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더 친밀하게 알아가는 삶이란 좀 더 기도하고 열심히 다가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언제나 목마름이 끝이 없을것이다.
요즘 성도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영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그 중에 제일 문제가 모든 사람들의 성형일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섭리를 깨고 모든 사람이 의란성 쌍둥이로 변화한다.
하나님은 각각 개성있고 다르게 만들었는데 인간들은 성취만 하려니까 그저 성형을 하며,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한다.....
빌레 그레이엄은 세상에서 가장 만나기 힘든 사람 중 한명이다.
너나없이 이 복음주의의 원로를 만나기 원한다.
그런데 그는 노화와 건강 악화에도 기력이 다할 때까지 설교를 쉬지 않았다.
만약 사람을 만나는 데 하루 열다섯 시간을 쓴다면 그는 설교할 기력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 들어오는 면담 요청만도 수천 건이다.
그 중에서 번거롭게 가려내느니 차라리 사적인 만남에는 아예 시간을 내지않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다.
그를 깊이 사랑하는 측근들이 그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끝이 없다.
하나님에게 아무리 다가 가려해도 언제나 목마름은 있다.
누가 채워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열심히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수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때론 실망도 하고 지치기도 한다.
"온 힘을 다해 나와 가까워지라려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마음속에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알고, 사랑하고 싶은 간절한 갈망이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분과의 관계에 들어가기가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
육체와 시간 속에 갇힌 우리가 어떻게 영원한 영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우리의 생각은 유한해 결코 자신의 죄성과 욕심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무한히 거룩하신 영광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겠는가?
그분의 생각 속에는 죄가 거한 적이 없다.
하나님의 속에는 죄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서 하나님과 교제가 힘들어 진다.
그 죄를 회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인간은 어떠한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면서 속으로는 어마어마한 죄를 지으려고 구상하며 계획하다.
나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데 엄청난 댓가를 치르고 정말 힘들었다.
하나님이 나의 연인이 되고 영원한 오빠가 된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저 번주에는 하나님이 바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면 바람이 불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떄부터 바람이 일렁이고 느껴지고 계속 불어댔다.
하나님이 나와 계속 함꼐 하시는 거였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를 인간의 궁극적 목표로 부른다. 궁극적이라는 말은 끌까지 가본다는 말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 나와 있듯이, 그 목표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맨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우리의 귀에 음성으로 들리지도 않는다.
그런 그분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단 말인가?
기도로 관계를 맺고 말씀으로 관계를 맺는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기도도 말씀으로도 금방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하나밖에 없는 생명까지도 온전히 걸고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만나기를 매달려야 할 때가 있다.
온전히 하나님이 아니면 않되는 상항이 온다.
조금 편하고 조금 잘 되는것 같으면 인간은 하나님을 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17세기 반종교개혁에 가담한 로렌조 스쿠폴리는 종교개혁을 통해 사상 체계를 휼륭하게 혁신한 장 칼뱅과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슷할 때가 많다.
둘 다 하나님과의 관계, 성품의 성숙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또 우리 영혼 안에 예수님의 삶을 가꾸는 작업에 대해서서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의 신학 논의를 보면, 서로 깊고 격렬하게 일치하지 않는 이슈들을 강조할 때가 너무 많다.
공통된 진리란 감성파와 지성파와가 사실상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러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도출한 결론은 즉각적 기쁨이나 현세적 복음 약속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영적 광야나 영혼의 어두운 밤을 자주 언급했다.
행여 우리가 카톨릭이나 정교회의 영성고전을 외면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신학의 소소한 부분을 꼬치꼬치 따지지 않는다.
그 보다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분께 응답하는 영혼의 특성과 계절과 단계를 탐색한다.
이는 다양한 기독교 전통에서 널리 일치되고 있는 주제들이다.
우리 개신교는 너무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고 성도들을 폭넓게 가르치지 못했다.
작은 것에 목숨을 걸지 말고 넓은 면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오늘날 개신교 목사님들은 하나님을 직접 체험 하거나 말씀에 깊이를 잘모르고 영적으로 무지하다.
영성훈련을 한다고 열심히 다니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것 같다.
여자와 남자의 동등성도 모른다 .
그게 성경적이냐고 묻는다.
목사님들이 그것도 모르면 성도들을 어떻게 영적으로 이끌까,,,,,
오늘이라고 질투가 천년 전보다 덜 해로운가? 오늘의 그리스도이라 해도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영혼에 찾아 드는 회의가 중세기 때보다 덜한가?
아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중세보다 질투가 더 월등하다.
그 질투는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의 침묵앞에서 더욱더 견디지 못하는가 하면 오늘날의 이 시대는 아예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기 보다는 오직 이용만 하려고 한다.
하나님께 드리기 보다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성취하려고만 한다.
요즈음은 지성은 발달하고 첨단 기술에 치중되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이용하여 성취하는 것만 원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얼굴도 성형외과에서 마음대로 뜯어 고치는것도 그런 것이라 본다.
드리는 삶이 아닌 성취하려 고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망각하고 성형술이 지혜니 뭐니 한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이 바라는 도깨비 방망인줄 착각한다.
하나님을 믿는 의도만 좋다고 되는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
참된 기독교 영성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본다.
모든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게 아닌 자신의 자아에다가 하나님의 뜻을 끼워 맞추려고 한다.
요즘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을 훔친다.
외모지상 주의 다 보니 하나님께 받으려 하지않고 성취하는 쪽으로만 취우쳐 있다.
입으로는 하나님하나님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싫어한다.
이것이 오늘날의 믿는자들의 성향이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쪽으로 가다보면 두 가지 근본 문제와 씨름을 하게 된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선한 분인가'? 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은 주님이신가?' 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실제로 세상사를 주관하신가? 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섭리는 둘 다 성경에 아주 명백히 나와 있다.
이런 질문들로 씨름하는 게 부적절한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정당한 의문이며, 아버지와 친밀해지려면 우리의, 회의를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일단 영성 스승을 찾았으면 이제부터 우리가 그의 일을 쉽게 만들 수도 있고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영성 스승을 두는 것은 처방전을 받는것과 같다.
처방전 자체로는 고칠 수 없다.
그러므로 스승을 만나기로 결단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그 만남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참된 기독교는 참된 변화를 낳는다.
성경과 기독교 고전에 더할 나위 없이 명백히 밝혀진 사실이다 참된 기독교는 참된 변화를 낳는다.
변화가 없다면 참된 신앙도 없는 것이다.
7년동안 하나님을 갈망하면서 성경을 다이어리에 썼다.
이제는 그 성경을 다시 보면서 너,,너희라는 부분은 전부 나의 이름으로 바꾸고 있다.
나를 성경화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생하고 두 눈 부릅뜨고 살아 계시는데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엘리트들도 있다.
자기가 그렇게 말하도 벼락을 안 맞는게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런 사고한 사람에게 벼락을 내리실만큼 속 좁은 분이 아니시다.
자신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멋지게 내보이시고 작은 부분들도 신경 써 주시는 선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스러우시고 멋지고 유머러스하시고 나를 언제나 웃게 하신다.
하나님은 어제나 나에게 신경을 써주신다
그래서 난 정말 행복하다.
그 분과 평생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행복하고 기쁜일이다.
그 분의 대단함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