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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꿈과 함께 가라 - 경쟁에 갇혀 꿈조차 가질 수 없는 너에게 ㅣ 꿈결 진로 직업 시리즈 꿈의 나침반 3
청소년 진로 매거진 MODU 지음 / 꿈결 / 2013년 8월
평점 :

꿈을 이룬 사람들을 보면 다른 세게에 사는 사람들 같아서 부럽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사람들의 비결을 알 수 있을 것 기대를 갖게 된다.
총각네 야채가게'이영석 대표---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부모의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온 유아기와 아동기를 벗어나 이 시기에 청소년들은 학교라는 '사회'에 속하고 학업이라는 '일'을 갖게 되면서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사회에 나오면 버티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차라기 공부를 하는 것이 쉽다는 것을 벼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영석 대표는 또래들보다 조금 더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아홉 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사업이 부도난 것에 충격을 받아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집안 형편이 급격히 기울었다.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 여러 가지 불우한 겹친 탓에 한창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학창 시절에 그는 홀로 친구네 집 지하실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처럼 힘든 시기를 보낸 이영석 대표를 더 힘들게 하는 일이 있었다. "제가 어릴 때는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손가락질 대상이 되었어요.
뭘 조금만 잘못해도 '쟤는 아버지가 없어서 저렇다'는 말을 들어야했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심한 컴플렉스였어요.
저는 저를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고 치고 싸우고 엇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전교 꼴등을 맴돌았죠."
그랬던 이영석 대표에게 담임 선생님이 들려준 진심 어린 조언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지금도 이영석 대표는 선생님의 그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영석아, 네가 선생님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알만큼은 꼭 해 주고 싶구나.
영석아, 왜 세상에 자꾸 너를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하니?
세상은 네 마음 만큼 너를 받아들여 주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지 말고 네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건 어때?"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듣기 전까지 이영석 대표는 세상에 대한 불만과 증오를 무작정 쏟아 내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다 철없는 어리광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우리 집이 부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왜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나서 가난할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기에 가슴속에 원망과 분노가 더욱 커졌던 것이다.
알 수 없는 복수심에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세상을 원망해 보았자 오히려 '문제아', '반항아'라는 낙인만 더욱 짙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이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이영석 대표는 그 시절의 일들을 나쁜 경험이라고 여기지만은 않는다.
'한숨을 쉬며 공원을 배회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오징어를 파는 트럭이 계속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오징어 장수 아저씨가 오징어를 너무 못 파는 거예요.
그래서 다가가 말을 붙여 보았죠.
'제가 오징어 팔아 볼 기회를 한번 주십시오.
그러면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무엇이든 잘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라고 말했죠.
처음에는 혀를 차며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지만 속 매달리자 한번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순식간에 오징어를 다 팔았습니다.
'아, 장사를 해야겠다. 학연에도 지연에도 혈연에도 얽매이지 않고 장사를 해야겠다.
꿈을 가진 사람은 당당할 수 있어 이영석 대표는 삶의 벼랑 끝에서 자신이 진정 잘하는 일을 발견하고 최고의 장사꾼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으며 거기에 절실하게 매달렸다.
나도 이영석대표에게 충고를 해줬던 선생님같은 분들을 많이 만났으면좋았을텐데 전학을 7번 정도 다니면서 여러 선생님을 만났는데 내가 받은 상도 촌지를 안준다고 다른 애한테 상을 줘버리는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가장 훌륭한 복수는 내가 아주 잘 사는 것이다.
그런 불의한 세상에 대한 복수는 내가 악착같이 잘 사는 것이다.
왕이 될 수도 역적이 될 수 있는 직업, 방송국 PD---좋은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전문가를 한곳에 모으는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주철환 PD 는 관심과, 관찰, 대화를 통해서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방송PD는 창의력이 굉장히 중요한 직업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인간의 두뇌는 결국 한계 상황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강박 관념과 고정 관념은 PD에게는 최대의 걸림돌이예요.
'지금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 늘그렇게 해 왔으니까.' 이 두 가지를 피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지나치게 되면 예전에 했던 것을 슬그머니 끄집어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 정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여행을 떠나거나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천정만 바라보기도 합니다.
창의적 사고란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철환 PD는 '훈련'의 중요성을 덧붙였다.
마라톤 선수이봉주 건수가 누구보다 잘 뛸 수 이었던 배경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훈련이 있었고, 박지성 선수가 지금의 축구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훈련을 했기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창의력도 훈련에 따라 단련될 수 있다고 한다.
오랜 훈련을 거치다 보면 참신한 아이디어가 점점 쉽게 따라온다.
저에게는 따로 여가 생활이랄 것이 별로 없어요.
일 자체가 곧 여가거든요.
프로그램 기획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그래서 일하는 시간과 여가 시간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것은 저에게 큰 의미가 없어요
요즘의 대세인 PD는 무한궤도의 김태호PD와 꽃보다 할배의 나영석 PD같다.
그런 프로가 진실이 아니라 방송용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것 같다.
특히 꽃보다 할배는 노년의 삶도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다는 위안을 주는 프로 같다.
그런 좋은 프로그램을 창출해내는 PD들은 국가적으로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실패가 우리에게 길을 알려 준다.
나도 지금까지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한 것 같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하기 위한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이다.
김순권 박사는 옥수수 박사가 되기 전 이미 세 번의 쓰디쓴'낙방' 을 경험했다.
그 첫 번째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시절, 정부 관리나 은행원이 되겠다는 생각에 당시 명문 학교였던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지원했다가 보기 좋게 낙방했다.
어린 나이에 충격이 꽤 컸다.
얼마나 낙심했으면 김 박사의 부친이 아들이 엇나가지 않을까 노심초사 걱정했을 정도였다.
부산상고에 낙방한 김순권 박사는 울산농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두 번째는 농협 입사 시험을 치렀을 때다.
울산농고를 졸업하고 시험을 치렀는데, 당시 부친이 병석에 있었기 때문에 부친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합격해야 했다.
외아들로 자라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였기에 더더욱 간절했다.
하지만 또 다시 낙방하고 말았다.
이때는 정말 속상했을 것 같다.
농협 입사 시험에 떨어진 뒤 경북대학교 농과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대학원에서 육종 연구를 하는 것과 농경제학 공부를 하는 것을 놓고 고민했다.
그런데 당시 김 박사의 지도교수가 곧 경북대학교 농과대학에 농경제학과가 생길 텐데, 그러면 교수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꼬드겨 농경제학을 전공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가기 위한 시험을 치렀다.
나름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당연히 합격하리라 믿었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세 번째 고배였다.
'시험에 낙방하고 농촌진흥청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이, 내가 농촌진흥청에 들어간 이유는 통일벼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거죠.
당시에는 벼와 보리가 우리의 주요 작물이었어요.
그래서 벼를 연구하는 과에 들어가려 했는데, 그 과에는 자리가 없어서 옥수수로 발령이 났지 뭐예요.'
이렇게 해서 드디어 김순권 박사와 옥수수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학업과 연구를 병행하던 김순권 박사는 미국에서 지원하는 장학제도의 수혜자가 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처음 미국의 현실을 목격하고 그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설이 좋았던 농촌진흥청의 작물 시험장에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스프링쿨러가 일반 가정집의 잔디밭에서 돌아가고 있었고 옥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단지인 '콘벨트에는 김 박사의 키보다 더 큰 옥수숫대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었다.
미국드라마에도 보면 스프링쿨러가 돌아 가는 것이 항상 보이는데 말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그저 따라갈 뿐이다.
"그럼요, 나 같은 촌놈도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여러분은 더 멋진사람, 더 휼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세요.
내가 있어서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해 지지 않겠어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갔기에 김순권 박사는 자기 길을 찾았고 그 순간 새로운 꿈을 키웠다.
우리나라 농가를 잘 살게 만들겠다는 꿈과 돈을 바꾸는 일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김순권 박사의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앞만 보고 묵묵히 간다는 것이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같다.

에드워드 권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신부가 되겠다는 꿈은 더욱 또렷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할머니는 무속신앙이며 게다가 집안 장손이 결혼도 해야 하며 2세도 낳아야 한다고 반대 하셨다.
그는 신부가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이때부터 방황이 시작되었다.
불량 서클의 대장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잘 하던 공부도 꼴찌에서 몇 번째를 헤멜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대학 진학에도 실패하자 아버지는 일단 군대에 다녀와서 당신의 회사에서 일을 해 보는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셨다.
하지만 그는 그때 무엇을 해야할지, 내가 무엇을 가장 잘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고민이 컸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가출을 해 버렸다.
무일푼으로 왕십리로 향했다.
당장 먹고 자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당시에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고 약간의 월급을 주는 조건의 식당이 있었다.
이게 에드워드 권과 요리의 첫 만남이었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식당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런데 재미있는것이 주방에서 일을 한 탓인지 다른 과보다 조리학과가 끌렸다고 한다.
그래서 영동전문대학 조리과에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 던지는 동안 점점 대답이 선명해졌다.
그는 조리사로 끝장을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 꿈을 이루었고 지금 에드워드 권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두 가지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글로벌 셰프를 양성하는 것이다.
3년 과정으로 진짜 셰프들을 키워 낼 수 있는 요리 사관학교를 세우겠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받는 셰프들이 계속해서 나오면 셰프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도 많아 바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에드워드 권에 대한 학력이나 커리어에 대한 논란이 많고 그의 노력은 높이 살만하지만 우리는 정직한 성공을 해야 한다.

서진규박사의 애기는 정말 유명하다.
이겨 내야 할 불행이 있으면 단단해진다.---우리는 때때로 고난과 역경 앞에서 주저앉고 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 순간 희망이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희망과 행복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데 우리 자신 그로부터 멀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살아 있는 희망의 증거, 희망 전도사 서진규 박사는 조그만 바닷가 마을 월내와 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의 성적은 거의 전교 꼴찌 수준이었다.
숫기도 없어서 친구들과 어울릴 줄도 몰랐다.
"내 이름 석 자도 제대로 쓸 줄 모를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말 다했죠, 멍텅구리가 다로 없었어요." 서진규 박사가 '멍텅구리' 가 된 데에는 집안 환경의 영향이 컸다.
부친은 말단 공무원이었는데 노름벽이 있어서 아이들을 잘 돌보지 않았다.
술장사를 했던 모친은 술에만 취하면 자주 딸을 때리고 모진말을 했다. 환경이 그랬고 공부를 못했던 탓에 아무도 서진규 박사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지금의 서진규 박사를 보면 정말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피부에 와닿는다.
이후 서진규 박사는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미군의 장교가 되었고 학업을 계속해서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순간들을 꾹 참고 이겨 내면 성취감이 더욱 커지는 법입니다."

이 얘기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지만 그 애기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데는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와 노략이 필요한 것이다.
나도 실패를 했을 때 자꾸 두려워지고 숨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너무나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런 꿈을 외치는 책들을 찾아 읽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일어날 힘과 나아가야 할 방향들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결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많은 것 같다.
대학을 가는 것도 결혼을 잘하기 위해서 이고 고시공부를 하는 것도 결혼을 잘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결혼을 잘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결혼이전에 내가 바로 서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망각하는 것 같다.

여자도 실력을 갖추고 자신의 일에서 성공을 해야 하는 것인데 성형을 해서 예뻐지고 내면보다는 외면에 신경을 많이 쓴다.
성형은 죽기전에 100% 부작용이 생기고 나이가 들수록 성괴가 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봤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어쩔 수 없이 늙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노력은 물론 해야 하지만 성형에 과도하게 돈을 들이고 돈을 들인 것이 아까워서 그러는지 성형외과 의사의 말에 속아서 그런 것이지 자기입으로 자기가 예쁘다고 그러고 어려 보인다고 말을 많이 한다.
성형수술을 한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꿈과 삶의 방향에 집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친구는 나에게 소개팅을 시켜 달라고 울고불고를 한다.
남자도 자기일과 꿈을 향해 가다 보면 그 과정에서 동역자나 동료로 만나면 좋은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인간은 동물에 가까운 사고를 갖고 돈이나 먹는 것등 일차적인 욕구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이런 책들을 읽고 이상적이 높은 차원을 볼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