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어나줘서 고마워 -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 두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의사의 기록
오수영 지음 / 다른 / 2020년 5월
평점 :

난 결혼을 늦게 할거니까 노산, 노산이면 고위험군에 속할 것 같아서 미리 정보를 알아 두고 싶어서 읽고 싶었다.
저자가 고위험군 임산부들의 아기를 받았다고 하니까 어떤 얘기들인지 궁금했다.
고위험 임산부들의 출산에 대한 얘기들이니까 조심해야 하는 정보들도 같이 나올 것 같아서 읽었다.
저자 오수영은 성균관의 삼성병원 산부인과 교수(모체태아의학 전공), 서울대학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의사이자 의과대학 교수로 진로뿐 아니라 산부인과 전공의와 의과대학 교육에 열의를 다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대한 주산의학회에서 논문 실적 우수 교수에게 수여하는 남양학술상을 받았다.
고위험 임산부는 증가하고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는 감소하는 분만 인프라 붕괴, 산과 교수의 부족 현상등 사회적인 이슈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생명의 탄생’을 함께하는 산부인과에서 고위험 임산부를 진료하면서 느낀 순간순간을 담아냈다.
조산으로 어린 생명을 두 번이나 잃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산모가 2-3년이 지나 그녀는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병원에 왔다.
그리고 몇 번의 입원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침내 만삭에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
당시 병원에서 고위험산모 입원치료실 개소를 기념한 동영상을 제작하는데, 이 산모가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저자는 이 산모가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완성된 영상을 보니, 그녀는 두 번의 조산이 자신의 인생에서 실패로 느껴졌다고 했다.
‘실패’라는 표현은 ‘성공’을 전제한 말이다.
그러면 과연 성공이란 무엇일까,,
모든 만삭분만은 성공일까,,
만삭으로 아무 문제없이 태어난 신생아가 성장하다가 발달장애 또는 뇌성마비로 진단된다면 이 임신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삶에 성공과 실패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20년이 넘도록 분만을 담당한 의사로서 의사의 소신이다.
인생에서 성공과 인생이 없다는 얘기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임신과 출산이 생리적인 과정인 동시에 병적인 과정이라는 것은 의학적으로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두꺼운 산과학 교과서가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조산과 임신중독증 등 여러 합병증에 대한 기초 및 임상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임신 합병증이 생기면 이를 ‘실패’ 로 여기거나, 임신한 여성이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 하고 자책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이런 이유 중 하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의학 상식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여름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면서 내리치는 상황이 하늘의 ‘실패’가 아니듯 (곧 더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적어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합병증이 생기는 것은 누구의 ‘실패’가 아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임신 중 비교적 흔하게 발생하는 의학적인 상황을 되도록 모두가 알 수 있게 설명하려 했다.
그럼으로써 임산부들이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실패가 아님을, 궁극적으로는 더 큰 행복이 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두려운 24주가 지나고, 34주가 지나고, 마침내 39주, 진통의 간격은 3분 정도, 한 번 힘을 주자 아기 머리가 많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 나오지 않았고, 다음 진통을 기다리는 3분은 생각보다 매우 길다.
그 시간에 저자는 그녀의 남편에게 태명이 무엇인지 물은 것이다.
드디어 오후 4시 50분, 건강한 남아가 나와 그동안 마음 고생한 엄마, 아빠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예쁜 울음을 지었다.
출산 뒤 산모는 약간 창백해 보였지만 자궁수축도 좋고 자궁 경부의 열상도 없었다.
일단 응급 빈혈검사와 초음파검사 등을 시행하고 산모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자고 팀에 이야기한 다음 분만장을 나와 산모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두 손을 들고 아기의 탄생을 기뻐했고 의사인 저자도 두 손을 들어서 화답했다.
오후 5시 반부터 7시는 직장 맘인 저자에게 늘 치열한 시간이다.
이 짧은 시간에 아주 많은 일을 한다.
하루는 지도교수님을 포함해 몇몇 선생님과 강남역 근처 식당에서 송년회를 갖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오후 5시 50분에 병원을 나왔고 집에 도착한 때는 6시 15분이었다.
가스레인지 2개를 동시에 켜고, 한쪽에는 냉면을 삶고 한쪽에는 불고기를 구웠다.
거의 15분 만에 중학생인 둘째가 학원가기 전에 먹을 수 있도록 식사를 차려놓고 지하철역으로 총총걸음을 했다.
신천역에서 지하철을 탄 순간, 6시 39분에 우리 팀 치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검사 결과를 보니 산모의 빈혈이 심해져 중환자실로 옮겨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어딘가에서 출혈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영상학과에서 혈관 색 전술을 준비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색 전술로 지혈을 하면 안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다.
저자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강남역에 내리자 오후6시 52분 쯤 되었다.
계단에는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강남역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혈압이 30/17mmHg까지 떨어졌다고 하니, 어레스트(심폐정지)직전이었다.
택시는 오지 않았다.
다시 그 지방 택시 기사님에게 가서 “제가 산부인과 의사인데 지금 가지 않으면 사람이 죽습니다.” 라고 말하며 태워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영업하면 불법이라며 끝내 태워주지 않았다.
택시를 잡을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그냥 히치하이킹하듯 일반 차를 세워서 부탁하는 것, 차도로 나가 손을 흔드는 여자를, 사람들은 당연히 택시를 잡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역시나 어느 차도 멈추지 않았다.
1분이 몇십 분처럼 느껴지는데 마침 승객이 내리는 택시가 10미터 앞에 보였다.
있는 힘껏 달려서 택시를 탔고,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결국 택시를 탄 시각은 7시 4분이었다.
네비게이션을 켜보니 가는데 38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왔다.
혈압이 잘 안 잡히는 산모에게 38분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시간이다.
일단 병원에 있는 전임의 선생에게 먼저 수술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임신 기간에 보였던 걱정스러운 임산부의 눈빛과 몇 시간 전 두 손을 들어 만세를 불렀던 보호자의 밝은 얼굴이 겹쳐져 떠올랐다.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인공지능보다 순간 이동 기술이 필요하다.
가끔 택시 기사님이 험악할 만큼 빠르게 운전하실 때면 속으로 ‘아 왜 이러실까’ 하고 불안했는데 그때는 말 그대로 총알택시처럼 운전해주시니 너무 고마웠다.
병원과 계속 전화를 하는 상황을 이해해서인지 아니면 평소 운전 습관이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사님 덕분에 20분 만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마취과에서 수술 전 준비를 위해서 중심정맥관을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5시 반에 저자가 분만장을 나설 때와 너무나 다르게 산모의 배는 팽만되어 있었다.
배를 열어 보니 자궁동맥이 파열되어 출혈이 있었고, 자궁 후벽으로 경부와 연결되는 부분도 거의 파열되어 출혈이 있었다.
솔직히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제왕절개술도 아니고 질식분만을 한 것이므로 자궁동맥 파열은 그야말로 원인 불명이었다. 겨우 추정할 수 있는 위험인자는 전에 받은 자궁내막증 수술의 과거력 정도였다.
수술을 진행하는 1시간 반 동안은 어떻게 해서든 자궁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자궁 후벽에 발생한 조직과 혈관의 파열 부분으로 자궁적출술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토록 힘들었던 수술은 3시간에 걸쳐 잘 마무리되었다.
산모는 혈압, 체온 등의 활력 징후가 호전되었고, 중환자실로 이동해 중환자의학과 선생님들의 치료를 받은 다음 하루 만에 병실로 올라왔다.
회진을 돌면서 저자는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말했다.
‘살아줘서 고맙습니다.’라고, 그리고 그날 총알택시 운전을 해주신 강남역의 택시 기사님에게도 감사했다.
만약 강남역에서 그 택시를 타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단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산모 옆을 지킨 우리 팀 전공의들, 다른 응급수술을 미루고 바로 마취해준 마취과 의료진, 임산부를 살려야겠다는 한 마음으로 신속하게 도와준 우리 수술장 간호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가 초음파로 보는 것은 단지 구조일 뿐이다.
다른 장기보다 뇌와 같은 중추신경계이상은 참으로 다양한 경과를 갖는다.
따라서 초음파로 정확한 기능을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기능’은 수많은 후천적인 요소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후천적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임산부와 태아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임신 합병증과 태아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확률을 낮추고 하나의 생명을 건강하게 탄생시키기 위해서 매순간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리는 산과 의사로서 아동 학대 소식을 들으면 정말 화가 난다.
그런데 어느날, 한 달 전에 순산한 D산모가 수줍게 건네고 간 편지에서 발견한 글귀가 마음을 위로 한다.
“헛된 희망도 쓸데없는 걱정도 갖지 않도록 늘 차분히 설명해주시고,,
앞으로 어려운 시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좀 더 강한 엄마가 되어야합니다.”
그녀의 아기는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더없이 훌륭한 엄마를 만났으니,,
아기를 받은 산부인과 의사에게 가장 힘든 상황은 단연 태어난 아기나 임산부의 상태가 예측하지 못하게 매우 안 좋아지는 경우다.
산부인과 의사를 하면서 이런 상황이 안 생기면 좋으련만 개기일식처럼 주기적으로 벌어진다.
이런 일은 개기일식 보다 빈번하다.
임신 초기부터, 아니 그전에 자궁외임신이 되었을 때부터 저자에게 쭉 진료를 받던 예쁜 부부가 있다.
부부는 외모를 떠나 진료실에서 태도 등 모든 면에서 예뻤다.
이 부부는 또한 예쁘게 닮아 있었다.
남편은 늘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맑은 눈으로 저자를 보며 조심스럽게 조곤조곤 약간의 질문을 할 뿐이다.
이 임산부의 유일한 단점은 작고 마른 체구였다.
체구가 작고 마른 여성은 당뇨와 혈압 계열의 임신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은 낮지만 산후출혈에는 민감해 빈혈도 잘 생기고 수혈을 받을 확률도 증가한다.
이를 걱정해 빈혈 약을 잘 먹으라고 늘 이야기하곤 했다.
아무튼 보통의 임신경과를 보이던 중 약34주부터 아기가 엄마의 배 속에서 잘 자라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임산부는 아기가 크면 순산이 어려울까 걱정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큰 아기보다는 작은 아기를 훨씬 걱정한다.
매우 작은 아기는 여러 가지 불량한 임신 예후와 관련된다.
따라서 태아가 잘 자라지 못하는 상황에서 태아의 건강상태를 평가하는 초음파검사와 태통검사 등에 이상 징후가 보이면 임신 주수를 고려해 이른 분만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 예쁜 임산부의 아기도 34주 이후 성장이 둔화된 상태라 임신37주, 만삭이 되면서 이제는 분만을 고려해야겠다고 판단했으며 결국 38주가 넘어서 유도분만이 결정되었다.
유도분만제로 진통이 수월하게 왔고, 자궁문이 10센티미터 열리기까지 걸린 시간도 초산모의 평균 정도 였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면서 상당량의 핏덩어리가 같이 나왔다.
태반조기박리였다.
전형적인 태반조기박리의 중심은 진통과 무관하게 임신 중기 이후 복통을 동반한 질 출혈(사실 질 출혈은 없을 수도 있다) 이지만 간혹 진통 과정 중에 태반조기박리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심각한 태아 심박동 이상이 동반되지 않는 출산 뒤에 진단된다.
사실 태반조기박리는 단일 질환으로써 자궁 내 태아사망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이는 의과대학생들에게 늘 가르치는 내용이다.
아기는 자궁 내 태아발육지연이 동반되었기에 함께하고 있던 소아과 의사의 기도 삽관 후 신생아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아기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분만 직후 나간 제대동맥의 소견도 매우 안 좋아서 검사 결과 자체를 의심할 정도였다.
아기는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 뒤 경련으로 의심되는 움직임이 관찰되었다.
뇌파검사에서도 신생아 경련을 시사하는 소견이 나타났으며 바로 시행한 뇌 초음파검사에서도 뇌부종 소견이 관찰되었다.
가끔은 , 아니 산과적으로는 사실 드물지 않게 의사가 예측지 못한 응급 상황이 분만 과정에서 임산부와 아기에게 발생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자가 답답한 만큼 의사도 답답하고 안타깝다.
대게 이런 상황이 되면 그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다른 가족들이 몰려와 의사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퇴원하면서 아예 차트를 복사해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부는 저자의 모든 설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다른 가족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특히 남편은 부인을 잘 위로하고 안심시키려 했다.
우리나라 임산부의 막달 최고의 관심사는 아마도 태아의 몸무게와 머리 크기인 것 같다.
그러나 초음파로 측정하는 예상 몸무게는 오차 범위가 10-15퍼센터로 알려져 있다.
임산부마다 골반의 크기가 다르며 초산과 경산의 분만 진행이 다르고 분만 진통 시 태아가 임산부의 골반에 적응해 내려오는 과정도 천차만별이기에 태아의 몸무게와 머리 크기만이 질식분만의 성공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단순히 태아의 예상 몸무게가 크다는 이유만으로는 웬만해서 진통 없이 수술을 결정하지 않는 편이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무슨 얘기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의학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 읽은 게 나중에 언젠가는 도움이 될거라는 기대로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