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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 없는 출산 - 우리는 출산을 모른다
목영롱 지음 / 들녘 / 2021년 2월
평점 :

임신과 출산은 엄청난 축복같고 여성이라면 결혼해서 꼭 겪고 싶은 일일 것이다.
저자는 출산 없는 페미니즘은 가짜라고 한다.
출산얘기들만 모아서 들려 준다고 하는데 흥미로운 것 같다.
남들이 겪어서 들은 임신과 현실의 임신은 또 틀리나보다.
저자 목영롱은 강원도 양구 분만 취약지역 (산모 거주지에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에 거주하며 임신 과정을 보낸 대한민국 30대-40대여성이다.
양구에 산부인과가 없어서 춘천의 대형 산부인과로 초음파, 진료 및 검진은 다녔으며, 막달에 자연주의 출산을 결심, 의료 형평성에 있어서 서울 - 지방간에 격차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통 당시 경기도에 위치한 얼마 남지 않은 조산사 중 실력 있다고 인정받은 조산사의 도움을 받으려 했으나 진행이 원활하지 않아 강남 성모 병원에서 3일 진통 끝에 2019년 4월 출산, 출산 이후이전 세계가 부서지고, 새로 태어난 것 같은 인지적, 사상적 변화를 경험했다.
지방에는 산부인과도 없다면 임신한 여자들은 모두 큰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아이를 낳는 것까지 이렇게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출산의 의미는 한마디로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사랑은 이런 거야 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게 어려운 것처럼, 그러나 출산은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고 한다.
저자는 가장 긴 시간 동안 몸이 아팠고, 가장 오랫동안 치욕스러웠으며, 주변의 이해와 도움, 격려의 손길을 몹시도 갈구했지만 ‘엄마라면 당연히’ 같은 통념이 산모의 외침을 외면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모든 여자들이 경험하는 출산은 숭고하지도 위대하지도 않다는 것 같이 여기는 것 같다.
저자는 참을 수 없이 경박스럽고 비인간적이며 폭력적인 사회의 민낯을 출산에서 경험했다고 한다.
덕분에 출산이라는 개별적이고 보편적인 체험을 우리 사회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새로운 고밀도 현미경이자 세상을 파악하는 더듬이로 삼을 수 있었다.
더불어 출산이 가져온 신체의 변화와 복잡한 내면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꾸준히 발버둥쳤다고 한다.
저자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어떤 얘기보다도 출산을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동안 분노와 오기와 회한과 일반의 사명감이 마구 뒤섞여 몹시 고단했다고 한다.
저자가 글을 마무리할 즈음, 2020년 11월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출산을 이제 막 마치고 엄마가 된 이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배경이 산후조리원 이었다.
회사 임원인 주인공은 잘나가는 커리우먼으로 ‘엄마가 되는’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신참이다.
나이가 좀 있는 전문직 여성, 연하 남편, 고령 출산이라는 극중 키워드는 초산 연령이 20대에서 30대를 넘어 50대 까지 늦춰지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때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출산하는 과정에서 죽을 만큼 아픔을 겪고나서 간신히 출산에 성공한다.
현대의 출산이라고 해서 옛날보다 결코 순탄할 것은 없다는 사실을, 여전히 여성이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출산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엄마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아이를 보며 안도의 한 숨을 내쉬기도 전에 새로운 난관에 돌입할 수 있다.
출산을 마치면 젖몸살, 수면 부족은 물론 모유 수유와 모성에 대한 압박까지 억눌러 온다.
엄마이전에 여성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어떤 직업의 소유자인지는 하나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름과 직업, 개성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모유가 잘 나오는지, 젖을 잘 먹이는지가 중요하다.
저자는 산후조리원의 이 같은 현실은 엄마가 된 기쁨보다 더 슬프고 화가 나고 괴롭다고 한다.
저자는 대다수 여성들처럼 출산이 무엇인지,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 모든 과정을 겪었고, 겪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는 사이 정말 많이 당황하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저자 역시 대학원을 나와서 직장을 얻고, 수많은 것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조금은 소홀했다고 한다.
저자는 엄마가 되고 마음먹고, 엄마 되기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엄마가 된 다음 비로소 고민과 갈등의 종합선물세트를 손에 들고 전전긍긍하는 낯선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여성의 기록이라고 한다.
내친구는 이번에 세종대교수가 되었다.
그 친구는 나한테 왜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희생을 하며 힘들게 살아야 하냐고 했다.
자기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결혼해서 남편이랑 애들한테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냐고 했다.
나한테도 넌 남자한테 관심도 없고 지금까지 혼자였는데 쭉 혼자인게 쉽지 누군가를 만나는게 쉽냐고 했다.
공부나 책이나 읽고 나중에 전문직을 가지고 혼자 살라고 했다.
난 남자한테 관심 있고 하나님뜻이 혼자 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남자애들이 너보고 남자애들을 전부 무시하고 원장수녀님이냐고 한다고 했다.
난 남자애들을 무시한 적이 없다고 하니까 넌 눈빛 자체가 걔네를 무시하고 책읽어야 한다고 전화하지 말라고 해서 너무 황당했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엄마가 되나 신기한 것은 누구나 저출산을 입에 올리지만 왜 출산에 관한 담론이‘저 출산'만 있는가 하는 점이다.
출산이 애국인 것처럼 열을 올리지만 막상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해결해야 할 여기 저기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개인의 선택’ 이라며 모두가 나 몰라라 한다.
심지어 “지 새끼 지가 키우는데, 뭐가 힘들어?” “자기가 좋아서 아기 낳고 왜 사회한테 책임을 떠넘겨? 뭘 그렇게 요구하는 게 많은지!” "요즘처럼 애 키우기 좋은 때가 어디 있어?" 하면서 험담을 퍼붓기 일쑤다.
묘한 것은 이들이 사용하는 표현은 제각기 다른데 듣는 사람은 하나같이 ‘엄마라는 존재의 원형’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이다.
마치 ‘엄마의 엄마’ 같은 본인의 엄마를, 그 엄마의 엄마를 떠올리도록 강제하는 제스처와 언어들이라니! 너무나 폭력적이지 않은가?
가장 흥미롭게 여긴 점은 우리 사회가 나이든 여성을 대하는 태도다.
일단 나이 많은 여성은 모두 ‘엄마’로 취급한다.
‘나이 든 여자═결혼한 여자═(당연히)애 엄마’란 공식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면화하고 있다.
출산을 하지 않은 여성을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이기적인 여자로 취급하는 시각 또한 여전하다.
여성은‘유명인사'가 되지 않는 이상 어른으로 예우받지 못한다.
여성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족과 국가의 전폭적인 눈총 아래 결혼과 출산을 종용 당한다.
저자의 남편은 교사, 사위라는 역할에 ‘아빠’라는 역할이 더해졌을 뿐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반면 저자의 경우 아내, 교사, 며느리라는 역할에서 교사가 빠지고 그 자리를 ‘엄마’가 대신하면서 역할의 우선순위 또한 엄마, 아내, 며느리로 재배치되었는데, 저자는 솔직히 이 부분에서 혼란과 고통, 압박을 경험했다고 한다.
남편은 그 어느 부분에서도 엄마인 저자보다 절박해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기쁘고 고달프다면 남편은 고달프긴 하지만 만족스러움이 더 큰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구조에 대해 고민하고, 교육시스템과 피부에 와 닿는 복지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한다.
여성이 결혼과 출산, 육아를 통해 날마다 새롭게 눈을 뜬다면 남성들은 거의 모든 일에 ‘제로섬’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대다수 남성들의 이성을 잠식해나가는 것일까? 사회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남자를 주양육자로 인정하지 않는 탓에 아무리 법이 남자의 육아휴직을 보장해준다 해도 현실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한국의 아빠들이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고 공동육아에 참여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배경이다.
경제적 능력이 월등하여 육아를 도맡아줄 입주 전문가를 고용하면 좋겠지만 대다수 엄마들은 그렇게 못하기 때문이다.
이때 나이 든 엄마(부모님)들의 희생을 지켜보는 고통 역시 고스란히 젊은 엄마의 몫이다.
부모에게 맡기면 그 고통과 안타까움, 미안함이 든다고 했다.
결국 출산은 부부사이를 위협하는 큰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육아 문제가 가정 내에서 큰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아빠들도 육아를 도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사회에 나가면 직함이 많다.
교수님, 목사님, 원장님, 박사님이라고 사람들이 부른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언제나 아빠가 불러주는 여보, 딸이 부르는 엄마라는 호칭이 제일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엄마처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남편에게 여보와 아이에게 엄마라는 호칭을 듣고 싶다.
간접적이라도 알고 싶어서 책을 읽는데 인생사의 모든 면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닐거다.
역시 힘든 점도 많은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