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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연애를 해라 - 자유롭고, 용감하고, 아름다운 딸에게
류수연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9년 11월
평점 :

엄마가 딸에게 얘기해주는 연애라면 가장 믿을만한 조언같다.
연애,사랑,결혼에 대한 책을 92권을 읽었다.
그래도 실전 연애가 한 번도 없으니까 그냥 이론에만 그친다.
기독교신앙서적은 기도를 하고 자신을 가꾸고 하나님을 더 사랑해라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주변의 실제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만나고 있어도 힘들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난 책을 많이 읽어서 책대로 매너나 에티켓을 배워서 그런지 주변의 남자들에게 교양있게 대하고 책대로 하니까 대시를 받기는 하지만 만남을 이끌어 가는 흥미가 나에게는 없다.
사실 아직까지도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도 못 만났다.
하지만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나의 인연과 연인은 절대로 있다는 믿음이다.
어떤 책에서 괜찮은 사람은 전부 어디에 있을까라는 소제목이 있어서 보니까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누군가를 만날려고 하는것도 정말 적극적이어야 하면서 추하지 않으면서 우아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는 들을 수가 없다.
책을 통해서 연애 고민을 해결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 같다.
이 책을 보면 연애에 대한 답답한 마음들이 해결될 것 같다.
내년에는 나의 짝을 간절히 찾고 만나고 싶다.
서로 알아 보고 끌리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
연애나 키스는 초콜렛같다고 책에서 읽었는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든다.
코의 위치나 귀에서 종소리가 난다는데 진짜인지 의심이 자꾸 든다.
책에서는 앵두를 입술에 갖다대는 느낌이 키스랑 같다고 하는데 난 키스를 하게 되면 그 느낌이 어떤지 가장 먼저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연애는 힘들지만 아름답다라고 저자가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아이러니와 반전, 패러독스가 공존하는 것 같다.
엄마친구들을 만나보면 남편욕을 한다고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데 욕도 사랑의 일종인지도 궁금하다.
저자는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점들을 알려주니까 필히 알아둬야 할 것 같다.
저자의 얘기처럼 동화속의 왕자같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저자가 연애력이라고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연애도 어떤 능력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연애를 하면 어떨까 어떤 느낌일까라는 궁금증을 이 책으로 조금 해소하고 싶다.
어요,,
저자는 사랑에 빠지는 것은 8초, 첫눈에 반하는 것은 외모와 상관 없다는 기적을 몸소 체험했다.
그 기적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줬으면 좋았겠든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노력 없이는 그 기적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저자는 인하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인천문화재단 이사, 대중서사학회 연구이사 겸 로맨스 서사 연구팀장이며, 인문학 협동조합의 일원으로 네이버연애, 결혼판에 ‘류수연의 언로맨틱 책방’을 연재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을 원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서로 주고받는 사랑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관계는 연애다.
하지만 연애를 둘러싼 오늘날의 풍경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지난 연애에서 얻은 또 다른 기쁨은 ‘연애’라는 것이 단순히 남녀관계만 뜻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누구보다 스스로를 아끼는 나 자신과의 연애, 일과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방법을 찾는 연애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이 전개하는 모든 것이 연애 그 자체이며 연애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봄날엔’ 세상에 온통 사랑의 열기가 가득하다. 저마다 자랑하듯, 저마다 뽐내듯이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나도, 사랑을 하지 아니하고는 못 견디겠다. 용혜원 시인의 <봄날엔>의 일부다.
꽃이 피고 날이 따뜻해질수록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고,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진다.
흔히 봄을 탄다고 하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지는 시기가 온다.
봄때가 되면 어김없이 거리에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울려 퍼진다.
흐트러진 벚나무와 따뜻한 바람, 파란 하늘과 함께 이 노래를 들으면 반짝이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겐 노래는 소음과도 같아서 외출해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이 들어도 집에서는 절대로 듣지 않는다.
클래식도 책이나 공부를 하는데 방해가 되면 끈다.
‘벚꽃 엔딩’처럼 달달한 연애가 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봄이 좋냐’처럼 연애 따위는 필요 없는 사람도 있다.
“내 인생에 연애가 가장 거지 같았어요.”라는 시의 한 구절처럼 모두의 연애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격렬하게 싸우며 서로에게 상처주고 처절하게 버림받거나 가루가 날릴 정도로 자존감이 분쇄되는 연애도 있다.
때로는 연인의 범위를 넘어 엄마이자 누나이자 여자 친구가 되어주길 원하는 상대의 연애도 있다.

이런 연애를 마친 사람에게 사랑은 지긋지긋한 감정 노동에 불과하다.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에서 남자 주인공 공상스는 사랑이나 연애도 일종의 노동일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두 삶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과 착취를 짚어내며 연애의 민낯을 보여준다.
우리는 연애를 통해 몰랐던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랑에 실패한 다음부터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된다.
우리는 연애가 늘 완벽할 수는 없으며, 모든 인간이 연애에 최적화된 것은 아니다.
연애의 상처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쉽게 좌절하고 상처받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럴 때는 인생에서 연애라는 카테고리를 잠시 삭제하거나 보이지 않게 숨겨놓는 결정도 필요하다.
연애를 버리는 용기는 시간이 지나 또다시 뜨거운 열기와 불길을 퍼부어도 끄떡하지 않을 튼튼한 방화복을 입게 되면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있는 용기로 바뀔 수 있으니 말이다.
연애는 두 사람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연애에서 ‘같이의 가치’를 찾아 행복한 사람도 있지만, 혼자 노력하고 헌신하는 연애에 지친 사람도 많다.
이들에게 연애는 기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미루는 버거움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저마다의 이유로 연애를 버리고 홀로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둘이 함께라서 행복한 사람도 있지만 오롯이 혼자일 수 있어서 행복한 사람도 많다.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커질수록 앞으로 만나게 될 연애와 인생 등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 인생 안에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
연애는 그 다음이다.
혼밥, 혼영, 혼행이 요즘은 참 흔하다.
카페나 식당, 영화관에서 혼자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세계 곳곳의 여행지에도 혼자 온 여행자들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싱글 웨딩을 선택한다고 한다.
연애가 아니어도 ‘홀로’ 충만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혼자 연애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
연애는 두 사람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해야 성립할 수 있는 관계이니 혼자 하는 연애는 당연히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연애는 우리가 맺는 수많은 관계의 일부다.
그것은 절대적이지 않다.
이 관계는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연애 중점을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연애는 어려운 시험이 된다.
연애의 중점을 나에게 두면 서로의 삶을 높이는 건강한 만남을 지속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나와 연애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지금 연애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면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연애하는 행복을’ 만끽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주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됐다면,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동화 속 사랑은 발로 차버려야 한다.
신델레라는 부자인 남자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다린다.
스스로 구해야 하는데말이다.
인어공주도 보지말아야 한다.
만화 속 노래는 정말 훌륭하지만, 인어공주처럼 남자때문에 목소리를 포기해서는 절대 안된다.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는 디즈니의 소동적인 캐릭터에 반대해야 한다.
동화는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공주는 왕자를 만나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위험은 이겨내고, 문제는 해결됐다.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며 거의 모든 동화가 그들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저자는 아내로 살면서 동화의 진짜 모습이 자기가 알던 것과 너무도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동화에서 왕자의 키스는 행복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다.
그런데 이 한 장면을 위해 많은 폭력과 차별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멀리서보면 아름다운 동화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너무 무서운 세계였다.
과연 동화 속 여성들은 정말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을까,,,,
백설 공주는 성에서 쫓겨나 자신의 힘이 아닌 일곱 난쟁이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
왕비의 계략으로 독사과가 목에 걸린 백설공주를 구해주는 것은 다른 나라의 왕자다.
신데렐라는 새 어머니와 언니들의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살다가 요정이 도와준 덕분에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는 왕자와 결혼한다.
동화 속 사랑이 끔찍한 또 하나의 이유는 동화의 세계가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훨씬 관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게 상당히 마음에 안든다.
<미녀와 야수>를 보면 저주에 걸려 야수로 변하기 전 왕자는 한마디로 폭군이었다.
높은 신분과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는 이유로 교만했고, 타인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난폭하고 잔인한 인물이었다.
그로 인해 마녀의 저주에 걸려 야수가 되었다.
행복은 오직 불행 위에서만 빛난다.
우리가 아는 동화 속 여주인공은 늘 착하고 예쁘다.
그녀들은 세상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면서도 무조건 착하고 예쁜 모습만 보여준다.
동화를 읽는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강요받으며 세뇌당하고 있다.
동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탈을 쓴 이야기에서 남자의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었고, 모험은 그들만이 독차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반면 여자의 잘못은 항상 처벌의 대상이었으며, 모험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름답고 즐거운 일만 가득한 동화의 세계지만, 그 시스템을 거부한 여자에게는 원하는 것을 얻거나 삶을 바꿀 시간과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계모의 구박을 견디고, 원치 않음에도 야수와 함께 살며, 예쁘다는 이유로 성에서 쫓겨나는 불행을 마냥 참아야만 비로소 그들을 구해줄 구원이 다가온다.
게다가 그 구원은 왕자 혹은 멋진 남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이것을 과연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이름답게 포장된 동화의 판타지를 걷어낸 현실은 너무도 끔찍하다.
우리의 연애는 동화에서 벗어나 현실에 맞는 사랑을 해야 한다.
동화는 그저 악몽에 불과하다.
만일 지금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을 만큼 불행함을 의미한다.
행복한 현실에서 구원을 바라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인내하고 순종한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드라마틱한 구원이 오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연애가 마음의 정을 쌓은 다음 몸의 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여기던 것이 요즘에는 몸정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덕분에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보던 남녀관계가 이제는 우리나라 영화나 TV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최소한 요즘 로맨스에서는 여행가서 손만 꼭 잡고 잤다는 순결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면 있고 싶고, 함께하면 맞잡고 싶고, 그 다음에는 서로의 몸을 나누고 싶은 것이 본능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몸을 나누는 행위는 사랑을 확인하는 것에 가깝다.
사랑의 시작이 감정을 교환하는 ‘설렘’ 이라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순간은 감정이 육체로 이어지는 떨림이다.
고백은 받을 수도 있고, 할 수도 있다.
고백은 연애의 출발점이자 상대와 연애라는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미션’이다.
고백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백은 상대의 마음이라는 결과을 얻어야 하는 미션이지만 동시에 사랑을 주도하는 멋진 권리이기도 하다.
자신이 애정을 쏟을 대상을 스스로 선택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션에는 ‘거절’이라는 치명적인 리스크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고백을 결심하는 자기 감정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다.
그런데 고백을 하는 쪽은 남자, 고백을 받는 쪽은 여자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고백은 할 수 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여자와 남자와 구분은 필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그 감정을 쏟을 대상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시선으로 고백을 바라봐야 한다.
고백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사람들은 성공이냐 실패나라는 결과의 확인 이전에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인 행동을 한 것이다.
그 과정만으로도 자존감이 높아진다.
진심보다 강렬한 단어는 없다.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고백의 주체가 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남자가 먼저 고백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고백이라는 단어를 앞두면 한없이 망설이게 된다.
용기를 내려해도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고백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래서 일까,,고백을 앞둔 사람들은 고백의 순간을 계속해서 연습한다.
좀 더 근사하게 상대의 마음을 흔들고 싶기도 하고, 만일 상대가 거절했을 대 조금이나마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싶어 한다.
저자는 연애를 시작한 딸을 보면서 실제로 주변을 보면 “저렇게 연애를 하면 참 행복 하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매번 상처 받으면서도 퍼주기만 하는 연애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커플도 있다.
유독 퍼 주는 연애를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매번 “이 번만은 다를 꺼야!”를 외치면서 어떻게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주변에서 말려도 꿋꿋하게 퍼주는 그 사랑의 끝은 만신창이다.
혹시 지금 상대에게 무조건 맞춰주는 연애를 하고 있는거라면 착한 콤플렉스에 걸린거다.
주로 착한 사람 콤플레스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행동이다.
문제는 착한 사람 콤플레스가 상대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이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고 상대에게 모두 맞춰주기 때문에 자신을 배려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착한 사람 콤플레스에 빠진 사람은 늘 배려하기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서 배려와 헌신이 부담스럽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 배려하고 퍼주는 사람은 자신이 주는 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상처받는다.
눈만 마추치면 티격태격 싸우는 커플을 보면 대체 왜 만날까 싶겠지만, 의외로 자주 다투는 커플일수록 사이가 좋은 경우가 많다.
서로에 대해 비아냥거리거나 신체적인 폭력이 오가는 게 아니라면 다툼이 두 사람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잘 싸우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관계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조셉 그레니는 싸우지 않는 커플보다 싸우는 커플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싸우지 않는 커플은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서운하거나 화가 나도 참거나 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두 사람 중 한명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면 이별로 이어지기 쉽다고 한다.
따라서 행복한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연인과 감정이 아닌 이성에 따라 논리적으로 싸우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애안개속에는 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조금 더 옅어진 안개속에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