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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열망하다 - 하나님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일상
R. T. 켄달 지음, 손정훈 옮김 / 두란노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하나님의 충만에 잠긴다는 얘기가 가슴 떨린다.
나도 하나님을 열망한다.
하나님을 열망하면 하나님을 받는다.
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도 더더더더더더더더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고 하나님의 임재를 더 깊이 경험하고 싶다.
대학에 들어가서 마틴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 필립 얀시, 고든 맥도날드, 팀 켈러, 티머시, 릭 워렌, 오스왈드 챔버스, 존 비비어, 헨리 나우웬, 로버트 멍어, 유진 피터슨, 조나단 에드워드책들을 무진장 읽었다.
지금 찰스 스펄전의 책을 읽고 있는데 좀 옛날스러운 어투도 있다.
오직 원하는 것은 주님이라고 되뇌이는 것은 그렇게 도움이 안되고 주님의 뜻을 받들어야지 그 분을 깊이 경험할 수 있다.
저자는 시험도 기쁨도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한다.
성경을 계속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하니까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마음가짐을 주는 건 전부 하나님이 허락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기쁨과 시험을 전부 조율하시는 분이다.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에 하나님의 다른 뜻을 깨달았다면 그것을 추구하라고 한다.
성경을 보면 끝까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부분도 있다.
지금보다 하나님을 두 배나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 같다.
난 20살이 넘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음성을 듣기 시작했다.
직접 듣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말씀을 하셨다.
다윗이 하나님이 침묵하셔서 하나님께 울부짓었다는 얘기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점점 자주 듣기 시작하다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하나님의 음성이 그립다.
그래서 요즘에는 하루에 3시간 이상 기도를 한적도 있다.
매일 그렇게는 기도를 못한다.
하루중에도 계속 하나님께 얘기를 걸기는하지만말이다.
내가 아팠던게 유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고 나서 더 하나님의 음성을 엄청나게 자주 듣는다.
하나님도 나랑 교제하고 수다를 떨고 싶으신 거다.
나도 하나님이 산타처럼 뭔가를 해줄 때 더 사랑할 때도 있었지만 요즘엔 하나님이 자신을 그냥 존재자체로 사랑해주시기를 원한다는 걸 알고 성경통독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 생각과 그분의 비밀과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걸 알게 된다.
난 언제나 하나님을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덛 알고 싶고 그분을 갈망한다.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분은 너무너무 매력적이고 멋지고 대단하고 세계 최고의 권력자이고 능력자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스러움 그 자체이다.
나도 성경을 계속 읽으면서 다니엘서를 보면 하나님이 지혜나 생각이나 마음을 주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성경의 곳곳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생각이나 마음을 주신다고 할 때가 많다.
성경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는 것도 그의 나라는 어떤 것이고 의는 또 무엇이고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건지 항상 궁금했다.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 여러가지를 요구하기보다는 긍휼을 먼저 구하기 원하신다고 한다.
긍휼을 가장 먼저 바라는 이유는 성화된 사람이 많이 없기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먼저 그분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
기도를 끓임없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응답받지 못하고 있는 기도 제목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런 기도제목이 꼭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무언가 필요할 때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 들어서이다.
나도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제일 싫은데 하나님도 그럴 것 같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항상 자신을 알아주시기를 바라고 질투가 심하시다고 한다.
그런 분을 이용하려고 하면 그런 이용을 받아주시겠는가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존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분께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에게 우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분이 필요해서이다.
우리가 아쉬운 것이다.
질투가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와 찬양을 받기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 삶에서 그분의 뜻이 실현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유일하시면 진실하시고 하늘과 땅과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절대자이심을 우리가 인정하기를 바라신다.
나는 하나님이 그런 절대자라는 걸 인정한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를 회복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고 긍휼을 구하게 된다.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실 수도 있고 그리 아니하실 수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공의는 성취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일에 곧장 뛰어드시도록 만들 수 없음을 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은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고 하셨다.
그럼 전부 하나님 마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질투하시는 성품과 같이 그분의 속성 안에 내재되어 있다.
이것이 그분의 영광의 핵심이며 그분의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마음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래도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기대속에서 기도를 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나병 환자는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나아가 주님이 저를 치유해 주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원하시기만 하면 주님이 저를 낫게 할 수 있음을 믿는다고 했다.
우리도 나병환자처럼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시고 우리가 간청할 때 긍휼을 베풀고 싶어 하신다.
그러한 간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위엄을 높여 드릴 뿐 아니라 그분에 대한 우리의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경을 표현한다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 같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그 부분을 꼭 원하시는 것 같았다.

난 매일 기도를 하고 있지만 항상 기도를 잘하고 싶다.
잘하는 기도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기쁜 기도와 나도 만족감이 있는 기도이다.
상호보완이 잘 된 기도를 하고 싶달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보면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전 세계 위에 높임을 받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유명해지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도 유명해지시는 걸 좋아하시는구나,,,,
난 유명해지는 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또 아닌가보다.
난 학교에 다닐 때 난 모르는 애들이 날 알고 있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았는데 그게 좋은 현상이었던거다.
하나님이 그분의 기도 제목을 우선순위로 삼았다면 하나님의 기도제목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기도 제목을 올려 드리기전에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존중하기 원하신다.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성경의 구약을 보면 질투하신다는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그래서 나도 지기 싫어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질투를 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을 깊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그분께 집중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난 항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부분이 명확하지가 않았다.
그 부분은 예수님이 상산설교를 하실 때 언급을 하신다.
그 설교는 성령론에 해당한다.
천국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성령님이 다스리는 영역이다.
천국에 거하는 것은 더 이상 근심하지 않으시는 성령님으로 충일한 곳에 사는 것이다.
충일하다는 것은 가득차서 넘친다는 뜻이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근심하지 않으며 소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시키겠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주장이라고 한다.
지난날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내겠다는 약속이다.
도덕법(십계명)과 의식법(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에 관한 법)과 민법(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다스릴지)에 관한 율법들을 모두 끝가지 지키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그 사명을 완벽하게 성취하셨다.
주님이 다 이루었다는 것은 자신이 하겠다고 약속한 것들을 정확히 이루었음을 선언하는 승리의 선포였다.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다는 것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음욕을 품지 않으며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것은 근심하지 않는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내면적인 의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필요보다 하나님의 관심사를 우선시한다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의 왕국이다.
근심하지 않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구하기보다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삼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하나님 자체를 더깊이 경험하기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하나님께 더 받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될 것인지 자기선택이다.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기를 원하고 그분이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신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것 자체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게 쉽지는 않다.
무엇이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지, 어떻게 하면 성령님이 우리 속에 근심하시지 않게 하실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분의 길을 알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줄지 항상 고민하는 것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바리새인들의 의를 넘어서고 산상설교 말씀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하나님 나라이 진정한 의미를 꼭 붙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열망한다는 것은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우선시하고 그분이 좋아하시는 것에 대해서 계속 알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려 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임재에 더 큰 배고픔과 갈망을 갖게 만든다.
나도 성경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을 수밖에 없다.
계속 읽고 읽어도 하나님에 대해서 새로운 게 또 있고 하나님에 대해서 또 뭔가를 알게 되고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중독성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배고픔과 갈망은 하나님이 얼마나 실제적인 분인지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주셨다.
신약은 더 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단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정보를 안다는 것인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스릴이 넘친다.
난 그게 뭔지 안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더 많이 경험하도록 기록되어 있다.
만약 하나님에 대한 더 큰 임재에 목이 마르다면 그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나도 그럼 하나님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거네,,,,
그분은 충만히 받게 되리라는 자신의 약속을 지킬 것도 아니면서 그저 나를 놀리거나 헛된 희망을 주어서 미혹하게 하거나 그저 갈증만 나게 하려고 그런 열망을 나의 마음에 주신 것이 아니다.
다행이다.
내가 하나님을 너무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나를 너무너무 원하신다는 것에 기쁨이 벅차 오른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급함과 배고픔, 목마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런 열망은 사탄이나 인간이 집어넣어 줄 수 있는게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그분의 더 깊은 임재를 추구할 수 없다.
내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내가 그런 열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의 삶에 개입하신다는 증거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섭리하고 계시니 난 축하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숨쉬는 공기보다 더 실질적이고 날마다 보는 자연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계신다.
두 눈도 부릅뜨고 나를 지켜 보시고 계시지,,,,부담스럽게말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실재하신다는 사실과 성경이 진실되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일도 없다.
난 매일 흥분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책을 읽고 내가 얼마나 액티브티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갑자기 행복해진다.
이 책을 기도시간에 먼저 읽고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고 하나님을 우선시하는 기도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도를 갖게 하는 이 책은 그래서 유익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