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인문학을 공부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로스쿨을 갈려고 로스쿨과목의 언어이해라는 과목시험을 잘 보려고 인문학을 공부했다.
이 책소개를 보니까 동서양의 인문학자를 융합시켜 놓고 그들의 사상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인문학을 현실에 100%반영하는 것은 아니고 방향이나 지표를 제시해 주는 것 같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책대로 살 수는 없다.
책처럼 경계를 지을 수도 없고 딱딱 맞춰서 할수도 없지만 그래도 책에서 뭔가 건질 수 있는 것들은 많은 것 같다.
일상을 살 때 막막할 때가 많은데 어떤 방향성만 제시 받으면 거기에 맞춰서 자기가 응용하면 되는 것 같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책이 많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높은 사상을 갖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 그 의문이 풀린다.
이런 책을 통해서 사상가들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고 나를 발견한다는게 나한테는 정말 필요했다.
견디기 힘든 세상에서 단단하고 견고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게 나한테는 희망이었다.
내가 단단하고 견고해서 나의 길을 잘 가거나 소명을 이룬다면 더 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아는 사람은 사마천, 괴테, 스피노자, 정약용, 이익, 주희밖에 없는데 그들의 사상을 깊이 알지는 못하니까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고 새로운 인물들도 만나서 좋았다.
인문학은 일차적 공부를 통해 내 삶을 비추어 보면서 내가 나로서 세상에 제대로 오롯이 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궁극적으로 인문학 책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고 우리가 인문학을 활용하는 방법이라는게 정말 끌리는 것 같다.
나는 앎을 좇는 삶이나 꿈을 좇는 삶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다.
우리 엄마도 평생 꿈을 좇았지만 늦게 공부를 하고 아직도 꿈을 좇고 있다.
빨리 성공하면 좋으련만 너무 늦게 성공하니까 건강해야 하고 책을 많이 봐야 하고 빨리 죽으면 안되고 여러가지 이유들이 생긴다.
책을 읽는게 정말 좋고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건강이 받혀 주지 못하면 안되고 내면도 강해야 하고 많이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책만이 진리이고 나의 친구이고 지침서이다.
이 책은 따뜻하고 지적이다.
평상시에 모르는 지식들이 가득한데 재미도 있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이 있는 책이다.
인문학적인 인간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영국의 어떤 천재는 부모로부터 인문학책만 읽으라는 교육을 받고 엄청난 학문적인 성과를 이루었다고 한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사상이나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이 다루는 분야와는 다르게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한다.
인문학이 포함하는 학문은 언어, 언어학, 문학, 역사, 법률, 철학, 고고학, 예술사, 비평, 예술의 이론과 실천, 인간을 내용으로 하는 학문이다.
역사와 예술이 인문학에 포함되는 것인지라는 의견도 있다.
인문학의 발전을 보면 철학사상이 발달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는 음악, 기하학, 산술, 천문학, 문법, 수사학, 논리학이 인문학의 주요과목이었고 르네상스시대에는 역사, 문학이 인문학의 주요 영역으로 추가되었다고 한다.
나도 책을 가리지 않고 많이 읽고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라는 얘기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인문학이 정확히 어떤 학문인지도 모르고 읽었던 것 같다.
인문학적 소양을 많이 키우라고 하는데 인간에 대한 깊이와 생각에 대한 넓이를 키우라고 하는 것 같다.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 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경험적인 접근을 한다면 인문학은 분석적이고 비판적이고 사변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인문학의 하위분야는 역사학이다.
고대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4과 음악, 기하, 산술, 천문과 3학 문법 수사 논리가 인문학의 개념을 만들었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인문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저자는 나를 공부할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고 얘기를 해주고 여행하는 삶, 앎을 좇는 삶, 꿈에 이끌린 삶, 변혁하는 삶, 유배당한 삶, 공감하는 삶, 읽고 쓰는 삶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런 삶들에 인문학이 접목, 융합, 통합되어 다양한 얘기를 해준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얘기는 정말 많이 들었었는데 제대로 읽은 적은 없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예술, 종교, 과학, 자연과학, 정치, 경제 모든 분야를 담은 총체적인 문학 작품이다.
60여년이 걸린 이 작품은 괴테의 인생을 총망라해서 쓴 것이기도 하다.
늙은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렐스로부터 젊음을 제안 받으면서 자신의 영혼과 젊음을 바꾼다.
젊음을 얻은 파우스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구하고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거대한 사업을 하고 인간 세상의 변화들을 경험한다.
다시 젊음을 얻은 파우스트는 정말 행복했는지 궁금했다.
요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성형이나 스타일에 엄청 돈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파우스트를 보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알 것 같다.
젊음 ,돈 , 여성을 전부 얻었던 파우스트는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에 가까운 삶을 산다.
파우스트가 원했던 것은 우주에 대한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지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신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수박걸핣기의 지식은 파우스트를 오히려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했다.
파우스크는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파우스트의 신이 되고자 했던 열망은 파우스트를 끓임없이 꿈을 좇는 인물이 되게 했다.
과거에는 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선이고 부정하는 것이 악이었다면 파우스트가 보여주는 근대적인 인간은 신 앞에서 안주하는 것이 죄악이고 도전하는 것이 선이라고 보여 준다.
근대적인 인간에게 안주하는 것이 죄이고 도전하는 것이 선이 되는 것이다.
주어진 자리, 만들어진 세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고 창출하며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들이 괴테가 창조한 근대적이라는 표지가 되었다.
앎을 좇아서 살았던 사람중에 이규경이 있다.
프랑스의 백과사전은 150명정도가 만들었다면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이규경의 단독 저작이다.
이규경은 19세기의 사람이고 오주연문장전산고는 60권으로 되어 있는 백과사전형식이다.
오주는 오대양육대주의 줄임말이자 저자 이규경의 호이며, 책에 대한 저자 자신의 겸손함이 담긴 '거친 문장'이라는 뜻의 '연문(衍文)', 문장 형태의 하나인 '장전', '흩어진 원고'라는 뜻의 '산고(散稿)'가 합쳐진 말이다.
60권 60책에 달하는 분량 속에 천문, 의학, 역사, 지리, 농업, 서학, 병법, 광물, 초목, 어충, 음악 같은 방대한 항목에 관한 설명을 1,417개 항목의 '변증설'(저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피력된)로 처리하여 세밀한 문제까지도 고증학적 태도로 다루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규경에 대해서 찾아 봤다.
그 옛날에 책도 잘 없는 시절에 모든 분야를 탐독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기원전 책도 잘 없는 시대에도 유명한 철학자들이 과학자, 사상가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책의 영향뿐만은 아닌 것 같다.
환경적인 영향도 일부있지만 책을 읽거나 어떤 것을 깊이 탐구하는 것은 유전적인 요인이 더 강한 것 같다.
이규경도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 시대적 작업을 뛰어 넘는 개인적 성향과 지향의 결과인 것 같다.
시대에 상관없이 이규경같은 공부하는 인간, 지식벽의 소유자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정리하기 위해 평생의 시간을 헌신하고 책을 읽고 분류하고 자료를 모은다.
박학의 추구, 지식의 탐닉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성품에 새겨진 버릇이 만든 평생의 사건이다.
어떤 사람은 무엇을 모으고 분류하는데 삶의 의지와 위로를 받기도 한다.
단순한 축적이 아니라 전체를 향한 질주, 갖추어 놓음의 환희를 위해 시간이나 돈을 투자하고 인간관계를 단절하기도 한다.
나도 책에 빠져 있으면서 사람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기 보다는 차라리 책을 읽는게 낫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런 일들은 강력한 내적동기가 있고 그것을 실현할 열정이 있고 열정을 자원으로 쓸 수 있는 헌신과 포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수집과 집적의 욕구는 전체에 대한 열망고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집적은 모아 쌓는 것이다.
이규경이 그렇게 애서광, 책에 미친 사람, 책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헌신의 최고봉이 되었던 이유를 찾아 보면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올라간다.
이덕무는 조선후기의 실학자이고 그 시대는 지적폭발시대이고 책에 미친 바보처럼 책읽기에 모든 삶을 바친 사람이다.
이덕무는 정종의 열다섯 번째 아들 무림군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무과에 급제한 무관이었지만 서자이고 가난한 형편이라서 스승에게 나아가지 못하고 홀로 책을 읽었다.
관청 벽에 벽지로 바른 고서를 읽느라 집에 늦게 돌아 오곤 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따라서 책을 읽기도 하고 책을 팔아 끼니를 해결할정도로 가난하고 뜻을 펼칠 수 없는 신분의 한계, 병약한 자신의 몸 등 능력을 펼칠 수 없는 제약 속에서 오직 수많은 책을 읽고 정리하며 불은을 견뎌 나갔다.
이덕무가 학문적역량을 인정 받은 것은 39세쯤 되었을 때이고 서얼도 벼슬에 나갈 수 있게 법이 바꼈기 때문이다.
검서관은 침라단직이지만 규장각에서 책을 읽고 필사할 수 있는 이덕무에게는 최적의 벼슬이었다.
그의 벼슬덕에 평생 2만 권의 책을 읽고 수천권의 책을 필사했다고 한다.
그는 책을 빌려 보고 직접 베껴 쓰는 방법으로 지적 정보들을 확보했다.
평생에 걸친 그의 독서기록은 아들인 이광규가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해서 편찬한 청장관전서에서 나타나 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이어 받은 사상과 삶을 전해 받은 사람이 바로 이규경이었던 것이다.
그런 영향때문에 벽지에서 오대양 육대주를 반영한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쓴 것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가 그냥 군밤봉투로 사장될 수 있었는데 다시 살리고 잘 보관해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도 이런 백과사전이 나왔다는 업적이 생겼다.
우리나라에만 이런 백과사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도 디드로라는 계몽주의자가 20년이 넘게 만든 경우도 있다.
디드로도 역사적인 업적을 세우거나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수집광이나 지식벽때문에 만든 것이다.
이 책에서 앎에 대한 삶이 많이 궁금해서 집중적으로 봤는데 앎이라는 것은 환경적인 영향도 조금 있고
유전적인 그냥 욕구적인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삶을 추구하는 것도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면서 알아 보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