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메시스와 간헐적 단식
박용우 지음 / 블루페가수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간헐적 단식을 하라는 얘기가 정말 많다.

다이어트책을 엄청 읽고 배운 점은 야식이나 과식을 하고나면 꼭 운동을 하라는 거다.

중학교때부터 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중학교때부터 과식, 폭식하는 습관이 있어서 엄청 먹고 굶고를 평생 반복했다.

과식방지하는 방법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러면 살이 찌니까 저녁을 굶을 때도 많았다.

그러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새벽 1시나 2시에 그 동안 참은 음식들을 전부 다 먹었다.

엄마께서 살이 찌는 체질이다.

우리 가족중에 제일 조금 드시는데도 가장 살이 많이 찌고 저녁에 조금만 먹어도 퉁퉁 부어서 다음 날 1킬로가 금방 올라간다.

엄마는 신부전증을 앓고 나으셔서 그런 것 같다.

살이 찌는 체질이 되는 건 우울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엄마는 갑자기 살이 찌니까 입을 옷이 전부 사라지고 얼굴이나 몸의 형태가 바뀌셨다.

엄마는 자신 때문에 내가 조금만 살이 쪄도 뭐라고 하시고 다이어트식품을 먹거나 운동을 하라고 한다.

나도 그런 영향이 있어서 조금만 살이 쪄도 스트레스를 받고 빨리 빼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갑산기능항진증이 있는데 항진증이 저하증으로 바뀌어서 아무리 안 먹어도 살이 찌고 탈모가 심하게 일어난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거의 안 먹었던 것 같다.

그래도 살이 전혀 안 빠졌다.

요즘에도 조금 살이 쪘는데 옷이 끼고 기분이 또 나빠진다.

안 먹고 싶어도 기운이 없으니까 다시 먹고 몸이 부은듯한 느낌이 나고 운동을 해도 별로 살이 안 빠져서 고민이  된다.

 과식이나 야식을 하는 습관이 있어서 살이 안 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고치고 싶은 식습관이 있다.

과식하지,,커피중독이지,,피자나 치킨, 생크림, 아이스크림, 빵같은 걸 좋아하지,,야식하지,,자주 먹지,,그러면서도 살찔까봐 포비아를 가지고 있지,,친구들이 나처럼 먹으면 100킬로도 넘을 것 같다고 모든 걸 초월했지만 먹는 것의 유혹은 넘지 못한다고 그런다.

 갑상기능항진증이라서 먹어도 살이 빠지지만 병이 점점 나으니까 먹으면 살이 찐다.

찌더라구요,,하지만 식습관이 아프면서 많이 먹는 습관이 오랫동안 있었는데 바꿀려고 하니까 또 공포와 스트레스가 몰려 와요,,체력이 마음력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건강이 있어야지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해야지 건강을 지키고 관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식생활을 바꿔야 하는 것 같은데 뭘 알아야지 실천도 하고 개선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엄마를 보니까 한 번 찌면 절대로 살이 잘 안빠진다.

살 찐 사람들을 보면 우울해지는게 남얘기가 아닌 것 같다.

나도 살 찔 수 있는 요소가 너무 많으니까 비만포비아가 살아 꿈틀거린다.

공포스럽고 안되고 싶지만 수렁처럼 빠져드는게 먹는 것에 대한 유혹이다.

건강도 그렇고 날씬함도 그렇고 잘 관리를 하고 싶다.

간헐적 단식이 좋은거면 책을 읽어보고 따라 하고 싶다.








 저자는 국내 최고의 비만 전문 명의로 꼽힌다.

30년간 의학적, 사회적, 심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수많은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비만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

의사와 다이어트 사이를 오가며 몸소 체험한 현실적인 다이어트 경험과 지식을 열정적으로 나눠 온 그가 백세시대에 아프지 않고 삶을 위한 건강한 생활습관의 실천방법으로 간헐적 단식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했고 성균관대학 의과대학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비만클리닉 소장, 미국컬럼비아 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비만 연구소 교환교수, 박용우 리셋클리닉 대표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임상교수와 강북삼성병원 건강의학본부홍보실장을 맡고 있다.

저자는 ​건강검진을 받는 분들에게 의사로서 검진 결과를 전할 때 간혹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건강검진의 목적은 암 같은 심각한 질병을 조기 발견하는 것이 가장 크지만 나중에 중풍이나 치매 같은 혈관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주의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과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있을 뿐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특히 비만 치료를 3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뱃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결국 당뇨병, 심장병으로 이어지는 분들을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가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먹지 말고,  뱃살을 빼야 하며, 숙면을 취해야 노후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심지어 자기 나이 50에 이 정도면 평균 아니냐며 지방간, 공복혈당 상승, 중성지방 상승 등의 결과를 무시해버린다.

50세에 50세의 몸을 가지고 있다면 70세에는 70세의 몸 90세에는 90세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다.

50세에 건강을 잘 관리해서 30세의 몸으로 만들어 놓으면 70세에 50세의 몸, 90세에는 70세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

각자 주어진 인생을 화려하게 살아내고 난 뒤 인생을  정리하는 노년의 그 소중한 시기에 충만한 정신적 교감과 사회적 교류, 지적인 열망이 아닌 늙고 아픈 몸에 갇혀 하루하루 고통으로 시간을 버리게 된다면 10, 20년 더 살아 장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는 치매는 또 자기를, 자기 가족을  피폐하게 만든다.

치매는 걸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도 건강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도둑이 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년의 인생을 버티는 것이 아닌 건강하게 살아가기위한 방법은 아주 쉽고 간단하다.

한 살이라도 젊은 바로 지금 몸 관리를 시작하는 것이다.

즉 노후의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지금부터 건강 마일리지를 꾸준히 쌓여가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타고난 건강체질이었을지 모르나 50세 이후에는 타고난 체질보다 습관과 생활환경이 건강에 더 크게 작용한다.

이 책에는 그동안 유행 다이어트 중 하나로 인식돼왔던 간헐적 단식이 만병의 근원인 뱃살을 빼는 건 물론 장수까지 선물하는 건강한 생활습관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기에 간헐적  단식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준다.

저자는 지금도 지적인 호기심이 넘친다.

현대의학의 발달과 함께 또 다른 이론이 등장한다면 적극적으로 실천해 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꿈과 열정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저자는  아직도 젊다라고 생각한다.

80세 이후의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한 살이라도 젊은 오늘부터 자기 몸을 관리해야만 한다.

바로 지금 당장 적극적으로 체중관리와 뱃살관리를 시작해야 치매와 중풍이 없는 노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뱃살을 빼야 중풍과 치매 없이 오래 산다.

앞서 언급한 중풍이나 치매는 대표적인 혈관합병증으로 혈관을 최대한 건강하게 유지해야 80세 이후에도 중풍이나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혈관의 노화를 유발하는 중요한 인지는 만성염증이다.

만성염증은 이상반응을 일으켜 원래 공격대상이 아닌 건강한 조직까지 공격하기 시작한다.

만성염증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곳은 바로 혈관으로 만성염증이 생기면 혈관은 마치 고속도로를 탄 듯 빠른 속도로 악화하여 노회된다.

혈관의 노화란 혈관이 두꺼워지면서 탄력을 잃은 상태를 말하는데 혈관이 좁아져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으로 이어진다.

불행히도 만성염증은 혈관 노화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각종 암, 당뇨병, 심장병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앞서 만성염증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내장지방 비만이라고 했다.

내장지방에서 분비되는 염증유발 물질이 만성염증의 주된 원인이라면 뱃살이 점점 심해질 경우 알츠하이머병, 암 당뇨병, 심장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오래 살고 건강한 노년을 맞이하려면 뱃살부터 빼야한다.

그런 이유로 체중을 줄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뱃살을 먼저 빼야만 한다.

특히 복부 내장지방 비만이 비만 관련 질환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한때 비만의 역설 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정상 체중을 가진 사람보다 적당히 살이 찐 과체중의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의미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연구팀이 코펜하겐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망자료와 체중과의 관계를 조사해 보니 비만의 정도를 표시하는 체질량지수 BMI27인 사람들의 사망위험이 가장 낮았다.

체중이 증가할수록 사망위험은 증가했지만, 반대로 체중이 정상이고 체질량지수가 25미만인 사람들은 오히려 사망위험이 높았다.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의사인 저자의 견해를 말하자면, 체중만으로는 수명을 결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나이가 들면 생리적으로 지방이 증가하고 근육량이 줄어든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내장지방, 근육 내 지방이 늘어난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체질량지수가 정상수치 23-25인 사람 중에는 상대적으로 근육량이 부족하고 뱃살이 더 많이 나온 이른바 마른 비만 환자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도 비만치료의 정석은 저칼로리 식이요법과 유산소운동이다.

적게 먹고운동해서 비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비만 인구는 해마다 늘어만 간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우선 적게 먹다 보니 넘쳐나는 식욕을 감당하지 못한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비만치료제 대부분은 식욕억제제이며, 한의원에서 처방하는 약제의 마황성분도 결국 식욕억제 효과로 체중을 감량하는 원리다.

그렇다면 매일 배고픔을 참아가며 평소보다 적게 먹으면 어떻게 될까,,

우선 음식의 갈망이 더욱 강해진다.

배고픈 신호는 더 자주, 더 강하게 온다.

기력이 없으니 신체활동량도 줄어들고, 무엇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초대사량과 비슷한 개념인 안정대사율이 떨어진다.

​안정대사율을 높이려면 공복시간을 철처히 유지해야 한다.

저녁식사 후 다음날 아침을 먹을 때까지 12시간 공복상태을 유지한다.

간헐적으로 단식해야 한다.

지속적 저칼로리식 16주 동안 평소 음식 섭취량의 67%를 공급했고, 간헐적 저칼로리식 그룹에서 16-30주 동안 2주간의 일반식과 2주간의 저칼로리식 음식으로 번갈아 실험했다.

연구 시작 시점에서 종료 시까지, 간헐적 저칼로리 그룹이 지속적 저칼로리그룹과 비교적 체중감량 폭도 훨씬 더 컸다.

이 연구 결과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간헐적 단식은 중간중간 의도적으로 짧은 단식을 하는 방법을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 효과 있는 방법이 다른 사람에겐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건강을 유지하고 노화를 늦추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할 것인지, 체중감량과 뱃살을 뺄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단백질은 탄수화물, 지방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에너지 공급원인 동시에 우리 몸을 구성하는 건축재료 이기도 하다.

, 근육, 적혈구, 면역세포 등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고, 인슐린, 렙틴 같은 호르몬, 아말라아제, 리파제 등의 효소,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도 단백질로 만든다.

우리 몸이라는 화학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기계를 돌리려면 연료가 필요하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충분한 양의 단백질을 확보해 빠른 성장과 번식을 도모한다.

학자들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에게 단백질 공급원인 육류를 너무 자주, 많이 섭취하면 일찍 죽는다고 말해왔다.

동물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심혈관질환과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고 수명이 짧아진다.

그렇다면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단백질을 섭취해야 할까,,

체중감량 다이어트에서는 단백질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단백질은 포만감을 빨리 가져오는 건 물론 근육단백의 손실을 막아주기 때문에 건강한 노년의 생활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반면 젊은 사람들은 단백질 섭취보다 어떤 단백질을 섭취하는가가 중요할 수 있다.

동물성단백질을 줄이고 식물성 단백질을 늘리면 젊은 사람이건 나이 많은 사람이건 상관없이 단백질의 부정적인 결과들이 모두 상쇄된다.

단백질 섭취는 신장을 망가뜨리고 칼슘 배출을 촉진해 골다공증 위험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저자는 받는다.

물론 단백질 섭취량이 많아지면 대사과정에서 생기는 질소화합물을 무해하는 건 맞다.

하지만 만성신장 질환으로 단백뇨가 나오는 환자의 경우라면 단백질 섭취량을 조절해야 하지만 신장기능이 정상인 사람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많을수록 단백질 섭취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면 인슐린저항성이 악화하고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사실 단백질 때문이라기보다는 육류에 포함된 포화지방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똑같은 칼로리를 먹어도 오히려 단백질을 잘 챙겨 먹으면 지방간도 개선된다.

우리 몸 소화기관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단백질의 소화, 흡수다.

나쁜 지방과 좋은 지방을 구분해 좋은 지방을 잘 챙겨 먹는 건 오히려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좋은 지방에는 올리브유, 아보카도, 견과류, 등푸른 생선인 연어와 고등어, 들기름, 아마씨 등이 포함된다.

지중해식이 건강식이 된 이유는 올리브유 등이 포함되어서이다.

지중해식식단에 심혈관 발병위험을 줄여준  음식은 올리브유를 포함한 좋은 지방이 함유된 것들이다.

그 다음은  채소, 과일, 콩류, 생선등이 있다.

피해야 할 지방에는  가공식품에만 포함되어 있는 트렌스지방이다.

천연음식에는 트렌스지방이 거의 없다.

트렌스지방은 가공 식품에만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인공으로 굳혀 만든 지방으로 마가린, 쇼트닝이 대표적이다.

세포막에 트렌스지방이 들어오면 세포막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딱딱하게 만든다.

또한 트렌스지방은 나쁜’LDL콜레스테롤수치를 높이고 좋은’ HDL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린다.

만성염증과 인슐린저항성도 악화시킨다.

도넛, 팝콘, 감자튀김, 감자칩, 튀긴 음식들에는 트렌스지방이 많다.

케이크나 빵도 마가린이나 쇼트닝으로 만들면 트렌스지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튀긴 지 오래된 튀김요리나 여러 번 사용한 기름으로 튀긴 음식은 트렌스지방 뿐 아니라 산패한 기름보다 유해성분이 함유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먹지 않는게 건강에 좋다.

뱃살을 찌우면 안된다는게 이 책의 가장 큰 포인트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ew 스티브 잡스가 반한 피카소
이현민 지음 / 새빛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스티브잡스의 일하는 스타일이 어떤 규격같은 걸 정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디자인을 그냥 얘기하고 그 디자인에 맞는 내용물을 만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랬던 이유가 이 책을 보니까 조금 알 것 같다.

예술은 치유이고 이번에 읽은 책은 예술재테크라고 또 했다.

이 책은 예술은 창의와 상상, 소통이라고  한다.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잘하면 창의가 넘치는 천재가 된다.

난  항상 미술작품을 보면서 왜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가인데 책도 많이 읽고 미대교수님한테 물어봐도 완전히 수긍은 안 간다.

합리적인 근거를 찾지 못했다.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이 왜 명작인지 정말 궁금했다.

내가 볼때는 그냥 우중충한 그림일뿐인데말이다.

어제 엄마가 모네랑 마네가 다른 사람이냐고  했다.

마네는 풀밭위의 점심으로 시험문제에 나온 사람이라서 아는데 풀밭에서 밥을 먹는데 옷을 벗고 먹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여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남자가 또 있던데 민망해서 어떻게 그러고 밥을 먹을 수 있는지,,,

아마 실제가 아니라 무슨 상징 같은 것 같다.

피카소는 왜 유명한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림을 보면 그냥 애들이 장난을 친 것 같다.

마르셀 뒤생의 변기는 다다이즘의 상징이라고 시험문제에 나오던데 그것도 책을 읽기는 읽었는데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 걸까,,

그래서 난 여성교수님들의 가르침을 소중히 받아들이고 있다.

엄마의 글도 읽어줄 때 잘 들어드린다.

프리다 칼로가 위대한 여성 화가이다.

프리다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고흐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았다.

나도 예술을 통해서 창의성을 얻어서 천재가 됐으면 좋겠다.









저자 이현미는 경희대학교에서 객원교수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내안의 천재성을 일깨워주고 꺼내준다고 하니까 읽었다.

난 스티브잡스가 관심 있었던 피카소보다는 여성 화가에게 관심이 무지 갔다.

17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세계 최초 여성 화가이다.

이 화가의 그림은 전에 본 적이 있다.

여성화가의 작품인지는 몰랐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긴데 자기 이름을 잘 알까라는 생각이 항상 든다.

아르테미시아는 르네상스적 화풍 가운데 바로크 화풍이 서서히 등장하던 시절에 활동하던 천재화가이다.

여성의 미술 공부를 허락하지 않던 당시 그녀는 23살 때 최초로 피렌체 디세뇨 아카데미아의 회원이 되는 영예를 얻으면서 세계 최초의 여성화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당대의 여러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피렌체 우피치 박물관 소장)와 같은 명작을 남겼다.

난 이 작품을 책에서 여러 번 봤다.

그녀를 미술사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비평가와 학자들에게 재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시아는 카라바지오 이후 가장 뛰어난 바로크 화가로 평가되고 그녀에  관한 전기소설과 영화가 나왔다.

나도 여성 작가나 여성 변호사들에 대한 영화는 찾아서 보는데 아주 행복하거나 밝은 인생은 아니다.

힘들고 어둡고 전쟁같은 삶들을 다 살았다.

그녀의 여러 작품들이 강인한 여성을 주제로 하고 있고 그녀를 최초의 페미니즘 화가라고 부른다.

그녀에 대한 영화는 유명한 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재능을 이어받고 태어난 딸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아가 17세기 때 당시 여성에게 금지된 누드화를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가 아르테미시아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어도  이름이 길어서 잘 외워야 할 것 같다.

남자만이 미술학교에 가고 화가가 될 수 있으며 인체탐구는 미술의 기본 덕목으로 여기던 당시였다.

학교는 못 가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뛰어났던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의 벗은 몸을 통해서 여체를  탐구하고 어부 폴비오의 누드로 남성 인체 묘사를 학습하기도 했다.

남녀 성관계에 대한 호기심이나 욕구 충족을 위해서가 아닌 그림 공부를 위한 인체탐구일 뿐이다.

그녀의 타고난 재능과 열정과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는 그녀를 친구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보낸다.

이 나라 이름은 우리나라이름의 길이에 2배이상이다.

아고스티노는 처음에 그녀의 그림지도를 거부한다.

이유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아가 여자라서이다.

정말 짜증이 난다.

안되는 이유가 여자라서라는게 같은 여자로서 화가 난다.

아르테미시아는 그동안의 연구작품들을 아고스티노에게 보여주고 아고스티노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으면서 그의 제자가 된다.

그녀가 아고스티노에게 보여준 연구작품 중에는 수많은 남자의 인체누드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르테미시아는 아고스티노에게 새로운 기법 등의 그림 지도를 받으면서 그에게 야릇함을 느끼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순결한 아르테미시아에게 아고스티노는 육체적 첫 남자가 되었다.

둘은 불륜이고 아버지의 친구이고 지금도 용납되기 어려운 관계인데 그당시는 어땠을까,,

이탈리아나 외국은 개방돼서 괜찮은게 아닌가보다.

이 둘은 은밀한 사랑을 나누었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고 아버지 오라치오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친구 아고스티노를 강간 혐의로 고소한다.








법정에 선 아르테미시아와 아고스티노는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둘의 관계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의 처녀성 검사후 그녀가 육체관계를 가진 여자임이 밝혀지고 이후 치열한 법정 싸움이 시작된다.

아르테미시아가 최초의 화가인 건 좋은 현상이지만 윤리도덕적인 기준은 낮은 여성이라서 별로 끌리지는 않는다.

별로다.

난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는 것처럼 남자는 내인생에 딱 한 명만 하나님이 주셨으면 한다.

둘도 싫다.

남자는 내 인생에서 멀리멀리하고 싶다.

이번에 뉴스에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남편에 대한 얘기를 와이프가 쓴 걸 보고 엄마랑 나랑 끝까지 못 읽어서 그만 두었다.

사람이 아니라 프랑켄슈타인 저리 가라였다.

엄마는 남자를 더 멀리하고 엄마랑 더 같이 다니자고 했고 나도 모솔인게 차라리 행복하다는 생각이 또 강해졌다.

변론을 맡은 양측 변호사는 자시의 의뢰인을 위해 상대방이 나쁜 사람임을 그리고 부도덕한 사람임을 증명할 자료를 찾아냈다.

그 중에는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남성의  인체 탐구 연구작품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도 있었다.

인체 연구작품은 그녀와 성관계 맺은 남자들로 또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작품은 아고스티노를 죽이는 본인을 그린 것으로 해석되면서 법정에서는 아르테미시아를 그렇고 그런 여자로 몰아붙였다.

아고스티노에게는 사생활이 복잡하고 어린 아르테미시아를 강간했다는 죄목이 붙는다.

처음에 아르테미시아는 강간 당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을 줄로 엮어 잡아당기는 고문이 시작되자 그 광경을 두고 볼 수 없던 아고스티노는 자신이 그녀를 강간했다고 자백해 형벌을 받는다.

엥?  뭔 고문?

아르테미시아는 집과 아버지를 떠나게 된다.

메를레 감독은 아르테미시아를 희생양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현대적인 여인으로 묘사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를 보면 유디트의 드레스의 색이 서로 다른 두 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법정 공방전이 벌어질 당시에는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유디트 작품만 존재했고 나중에 아르테미시아가 피렌체에 머물면서 금색 드레스의 유디트 작품을 다시 제작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과부 유디트는 아시리아 적장을 유혹하고 목을 잘라 이스라엘을 구한 용감한 여인으로 서양미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 소재이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보면서 빵 써는 것 같다고 말한 아르테미아답게 자신의 그림에서는 적장의 목을 있는 힘껏 베어 죽이는 잔혹함이 생생하다.

처음 그릴 때부터 쭉 강한 느낌을 전달하던 뛰어난 이 작품을 그린 그녀의 이름이 미술사에 올라올 수 있게 된 것은 여성화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긴 1970년 이후다.

그녀가 살던 시대를 350여 년이나 지나서이다.

천재라고 하는 작가의 작품이 새삼스럽게 발견된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이태리의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역사를 지켜왔건만 이제서야 그녀를 알아 본 것이다.

오랜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서양 근대미술의 미술가 중 5%미만이 여성인 반면 누드화에 그려진 대상은 85%가 여성이다.

아르테미시아뿐만 아니라 로댕이 사랑한 천재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의 이름이 서양미술사 책에 등장한 것도 197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그 전까지 있던 많은 여성 천재 예술가의 이름과 작품은 박물관과 역사책에서조차 찾기 힘들다.

남자들 중심으로 역사와 박물관은 채워졌다.

남자들 탓도 아니고 역사가 그렇게 흘러 왔다.

물리적 힘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서양은 백인의 나라였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현대 서양미술사에서 여성미술가의 재발굴이 있던 1970년대는 그 전까지 역사의 관심밖이던 여성뿐 아니라  소수집단 및 약자 등에 관심을 보이는 의미 있는 시대의 시작이다.

미국 예술계에서 페미니스트의 활동은 1970년대 가장 의미있는 발전 중 하나였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그렇지만 페미니스트 소요는 남성과 동등한 위상을 요구하는 힘을 여성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1970년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절반에 불과했고  불법 임신중절 수술로 해마다 수천 명의 여성이 사망했으며 이혼법은 남성의 특권위주로 씌어 있었고 아이비리그 대학 대부분은 여학생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여성해방운동은 1969년 남성 지배적인 학생운동에 대한 반박용이 행동으로 바뀌면서 갑작스레 활기를 띠게 되었다.

미술가인 인다 노클린은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었나]라는 영향력 있는 글에서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들이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는 것을 억압해왔고 여성들의 기여를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여성화가를 찾아보기 힘든 가운데 서양이지만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멕시코에 세계적인 여성화가가 있다.

그녀도 1970년대에 재발견되었다.

1980년 이후 각종 전시는 물론 책, 영화, 오페라 등을 통해 프리다 칼로의 삶과 작품세계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녀가 재조명 받는 이유는 그녀의 그림이 표현하는 솔직 담백한 여성성과 섹슈얼리티를 후세의 페미니스트들이 높이 평가하면서 세계가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평범하지 않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그녀의 힘든 삶을 예술로 잘 승화했다고 평가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그려진 초현실주적인 그림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 그 전까지는 어림도 없을 여자의 삶을 담은 예술작품이 이제는 중요하게 평가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남녀의 구별을 두지 않는 지금의 해석으로는 한 인간이 한계를 극복하며 일구어 낸 예술이 되는 것이다.

난 프리다 칼로하면 그녀의 눈썹밖에 생각이 안 난다.

1907년 독일 아버지와 스페인과 인디언 혈통의 열렬한 카톨릭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프리다 칼로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으며 성장했다.

몸은 불편하지만 총명한 그녀는 멕시코 최고의 교육기관이던 에스쿠엘라 국립 예비학교에 전교생 2000명 중 35명의 져자 중 한 명으로 의사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18살의 어느날 그녀가 탄 버스가 전차와 부딪히면서 그녀의 인생은 바뀌었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그녀는 척추, 갈비뼈, 쇄골이 부러지고 소아마비로 불편한 오른쪽 다리는 11군데나 금이 갔다.

오른쪽 발은 탈골에 뼈가 부스러지기까지 하고 어깨뼈도 탈골되었다.

옆구리를 뚫고 들어간 강철봉이 골반을 관통해 허벅지로 빠져나왔다.

그로인해 그녀는 전신에 깁스를 한 채 있었으며 회복기간 중에도 수없는 고통과 재발이 찾아왔고 35번의 수술을 이겨내야 했다.

이 사고 때문에 그녀는 의대를 포기하고 움직일 수 없이 침대침대에 누운 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를 들어도 정말 마음이 아프다.

부모는 그녀를 위해 침대의 지붕 밑면에 전신 거울을 설치한 캐노피 침대와 누워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젤을 마련해 주었다.

그녀의 수술 후 첫 3개월간의 그림은 거의 자화상이다.

프리다 칼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자주이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이 나이기에 자화상을 그린다고 했다.

그녀가 그린 그림은 초현실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오랜 치료와 많은 건강사의 문제를 극복하면서 화가가 된 후 22세 되던 해에 그녀는 자신이 존경한 당시 멕시코 최고의 화가 디에코 리베라와 21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여성작가들도 그렇고 여성화가들의 결혼생활은 왜 다 이러냐,,

디에고는 이미 결혼을 두 번이나 한 이혼남이었는데 그의 여성편력은 한 남자의 아내로 조용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는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다 칼로는 아이를 가지려 노력했는데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나약해진 그녀의 자궁 때문에 3번이나 유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계속되는 디에고의 외도,  그녀의 여동생과의 외도로 그녀는 성실한 아내의 역할을 포기했다.

프리다는 그 후 별거를 하고 자유롭게 여행하며 양성의 애인을 두기도 했다.

미국 여배우와 결혼을 원하는 디에고를 놓아주면서 둘은 이혼하게 되고 그녀를 괴롭혔던 척추의 고통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대수술을 했지만 육체적 고통은 심해만 갔다.

이혼 1년만에 재결합을 원하는 디에고와 합친 후에도 디에고의 외도는 여전했다.

계속되는 그녀의 건강 악화로 결국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만 했고 몇 차례의 척추 수술은 실패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 문장에서 눈물이 핑 돌려고 하지만 난 이성적이라서 눈물까지는 안 나온다.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이유로 전시회를 할 수 없었던 그녀는 1953년에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공산당이었다고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리베라와 그녀의 친구들이 열어준 전시회였다.

일어나 앉지도 못하게 된 그녀는 누운 채로 전시회를 보러 온 군중들 앞에서 노래하고 마시며 함께 기뻐했다.

그리고 1년 후인 1954년 7월 프리다 칼로는 한 달 남은 결혼 25주년 은혼식 선물을 리베라에게 먼저 주고는 그날 새벽 폐렴 증세의 악화로 고통과 고독 속에서 보낸 47년의 슬픈 생을 마쳤다.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재발견된 프리다 칼로의 멕시코를 벗어난 첫 해외 전시는 1982년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열린 회고전이었다.

그후 스웨던, 독일, 미국에서 전시회가 이어지고 1991년에는 <내 마음의 디에고>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대표 작품이 될 정도였다.

이후에도 오페라, 뮤지컬, 음악, 영화, 책 등에 그녀가 소개되었고 2001년에는 최초의 히스페닉 여성으로 미국 우표에 등장하기도 했다.

멕시코혁명이 시작된 1910년을 본인의 탄생년도로 선언한 프리다 칼로를 위해 탄생 100주년 회고전이 멕시코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성대히 개최되는 등 프리다 칼로는 20세기 멕시코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성화가이자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인간의 고통을 승화한 예술 그자체가 되어 우리의 삶과 소통하고 잇다.

불행해, 불행해, 고흐때문에 항상 슬프고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 프리다 칼로는 고흐 저리 가라이다.

이젠 프리다 칼로를 고흐보다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화가가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천재성이 내안에서 뛰어 나올 것인가,,

뛰어난 많은 여성들은 나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을 준다.

그냥 이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내면의 무언가를 나에게 가져다 준다.

이탈리아의 최초의 여성 화가,,,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아르테미시아, 아르테미시아, 아르테미시아, 아르테미시아,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

그녀들은 어떤 한계와 고통속에서도 예술작업을 쉬지 않았다.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볼때는 그게 바로 천재성이다.

난 그녀들에게서 천재성을 받은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김태훈 옮김, 장경덕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영학을 공부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고민을 하고 있는 나만의 주제가 바로 자본주의이다.

공산주의라는 또 다른 경제체제도 있었지만 무참히 실패를 하고 이 세상의 체제에서 나가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정부가 개헌을 하면서 들여 오겠다고 해서 고민이다.

자본주의는 왜 양극화가 점점 세기가 더해질수록 심해지는지라고 고민했는데 그래도 차라리 자본주의가 훨씬 낫겠다.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과연 그 부를 제대로 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연예인은 희소성의 가치라는 것때문에 왜 엄청난 돈을 차지하는지,,사회복지정책이 자본주의 가속을 막을 수 있는지,,,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보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 그들은 왜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그들의 가난을 끓어 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나 의식개선말고는 다른 어떤 방법이 필요한가,,돈이 정신이나 내적인 가치를 이길려고 하는지,,돈에 대해 어떤 자세를 위해야 하는지,,감당할 수 없는 돈은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자본주의말고 세상을 더 잘살게 하는 경제체제는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인지,, 자본주의 체제안에서 살면서도 자본주의를 잘 모르고 자본주의에 휘둘리는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대책이나 지식이  없는지 항상 고민했는데 그래도 토지공개념보다는 낫겠다.



우리나라는 천민자본주의라고 하는 책들을 많이 읽었다.

좌파, 진보인사들의 책을 읽은 거다.

그래도 공산주의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이제는  든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는 공산주의처럼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무너지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세계 최고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됐으면 좋겠는데 지금 입국제한에 걸리지 않나, 세계 10위인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북한에 한 마디도 못하질 않나, 마스크가 없어서 주민등록증으로 사야 한다고 줄을 서질 않나, 동맹국인 일본에 중국과 같은 상황인데도 다른 기준을 적용하질 않나, 정부가 친중, 친북이니까 세계에서 왕따가 되고 있고 국격이 떨어지고 있다.

세계 최고인 미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영국의 식민지로 세계 변방이었던 미국은 250년만에 세계 최고를 일군 이유를 알아서 우리나라에도 적용을 해서 자본주의의 번영을 이루어야 할 것 같다.

그런 번영뒤에 불평등, 독점, 사회적 갈등이라는 부작용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는 경영학과 다닐 때 교수님한테 배웠다.

그때는 뭔가 엄청난 에너지나 능력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세계 최고일지 아니면 몰락할지 그게 가장 궁금했다.

이 책은 미국의 18세기부터 지금까지의 자본주의를 알려주는데 침체기에 대해서 공부해서 그 침체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읽으면 우리나라도 어떻게 침체기를 빠져 나올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저자 앨런 그린스펀은 1926년 뉴욕시 워싱턴 하이츠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줄리어드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연주자 생활을 했던 그는 뉴욕대에서 경제학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포드 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87년에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으로 임명되었고 2006년에 은퇴할 때까지 역임했다.

저자는 미국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최대한 생생하게 파악하려는 연구에 매진했다.

그 핵심에  혁신의 수수께끼를 품은 생산성 향상에 대한 문제를  깊이 파고 들었다.

저자는 혁신은 어디에서 이뤄지는지 알려 준다.

조지프 슘페터는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실크 스타킹을 가질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가난한 여공도 그 스타킹을 신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가장 큰 번영을 이룬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인들은 황무지에서 세계 최고의 부를 일구었다.

미국은 지구촌 총생산의 4분의 1  차지한다.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관통하는 진보의 동력은 창조적 파괴의 힘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가진 것을 지키려는 나라라면 미국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가들의 나라였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13살 때 무일푼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세계 정유산업의 90%를 쥐고 흔든 존 록펠러는 약장수의 아들이었다.

농부의 아들 헨리 포드는 대중에게 차를 판다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랐다.

끔찍한 도축장에서 얻은 대량 생산 라인의 아이디어 덕분에 인류의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미국은 그늘의 실패를 용인한다.

헨리 포드와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은 파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창조적 파괴의 비용은 혜택보다 두드러진다.

실크 스타킹 양산의 수혜자보다 그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다.

청조적 파괴는 거센 정치적 반발에 부딪힌다.

정치인들은 일자리와 공장을 보존하려 창조적 파괴를  억누른다.

금융위기 때 보았듯이 파괴만 하고 창조는 하지 않는 나쁜 혁신도 많다.

창조적 파괴는 흔히 불신과 증오, 도덕적 분노의 홍수에 직면한다.

진보의 핵심 기제를 되살릴 처방을 제시한다.

개척정신을 잃어가는 미국은 성채사회와 비슷해지고 있다.

국민은 남북전쟁 이후 가장 분열되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낳은 남미식 포퓰리스트에 가깝다.









이 책은 생산성, 창조적 파괴, 정치라는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춰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산성은 주어진 투입물을 가지고 산출량을 더 많이 늘리는 능력을 말한다.

창조적 파괴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정치는 창조적 파괴의 여파에 대응한다.

생산성은 경제적 성공의 궁극적 척도다.

생산성의 수준은 그 사회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을 좌우하며 선진국과 개도국을 가른다.

창조적 파괴는 경제 발전의 주된  원동력으로 사업과 생활을 뒤집어엎지만 그 과정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지속적 돌풍이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 시간당 생산량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영역에 사회적 자원을 할당하는 것이다.

대공황에 대해서 좀 알아보면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법도 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1916~1919년까지 미국의 국가 부채는 12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급증했다.

그중 거의 절반은 연합국에게 빌려준 재원을  마련하는 데 소요되었다.

연합국은 독일에게 최대한 많은 배상금을 받아내려 애쓰는 와중에도 차관을 제대로 갚지 못했다.

1929~1932년까지 모든 연합국이 채무 이행을 거부했다.

미국은 그 대응으로 보호주의를 채택했다.

공황은 금본위제와 연계된 고정 환율이 뒷받침하는 안정된 세계 질서가 와해된 결과였다.

전쟁이 적응하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결과이다.

전쟁 이전에 세계경제 질서의 중심은 런던이었으며 영란은행이 금본위제를 통해 질서를 잡았다.

런던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자 프랑스와 러시아의 중앙은행은 영란은행에 자금을 빌려줘서 위기를 막아냈다.

영란은행이 대단히 많은 자금을 융통하고 전문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1창 세계대전은 영향력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앞당겼다.

유럽의 강대국들이 전쟁에서 미국보다 많은 피를 흘리고 물자를 소모하는 바람에 변화의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전쟁 이전에 유럽의 네 산업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는 미국보다 훨씬 많은 산출량을 기록했다.

1920년대 말에는 미국이 유럽을 크게 앞섰다.

전쟁 이전에 미국은 자본 순수입국으로 191422억 달러의 외자를 수입했다.

전쟁 후에는 순수출국으로 변신해 191964억 달러의 자본을 수출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금의  상당 부분을 축적해 세계적 리더십을 다졌다.





루스벨트는 새로운 행정부에 까다로운 임무를 수행할 역량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재무부 장관인 오그덴 밀스가 이끌고 연준 의장인 유진 메이어가 포함된 이전 정권의 팀이 후머 임기 마지막 해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은행 영업을 재개하기 위한 묘안을 마련했다.

재정 건전성을 기준으로 은행을 3등급으로 나누고 철저하게 심사한 다음 단계별로 영업을 재개하는 것이었다.

A등급은행이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B등급 은행은 연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유동성을 확보한 다음 뒤이어 문을 열었다.

C등급 은행은 필요하다면 주식을 발행하는 조건으로 자본 투입을 비롯한 특별 지원을 받거나 사업을 정리해야 했다.

루스벨트는 취임 이전에 은행 개혁을 위한 후버의 정책에 연대하지 않으려 했다.

취임하자마자 긴급은행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의회를 설득했다.

이 법은 루스벨트에게 은행 예금을 100% 보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루스벨트는 5천 달러까지 개인 예금을 보증하는 연방예급보험공사를 만들었다.

자본주의의 두드러진 속성이었던 예금 인출 사태는 드문 일이 되었다.

루스벨트는 의회가 쥐고 있던 무역정책에 대한 핵심 통제권을 백악관으로 가져왔다.

그에  따라 무역과 관련해 여러 계파의 의원이 서로에게 중요한 산업을 보호해주며 결탁해온 의회의 권한이 줄어들었다.

루스벨트는 자본주의의 잘못된 배선을 고치려고 노력하면서  100일 동안 사람들을 일자리로 되돌리는 데 몰두했다.

그는 25만 명의 청년을  고용해 삼림 관리홍수 통제, 미화 사업에 투입하는 공공근로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연방 정부의 실업 지원자금을 주 정부로 할당하는 연방긴급구호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낙후된 지역의 경제 개발을 촉진하기위해 테네시 계곡 개발 공사를 설립하는 등 과감한 지역 개발 사업을 벌였다.

루스벨트는 미국 의회가 제정한 가장 중요하고 파급력 강한 법으로 칭한 국가산업재건법과 함께 취임 100일을 마무리했다.

이 법은 연방 정부가 지정한 산업에서  최대 노동시간과 최저임금을 규제할 수 있도록 했으며 더욱 급진적으로는 노동자에게 노조 결성권과 파업권을 부여했다.

이 법에 따라 국가재건청과 공공사업청이 설립되었다.










국가재건청은 전체 산업에서 생산을 규제하고 정부의 지시에 따라 가격과 임금을 올리는 등 정부가 뒷받침하는 카르텔화의 방대한 절차를 진행했다.

반독점법을 유예시켰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가 산업을 정부가 지시하는  트러스트의 네트워크로 조직했다.

미국의 전통으로부터 놀랄 만큼 거리가 먼 것이었다.

공공사업청은 야심 찬 공공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루스벨트는 616일 의회에서 넘어온 최종 법안에 서명하였다.

농촌 지역을 위해 국가산업재건법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은 농업조정법이었다.

이 법의 목적은 과잉 생산을 방지하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농기계기 일손에 대한 수요를 줄이고 도시 일자리가 더 높은 임금을 제공하면서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이 농촌을 떠났다.

1930년대는 이런 변화에 두 가지 복잡한 요소가 더해졌다.

우선 농촌 노동자는 도시에 일자리가 없어서 농촌에 머물러야 했다.

또한 스무트-홀리 관세법 때문에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유럽의 수요가 줄었다.

그 결과 종종 도시보다 농촌이 더 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루스벨트는 생산을 제한하고 가격을 끌어올려서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이런 작용은 불가피하게 우파 진영분 아니라 좌파 진영에서도 반작용을 불렀다.

사회주의 진영의 만년 후보인 노먼 토머스는 뉴딜을 기침약으로 폐렴을 치료하려는 시도라고 폄하했다.

사회 고발 소설가인 업턴 싱클레어는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이윤 추구를 금지한다는 공약을 내걸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또 다른 캘리포니아 사람으로 이전에는 무명의 의사이던 프랜시스 타운센드는 모든 사람에게 60세부터 은퇴 자금으로 200달러를 지급하는 계획을 제안해 전국적 인물이 되었다.

전시 호황은 1950년와 1960년에 이어질  황금기의 토대를 놓았다.

정부는 나중에 민간 부분이 인수랑 새 공장과 산업 설비에 돈을  쏟아부어 국가적 자산을 갱신했다.

1940~1945년까지 공작기계  보유 대수가 두 배로 늘었다.

대량샌산에 대한 미국의 중독 증세는 노조의 권력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1935년에 제정된 와그너법이 부여한 노조의 권력은 전쟁에 따른 요구로 수그러들었다가 전후 호황기에 다시 강화되었다.

노조는 대량생산 체제에 대한 장악력을 활용해 비교적 높은 급여와 넉넉한 복리후생을 누렸다.

이런 특권은 갈수록 강화되었다.

노조의 장악력은 전사적 품질관리 같은 새롭고 명민한 아이디어에 저항하는 데도 활용되었다.

이런 문제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그러나 전후 호황기를 이야기할 때 미국의 번영을 일구는 거대한 체제에 몇 가지 설계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미국의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을  엄청나게 자세히 알려준다.

미국은 소득주도가 아니라 생산성에 집중을 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의 리더들이 논리학을 배우는 이유 - 리더들의 성공비결 논리학을 주목하라!
치루루 지음, 권소현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논리적이면 어떤 주장이 있으면 왜 그러냐라고 계속 합당한 근거를 찾으니까 사기를 안 당하거나 가장 올바른 결과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서정욱변호사님을 보면 뭔가 그렇다 왜 그런지 근거1, 근거2, 근거3 이렇게 항상 얘기를 하신다.

그래서 설득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논리학은 똑똑한 사람들의 선택이고 무기이다.

무기가 무엇인지 알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진정한 리더가 된다.

이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데 논리는 유용한 것 같다.

논리학은 문제투성이인 세상을 성공적으로 잘 살기 위한 인류의 발명품이다.

세계의 리더들은 논리를 통해 최선의 선택, 올바른 결정, 이성적인 방법을 배웠다.

나도 좀 배우워야 한다.

지혜와 행복을 얻는 예술이 논리이다.

논리는 골치 아프고 복잡한 공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술이라고 하니까 새롭게 보인다.

인간관계의 모든 것은 논리에서 시작하고 논리로 사유하고 논리로 해결한다고 하는데 어려운 논리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된다.

논리학은 사유의 규칙에 대한 연구이다.

공식으로만 공부해서 너무 어렵게 느껴졌는데 글로 풀어내면 또 다르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논리학은 구체적, 추상적, 대칭 논리의 단계를 거친다.

논리학이나 수학은 전부 학문을 하기 위한 도구적인 학문같다.

나도 이 책으로 논리적으로 사유하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좀 쉽게 배우고 싶다.









논리학은 사유의 규칙에 대한 연구이다.

논리와 논리학의 발전은 구체적 논리-->추상적 논리-->구체적 논리의 추상적 논리가 통합된 대칭 논리의 세 단계를 거쳐 왔다.

논리학은 사유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모든 사유에는 내용과 형식이 있다.

사유의 내용이란 사유가 반영된는 대상과 그 속성이다.

사유 형식이란 사유의 내용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상과 그 속성의 다양한 방식을 반영한 것이다.

논리학의 추상적 사유에는 개념, 명제, 추론의 세 가지 기본 형식이 포함된다.

논리학은 협의와  광의로 나뉘기도 한다.

협의의 논리학은 연구와 추리를 하는 학문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체에서 결과를 유도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광의의 논리학은 사유 형식, 사유 규칙, 사유 논리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광의의 논리학이 연구하는 범위는 협의의 논리학보다 더 넓은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인지의 일종으로 철학 연구와 관계가 있다.

논리학은 전통, 현대, 변증, 연역, 귀납, 유추 비교, 고전, 비고전 등등 그 체계가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다.

논리학에는 고대 그리스 형식 논리, 중국 선진시대 명변 논리, 고대인도의 인명 논리라는 3대 기원이 있다.

논리학은 기초적인 학문으로 논리학 기본 이론을 연구할 때 학문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칙과  방법을 중시한다.

논리학은 도구적인 학문으로 기초학문을 포함한 모든 학문에 분석, 비판, 추리, 논증을 위한 도구를 제시한다.

저자 이름이 치루루이니까 중국 사람같고 고등학교 교사라고 한다.

클레어라는 변호사가 있었는데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일에 대한 욕심도 많지만 가끔 변호할 때 역부족이라고 느껴지면 더 없이 속상했다고 한다.

클레어가 소속된 로펌의 후배는 변호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뛰어난 실력에 벌써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클레어는 그녀가 부럽다고 했다.

나도 예쁜 여자보다는 능력있고 똑똑하고 실력있고 공부 잘하는 여자들이 부럽다.

클레어는 그녀에게 변호실력이 어떻게 그렇게 좋냐고 물었고  그녀는 논리학 수업을 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클레어는 그 후배변호사와 논리학 수업을 들으러 갔다고 한다.




클레어와 후배 변호사가 등장하는 소설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클레어와 후배 변호사는 강의실로 들어 가니까 백발 노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백발 노인은 자신을 논리학 멘토인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했다.

얼마 전에 박원순 시장이 광화문에 태극기를 설치하자고 하니까 싫다고 했다.

그래서 왜 싫으냐고 하니까 그냥 싫다고 했다고 한다.

변호사 출신 맞나,,,

합리적인 근거나 이유도 없이 그냥 싫다고 하는 건 법조인의 마인드가 아니질 않나,,

얼마전에 정치에 무관심한 대가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다고 소크라테스가 그랬다고 했다가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플라톤이 그랬다고 지적을 당했다.

국가론에서 플라톤이 그랬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스승이 플라톤이라고 했다.

자신은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플라톤의 유심론적 관점은 반대했다고 한다.

플라톤은 이념이 실물의 원형이고 이념은 실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은 다양한 것으로 이루어졌고 그것들 자체의 형상과 질료가 조화를 이루며 이 세상을 함께 만들었다고 했다.

질료는 사물을 구성하는 재료이고 형상은 모든 사물의 개별적인 특징이다.

날개를 푸드덕거리고 있는 닭이 있다고 생각한다.

닭이라는  형상은 날개를 푸드덕거릴 수 있고 소리를 내어 울 수도 있고 알을 낳을 수도 있다.

그 닭이 죽게 된다면 닭의 형상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때 유일하게 남게 되는 것이 바로 질료이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세상을 유물론적 관점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 플라톤의 수업을 들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생각을 해내고 스승의 권위에 대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플라톤은 감각이 지식의 원천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은 감각에 기인한다고 했다.

클레어는 그런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자신의 멋진  선배가 생각났다고 한다.









그 선배는 클레어에게 변호사는 진실을 파헤치는 게 아니라 자신을 고용한 고객을 보호하는 거라고 했다.

저자는 그 선배의 그냥 받아들였는데 스스로 생각을 해봐야 했던 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도 스승처럼 이성적인 방안과 목적은 모든 자연과정을 이끌어가는 원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인과성에  관해서는 자신이 스승보다 더 풍부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했다.

어떤 여성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당시의 여론은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읺았냐고 물었다.

요즘도 무슨 말만 하면 막말이니 어쩌니 하면서 자유민주주의국가인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을 못하게 한다.

그 당시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많은 비난이 쏟아졌고 자신의 스승을 배신한 배은망덕한 제자라고 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스승을 사랑하지만 진리를 더 사랑한다고 했다고 한다.

클레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얘기를 듣고 권위에 영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남성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떻게 하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뛰어난 사람들이 될 수 있냐고 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수함이란 일종의 습관이라고 했다.

더 가치 있는 인생을 만드는 방법은 논리학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갈림길에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논리적 사유를 통해 끓임없이 선택하고 결과를 낳는 과정이다.

논리적이지 못하면 잘못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자신에게 불리한 영향을 불러 평생 후회할 수도 있다.

어딴 사람은 선택할 때 빠른 길만 찾아가며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생각에 만족한다.

어떤 사람은 원래 있던 길을 밟아가며 한 걸음씩 다른 사람이 갔던 길을 간다.

우리는 어떤 인생이 더 의미가 있는지 말할 수 없다.

확률로 이야기하자면 논리학을  알고 있는 사람은 확률이 높은 길을 선택한다.

확룰이 높은 일의 경로를 선택해 일을 마무리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간다면 참고할 수 있는 경험이 없어 실패할 확률이 커진다.

자신의 선배들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경험은 한 사람이 특정 시기, 특정 공간에서 자신의 실제 상황에 따라 한 선택의 결과이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어떠한 일에 직면한 시기, 장소, 인물들도 다르다.

그래서 경험을 완전히 복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본질은 복제할 수 있다.

사물의 본질을 인지해야 성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논리학에서 인생의 긍극적인 가치는 단지 생존이 아니라 각성과 사고의 능력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업무  향상을 위해서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이다.

사회적 교류 역시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논리는 대인 관계에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문제를 다른 형식으로 바꾸면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논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클레어는 주변에 논문을 빨리 쓰거나 변호사동료는 새로운 문제나 업무가 생기면 곧 침착하게 단서를 제시하며 하나하나 풀어 갔다.

클레어는 자신이 그들보다 논리적 사고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논리학은 인류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어떠한 사건의 빈틈을 토론하고 사실의 배후에 있는 논리를  연구하는 것이 논리학이다.

우리의 삶 속에 논리학을 활용할 수 있고 인생 곳곳에서 논리학이 필요하다.

클레어는 요즘은 논리적 추리 능력을 키우고 이성적으로 사고해야 사기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인 사유 능력을 활용하면 진위를 판단할 수 있다.

사기꾼들의 사기 행각을 간파하고 확실히 거절하려면 자신의 생각에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클레어는 프란시스 베이컨도 만났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귀납법의 창시자이다.

귀납법은 사물 속에서 공리와 개념을 찾는 합당한 방법이라고 한다.

또한 정확한 사유와 진리 탐구를 위한 중요한 도구이다.

베이컨이 제시한 귀납법은 소거 귀납법이다.

기존의 열거 귀납법은 소수의 예증 증거가 되는 전례가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그 결론은 신뢰성이 떨어지고 상반되는 예증이 나타나면 결론이 뒤집힐 때도 있곤 했다.

베이컨의 소거 귀납법이 더 과학적이라고 한다.

귀납법에서 발전한 불완전 귀납법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불완전 귀납법은 수탉 귀납법이라고 한다.

한 농부의 아내가 닭 열 마리를 키웠다.

농부의 아내는 암탉이 크면 달걀을 얻고 수탉은 백일 정도 기른 후에 잡아 먹을 생각이엇다.

수탉은 첫날 아침에 사료를 먹고 둘째 날 아침에도 사료를 먹었고, 구십구 일 동안 아침마다 사료를 먹었으니 백 일째인 오늘도 사료를 먹겠지라고 생각했다.

하니만 농부의 아내는 백 일째가 되던 날 수탉을 잡는다.

수탉은 구십구 일 동안 사료를 먹은 경험이 있지만 백 일째 되는 날도 사료를 먹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물에서 본질이 아닌 우연적인 것을 없애고 추상적이지만 필연적인 본질을 뽑아낸다.

클레어가 인류 역사상 유명한 철학자들을 차근차근 만나고 그들을 통해 논리에 대해서 눈을 뜨는 과정을 알려주는 소설 형식의 재미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튜브 크리에이터 되기 - 스마트폰 하나로 끝내는
에이럭스 코딩 교육 연구소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엔 텔레비전은 거의 안 보고 유튜브만  본다.

엄마 아는 후배가 유튜브한다고 보라고 하고 나도 로펌에서 인턴같이 한 친구가 유튜브를 하고 있었다.

난  처음에 친한 언니가 유튜브를 보라고 해서 정치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는데 종방뉴스도 재미가 없게 느껴져서 못 보겠다.

패드만 끼고 있고 뭔가 알고 싶으면 유튜브를 켜게  된다.

어떤 유튜버가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법을 배우는데 245만원이 들었다고 해서 그게 뭔데 그런 돈이 드는지 궁금했다.

이 책을 보면 245만원을 버는  것이다.

난  유튜브는 잘 몰랐는데 친한 언니가 6개국어를 하는데 유튜브를 보고 외국어공부를 하거나 경영학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수논객들의  방송을 계속 보라고 해서 관심도 없었는데 보기 시작하니까 재미있었다.

일반뉴스랑 다른 점은 뉴스에서 다루지 않는 얘기들을 해주니까 흥미가 생긴다.

그래서 나도 일본어 영어를 유튜브방송으로 어떻게 공부하는지 찾아 봤다.

전부 공짜라는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친한 언니가 외국어나 외국어문화에 대한 방송을 자신이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는데 처음에는 지지를 못해주고 반대했었다.

얼굴이 공개되는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데 언니도 그런 줄 알았다.

사실 연예인이나 방송에 나와서 얼굴이 공개되는 걸 즐겨하지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이 공개되는 건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그런 걸 즐겨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다.

유튜브방송만 보고 있으니까 관심이 생기고 어떻게 운영이 되고 구성이 되는 건지 궁금했다.

나​도 어떻게 사용하고 계속 봐야 하는 건지 이용방법도  알고 싶었다.

난 ​ 요즘 느끼는게 우리나라방송은 한정적이고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CNN이나 산케이신문을 보면 우리나라 방송이랑 다른 내용들이 많다.

우리나라방송은 한계가 있고 전부 내용이 안 나온다.

유튜브는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고 지구촌, 글로벌한 방송이니까 더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언니는 전 세계를 다녀서 그런지 한국에만 있는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글로벌한 마인드가 있다.

 한국에만 있지만 좁은 시야가 아니라 글로벌한 시야를 갖고 싶다.

유튜브는 그런 면에서 확실히 도움이 된다.









 

난 유튜브만 보는데 1인 미디어이고 공영방송에서는 못 듣거나 접하는 방송을 볼 수 있으니까 좋다.

내가 듣는 방송을 보면 정말 목소리나 발음이 또릿또릿한 사람의 것을 계속 듣기는 한다.

이 책을 보면 내가 즐기는 방송이 어떤지,어떤 방송을 가려 봐야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유튜브의 끌리는 방송은 목소리뿐만 아니라 내용도 중요할 것 같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송을 계속 보는 것이다.

 유튜브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찾아서 봐야 하는지 궁금했다.

이 책의 내용을 잠깐 보면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하다고  한다.

요즘엔 주변 사람들이 전부 유튜브만  본다.

나주변 사람들은 유튜브 이걸 봐라 저걸 보라고 권유도 많이 한다.

볼거는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유튜브의 영향인지 텔레비전은 조금만 재미없거나 내가 원하는 내용이 아니면 바로바로 채널을 돌리거나 꺼버린다.

요즘은 텔레비전을 10분이상 켜고 있지를 않는다.

밥먹을 때 켰다가  채널을 한 번 돌렸다가 그냥 끈다.

재미가 너무 없다.

연예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성형에 실도 너무 많아서 거부감이 든다.

미디어도 내 중심으로 맞추는 것 같다.

과거에는 조금 재미없어도 참고 봤는데 지금은 조금만 사상이나 재미가 없고 안 맞으면 못 참고 끈다.

유튜브는 내가 마음대로 채널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때문에도 푹 빠지는 것 같다.

난 일본잡지를 보고부터는 미장원에 안 가는데 엄마는 미장원에 다니셨다.

코로나19때문에 엄마도 미장원에 못 가시는데 엄마 머리를 땋아 드리고 고데를 해드리는데 유튜브에서 찾아서 배우고 해드린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데 유튜브는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것 같다.

2시간 논스탑 워쉽 송도 대박이다.

기도할 때 틀어 놓으면 딱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나머지 절대 다수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할 뿐이다.

가장 영향력이 큰 동영상 콘텐츠는 일부 미디어만 만들 수 있었다.

촬영 장비, 편집 기술, 통신 설비를 갖추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친구가 방송국 촬영기사였는데 어깨에 메고 다니는 카메라가 정말 무거워 보이고 가격도 정말 비쌌다.

스마트폰과 유튜브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을 허물어 준다.

무겁고 비싼 촬영 장비는 스마트폰이 편집 기술은 앱이, 통신 설비는 유튜브가 대신한다.

이제는 누구라도 대형 미디어의 전유물이었던 동영상 콘텐츠를 쉽게 만들고  확산할 수 있다.



유튜브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초등학생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 포털 사이트 대신 유튜브에서 검색한다.

나도 뭔가 필요하면 유튜브에서 검색을 한다.

인기 유튜버의 인기와 영향력은 어지간한 연예인을 뛰어넘고 유튜버는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이 됐다.

동영상을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 책으로 유튜브를 만들 줄 알게 되면 200만원 넘게 버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려면 정식 구글 게정이 필요하다.

패밀리링크로 만든 계정은 사용 불가하다고 한다.

구글은 만 14세 이상에게만 유튜브 채널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구글 계정에 로그인 후 스마트폰에 설치한 유튜브 앱을 터치해서 메인 화면으로 들어간다.

메인 화면 오른쪽 위에 있는 아이콘을 터치하면 자기 계정 화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계정 화면에서 내 채널을 터치한다.

계정에 등록된 성, 이름이 입력돼 있다.

오른쪽 하단의 채널 만들기를 터치하면 내 채널을 만들 수 있다.

채널 이름을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바꾸고 채널 아이콘을 넣어 본다.

다시 내 계정 화면으로 돌아가서 구글 계정 관리를 터치해서 내 구글 계정 화면으로 들어간다.

개인정보의 이름 부분을 터치한다.

성부분은 비워두고 이름에 원하는 채널 이름을 입력하면 내 채널 이름을 설정할 수 있다.

채널 이름 옆에 조그맣고 동그란 이미지가 있다.

그게 채널 아이콘이다.

처음에는 재미없는 이미지가 올라가 있다.

채널을 꾸미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니 채널에 어울리는 채널 아이콘을 만들어 넣어 본다.

박막례 할머니나 공대생 변승주처럼 본인의 매력을 나타내는 얼굴을 사용한다.

난 정치나 로스쿨, 영어, 일어, 머리땋기 채널을 이용하는데 거기에는 얼굴이 별로 안 들어 간다.

그림이나 캐릭터를 쓰는 경우도 있다.

아이콘이 있는 부분을 터치하면 사진 업로드를 할 수 있다.







그럼 파일을 선택하라는 새 창이 나온다.

여기서 카메라를 선택하면 바로 촬영해서 업로드 할 수 있고 파일을 터치하면 미리 찍어놓은 사진을 찾아 업로드할 수 있다.

원하는 이미지를 골라 업로드하고 사진에서 정사각형 모양으로 원하는 부분을 설정한다.

꼭 사진 전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본인의 개성을 잘 나타내고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서 채널아이콘으로 등록할 수 있다.

설정을 다 했으면 완료를 터치한다.

채널 설명에 채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기록한다.

내 채널 화면으로 들어가서 채널 이름 옆의 톱니바퀴아이콘을 터치한다.

설명 추가라는 부분이 나타난다.

설명 추가 옆의 연필 모양아이콘을 터치한다.

새 창에 내 채널 설명을 자유롭게 입력한다.

처음 내 채널을 방문한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문구를 적어본다.

영상이나 사진을 편집할 때는 키네마스터로 하는데 엄마학교에 영화감독이 와서 그걸 가르쳐 준 적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으려면 삼각대나 상자로 고정을 하면 된다.

기본 카메라말고도 카메라 앱들이 많다.

스마트폰의 녹화 버튼을 터치한다.

미리 정한 위치로 돌아간다.

서둘러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영상의 앞부분을 잘라내면 된다.

영상을 찍을 때 미리 대본을 만들어 놓는다.

스마트폰의 녹화 종료버튼을 터치한다.

편집할 때는 키네마스터 앱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준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성되면 미디어아이콘을 터치하여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타임라인으로 불러온다.

편집하고 싶은 부분을 손으로 살짝 터치하면 노란색 테두리가 생기면서 오른쪽에 여러 가지 아이콘이 보인다.

가위모양 아이콘이 나오면 영상을 절단하거나 잘라낼 수 있다.

스피커 모양 아이콘을 터치하면 음량 조절도 할 수 있다.

얼굴이 나오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영상을 찍고 목소리를 따로 녹음해서 편집하면 된다.

자막 넣는 것도 키네마스터로 하면 되는데 레이어 텍스트 아이콘을 터치해서 단어나 문장을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터치한다.

난 유튜브 만드는 법을 알았으니까 245백만원 넘게 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