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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 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김욱 지음 / 서교책방 / 2024년 11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구순 번역가의 인생 이야기
책을 선택한 이유
인간의 생은 한 번이다.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생을 되돌아 보면 나름의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인생 2막을 작가로 성공한, 구순 현역 작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를 선택한다.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는
1장 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
2장 흔들리고, 방황하고, 실패할지라도
3장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4장 쇼펜하우어처럼 살다가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5장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로 구성되었다.
1장 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 에서는
이끌리듯 한세상을 살았다.
찬란한 시설은 잠시 스치고 지나간 꿈만 같다.
생의 말년은 아픔이 모든 것이 된다.
인간은 언젠가는 자신의 손으로 일군 모든 것을 잃는다.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다시 꿈을 꾸게 된다.
비겁했을 뿐이다.
스무 살에 이루지 못한 꿈을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떠나버린 꿈이라도 되돌려보려 손이 닿지 않은
흰 종이 한 장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인생은 두려움의 연속이다.
연줄은 철저하게 선택의 문제다.
집단의 기조에 순응하는 개인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목격한다.
타인은 잠재적인 악마가 된다.
내가 하는 말에 자신감이 없어, 쓴 글이 켕긴다.
처참한 심경을 헤아려 스스로 잔인한 악마가 되는 일이 없다면,
세상과의 작별이 조금은 아름다워질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내가 살아온 날과 이자는 확장된다.
욕망이 이뤄질 때마다, 내일의 삶은 욕망으로 점철된 이율의 등락이다.
상실이라는 극단의 망각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
세상은 빚진 액수를 통해 인간을 가늠한다.
삶을 담보로 책정하는 선입금에 취해 내일을 당겨쓰는
과오들이 부한히 반복된다.
땀을 요구하지 않는 달콤한 꿈에서 꺠어난 백발 노인이
여전히 빚을 지며 빚을 지며 살아가는 까닭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언제나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징계에서 자유로워지는 가장 빠른 처방은
반복해서 가책을 되풀이 하는 것이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망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권력에 다가감으로써 더 많은 자유가 파생된다.
2장 흔들리고, 방황하고, 실패할지라도 에서는
인생은 그 자체로 비극이라는 쇼펜하우어 의 글은
세상의 통속적 시선들에 부딪혀 몸부림치는
쇼펜하우어 의 고뇌가 절절하게 느껴진다.
내가 느낀 쇼펜하우어 를 독자에게 강요한다는 발상이
실수였다는 출판사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젊은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단락들을
주제별로 간추려 편역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다.
실패는 속성을 이해하고, 실패한 경험을 분석하여
나만의 지식으로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조적 실패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든여덟 현역 작가는 죽어야만 글 쓰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고통을 유발하는 통점이다.
여간해서는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남의 글을 번역하기는 쉬워도 내 글을 쓰기란 어렵다.
몸이 늙었다는 것보다 절박했던 심정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아프다.
글로 먹고산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모두의 것으로
환원시켜야만 하는 작업이다.
오래 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많은 부와 사회적 지위를 달성하는 것 또한
궁극의 행복이 되어주지 못한다.
혼자 산을 찾는 나이 지긋한 사람에게
말을 걸어준 젊은이와의 몇 마디가 위로가 된다.
고독하고 타인의 목소리가 그리웠을 그들에게
인사 한마디 건네주지 못한 자신이 한스럽기만 하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좋은 소설가의 역량과 심성 모두 못미쳐, 타인이 쓴 글을 번역하며,
나의 작품을 글로 옮기는 환상에 취한다.
미완성의 작품, 미완성의 인생을 떠올릴 때마다
한없는 자유로움과 자신감을 쟁취한다.
뿌리깊은 가부장제는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남편과 아버지라는 키워드로만 해석되는 한계에 부딪혀,
내가 옳다고 믿는 인격의 추구는 집단따돌림을 불러일으킨다.
퇴직은 노동의 종말이다.
남자들은 노동의 자격 말소를 인생의 종말로 확대해석하고는 한다.
사회적 신분의 지위가 상실되어도, 부끄러워할 것 없다.
정해진 인식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나를 향한 비난과
스스로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의 의미는 퇴색된다.
내가 쓴 책 갈피에서 미완성된 인간으로서의 여운이 남겨져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폐허라는 공간만큼 매력적인 대상은 없다.
젊음은 상상하는 대로 세상이 만들어지리라는 치기 어린 자신감이다.
눈에 보이는 폐허는 재건이 어렵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이상의 폐허로 고통에 잠긴 영혼을
재건하는 일은 지나치게 크고 위험한 도전이다.
3장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에서는
풍파와 고비를 버텨내고 또 버텨낸 사랑 중에
일부만이 질기게 살아남아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열매가 작고 씁쓸하더라도 허무해할 것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내와 수고가 배신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있다.
살아온 시간은 행복하지 않았고, 살아온 방식들은 올바르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상황이 어쩔 수 없을 따름이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큼은 외면하지 말기를 부탁한다.
미래는 오늘이다.
미래를 계획하는 이유는, 앞으로 십 년간 조우할
나의 모습을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생물이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함이 가장 큰 수치다.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젊음이 부럽다.
두 번째 청춘을 살게 된다면 고통을 더욱 치열하게 삼키고 싶다.
기회는 있지만 오래전부터 지쳤다는 핑계로 나 자신을 속인다.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나의 변화뿐이다.
매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하루를
감사히 여길 줄 아는 것이 전부였다.
멋진 인생을 살려면, 남을 돕는 생각도 해보기 권한다.
내 이웃과 세상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의무를 실현하지
못하는 삶은 부끄러운 생이다.
오늘 겪는 불평등의 원인은 비교다.
나이 든 사람들의 해괴망측한 늙음의 까닭은 베풀지 않아서다.
용서가 사라진 세상은 두렵다.
노인의 용서와 배려를 외면한 말과 행동에 노인혐오를 자처한다.
타인을 용서하는 것, 타인의 다름을 포용해주는 것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의미 있는 존재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파도는 섬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다가간 거리만큼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
자연은 삭풍에 황량해진 제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찬란한 녹음을 자부하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어 자연이 좋아지는 이유다.
4장 쇼펜하우어처럼 살다가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에서는
난관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생의 마지막 기회를 참된 인생을 걸어가는 데 쓸 것인가,
아니면 주어진 길을 따라 늙고 병들어가는 데 쓸 것인가,
인생은 괴로울수록 재미있는 최고의 놀이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황홀한 모험의 시기다.
세상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 위험한 곳이다.
부모라는 존재는 나만큼 나약하고 위태로운 존재다.
치열한 생존에의 경재은 가족이라는 피붙이의 끈끈한 유대를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무생물로 사물화하는 사태를 낳는다.
죽음이 사육되는 시대를 살아간다.
어제보다 못하고 내일보다 덜 소중한 오늘은 없다.
무병은 사라지고 장수만 남아 행복하지 않다.
톨스토이 가 선택한 자기 타살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다.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적, 경재적 배경은
사회에 소속된 노인들의 삶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아프리카 노인들은 나이 듦에 대한 보상을 부끄럽게 여긴다.
아프리카 노인들은 자연이 노년에게 내린 숙명적 역할을 안다.
몸은 힘들어도 권위를 인정받고, 존경해준다는 자부심의 축복을 받는다.
노인은 사회를 옳은 길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
책임은 나이를 잊은 희생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서로를 편견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세대 논쟁을 넘어 세대 증오로 번져간 요즘,
가족이 베푼 것들, 양보한 것들에 사로잡혀,
서로를 향한 고마움을 잊어가는 것이 걱정스럽다.
한정된 몫을 둘러싼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미움과 원망은 잠시 거두고, 변화를 위해 분노를 폭발시켜야 한다.
모든 인간은 한때 청년이었다.
어차피 흐르는 시간이다.
시간이 내 곁을 떠난다 해도 붙잡고 싶지 않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삶의 반을 빼앗긴다는 뜻이다.
타고난 천성과 인생관이 다른 경우도 많다.
각자의 인생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또한
수십 년 세월을 살아온 부부이기에 가능한 사랑이다.
5장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에서는
삶에는 때가 있어 원하는 일이 원하는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성공과 실패는 시기와 관점의 차이다.
오늘 실패했기에 내일 새로운 일을 찾게 되는 수도 있다.
인생은 아주 미세한 금만 가도 어느 순간 산산이 부서져버린다.
모든 색에는 상반된 성격이 공존한다.
색이란 맞고 틀리고의 영역이 아니라,
좋고 싫음의 문제일 뿐이다.
본인의 고유한 색을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과 비슷한 색으로 삶을 칠해나가야 한다.
적어도 내 색과 조화를 이루는 채색을 추구해야 한다.
인생은 불안과 불만을 떠도는 완만한 굴절이다.
인생은 불안과 불만과 변덕 사이를 오가는 여행이다.
나다움을 정한 건 내가 아니라 세상이었음을 인정할 수 없어,
마음 한구석에 불만이 떨쳐지지 않는다.
도착점을 결정하는 요소는 방향과 속도다.
또 다른 방향을 설정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속력을 쥐어짠다.
기쁨은 멀리 있지 않다. 슬프지만 않아도 기쁨이다.
내가 갈 수 있을 만큼 걸었고, 지치지 않을 만큼 상대하며,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벅차지도 않았으면 된 거다.
타동사는 목적이 행위의 주체를 밀어내는 것이다.
목적은 나를 분열시킨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성 중 일부만 수용해야 한다.
현실을 따르라는 충고처럼 비겁한 말은 없다.
진짜 후회는 도착해본 자들의 몫이다.
죽음이 있기에 살이 있다. 절망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실패와 절망이 미래를 결정지을 수 없다.
좌절은 실패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증언해 준다.
자부심은 내가 나에게 주는 보상이다.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것은 관점이다.
내가 바라보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산다는 것은 반복되는 시간의 연속이다.
삶이란 관점이다.
관점이 삶을 따라가진 않는다.
실패하고 망가졌던 힘겨운 시간들이 없었다면,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재미없는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하찮게 보이는 과거와 실패의 역사는 아름답다.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가 높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멈추지 않는 걸음이 되기를 바라며, 아주 많이 행복하다.
이유 없이 부끄러움이 느껴진다면 나이 들었다는 증거다.
인생의 이유를 찾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여정이 인생의 이유다.
사회는 평등하지 않다. 포장된 길만이 길은 아니다.
선택은 숙명이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선택에 달렸다.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거나, 영원히 사라질,
소유물에 얽매여 나를 지워왔다.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의 시간이 오로지 나 한 사람의 시간으로
끝난다는 건 후회의 기억을 일부로 쌓아가는 것이다.
오늘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내일을 나눠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는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배운 깨달음,
제2의 인생을 작가로 시작하면서 느낀점,
인생의 고통을 이겨내는 마음가짐, 인생의 철학,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에 대해 말한다.
찬란한 시설은 잠시 스치고 지나간 꿈만 같다.
인간은 언젠가는 자신의 손으로 일군 모든 것을 잃는다.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다시 꿈을 꾸게 된다.
스무 살에 떠나버린 꿈이라도 되돌려보려, 손이 닿지 않은
흰 종이 한 장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내가 하는 말에 자신감이 없어, 쓴 글이 켕긴다.
백발 노인은 삶을 담보로 책정하는 선입금에 취해 내일을 당겨 쓰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언제나 끝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징계에서 자유로워지는 가장 빠른 처방은
반복해서 가책을 되풀이 하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독자에게 강요한다는 발상이 실수라 말하자,
젊은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단락들을
주제별로 간추려 편역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다.
실패는 속성을 이해하고, 실패한 경험을 분석하여
나만의 지식으로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고통을 유발하는 통점이다.
남의 글을 번역하기는 쉬워도 내 글을 쓰기란 어렵다.
글로 먹고산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모두의 것으로
환원시켜야만 하는 작업이다.
오래 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많은 부와 사회적 지위를 달성하는 것 또한
궁극의 행복이 되어주지 못한다.
미완성의 작품, 미완성의 인생을 떠올릴 때마다
한없는 자유로움과 자신감을 쟁취한다.
정해진 인식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나를 향한 비난과
스스로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의 의미는 퇴색된다.
폐허라는 공간만큼 매력적인 대상은 없다.
눈에 보이는 폐허는 재건이 어렵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이상의 폐허를
재건하는 일은 지나치게 크고 위험한 도전이다.
풍파와 고비를 버텨내고 또 버텨낸 사랑 중에
일부만이 질기게 살아남아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살아온 시간은 행복하지 않았고, 살아온 방식들은 올바르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큼은 외면하지 말기를 부탁한다.
미래는 오늘이다.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나의 변화뿐이다.
내 이웃과 세상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의무를 실현하지
못하는 삶은 부끄러운 생이다.
용서가 사라진 세상은 두렵다.
노인의 용서와 배려를 외면한 말과 행동은 노인혐오를 자처한다.
타인을 용서하는 것, 타인의 다름을 포용해주는 것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의미 있는 존재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인생은 괴로울수록 재미있는 최고의 놀이다.
생의 마지막 기회를 참된 인생을 걸어가는 데 쓸 것인가,
늙고 병들어가는 데 쓸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가장 황홀한 모험의 시기다.
세상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 위험한 곳이다.
부모라는 존재는 나만큼 나약하고 위태로운 존재다.
금수저와 흙수저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산물이다.
어제보다 못하고 내일보다 덜 소중한 오늘은 없다.
노인은 사회를 옳은 길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
책임은 나이를 잊은 희생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세대 간 갈등은 서로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세대 논쟁을 넘어 세대 증오로 번져간 요즘,
서로를 향한 고마움을 잊어가는 것이 걱정스럽다.
모든 인간은 한때 청년이었다.
어차피 흐르는 시간이다.
시간이 내 곁을 떠난다 해도 붙잡고 싶지 않다.
성공과 실패는 시기와 관점의 차이다.
오늘 실패했기에 내일 새로운 일을 찾게 되는 수도 있다.
색이란 맞고 틀리고의 영역이 아니라,
좋고 싫음의 문제일 뿐이다.
자신과 비슷한 색으로 삶을 칠해나가야 한다.
적어도 내 색과 조화를 이루는 채색을 추구해야 한다.
도착점을 결정하는 요소는 방향과 속도다.
내가 갈 수 있을 만큼 걸었고, 지치지 않을 만큼 상대하며,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벅차지도 않았으면 된 거다.
진짜 후회는 도착해본 자들의 몫이다.
현실을 따르라는 충고처럼 비겁한 말은 없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절망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삶이란 관점이다.
관점이 삶을 따라가진 않는다.
하찮게 보이는 과거와 실패의 역사는 아름답다.
인생의 이유를 찾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여정이 인생의 이유다.
사회는 평등하지 않다. 포장된 길만이 길은 아니다.
선택은 숙명이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선택에 달렸다.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의 시간이 오로지 나 한 사람의 시간으로
끝난다는 건 후회의 기억을 일부로 쌓아가는 것이다.
오늘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내일을 나눠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관사정이다.
사람은 관뚜껑을 닫아야 비로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불확실성에 안전한 것은 없다.
한치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다.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생 선배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삶의 시행착오를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는
기자 은퇴 후 투자 실패로 파산 지경에 몰렸지만,
오랜 작가의 꿈을 살려, 번역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며,
구순에도 현역 작가로 활동하게 된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와 삶에서 배운 깨달음을 말한다.
삶을 뒤돌아 보는 것은 부끄럽고 아플 수 있다.
처절한 반성이 없으면 변화와 발전은 없다.
절망에서 새로운 희망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인생을 먼저 산 선배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반추하며,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사용한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는
구십 인생 영욕의 세월을 회고하는 삶의 여정을 통해,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깨닫도록 한다.
서교책방 과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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