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인생을 바꾸는가 - 타고난 운명에서 원하는 삶으로
조한규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성공욕이 강했는데 지금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도 언젠가는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고 저자가 성공의 습관들에 대해서 철학서부터 뇌과학까지 전부 연구를 했다고 하니까 더 읽고 싶어져서 읽었다.

그냥 아무 준비나 대비없이 성공을 하면 나중에는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들이 되었다.

요즘에는 청문회에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성공을 하고 싶어서 저자의 책을 읽고 싶었다.

인생을 바꾸는 건 깊은 결심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거 보니까 내적인 변화부터 필요한 것 같다.

다산 정약용얘기를 보면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18년을 했다고 하는데 답답하거나 많은 인내가 필요했을 것 같다.

그와중에도 책을 500권을 썼다고 하는데 어떤 마음이나 생각으로 그 힘든 생활을 견뎠는지 대단한 것 같다.

범인이 천재가 되었다고 하는데 누구 얘기인지 정말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보면 절대한계나 절대불가능한 상황을 역전시킨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그들의 방법을 나에게도 적용을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저자가 기자출신이라고 하니까 객관적이고 편향적이지 않은 책을 쓴 것 같다.

성공을 할려고 하면 소식을 해야 하는 것 같은데 나 항상 과식, 폭식을 하는데 왜 소식을 해야 하고 하는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나같은 경우에는 빨리 성공이나 성취를 못하니까 먹는걸로 해소를 많이 시키는 것 같다.

그래서 과식을 하고 뇌의 속임수나 감정의 속임수에 속아서 많이 먹는 것 같다.

차와 음악은 또 뭔지 궁금해서 읽었다.

나도 클래식음악을 많이 듣고 커피는 중독이 되어 있다.

남자없이 살아도 커피없이는 못 산다.

공부나 책은 많이 읽고 있고 목표도 있기는 하지만 그 강도가 세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정말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보고 싶었다.

성공하거나 성취를 하면 인생의 또 다른 의미나 기쁨, 행복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엘리트범죄자는 절대로 되면 안되는 것 같다.

저자는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아는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저자는 국정 청문회에서  대법원장까지 사찰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공화국이 민주주의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한국적인 민주주의의 오류같다.

나도  아빠께서 보증을  서는 바람에 집에 있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로스쿨 공부를 했다.

 아빠께서 억울하게 사기 당하는 것과 고시원의 환경의 문제로 건강에 문제가 왔다.

감기처럼 금방 나을줄 알았던 갑산기능 항진증이 9가지 합병증이 와서 거의 10년이 걸려서 나았다. 

 동네 병원에서는 자기는 고칠 수 없으니까 세브란스에 가보라고 했고 세브란스병원 의사는 너무 늦게 와서 힘들다고 했다.

  그 당시 나와 비슷한 상태의 감독작가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의사들은 고치기 힘들다는 얘기는 환자로서는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70이상 병원과  엄마의 많은 노력으로 10여년만에 완치의 판정을 받았다.

정말 죽을 힘을 다해서 살기 위해 다양한 치료와 계속 집에 누워서 독서와 공부를 했다. 

 엄마가 너무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엄마는 희망과 목적이 없다면 무능해 진다고 하면서 절대로 무능하게 생각 없이 누워만 있으면 안되다는 말을 하셨다.

처음에 병명을 확진 받았을 때 나는 금방 나아서 성공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나의 생각으로 그치고 긴 시간을 다 빼앗기고 말았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서 한숨만 나온다.

어떤 사람은 생명을 걸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노력없이 어떤 게이트에 들어 가면 되고 돈없는 부모를 원망하라고 하면서 말을 타고 대학을 골라서 들어 간다.

 저자는 여러 번의 퇴사의 스트레스와 많은 업무의 과로로 건강의 문제가 왔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쓰러졌지만 아무런 병명도 없었다.

아직도 이 세상에서 할일이 많이 남아서 인지 신의 도움인지 아무튼 기적에 각까운 일이었다.

저자가 퇴사를 세번 당한 것은 견제 세력이 있고 오히려 능력이 있어서 인 것 같다.

저자는 아내의 말을 듣고 오대산에 들어 가서 몸과 마음을 쉬기로 했다.

저자는 오대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자리를 내어 주며 '여기서 절을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어제까지 절을 한 사람의 아들도 고시에 합격했다고 했다. 저자는 속으로 웃었다.

 절을 한다고 소원이 이뤄지나, 열심히 일을 해도 이렇게 잘리는데' 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민주국가인데 저자처럼 옳게 하면 퇴사를 당하고 밀리는 옛날 어떤 시대와 비슷한 행태가 나타난다.

알아도 모른척 똑똑해도 모자라는듯 살아야 편했던 시대가 있다.

  저자는 여러 사건을 국민들이 알 수 있게 바로 전한 댓가로 억울하게 사퇴 압력에 시달리며, 퇴직금이나 위로금 조차도 없었는데 오히려 거액의 위로금을 받았다는 소문만 나돌았다고 한다.

저자 같은 언론인에게도 이런 억울한 일이 일어난다면  연약한 서민들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이 그런 일이 많이 일어 날 것 같다.

우리 아빠도 학교에서 총장의 비리를 많이 안다고  한푼도 못받고 쫓겨나서 지금 10년째 법정 투쟁을 하고 있다.

저자는 투쟁을 해서 일부 받았다고 하니까   다행이다.

법은 어려운 사람에게는 공평하지 않고 법위에 갑과 권력이 있는 것 같다.

저자도 그런 처절한 일들을 겪고 아픔과 좌절 있어서  이렇게 좋은 책이 나온 것 같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힘든 상황을 벗어 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세종은 같은 책을 100번을 읽었다.

난 한 번 읽은 책은 두 번 이상 못 읽겠는데 이해와 공감이 잘 가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책이 많이 없어서 반복적으로 읽은 것인지 책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조선의 왕들은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을 받고 엘리트교육을 받았다.

조선의 왕들 중에 독서를 가장 많이 했던 왕은 단연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잠을 안자고 책만 읽어서 대신들이 걱정을 했다고 한다.

태종이 셋째 왕자인 충녕을 세자로 책봉한 것도 그가 책을 즐겨 읽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태종의 말이다.

충녕이 병들었을 때조차 독서를 멈추지 않자 내시에게 책을 모두 거둬오게 했던 태종이지만, 결국 그런 충녕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원래 문제가 있던 양녕 다음으로 왕위를 계승할 아들은 둘째 효령이었다.

그럼에도 셋째, 충녕이 세자로 책봉돼 왕위를 이은 것은 독서가 가장 큰 요인이었다.

충녕은 독서로 인생을 바꿔 왕위에 오른 셈이다.

인생을 바꾸는 것은 독서인 것이다.

식사를 할 때도 책을 좌우에 펼쳐 놓고 읽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책을 읽었다고 한다.

옛날 임금들의 화장실은 푸세식이었는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화장실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그렇게 불편하지 않은 구조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세종은 한 권의책을 100번 이상 읽었을까?

그처럼 천재에 가깝고 총명한 인물이 두 세 번 읽으면 뜻을 이해할 터인데, 무슨 연유로 그렇게나 많이 읽었을까?

 세종이 이룬 업적을 이해하면 대강이나마 그 배경을 추론 할 수 있다.

세종이 재위 32년 동안 이룬 업적은 후대 왕들의 업적을 합친 것을 능가할 정도로 방대하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를 양성했고, 유교정치와 기반이 되는 의려와 제도를 정비했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등 일부 신하들이 완강히 반대했지만 세종은 최항, 박팽년,신숙주, 성상문, 이선로, 이개등의 보좌를 얻어서 한글 28자를 창제했다.

 그렇다면 세종은 과연 훈민정음 창제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을까?

모방없는 창조는 없는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여러가지 기원설이 있다.

인도 문자인 법자설, 몽고자설, 상형설, 고전설, 오행성조선의 창살문에서 한글을 생각해냈다는 창살문설등이 있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단지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의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세종이 주자의 독서법에 따라 한 권을 되풀이 해서 읽다 보니 순간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는 국정운영에 관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있다고 한다.

그런 순간이 올 때가 책을 100번 정도 읽었을 때라고 한다.

되풀이해서 책을 읽으면 잡 생각이 끓어지면서 몰입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반복해서 읽다보면 문자에 감춰진 의미가 홀연히 떠오른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내용이나 행간을 잘 아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책을 읽어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

저자가 책을 집필한 본래의 생각도 떠오른다.

독서를 반복해서 하다보면  순간에 사람들도 생각나고 아이디어도 솟구친다.

새로운 생각이 온몸을 전율케 한다.

그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생각을 이어가다보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게 되고 세종이 남긴 저 방대한 유산은 이렇게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창조 독서다.

창조는 독서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되풀이 해서 책을 읽게 되면 뇌의 시냅스 변화가 바라는 신경 전달 물질에 의해 억제돼 명상 때와 같은 몰입 현상이 나타난다.

세종이 100번 이상 읽기가 조선의 운명을 바꾼셈이다.

세종 때 제왕학과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문화가 크게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세종의 독서습관은 창조독서의 가장  모범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역사는 인간에 의해 전개 된다.

개개인이 모여서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역사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자연이 아닌 인간이다.

특히 종교와 철학을 이끌어온 4대 성인과 위대한 철학자등, 그 중에서도 동양의 유학과 서양의 그리스 철학이 역사 발전을 견인할 뿐만 아니라 나라와 개인의 운명을 개선하는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교육기관이 생겨났다.

공부 즉 교육은 역사 뿐 아니라 인생을 바꾸는 휼륭한 방법이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인류역사에서 교육이 그토록 강조했던 이유는 교육을 입신 양명의 첩경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낼려고 한다.

 단지 양질의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장래에 출세 할 가능성이 높은 친구들을 사귀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폐단도 있지만, 학벌이 자녀의 인생을 바꾸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학벌사회가 존재한다.

직하란 직문의 아래라는 뜻이다.

제 나라 위왕은 이 곳에 많은 학자들을 유치했다.

정치적인 안전을 보장해주고 이에 잘 맞는 사회적 신분을 제공했다.

상대부라는 칭호를 주고 큰 집을 제공하는 등 후하게 대접하며, 강의와 토론, 집필에 몰두하게 했다.

심지어 노예 출신이었던 순우곤을 초대해 좨주로 삼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좨주라는 단어는 처음 들었다.

관직명이라고 한다.

그는 핵심 참모로 제 나라를 발전 시켰고, 기원전 370년경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직하 학궁이 학문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현대 대학의 원형인 플리톤의 아카데미는 단순히 교육만 하는 곳은 아니었고 연구 활동도 했다.

 특히 수학과, 천문학이 유명했다.

강봉수씨는 73세에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되풀이'와 '몰입'의 효과 덕분이다.

김성희씨는 50세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4년6개월동안 영어영문학 석,박사과정에서 치열하게 공부했다.

결코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배운 영어가 영국에서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태영씨는 여성인권 신장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가정법률상담소를 설립해 가정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구제했다.

도올씨 처럼 평생공부로 뇌신경세포를 끓임없이 자극해 커넥톰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하고 익숙한 공부보다 인문학, 수학, 물리학과 같은 어려운 공부가 효과적이다.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하는 동안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인생,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생을 바꾸는데는 명상, 운동 , 목표, 소식, 우리는 다 그때그때 잘 엮어 가면서 공부와 독서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엄마의 극성이면 극성 아니면 나 자신이 공부와 독서를 좋아해서 죽을 것 같은 상황속에서도 책만 읽었다.

우리 엄마도 아빠가 학교에서 밀려나는 바람에 박사 과정 3학기 차에 휴학을 하셨다.

 직원 가족 장학금을 받지 못해서이다. 

엄마처럼 만학도로 공부하는 것이 이 책대로라면 정말 올바른 삶인 것 같아서 위로를 받는다.

나도 영문학, 물리학, 경영학을 전공하고 이제 법학을 공부할려고 한다.

 Y대학 로스쿨에 가보니 의사, 한의사도 로스쿨에 많이 도전하는것을 보면서 나의 선택이 탁월하다는것을 생각하며 아픈 시간으로 너무 늦어진 것이 저자의 책으로 보상받는 방법이 무억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1장을 보면 운에 기대지 않는 삶, 2장은 독서, 3장은 명상, 4장은 소식, 5장은 차와 음악, 6장은 공부, 7장은 목표, 8장은 적선에 대해서 나온다.

나도 이 책을 읽고 엄마도 읽었는데 성경책 버금가는 훌륭한 책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여러 번 읽는 것을 안 좋아해도 이 책은 여러 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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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최강 공부법 - 영어 실력 제로에서 하버드 의대에 합격하고 6개월 만에 보스턴 대학교 MBA에 입학한 저자가 알려주는
이노마타 다케노리 지음, 조소영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하버드 최강 공부법


내가 정말 바라는 인간상이다.

로스쿨시험을보러 가도 회계사, 한의사, 의사, 세무사 가 정말 많았다.

이들은 점수가 좀 떨어져도 메리트가 있어서 그런지 더 잘 합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건강하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이고 보상인 것 같다.

이 책을 쓴 저자도 그런 사람같다.

사실 하버드의대만 가기도 어려운데 MBA도 땄으니까 MBA출신의 의사니까 더 일할 것들도 많고 취직도 잘 될 것 같다.

회계사출신의 변호사, 의사출신의 변호이면 메리트가 더 붙는게 맞는 것 같다.

소송을 할 때 의료소송을 할 때는 의사출신들이 훨씬 유리하고 잘 아는 것 같다.

나도 영문학, 물리학, 경영학을 공부하기는 했는데 사고관이나 세계관이 유연하다는 거 말고는 아직은 별 메리트가 없고 포텐셜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중국어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자를 어떻게 외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저자가 외국어도 잘 마스터했다고 하니까 정말 읽고 싶어서 읽었다.

길에서 중국사람들에게 말을 시키면 정말 좋아한다.

중국어자격증도 따서 스펙을 올릴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아서 저자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읽었다.

한정된 시간안에서 최대의 성과를 낸다는게 너무 부럽고 나도 해내고 싶은데 지금 하는 일을 제대로 하면서 미래를 잘 준비하는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저자가 해냈다고 하니까 희망을 가지고 그냥 해냈구나이지만 실제로는 정말 힘든거다.

100퍼센트 집중을 하기가 또 힘들다.

책을 볼려고 앉으면 엄마가 뭐라고 했던거 텔레비전에서 봤던 영상들이 왔다갔다한다.

시간기술, 공부기술에 대해서 정말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공부법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니까 확실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공부법이 72가지가 있다는데 뭐가 있는지 정말정말 궁금했다.

공부법도 그렇고 주변이나 사람들은 잘 안 알려 준다.

그냥 책을 쭉 보면 되지뭐,,이런식으로만 얘기해줘요,,저자는 책으로 자세히 공부법을 알려 주는 거니까 정말 읽고 싶었다.

인생이 달려 있어서 꼭 읽고 싶었다.

이 책의 구성은 파트1에서 파트6까지 되어 있다.

파트 1에서는 세계 최고들은 목표 설정 방법부터 다르다이다.

목표를 정할 때는 역산을 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목표를 정할 때는 되도록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지 자신이 발전했는지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알 수 있다.

장시간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잃어 버리는데 그럴 때도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알 수 있고 자신감과 장기적인 비전을 달성할 수 있다.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은 공부뿐만 아니라 인생이 어디로 가야 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해준다.

한 단락이 끝 날때마다 한 줄 포인트로 정리를 해준다.

책을 다 읽어도 그 한 줄 포인트만 잘 기억하면 될 것 같다.

목표 설정은 스마트하게 해야 한다.

스마트 목표가 아닌 예는 세계화에 대비해 영어 공부를 한다.

성공하기 위해 자격시험 공부를 한다.

교양을 쌓기 위해 독서를 한다.

스마트 목표는 2017년까지 토플 100점을 취득하기 위해 하루에 영어 단어를 50개씩 외운다.

7년 후 독립을 목표로 2020년까지 MBA를 취득한다.

이에 필요한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한 달에 관련 서적을 30페이지씩 공부한다.

교양을 쌓기 위해 일주일에 두 권씩 책을 읽는다.

스마트 목표는 구체적이고 수치등으로 평가가 가능하고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하다.

또 기한이 설정되어 있다.

목표는 추상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고 강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목표를 일곱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야 한다.

일, 건강, 가족, 경제, 교육, 취미, 봉사활동등이다.

카테고리당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10년 분의 목표도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눠 관리를 해야 한다.

이력서도 정기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목표를 설정할 때 매몰비용 즉, 과거에 했던 일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목표를 이루는데는 계속성과 일관성이 중요하다.

여러 가지 목표를 세우면 리스크를 경감하거나 회피할 수 있다.

A아니면 B가 아니라 A와 B 모두이다.

저자처럼 전문 분야를 한 가지로 한정할 필요 없다.

파트 2는 공부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간 관리와 집중력 관리이다.

공부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얼마나 공부 성과를 올릴 수 있는가이다.

한 시간마다 다른 과목을 바꾸면 뇌의 자극을 되살려 공부하는 것이 좋다.

남들과 다른 시간 사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일이나 육아를 병행하는 사람은 공부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서 틈새 시간이라도 짜내야 한다.

짧은 시간에 공부 성과를 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틈새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이동중이나 출장지에서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사무실이나 집에서라도 틈새 시간이 5분이라도 있으면 책을 틈틈히 본다.

틈새 시간이 생기면 바로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둔다.

밑줄 쫙~~~~

바쁘다고 주말에 몰아서 공부를 하면 안되고 매일 조금씩 공부를 해야 한다.

디스트렉션이라고 마음이 흐트러지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메일, 인터넷, 동료들이 디스트렉션이 될 수 있다.

집중하게 되는 루틴을 만들어야 된다.

의사가 수술하기 전에 커피를 마시거나 손을 씻는 것처럼 공부하기전에 어떤 의식같은 행동을 만들어야 한다.

공부나 일의 종류에 따라 멀티태스킹과 싱글태스킹을 구분해 실행해야 한다.

자신의 힘이 가장 많이 발휘되는 것이 언제,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며칠 전에 카페를 갔는데 거의 도서관처럼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놀랬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테스토스테론을 높이는 것이다.

기한을 짧게 설정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 합격의 비결이다.

효율을 높이기 위한 체력관리법은 마음의 동요를 없애야 한다.

파트 3는 짧은 시간에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의 공부 기술이다.

린 생산 방식을 공부에 적용해야 한다.

린이란 생산 과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도요타 자동차가 생각해 낸 방식이다.

낭비를 없애고 업무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제조업에서 만들어진 방식이지만 사물에 대한 견해나 가치관, 행동방식에 있다.

이것을 공부법에 응용한 것이다.

1. 목표를 가시화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한다.

2. 낭비를 없애고 시간을 짜내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3.개선을 거듭해 프로세스를 갈고 닦는다.

4.그 프로세스를 습관화한다.

5.장기적인 전망을 가늠하면서 작은 승리를 통해 동기부여를 하며 린의 선순환을 계속해 간다.

린 공부법의 틀을 활용하면 생활 속의 낭비를  없애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해 중요한 일과 공부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성과를 내는데는 IQ나 능력이 아니라 아니라 공부방법이나 시간 활용법에 있다.

린 공부법은 저자같은 의사같이 바쁜 직장인들도 응용할 수 있는 공부법이다.

린 공부법은 자신의 목표를 행해 주체적으로 문제를 찾아 내고 계획을 짠 후 이를 정확히 실행하는데 있다.

그 결과 자신의 습관을 개선하여 지혜를 짜내는 능력과 개선하는 힘을 키우고 시간을 만들어 내고 생산성을 높여 경재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일이나 공부를 할 때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80%만 해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도 완벽하게 할려고 하다가 시작도 못한 적이 너무 많다.

공부를 할때도 너무 완벽을 추구하다가 시험 범위를 다 공부하지 못한 채 시험 당일을 맞은 경험이 많을 것이다.

우선 외워지지 않아도 좋으니 시험 범위 전체를 대강이라도 공부한다.

그 후에 잘 못하는 부분이나 중요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복습한다.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총량을 일단 파악해 두면 시간 낭비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시험 전에 시간 여유가 있다면 좀 더 난이도가 있는 문제들을 살펴봐도 좋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전체적으로 대강 훑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100퍼센트의 결과를 내는 것을 목표를 해야 한다.

처음엔 80퍼센트를 목표로하고  그 다음에 100퍼센트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쓸 데 없는 시간 낭비를 없애고 효율을 올 릴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을면서 정말 맞는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을 추구하다가 망친 일이 너무 많았는데 이 책대로 정말 해야 겠다.

깊은 깨달음이 있는 부분이다.

문제집은 1페이지부터 풀지 말아야 한다.

공부에 중요한 것은 우선 순위이다.

알고 있는 부분은 몇 번이고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바쁜 사회인은 중요한 문제나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우선적으로 공부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한 번 풀린 문제는 다시 풀지 않는다.

틀린 부분만 다시 풀어야 한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쓸데없는 반복을 줄일 수 있다.

포인트에서도 다시 말했듯이 중요한 문제나 부족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꼬~~~옥!!!!!

파트3는 하버드, MBA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공부법에서는 압도적인 양을 소화하는 방법은 이야기로 기억해야 한다.

커닝 페이퍼로 틈새 시간을 이용해서 공부할 것을 한다.

노트 만들기는 시간 낭비이다.

파트5는 제로부터 시작하는 영어 공부법에서는 필요한 것만 공부해야 한다.

토플시험이나 토익시험은 2개월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은 좋다.

영어를 암기보다는 흡수를 행햐 한다.

영어 문장을 많이 읽음으로써 억지로 암기가 아니라 저절로 흡수하도록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영어 단어를 외우기 위해서는 영어 문장을 많이 읽는 것이 포인트이다.

영어로 인터넷서핑을 해야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 이코노미스트, USA투데이 ,파이넨셜 타임즈, 네이처를 참고하면 될 것 같다.

듣기 실력은 좋아하는 영어를 반복적으로 보면 좋다.

영어회화를 할 때는 못 알아 들으면 이해한 척 하지 말아야 한다.

영작은 구글을 이용한다.

파트6은 평생 성장을 멈추지 않는 법은 성공 경험을 축적해 자신감을 손에 넣는다.

더 이상 공부할 없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하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공부하는 것에 도전을 해 봐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난 할 수 없을 거야라는 약한 마음을 난 언제라도 달성할 수 있어라는 사고로 전환할 수 있다.

한계를 뛰어 넘는 경험을 하면 심리적 장벽이 사라지면 사소한 일로는 약한 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한계를 넘은 경험을 한번 해두면 허용량이 커진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곤란을 이겨 낼 수 있을지는 과거에 어려운 일을 극복했던 심리적 장벽의 한계치에 달려 있다.

힘든 상황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 장래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잘 극복해낼 수 있다.

공부는 고통스럽고 단조로운 작업이다.

자격시험이나 토플같은 시험은 공부량이 많아 점점 동기부여가 낮아 진다.

그럴 때는 합격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동기부여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구체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행위는 실현하는 힘을 품고 있다.

인간은 목표로 하는 자신의 모습에 가까워지려 하는 법이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이미지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동기부여를 유지할 수 있다.

말이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 보면 집중력과 동기부여가 올라간다.

시험공부가 힘들어 지면 합격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공부해야 한다.

공부가 가장 중요한 약속이고 공부가 어떤 의미가 있고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성공은 돈이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한다.

성공이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을 느끼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시험에서 불합격하거나 일에서 좌절을 맛보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 결과 자신감을 잃고 기분이 가라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와중에도 실패해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러서서 실패를 지울 만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는지 너무 궁금하다,

그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부정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은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잘 될 거야, 도전하자, 만회하자등 긍정적인 발상을 전환할 수 있다.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은 혹독한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 들인다.

혹독한 현실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실패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서 바로 회복한다.

실패해도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서 의미를 끌어 낸다.

이번의 실수를 좋은 교훈으로 삼아 다음에는 실수를 하지 말자라고 생각한다.

실패해도 끙끙거리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거기에서 다시 일어 설 정도의 의지를 갖는 것이 결과적으로 많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치관이다.

실패해도 고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해야지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실패를 걱정해 답보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하나라도 더 많이 도전해야 성과를 남길 수 있다.

늘 미래를 향야 노력하고 매몰비용은 좌절이나 실패라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현시점에서 미래의 목표를 향해 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좌절에서 주저앉지 말고 그 경험에서 배워 다른 방법이 있었는지 개선할 점은 없었는지 검증해야 한다.

이 책은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나에게 너무 도움이 되었고 생각의 방향까지도 뚜렷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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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의 함께, 혁명
안희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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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정치가이다.

정치에 대한 이미지는 거짓말장이 사깃꾼,,국민들을 대상으로 쇼를 하는 사람들,,권력으로 돈을 끌어 모으는 사람들,,,문란한 사람들,,,연예인들도 어떻게 하는 사람들,,정경유착으로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끌어 모으는 사람들,,,음모장이들등등 그런 이미지사이에서 그나마 시대의 아픔을 아는 사람으로 그래도 조금이라도 믿는 정치가이다.

대통령들도 좀 그만 욕심을 부렸으면 좋겠다.

군인들도 별만 달면 일반 사람들보다 5000가지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런 혜택이 있어서 갑질의 갑질을 하는 것 같다.

안희정도지사를 아줌마들이 잘생겨서 좋아한다고 하는데 내 기준에서는 잘생긴지는 모르겠지만 시대의 아픔이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이 있는 것 같아서 좋다.

고등학교때 광주학살을 보고 노동운동을 했다고 하는데 행동하는 지성인이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거친 사람들도 만났는데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그런 사람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그런 행동하는 지성인들때문에 민주화가 온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노동운동을 하고 시위를 하는게 보통 심장으로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내면이 정말 강한 것 같고 일제시대를 생각해 보면 손톱을 뽑고 불로 지지고 모진 고문을 이겨 낼 수 있는 건 어떤 소신일 것 같은데 그게 뭔지 궁금해서 읽었는데 그런 면모를 족므 보기는 했다.

안희정도지사도 그런 소신이 있을 것 같은데 만나서나 텔레비전으로는 깊이 들을 수가 없으니까 책으로 만나 보고 싶었다.

저자는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검정고시를 해서 고대를 들어 가고 아내를 잘 만났고 또 교도소를 들어 가는데 장인에게 군대에 간다고 했다고 한다.

저 번에도 안희정씨 책이 나와서 정말 읽고 싶었는데 놓쳐서 아쉬웠는데 또 나와서 그의 정치관이나 사상이 어떤지 더 알고 싶어서 읽었다.

민주주의나 국민들이 그를 믿고 찍어도 되는 것인지 그를 계속 지지해고 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에게 희망을 걸어도 되는 건지 이 책을 읽으면 더 확실해 진다.

우리나라시스템에 대해서 어떤 이해를 가지고 비전이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정치가들이 그만 좀 실망시켰으면 좋겠다.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정치가에 대해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대의 민주주의라서 우리를 대표하는 정치가를 잘 뽑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들을 접할 수 있는 경우는 언론밖에 없는데 언론도 믿을 수 없고 보여지는 모습이나 정제된 모습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요즘의 정국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대통령을 뽑은 것도 우리라서 우리도 공모를 한거라고 한다.

광장민주주의가 되어서 대통령을 끌어 내릴려고 하는 시점에 다음 대통령을 뽑는데 큰 실패를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권주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서 알아 보는 방법으로 언론도 신뢰할 수 없고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할 수는 더더욱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에 대한 책을 읽기로 했다.

이 책들도 정말 직접 쓰는 것인지 출판사에서  써주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들의 생각을 담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민자본주의의 결과물, 속물,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권력주의자 그런 사람들이 너무 싫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희정도지사는 가치를 따라서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치를 따라서 정말 노동운동에도 뛰어 들었지만 노무현의 사상이 좋아서 그에게 어떤 댓가나 약속을 받지 않아도

그를 따르고 계속 그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철새정치가가 많다고 하는데 그런 편견을 안희정도지사는 깨주는 것 같다.

또 정치가하면 문란한 사생활도 얘기를 많이 하는데 안희정도지사는 가정중심의 삶을 사는 것 같아서 더 신뢰가 가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농촌의 문제, 노동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문제는 아무나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고 정책이나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나같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저자가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안기부에 끌려 갔을 때  한 달 가까이하는 고문속에서 같이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다 부는 장면에서는 저자읜 약한 인간적인 면을 봤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의열단이나 광복군들은 일제시대의 고문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그런 생각도 오버랩이 되었다.

저자의 눈빛이나 얼굴을 보면 굳은 의지나 소신이 나타난다.

40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의미가 그런 것 같다.

우수에 젖어 있어서 아줌마들이 좋아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 보다는 정말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생각이나 의지가 있는지 궁금해서 책을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정치는 어렵고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정치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정치 행태를 보면 국민들에게 눈물을 빼는 것 같다.

저자는 교도소에 있으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누구처럼 책을 전혀 안 읽고 어떤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도 없고 지식이 너무 부족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안에서도 정치관이 다 틀리고 지지하는 당이나 정치가도 전부 틀리다.

자신의 주관이 있어야지 선택을 잘 할 수 있다.

요즘은 내가 살고 있는 제도권이 맞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천민자본주의나 한국적 자본주의나 한국적 민주주의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불의하거나 다른 대안은 없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노무현대통령은 민주주의는 평화를 지켜내는 사상이자 제도, 기술이라고 했다.

반독재의 깃발이 민주주의였던 적도 있고 노동자들의 핍박에 대한 저항의 깃발이 민주주의였던 적도 있다.

선거권을 확립하는 중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 땅에 내려 앉은 이후 민주주의의 깃발이 조금은 빗바랜 것처럼 느껴진 때도 있다.

그러다 저자의 마음에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향한 정치활동을 하면서부터 민주주의가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동 번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이자 기술, 혹은 사상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이다.

독재자를 무찌르고 시민의 사회적 기본권을 확보하는 일,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초 토대 공사였다면 시민의 생활과 국가 운영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제도화되는 것은 건물의 뼈대를 올리는 일이다.

이것이 21세기 민주주의 운동의 비전이라고 한다.

민주주의를 건물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건물은 미학보다 윤리학이고 미학보다 공학이며 그리고 결국 건물은 공동체 속의 조화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지어야 하는 민주공화국의 설계원리이다.

민주주의는 매우 복잡한 언어와 수단을 포함한 가치체계다.

좋은 자재와 설계도가 필요하다.

정부와 정당, 정치가 땅 위의 사람들 위에 서지 못하고 헛된 권세와 권력 위에 서 있다면 그 건물은 무너진다.

건축가의 사색과 디자인, 그에 따른 정교한 설계도 같은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시공인지도 모른다.

훌륭한 미장이와 목수가 필요하다.

우리가 꿈꾸는 좋은 나라가 이와 같은 정치가와 행정가들에 의해서 시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은 정의의 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개개인의 욕망과 이웃의 선한 의지를 버무리는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잘 조율하는 민주주의 건축가를 꿈꾼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저자의 직업 수단이다.

이것을 잘 사용하기 위해선 그 제도와 철학을 정확하게 알고 능통해야 할 것이다.

각자의 욕심,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원리, 합리적 이성과 법제가 충돌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섞어야 부작용이 적고 조화로울지 저자는 고민을 한다고 한다.

날 선 갈등 속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민주주의 법과 제도에 따라 결론을 이끌고 인정할 때 다툼과 대립의 상황에서 공동체의 우애를 깨지 않고 타협을 이끌어내고 민주주의의 규칙에 의해 결론을 내릴 때 저자는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고통속에서 살다가 가난과 전쟁, 독재와 부정부패로 몸살을 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엄청난 댓가를 치뤘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을 한다.

역사는 진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같은 때는 후퇴를 한 것 같다.

노무현대통령은 사람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사람은 안 바뀐다고 했다.

그래서 개체로서의 인류는 절대로 진화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적존재로서의 인류 역사는 늘 진보했다고 하지만 아니다.

한 사람으로 보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게 한 인생인데 그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역사는 어떻게든 진보한다는지 모르겠다고 노무현대통령은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인간은 변하지 않지만 인류는 진보한다.

과거와 다르게 오늘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은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은 오류투성이며, 완성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종류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해보지 않은 시도를 함으로써 오류를 범해 봐야 한다.

버전업된, 진전된, 의미있는 오류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해야 한다.

과거의 오늘 거울삼아 새로운 길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오늘과 내일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

식민지 근대화, 대세주의, 사대주의, 반공과 서북청년단, 이승만, 박정희의 길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민족주의, 당파주의, 김구와 조봉암, 김대중, 노무현의 길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오랜 인습과 지연, 학연의 연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20세기 민족주의,  국가주의, 계급주의, 반공주의, 사대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세계화, 기후변화, 저성장 저고용,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는지 저자도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저자는 포스트 DJ를 선언하고 노무현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길은 완성되지 않았다.

지역주의와 분단과 동서냉전의 낡은 이념으로 선거철에만 얄팍한 시혜성 정책을 외치는 정당 정치,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삼권 분립, 중앙집권 국가체제의 비효율성, 이런 정치로는 분단 극복도, 평화와 번영도, 저출산 고령화와 양극화 과제도, 위기에 봉착한 경제성장의 새로운 비전도 열어낼 수 없다고 한다.

저자는 더 좋은 민주주의를 끔꾼다고 하고 민주주의가 꿈이라고 한다.

민주주의도 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난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철저한 민주주의자라는 것을 알았다.

항상 정치적인 대립이 생기면 민주당이나 야당을 종북좌파 빨갱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런 얘기는 틀렸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저자나 다른 야당정치인들도 종북몰이에 희생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저자는 민주주의자이고 개인의 사적 재산권에 기초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시장경제를 주창한다.

저자의 과거 색깔공세에 굴복하면 안될 것 같다.

과거는 매몰비용이다.

지금만 생각하지 과거를 꼬투리 잡아서 물고 들어지는 것은 너무 뒷떨어지는 생각이다.

우리는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절대의 선, 절대의 정의라는 기준으로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각자의 견해가 있을 뿐이다.

자기의 주장을 하되 선과 악, 정의와 불의라는 프리즘으로 상대를 고립시키거나 몰아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런 태도는 파시즘적이다.

전체주의는 민주주의의 철학, 사상과 인연이 없는 태도이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정치에 대해서 엄청난 고민을 해서 다행이고 신뢰가 가는 것 같다.

대선의 잠룡인데 이런 정치가가 있다는 것이 아직은 우리나라도 희망이 희미하고 옅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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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인문학
진중권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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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인문학

 

 

 

 

 

 

 

 

 


이 책은 이 시대의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여서 만든 책이다.

광주트라우마치유센터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정말 자신의 정치적인 이권을 차지할려고 한 도시를 쓸었다는게 정말 놀랍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 인식이 없고 사람들을 자신의 정치적인 도구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도 대통령에게 엄청난 배신과 폭력을 당하고 있는데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라고 하는데 다 거짓말이었다.

촛불시위를 해도 촛불은 끄면 그만이라고 하고 독제자의 마인드를 가져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정세가 이렇게 됐을 까라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적인 소양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의문을 가지고 인과관계나 나중에 어떻게 될건지 생각을 했더라면 지금의 상황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요즘은 서열사회라서 자신의 능력이나 출신에 따라서 차별을 받기는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다면 안하무인으로 대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페미니즘에도 관심이 많은게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장애인 빈민자에게까지 확장이 되니까 그런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의식이나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시스템의 문제라고 하는데 그 시스템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 것인지 이런 지성인들에게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하는 학문이라고 하고 천재가 되는데 인문학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꼭 읽고 싶어서 읽었다.

경제적인 케어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케어, 정신적인 케어를 진정으로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런 아이디어가 생겨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아야 상처가 반복되지 않는다.

빛고을 광주는 이름과는 달리 슬픈 역사, 아픈과거를 지닌 곳이다.

사건은 역사가 되고 과거가 되었지만, 그 날의 고통과 상처는 지금까지 현재의 진행이다.

 36년 전 광주에서 발생한 일은 그것을 보지 않거나 듣지 않을 수 없는, 이 곳에 있던 사람 모두에게 크나큰 상흔을 남긴 트라우마 였다.

​트라우마(trauma)는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을 뜻하나,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하며, 보통 후자의 경우에 한정되는 용례가 많다.
트라우마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극히 많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장기기억되는데, 트라우마의 예로는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때 불안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광주는 트라우마 공동체다.

센터는'치유의 인문학'을 통해 트라우마 공동체 광주를 '치유의 공동체'로 만들고 싶었했다.

아픔을 겪어 보았기에, 고통을 겪어 보았기에 다른 모든 고통 받는 것들을 보듬고 쓰다듬는 인문학은 광주의 공동체를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문학 공부는 곧 치유의 여정, 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 트라우마센터는 '치유의 인문학'을 통해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관계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철학은 해결이 아닌 해소다.

철학을 '치유'라는 개념으로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루드비히 비트겐 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언어 철학자이다.

그는 '철학의 문제라는' 것은 모두 사이비 문제라고 했다.

진짜가 아니라  '가짜 문제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와닿지 않는 얘기다.

특정한 맥락에서만 사용되는 어법을 여기저기 엉뚱한 맥락에 옮겨 놓으면 이상해져 버린다.

그래서 비트겐 슈타인은 철학적인 문제는 '문법적 오류' 에서 비롯된 가짜 문제라고 본 것이다.

아이들이 말을 배울때 보면, 끝없이 '왜'라고 묻는다.

예를 들어, 원숭이는 바바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들은 계속 '왜' 라고 묻는다.

 왜 좋아해? 맛있으니까, 왜 맛있어? 이러면 우리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들은 '왜' 라는 낱말을 사용하는 맥락을 모르기에 그 말을 아무데나 막 사용 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하는 것이 그것이다.

철학자들이 하는 짓이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들이 하는 짓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데카스르트는 몸이 약해서 일찌기 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계속 책을 보거나 계속 생각을 하는데 끝없는 의심과 왜라는 질문을 계속 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시간'과 같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뻔한 개념을, 엉뚱한 맥락에 집어 넣으니 졸지에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어 버린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철학적인 문제가 바로 이런 성격의 물음이라는 것이다.

철학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언어분석을 통해서 왜 자신이 그 병에 걸렸는지 점검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의 철학적인 상담은 철학을 다시 일상의 영역으로 가져온 것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굉장히 많은 문제에 부딪친다.

 어떤 사람들은 현명하게 잘 헤쳐 나가지만 어떤 사람은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철학자들이 와서 제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이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고 저 문제는 저렇게 해결하는게 현명하다'라고 해결하고 조언해 줌으로써 사람들이 문제를 잘 해결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철학적인 인간의 지향점은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인간을 만드는 것 같다.

어떤 실패하고 좌절한 상황에서도 회복탄력성만 있으면 금방 일어 나서 성공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철학은 그런 인간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우리 자신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는데 힘들어 한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할 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데 하는데 이런 것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래서 신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사람들에게 치유라는 화두가 철학은 물론이고 예술의 영역에 까지 확산되고 있다.

치유가 일종의 정신문화의 주류로 떠올랐다고 할 수 있다.

치유는 원래 종교 영역에서 나왔다.

진중권씨 아버지는 목사님이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 부터 '종교가' 왜 필요한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 처럼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을 가져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어린 생각에도 기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일에 분석을 해 봤다고 한다.

목사의 설교에는 힐링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성경 자체에 힐링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설교에도 힐링적인 요소가 전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 말씀이 어렵기 때문에 목사님이 쉽게 성경을 설명하는 일을 맡아야 한다.

 성경이 쓰였을 때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시대, 전혀 다른 삶인데다, 정치적, 사회적,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목사가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이 시대의 상황에 맞추어 해석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목사님들이 잘 못하는 것 같다.

사실 사회적 트라우마는 산업화 이전에도 존재했다.

최근의 힐링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 대한 힐링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힐링이 돼 버렸다.

예를 들면 안철수씨, 박근혜씨, 강신주씨 같은 분들이 왜 나왔을까?

 물론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것들을 포함한 상처들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상처를 끌어 안고 어찌할 줄 모르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보면서 대리 충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힐링 관련 프로그램들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철학적 멘토들이 치유 전도사로 등장하게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유권이 가장 중요했다면 그리고 이 자유권은 누가 보장하는 것인가,,,,

지난 대선전까지 우리사회에서 '민주화' 하면 '정치적 민주화' 를 의미했고 그 중에서 표현의 자유와 같은 '자유권'이 중요했다.

 자유권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1970년대 유신체제 시절엔 남성의 두발의 자유가 없었다.

장발을 한 남성들은 경찰관이 붙잡아 갔다.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 같다.​

그리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의 다리에 자를 대고 재어서 짧으면 경찰들이 잡아가서 유치장에 가두었다.

이것은 분명히 여자에게 성희롱이다.

지금같으면 유치장에 갇힐 사람들이 엄청 많은 것 같다.

그때는 황당한 법령으로 자유권을 짖밟은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이야기해도 잘 믿지 않는다고 한다.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법을 비판하고 개헌을 하자고 주장하면 범죄자로 처벌된다는 것이다.

이 긴급 조치를 비방하면 또 범죄가 돼어 처벌된다.

 자유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것은 분명히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인데도 또 다른 침해라고 처벌 받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민주주의도 인권도 보장 받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여기서 처벌된다는 것은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는다는 것 외에 고문을 당한다는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조국교수님은 프렌치남같은 분위기가 난다.

세상을 전부 가지신 분이다.

로스쿨계의 연예인이시다.

잘생기시고 지적인 부분도 높고 눈빛도 우수에 젖어 있는 것 같다.

교수님이 유신시대의 얘기를  지금 법대생들에게 말해주면 이해를 못한다.

직접 체험하지않은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게 맞는 것 같다.

 교수님이 대통령살인 교사범으로도 고발되었다는 예에서 보듯이, 퇴행의 징후가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은 '자유권' 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시절로 돌아 갈수 없을 것이다.

 주권자가 참을 수 없으니까말이다.

요즘 국민들은 똑똑하고 의식이 있다.

 그런데 자기 나라에 대한 것이나 우리의 역사(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는게 말이 안된다.

나라가 없다면 아무리 많이 알고 많이 가져도 비참해지는 것이다.

 1987년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세력이 재벌개혁 등 '경제적 민주화' 를 추진했더라면 IMF경제위기는 닥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서 아쉽다.

 사실 '경제적 민주화'는 지난 대선 이전까지 대중에게 생소한 개념이었다.

시민들이 장롱에 보관해 둔 금반지, 금숟가락 등을 모으고, 정부가 대규모 구조 조정을 실시한 결과 IMF경제 위기는 끝났다.

그리고 IMF 경제 위기 종료 이후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그리하여 교육, 주택, 보건, 의료, 경제, 문화, 일자리등이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사회권' 이 위태로워지는데도 시민들은 크게 분노하지 않고 있다.

시민들의 사회권이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는지 몇몇 통계를 보면서 확인히 알 수 있다.

 국세청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동아일보) '20%가 소득 71%가져가 20대 80이 사회 현실화 이다.

 2011. 4. 26 종합소득세납부자 상 하위 20%의 부의 차이가 1990년대 부터 점점 더 벌어져서 2011년 시점에는 상위 20% 9천만원 하위 20% 200만원이 안되는 것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의 약속 불이행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지난 대선 시기에 박근혜 후보건 문제재인 후보건 모두가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3년 6월 소득세법을 개정했다.

건설근로자는 시쳇말로 '노가다'라고 하는 분들이다.

시쳇말은 ​ 그 시대에 유행하는 말이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다.

건설 근로자들이 받는 퇴직공제금이 있는데, 이전까지는 여기에 과세를 안 했다.

이 분들을 위한 사회보장이 약하기 때문에 퇴직공제금에 과세를 안 했는데, 이제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2013년 5만4967명의 퇴직 일용근로자로 부터 소득세 11억5천 4백만원을 징수했다.정말 벼룩의 간을 빼먹는 정책이다.

 맨 처음 집단적으로 꿈 세계의 동요를 경험한 사건은 여배우 최진실의 죽음이었다.

자살 사건이 있자 바로 다음날 부터 사람들의 꿈이 난리통이 되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이 배우한테 투사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꿈 세계가 크게 요동쳤던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였다.

두 주검 모두 자살이었다는 사실 또한 '자살 공화국' 에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타가 되었다.

국민 여배우이든 국민을 대표하던 정치인이든 꿈세계에서 관찰한 바로는 이 사건들이 비단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었다.

4대강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때도 꿈 세계는 난리가 났다.

아무도 꿈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악몽같은 것에 시달리는데 깨면 전혀 이미지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뭔가 이미지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뭔가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고 무서워서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뭔가에 눌린 것 같아 괴로워서 깼는데 시간은 새벽 세 시경이었고 방에서 뭐가 나올 듯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이 일주일 넘게 지속 되었다.

이 상황은 마치 블랙홀 같았다.

꿈을 기억해 낸다면 무의식의 내용이 일부 의식으로 올라오는 상태다.

 더 이상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지 못할 것이다.

이론적으로 꿈을 기억한다는 사실은 이미 꿈에서 제시하는 상황을 다룰 능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꿈조차 기억해 내지 못하는 이 상황은 우리 각자가 바꾸며 각성해야 할 이슈가 이정도로 깊은 혹은 근본적인 차원의 변화라는 반증이다.

 먼저 이탈리아에서 제자의 날아온 꿈이 빈다.

꿈에 노무현 대통령이 나왔다고 한다.

 춘향전에 나올 법한 동그랗게 휘어지는 다리 중간에 서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저승으로 가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제자는 이 꿈을 꾸고 학교에 갔더니 동급생들이 너희 나라 난리 났다면서 세월호 소식을 들려 주었다고 한다.

꿈에서 등장하는 특정인이 반드시 그 사람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꿈의 기본 상식이다.

대통령은 집단 전체의 의식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다른 꿈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제자가 보내왔다.

꿈에 포탄을 공중으로 쏘아 올리는데  한 흑인이 맞아 사람 몸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동생이 생각나 고개를 들고 보니 동생이 의연하게 피비를 맞고 있어서 자기도 그 비를 맞으며 조각난 신체 파편들이 피로 바뀌는 장면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지금 그 땅은 하늘에서 피비가 내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전장에 있는 심정이다.

 세상 모두가 울음 바다로 변해 있었다.

내일의 나라 일군이 한꺼번에 죽어가는데 피비가 내리며 울음을 참을자가 없을 것이다.

 포탄이 떨어져 몸이 찢기고 피가 산천을 물들이지는 않지만 우리 안의 아픔과 절규, 눈물이 기화해 구름이 된다면 이렇게 피비도 온 땅을 뒤덮을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만으로 꿈을 기억 할 수 있는 안전이 확보되는 것 같다.

세월호 이미지자체를 꿈이라 상상해본다.

 압도하는 이미지에 모두가 사로잡혀 있으니, 누군가 매의 눈으로 집단의 이미지를 꿰뚫어 보아야 할 듯하다.

세월호와 함께 이 땅에서 침몰한 것들이 많은 것이 함께 가라 앉았다.

세월호와 이 땅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현실을 더는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안전사고 불감증인 사람들이 일으킨 사고야 단속을 강화하면 개선되겠지 선진국이 될수록 이런 후천성은 사라질 거야 이렇게 되뇌이며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애써 부인해 왔다.

자신이 사는 터전이 안전하지 못하면 근원적으로 '집에' 대한 느낌에 손상을 입는다.

안전한 집과 고국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간절한 사람이 난민일 것입니다.

 난민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나라 국민도 마찬가지로 그런 열망이 있다.

세월호 전복의 원인은 한마디로 과적이다.

과적은 화물의 적재정량을 초과하여 실은 것이다.

그것때문에  꿈많은 젊은이들, 내일의 주역들이 그렇게 많이 수장을 당한 것이다.

 그 때 그 시간에는  하늘도, 땅도 , 온 국민도 다 울었을 것 같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과적으로 인해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잘살아보세' 를 노래하며 달려오는 동안 물질적 풍요 GNP숫자, 물질 숭배에만 매달려 왔다. 전일적인 건강이나 삶의 질은 배부른 자들의 호사 정도로 취급했다.

전반적으로 가시적인것 측량 가능한 것만이 세계의 전부인 양 살아왔다.

내면의 건강도 안위도 무시되었다.

한마디로 '의식의 세계' 만을 세상의 전부라 이해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대라는 문명의 특징이고 과적으로 인해 빚어진 균형감 상실은 현대인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천민자본주의는 과적을 당연히 했고 내면의 치유에 대해서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관심을 내면의 치유에 돌려야 할 때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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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 하루 끝에 펼친 철학의 위로
민이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철학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라는 것을 요약한 책을 읽었는데 미셸 푸코하면 판옵티콘만 기억에 생생하다.

푸코의 진자도 자꾸 떠오르는데 그는 이탈리아 과학자이다.

프랑스철학자,,,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사람인데 지금 그가 말한 감옥이나 정신병원의 구조인 판옵티콘이 문제이다.

판옵티콘은 영국의 공리학자인 벤담이 처음으로 만들고 막스 베버가 판옵티콘을 정신 병원, 학교, 공장에 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판옵티콘은 그리스어로 모두 본다는 뜻이다.

이걸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에서 또 자세히 설명했다.

위에서는 아랫사람들이 뭘하는지 전부 잘 보이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뭘하는지 전혀 안 보인다.

지금 우리나라도 권력의 구조가 판옵티콘의 형식이라서 위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알지 못해서 밑에 있는 사람들은 당하고 속는다.

판옵티콘은 조지오웰의 1984년에도 또 등장하는데 빅브라더가 나와서 감시국가를 만드는 것을 또 얘기한다.

지금도 국가나 대기업은 판옵티콘의 형식으로 국민들이나 직원들을 엄청 감시하고 통제할려고 한다.

권력이 아래까지 공유되고 개방되고 열려있지 않으니까 썩고 자기들만 향유하는 것 같다.

소쉬르의 언어구조학도 읽기는 읽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그때 그 책을 읽을 때 좀 아팠는데 그래서그런지 소쉬르는 구조언어학만 떠오른다.

내용이 어려웠던 것 같다.

들뢰즈나 베르그송은 이름만 들어 봤고 알랭 바디우는 처음 들어 봤다.

데카르트, 하이데거에 대한 책도 읽기는 읽었는데 별로 인상이 깊지는 않은 것 같다.

레비나스도 들어 보긴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철학이 있는 사람하면 왠지 소신이 있고 생각이 깊고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같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철학책을 읽었다.

잠못 이루면서 우리가 하는 걱정의  3%는 이미 지나간일,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은 일, 22%는 별것 아닌 사소한 일, 나머지 8%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에 대한 것이었다.

걱정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즘 사람들은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첫째는 돈이다.

사람들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과  보이는 돈이 신이라고 하면서 천박한 가치를 많이 얘기한다.

돈과 권력뿐만 아니라 외모도 정말 중요시하면서 성형왕국이 되고 성형중독이 되는 세상이다.

연예인들처럼 원래 잘생기고 예뻐야지 성형미남이나 성형미인이 되지 아니면 그냥 성형인이 되는 것이다.

아는 언니가 20억이 있다고 자랑하고 강남이나 부자동네에 살아야 하고 학력이 높아야 하고 해외여행을 다녀야 하고 명품만 산다고 얘기를 한다.

같이 대화를 하다가 불어를 하고 영어를 한다.

그 언니는 가족과 사이가 안 좋고 사람을 존중한다거나 귀하게 여기는 것을 모른다.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나도 책에서 서열사회가 어떤지 잘 아는데 그 언니처럼 못생기고 뚱뚱하면 여성은 서열이 떨어 진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다.

학력도 예체능계라서 낮고 직업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이 조성된다고 하지만 사실 그 언니를 사람들은 무시하고 멀리하고 싶어 한다.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는 철학적인 마인드가 너무 필요하다.​

그 언니의 천박한 마인드는 책을 읽지 않고 철학이 없는 속물 근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다.

사람은 돈이 있어도 격이 있어야 한다.

그 언니를 보면서 내적인 면을 더 살펴 봐야 하고 진정성이 있고 속물이 아닌 깊은 철학이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인간은 예뻐지고 싶은 심리, 부자가 되고 싶은, 성공하고 싶은 심리가 누구나 있다.

 그래서 불안해 한다.

불안이 과해도 문제겠지만 마치 불안이 패배자에게 특화된 삶의 태도인 것 처럼 긍정을 몰아 붙이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철학은 이 불안의 정서로 부터 생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불안하기에 불안을 해소할 방법을 강구하는 노력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 일을 다 아는 듯이 떠들어대는 철학자들이지만 실상 밤으로 찾아든 고민 속에서 해답을 얻어낸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그 고민의 시간이 꿈의 경계를 넘어서 이어진 경우도 많았고.... 결국 그들도 우리처럼 밤새 소심하게 생각에 잠기는 존재들이다.

철학은 미래에 대한 예언서가 아니다.

현대 철학은 차라리 우연을 긍정하는 편이다.

따라서 어떤 확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때로는 너 자신이 되라고 하면서도, 때로는 나와 다른 타자의 가치를 미래의 시간으로 규정하는 모순 속에 어디까지가 아집이며 이에 대한 '실존'도 저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야 할 일이다.

이런 무책임한 사유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문제 해결력이다.

신이 정말 있다면 나에게 왜 이러시는 거지라는 물음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할려고 한다.

'철학자' 하면 떠오르는 표상은 아마도 '신은 죽었다.' 로 대변되는 니체 일것이다.

저자는  철학이 전공도 아닌데 철학에 대한 연구와 책을 쓴 것이 대단해 보인다.

 철학은 왠지 모르게 따분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니체의 말처럼 신은 죽었다는 것이 정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인지 과학의 발달로 신의 역할이 줄어 들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것은 스피노자이다.

 그런데 그 사과나무와 관련한 이 어록의 저작권은 스피노자가 아닌 마르틴 루터에게 있다. 아이제나흐 라는 독일의 한 시골마을에는 그 글귀가 새겨진 루터의 기념비가 한 그루의 사과나무 그늘 아래 세워져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왜 이 어록을 스피노자의 것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세상에 종말이 다가와도 아브라함의 후예인 스피노자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뿐이라고 한다.

스피노자에게는 사과나무를 심는 행위가 신을 향한 기도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우연의 순간마다 절실한 필연을 기도하는 인간의 삶,

그 우연과 필연을 모두 위로하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담았다는 점에서 이 어록은 그냥 스피노자가 논리적으로 증명해낸 신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다.

인간은 그저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지 않았다.

인간은 그저 신의 속성으로부터 뻗어 나온 한 표현에 불과하다.

인간 뿐만이 아니다. 

신이 창조한 만물 모두가 신의 속성을 나누어 가진 신의 표현들이다.

그래서 그 모두를 사랑하되,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무한의 속성에 일정한 형태가 있을 수 없을 뿐더러, 실상 무한이라는 인간의 언어 개념조차  이길 수가 없는 절대존재가 신이다.

때문에 인간의 지력과 지각으로는 결코 신을 인식할 수 없다.

인간의 한계내에서 인식할 수 있는 신의 모습은, 바로 자연 그 자체의 생명력 뿐이다.

지구의 종말이 정말 신의 뜻인지 선악과를 따지 말라는 신의 명령은, 정작 선악과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최초의 인류에게는 도리어 자신들의 선악과를 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사건이기도 했다.

신앙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해석은,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악이 따르게 될 것이란 신의 경고가, 이미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선택적 자유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식은 그저 신을 사랑하는 것일 뿐, 인간은 신의 모습대로 창조되지 않았다.

인간이 인간의 모습대로 신을 상상할 뿐이다.

스피노자는 당대 기독교의 교조적 권위를 미신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 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은  인간의 욕망으로 들끓는 종교 시설일뿐이다.

교회라기보다는 성황당에 더 가깝다.

 성황당이 지닌 문화인류학적 가치를 따져본다면 이런 비교가 도리어 성황당에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진게타로보' 세계 최후의 날의 마지막에서 보여준 인문주의다.

진게타로보와 함께한 두 제네데이션은 인류의 미래를 구원하기 위해, 최대 출력의 에너지로 삶의 마지막을 향해 돌진한다.

태초의 빛으로 지어올린 궁극의 필살기, '샤인스파크'를 굳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쳐대며 돌진 직전에 찾아온 깨닫음이 있었으니, 게타선의 절대적인 힘에 의존해 왔던 자신들이, 결국엔 게타선의 존재 여부와는 별개로 스스로의 미래를 위한 희생은 자신들이 감당하기도 하고, 미래  그 자체인 현재의 제네데이션을 샤인스파크 밖으로 밀쳐낸다.

분명 신이라는 절대 정신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 의미는 의지다.

이미 나의 존재 자체가 그 절대정신의 한 표이며, 무조건적으로 신에게 의지 하려는 나약함은 도리어 나약한 신을 섬기는 신앙을 고백 하는 불경이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숙명의 서사대로 기다리는 순간이 아니라,  너 스스로가 다가가 맞이 해야 하는 순간이다.

겨우내  자신을 피워내기 위한 의지로 봄을 기다리는 꽃의 생명력처럼 말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인지라,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행위는 기복을 위함이 아닌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 되어야 한다.

'지켜주세요'. 이루어주세요가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낼테니 '지켜봐 주세요'.가 되어야 한다. 

 자기 스스로 일어나라는 것이고 자기 스스로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삶의 불확실성에 던지는 샤인 스파크는 당신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낸 신의 '의지'다.

종교적 예정설을 철학의 화법으로 풀어 놓은 것이 라이프니르의 모아드 이론으로 쉽게 요약하자면 타인의 가치를 배제한 자신만의 인생 방정식을 일컫는다.

모든 철학은 들뢰즈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이 도리어 겁탈을 당했다고 고백한 유일한 철학자가 니체이며, '철학의 그리스도라'는 숭고한 지위로 떠 받든 철학자가 스피노자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스피노자-니체-들뢰즈를 계보로 묶으며, 조금 더 디테일한 경로를 그리고자 하는 이들은 베르그송을 추가 한다.

들뢰즈 철학의 기저에는 라이프니츠의 낭만주의적 요소가 다분하며, 그 흔적이 바로 .주름. 키워드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이론을 단순히 속명론으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주름' 때문이기도 하다.

라이프니츠는 세계의 실체를 정신의 원자인 '모나드'로 파악한다.

모나드는 생각과 존재방식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정신으로 품은 우주의 섭리다.

여기에 주름이라는 개념을 덧붙인다.

그 작은 모나드 안에는 자신의 운명이 꾸깃꾸깃 접혀 들어차 있다.

모나드는  주름들이 응축된 형태며, 맞닥뜨리는 우연적 사건마다 주름으로 접혀져 있던 잠재적 서사들이 하나씩 펼쳐진다.

 얼굴에 생기는 주름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일생을 말해주는 흔적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알려주는 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은 성형으로 자연을 파계한다.

얼굴에 주름 하나만 생겨도 야단인 것 같다.

 비닐 장판을 덮어 씌운듯한 번들거림이 보기가 흉할 때도 있다.

그래서 살아온 세월을 가늠 할 수 없다.

무슨 약물도 그리 많은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을 얼굴에 주사로 놓는다고 했다.

인간은 불안한 존재다.

그러나 인생이 아름다운 까닭은 불안전성이 지닌 잠재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성적 존재들에게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사안이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가 원인이 되지 못하는 사안이 '불안'이다.

이런 불안을 위로하고자 발생한 인문이 신을 향한 믿음이었고, 신앙에서 이성적 사고로 나온 학문이 철학이었다.

그 이성적 사고가 정말 합리적인지에 대한 검증으로 분리된 영역이 과학이다.

불안은 알 수 없는 미래의 시간대에 그 원인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규명하려는 목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 종교와 철학 그리고 과학이기도 하다.

플라톤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단어는 '관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철학에 대한 이미지 즉 난해한 개념들과 생각을 늘어 놓고서, '다시 말해서' 쉽게 말해를 반복해도 도대체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 모를 일방적인 전개들이 대부분 '관념'에 관한 담론들이다.

 철학적 화법으로 서술된 난해하고 지루한 풀이를 이해 하려는 수고를 하지 않았도 그저 우리가 익히 아는 관념이란 정도가 된다.

생각의 매개물에 관한 다시 말해 이데아와 현상계를 변별할 수 있는 정신 능력이다.

이성의 토대가 바로 관념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현상을 보는 것은 동굴에 비친 그림자를 보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동굴에 묶​여서 실질적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만 볼 뿐이고 동굴을 나가서 진짜 빛을 봐도 그게 진짜 빛인지를 모른다.

플라톤은 철인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는 것이 철인만이 진짜 빛을 보기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이 엘리트의식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철학의 용어들은 거의 모두가 일본식 한자어다.

우리 역사의 '실학'이라는 단어조차도 한자어다.

실상 철학과 인문이 아니어도 우리가 쓰는 한자어의 대다수가 일본식이다.  

소심하다는 것도 일본식한자인지 궁금하다.

소심하다는 것은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철학이나 인간의 사고에 대해서 소심한 것은 의미가 있고 격이 있는 태도같다.

속물근성에 빠진 너무나 가벼운 사람의 얘기를 듣다가 이 책을 읽으니까 나의 생각과 마음이 정화가 되는 것 같았다.

인간은 추상적이고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 추구하고 찾을 줄 아는 정말 무겁고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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