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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 - 인생의 판을 바꾸는 무의식의 힘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1년 4월
평점 :
“정신분석은 살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판을
바꾸도록 돕는 학문이자 기술입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를 읽는 관점은 새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개인사적 진실을 수정할
수는 없어도 서술적 진실로 다르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분석을 받는 사람은 분석가와 함께 자신의 과거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현재를 보다 자유롭고 새롭게 살고 미래를 꿈꿉니다. 판을 바꾸는 힘은 무의식 속에서
삶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갈등구조를 변형하는 작업에서 나옵니다.” (p. 7)
얼마 전 저자의 이전 저서
<프로이트의 의자>를 재미있게 읽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쉬우면서도 편안한 분위기의 글 속에서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이 즐거웠다. 그래서 저자의 신간 소식을 듣고 기뻤다. 나도 모르게 나를 이끌어
가고 있는 무의식을 읽어내어 인생의 판을 바꾼다는 소개글도 매력적으로 들렸다. 내가 내 마음 깊이 숨기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그것들이 나를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지 궁금함 가득한 마음으로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지난번 <프로이트의
의자>가 정신분석학에 대해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해주는 책이었다면,
이번 <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힘겨운 사람들을 위해 정신분석학자의 입장에서 위로를 보내는 책 같았다. 이전보다
좀 더 편안한 분위기의 글들이었고, 어떤 부분들은 에세이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사이 사이에 정신분석학적 개념들을 집어넣고 연관지어 설명해주며 이 책이 심리학 도서임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
♣ ♣ ♣ ♣ ♣
“인생의 판이 달라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
가능성이 보입니다. 목적지를 정하고 늦기 전에 부지런히 걸어야 합니다.
낯선 곳에서 하는 낯선 경험도 나쁜 일이 아니라면 회피하지 맙시다. 걷다가 과거가 그리워서
뒤돌아보면 넘어집니다.” (p. 32)
퇴직자를 위한 저자의 조언이다. ‘걷다가
과거가 그리워서 뒤돌아보면 넘어집니다.’ 라는 말은
왠지 나에게 건네는 말 같기도 했다.
“자아 기능이 너무 허약하면 성공에 따른
뒷감당이 안 됩니다. 꽤 많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삽니다. 분명히
해낼 수 있는 도전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일을 해낼 능력이 없다’며 뒷걸음칩니다. 겸손한 것이 아니고 자존감이 낮아 두려운 것입니다. ‘큰 잘못 없이 무사히 마쳤다’라고 하는 퇴임사는 정말 싫습니다. 허망한 자기 방어입니다. ‘무사(無事)히’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p. 35)
“그 사람에게 투표하면 자신을 위해 한풀이를
해줄 것이라는 환상이 드나요? 무시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처벌과 배제를 앞세운다면 좋은 지도자 감이 아닙니다. 좋든 싫든 격려하고 도와서 발전 추진력을 높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처벌에 온 힘을 쏟기보다는 자신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지혜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분열보다는 통합을 추구해야 합니다. 당신이 선택하려는 후보자의 초자아 시계는 바늘이 어느 쪽을 가리키고 있나요?”
(p. 102)
선거와 정신분석을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 부분도 인상깊었다. 후보들의 초자아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살펴봐야 한다는 표현이 신선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이해받지 못하면, 오해를 받으면 속상하고 화납니다. 이때 조심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하면 남이 나를 오해한 바를 그대로 받아서 스스로 나를 그렇게 규정하는 어리석음에 빠집니다. 정신분석에서 ‘투사 동일화’로
부르는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에 걸려든 것입니다. 상대가 자신을 방어하려고 자기 성격의 일부를 내게 투사한
것을 덥석 받아서 마치 내 성격의 일부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p. 106)
“삶을 재해석하려면 직면해야 합니다. 직면은 긴장을 불러옵니다. 이때 마음이 약해지면 회피하게 됩니다. 직면은 어렵고 회피는 쉽습니다. 내 삶의 가치를 회복하려면 견뎌야 합니다. 피가 통하려면 피가 마르는
경험부터 해야 합니다.” (p. 185)
“확신은 마음의 불편함을 지우기 위한
것입니다. 부분을 알면서 전체를
아는 듯 느끼면 마음의 불편함이 사라집니다. 세상의 불확실성이 늘어날수록 확신에 찬 사람들도 따라 늘어납니다.
확신이 돌같이
굳어지면 소신(所信)이 됩니다. 굳어진 소신을 녹이는 일은 어렵습니다. 녹이려고 하면 자아 정체성이
흔들립니다. 자아 정체성은 ‘나는 누구이며 나와 세상의 관계는
어떠한가?’에 관한 자기 나름의 생각입니다.” (p. 196~197)
“흔들리는 삶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내게 물어야
합니다. 쉬운 방법은 부모나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나 그렇게 하는 한 행복은 멀리 있습니다. 남 탓을 하는 투사라는 방어가 힘든 마음을 잠시 달래주기는 합니다만,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공회전하는 삶은 내 책임입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깨달으면 길이 보입니다.” (p. 230)
“사람은 불편한 말을 들으면 받아들이기보다는
밖으로 내보내려고 합니다. 입에 안 맞는 음식이 입에 들어오면 뱉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 같을 때, 최선책은 상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내 책임인 줄 알아도 남에게 떠넘기면 속이 시원합니다. 뒤집어쓰는
상대는 억울하겠지만 모르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미운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기쁨은 두 배입니다.
‘남 탓’이라는
일상용어를 분석용어로 바꾸면 ‘투사’입니다. 안의 것을 밖으로 던지는 행위입니다.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 욕망을 남에게 화설처럼 ‘쏘아서’ 던짐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합니다.” (p. 247)
‘투사’와 ‘투사동일화’는 내 주변의 관계에서도 주고받았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당시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주고받으며 서로 오해하고 기분 나빠했던 일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일들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며 그 속에 휘둘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겠다.
“권력을 잡기 전에 한 맺혔던 것이 많을수록
권력자가 되자마자 마음에 담았던 사람들을 솎아내려고 머리를 씁니다. ‘솎아내기’를 쉽게 하는 방법은 ‘흠집 내기’입니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거나 근거가 없어 일단 그럴듯한 이야기로 꾸며서 상대를 끌어내린 후에 명분을 만듭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군가를
미워하다가 닮았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정신분석학은 ‘공격자
동일화’로 설명합니다.” (p. 264)
“공격성은 삶의 목표를 성취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수험생의
책상 머리에 붙어 있는 ‘00시험 100일 정복’같은 글귀는 도전의 용기와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사업가는 ‘공격적인 투자’같은 구호에서 추진력을 얻습니다. 내 안에 어떤 공격성이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는지
들여다보면 창의적으로, 합리적으로 활용할 길이 열립니다.” (p.
282)
공격성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불필요한 요소로 보이지만, 그러한 공격성 역시 우리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 ♣ ♣ ♣ ♣
“피분석자와 분석가 사이에서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처럼 독자와 저자 사이에도 책을 중간에 놓고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갑니다. 독자는 책을 통해 저자를 읽고, 독자가 책을 읽는 순간순간 책이
독자를 읽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의 마음이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보다는 읽으면서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을 존중했으면 합니다. 책 제목 ‘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이 뜻하는 것처럼 마음속에 스스로 숨기고
있지만 아직 모르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보람되겠습니다.” (p. 307~308)
저자의 전작 <프로이트의
의자> 만큼 큰 만족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저자의
내공과 글솜씨가 상당한 것은 인정한다. (이전 책에서 저자의 글솜씨는 이미 인정했었다) 그리고 다양한 소재에 대해 정신분석학적 시각에서 풀어내는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가볍게 읽는다고 생각했는데도 다 읽고 보니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었다. 이
책은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내 생각의 근원을 찾을 수 있게 이끌어 주기도 했고, 이어지지 못했던 각각의
사건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편한 마음으로 심리학 서적 한 권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것이다.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