 막아 버리는 법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힘을 다해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탕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제발 그길로 가지 않고 비록 갔더라도 다시 돌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성애를 바라봐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종교와 도덕심은 정치적 변명으로 이어지는 모든 성향과 습관의 필수적인 지지대다 -조지 원싱턴
프랑스 대혁명 때 구체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개혁하자고 한 지롱드파는 온건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대혁명의 국민 회의에서 오른편에 앉았기 때문에 우파로 불린다.
급진 개혁을 주장한 자코뱅파는 노동자나 서민을 대변하는데 국민회의에서 왼 편에 앉았으므로 좌파라 불린다.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실패 원인이 너무나 급진적이어서라고 했다.
보수는 자유의 가치를, 진보는 평등의 가치를 더 중요시한다.
인간은 자유 속에서 평등을 갈구하다가 찾지 못하면 자유를 포기하고 예속 상태에서라도 평등을 찾게 된다.
이들은 가난도 참고 속박도 참고 무지함도 참지만 불평등만은 참지 못한다.
C.S.루이스가 지적한 인간의 가장 큰 죄인 교만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하는 불평등을 견디지 못하는 원죄를 표현하는 말이다.
보수는 자유 시장 경제와 그의 개입을 피하는 작은 정부를 , 진보를 시장의 불합리한 부분에 개입하여 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큰 정부를 선호한다.
보수는 성장을 통한 파이 확대에 주안점을 두고 진보는 공평한 분배를 우선시한다.
꼭 지켜야 할 가치를 지켜 내려는 것이 보수이다.
프로테스탄트 혁명의 정착한 국가에서 보수가 지키려는 가치는 성경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진보는 보수가 주장하는 것의 가치가 이제 사라졌으니 빨리 기준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기독교인은 어떤 정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며 성경이 가리키는 가치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명확히 분별해야 한다.
정치 문제는 정의의 문제이며 절대적 기준이 문제이기에 종교와 윤리로 귀결된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권위와 질서 아래의 안정이 필요하다.
사회는 바뀌어야 하지만 신중한 변화만이 사회의 안정을 지켜 낼 수 있다는 러셀 커크의 주장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고 무함마드는 죄가 있다-노먼 가이슬러
기독교와 이슬람의 탄생에는 예수님과 무함마드가 있다.
이슬람의 코란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로 생각한다.
이슬람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대속이나 육체의 부활 등 예수님의 신성과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부인하지만 위대한 선지자로는 인정한다.
무슬림은 알라의 계시를 받아서 코란을 구술한 최고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에수님보다 더 뛰어난 위치에 둔다.
무슬림은 신은 알라뿐이며 무함마드는 선지자라는 신앙고백을 끓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무함마드를 최고의 선지자로 받드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무함마드는 AD 570년 메카에서 태어나 610년 알라의 선지자로 지명을 받고 632년 죽을 때까지 23년간 알라의 계시를 받아 전하는 역할을 했다.
코란에는 무함마드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무함마드는 신성을 가졌는지도 확인이 안되고 평범하고 흠이 많은 인간으로 더 증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예언자라고 우긴다.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상세히 신약에 기록되어 있다.
무함마드는 가장 빠른 전기도 무함마드 사후 200~250년 사이에나 기록되었다.
무함마드에 대한 첫 전기의 서문에는 위대한 선지자에 대한 부끄러운 내용이나 실망스러운 내용은 전부 생략되어 있다고 기록돼 있다.
무함마드는 실제적인 인물이 아니라 그들 경전에 기록된 사람과는 다른 가상의 인물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성경의 불완전성을 강조한다.
성경은 원본이 없고 수많은 사본과 다른 언어로 번역된 판본이 너무 많아서 진정한 신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이슬람의 코란은 유일한 원본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오직 이슬람만이 변하지 않은 신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코란은 무함마드가 23년 동안 알라에게 받은 계시를 기록한 책이다.
처음 계시를 받았을 때 바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을 전문 암송인인 하피즈들에게 암송하게 했다.
같은 내용을 어떤 사람에게는 다르게 말하기도 했다.
장기간에 계시를 받아서 한 사람에게 암송시키지 못하고 여러 지역의 많은 사람에게 각각 나누어서 암송하게 했다.
2대 칼리파는 암송으로 전해 오던 코란을 기록해 둘 필요성을 느꼈다.
무함마드가 죽은 후 많은 부족들이 탈이슬람을 선언해서이다.
2대 칼리파는 하피즈 중 한 사람인 자이드에게 다른 하피즈들이 부분적으로 암송하고 있는 내용을 수집하여 기록하라고 했다.
자이드는 코란을 수집하면서 많은 하피즈의 기억력이 불완전하고 서로 자기가 옳다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3대 칼리파인 우스만은 위경의 출현을 우려하여 코란을 표준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자이드가 수집한 코란을 재정비했다.
코란은 불완전한 구술 수집본들 중에서 하나만 남기고 다른 것들을 다 태워 버려서 유일한 원본이 된 것이다.
반면에 성경은 많은 사본들 사이에 내용상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이 완전성을 보증하는 증거이다.
성경은 그 자체만으로 내용의 전달이 명확하여 평범한 사람도 성경만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수 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 자체적 완정성과 명확한 연결성을 가지는 데 비해 코란에 기술된 신구약 성경의 내용은 의미 전달이 불가능할 정도로 내용이 부실하며 코란에만 있는 이슬람 특유의 내용과도 연결성이 부족하다.
이슬람은 종교이자 세계관이며 억압적인 이념이다.
그들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억압적 이념을 이용하여 무슬림들을 독재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자기들끼리 무리지어 살면서 그들의 법, 샤리아를 통해 내부 단속을 하고 있다.
무슬림은 이슬람교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 부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한 책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