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건너뛰기
이주호 지음 / 브릭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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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무덤 건너뛰기>는 여행 작가인 이주호 님과 브릭스 출판에서 펴낸 책이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 무덤 건너뛰기는 불교, 도교, 천주교의 성인이라 부릴 인물들과의 교감을 드러낸다.

 

저자는 여행을 전문적으로 다니다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인문들과 교감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무덤을 찾는다.

 

우리는 모두 위대한 사람과의 교감을 원하지만, 무덤을 찾아다니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조상의 묘를 찾고, 여행지를 갔을 때 유명인의 무덤이 있다면 찾아간다.

 

우리 땅에 흩어져 있는 위대한 이들의 무덤을 찾아다닐 수도 있고, 그들과의 교감을 극대화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주호 작가의 자장대사, 허균, 그리고 김대건 신부의 행적을 찾아다니는 것은 흥미롭고 많은 의미를 던진다.

 

책에서 소개하는 세 사람의 특징은 개인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다는 점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종횡무진 자신의 여러 종교적 의견을 나타내는 저자의 설명도 인상적이다.

 

 

 

목차를 보면 1장은 자장의 비명, 그리고 뼈를 둘러싼 몇 가지 가설, 2장은 허균의 유언, 유언을 유언이라 하지 못하고, 3장은 김대건의 필사적 생존, 오직 순교를 위한으로 나눠져 있다.

 

 

이제 자장에 대해 알아보자.

 

신라 승려 자장. 당나라에서 부처의 뼈를 들여온 사람.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신라 불교의 계율을 바로 세우고, 오대산에 들어가 깨달음을 완성한 사람. 그러나 이곳 태백산 어느 기슭에서 단발의 비명을 지르며 횡사한 사람. -19

 

한국의 적멸보궁은 부처가 아니라 신라 승려 자자의 행적을 기리는 곳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저자는 무덤 순례 대상은 부처가 아니라 자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자장은 정치 일선에 나서자 급작스레 깨달음이 미진하다 여겼던지 아니면 정치 세력 간 알력으로 그래서인지 자장은 바다 건너 당나라 유학을 결심한다.

 

자장은 당나라로 유학하여 오대산을 찾고자 한다. 오대산은 부처의 시대에 이미 장차 문수보살이 살 곳이라 예언된 동쪽의 산이다.

 

자장은 문수보살을 만나고 싶었다.

 

자장이 오대산에 입산한지 7일째 되던 날, 자장은 꿈에서 인도 사람처럼 생긴 승려를 만나 계시처럼 시 구절을 듣게 되는데, 잠에서 깨고도 용케 그 구절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일체법을 깨달아 알면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자성에는 있는 바가 없고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 이같은 불성을 깨우쳐 알면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 곧 노사나불을 볼 것이다

 

계율이 불교 수행의 시작이라면 정진 끝에 닿아야 할 이상인 마지막은 역시 깨달음이었다.

 

그대 나라 명주 땅에도 오대산이 있다. 그곳에 1만의 문수보살이 살고 계시니 돌아가거든 그곳에서 예배를 올리라.” 이 말은 인도 사람과 중국 사람을 오가는 문수보살의 상황극 중에 나왔던 비극의 서막이었다. 본국의 호출과 별개로 자장은 신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44p

 

당나라에서 돌아온 645, 자장은 경주 황룡사에 9층 목탑을 건립하여 호국불교라는 신라 불교 이념을 확립한다. 그리고 이듬해 통도사 금강계단을 세운다. 한번 부처의 계를 받으면 금강처럼 깨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금강이었고, 출가 수행자들의 모든 수계 의식은 이 계율의 단상에서만 치러졌다.

 

 

 

이제 허난설헌과 허균을 만나보자.

 

오래전, 아주 오래전, 세 아이를 잃고 남편의 외면 속에 삶을 마감했던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나이는 스물 일곱.

그녀는 그토록 그리던 광한전 백옥루로 떠난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은 강릉 땅, 대문 앞에 냇가가 흐르는 마을이었다.

5세에 강릉을 떠나 을지로 부근 건천동에 살며 아버지와 오빠에게 글을 배우고, 8세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란 글을 지어 신동이 태어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82p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어떠한 교조, 학풍에도 집착하지 않고, 권력보다는 우애를, 학식보다는 학문을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유학에서 과학까지 두루 섭렵한 대학자 화담 서경덕의 산속 초가집을 찾아가 손수 밥을 지어 받치며 학문을 전수받았다. 이때 얻은 도가적 소양은 아들 허봉과 딸 허난설헌에게 전해졌다.

 

허균이 열두 살 되던 해 경상도 관찰사 임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다 상주 객관에서 병으로 숨졌던 까닭에 허균이 부정을 느낀 사람은 그보다 열여덟 살 많은 작은 형 허봉이었다.

 

이들 형제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허난설헌은 이른 나이부터 문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허봉은 열여덟 나이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스물하나에 문과에 급제한 천재였다. 허균이 생원시에 합격한 건 스물하나, 문과 급제는 스물여섯이었다.

 

임관 초기 허봉은 선조의 총애를 받으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선조를 옹호하지 않아 유배를 당한다.

허봉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3,500여 명의 조선인 포로를 송환시킨 대승, 휴정 사명대사와 각별한 친구였다. ,,도를 망라한 허봉은 동생 허균을 사명대사에게 소개하고, 허균은 불교에 입문하게 되어 후에 사명대사의 비문을 썼다.

 

허균은 열아홉 나이에 허봉과 누나 허난설헌을 모두 잃는다.

이후 문과에 급제한 허균은 죽림 7현이라는 혁명 모임을 결성하는데, 일곱이 모여 뭘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신세한탄과 세상에 대한 비판을 하고 지낸 듯하다.

 

이이첨은 강변 7인에게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옹위하려는 목적으로 반란을 획책한 거 아니냐는 시나리오를 건넸다. 영창대군은 궐에서 쫓겨났고 이들은 역성혁명을 도모했던 가상한 인물이 되어 생을 마쳤다.

 

정치 사화로 죽어간 이들이 하나둘 복권되었지만, 허균은 조선이 망하는 날까지 역적으로 남았다. 조선 유일의 역적...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무덤건너뛰기 #이주호 #자장 #허균 #김대건 #브릭스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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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이후, 인생을 결정하는 열 가지 힘 - 하버드 심리학 거장의 마지막 강의
B. F. 스키너.마거릿 E. 본마거릿 E. 본 지음, 이시형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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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50이후, 인생을 결정하는 열가지 힘>은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B.F.스키너 교수와 마거릿 E. 본 교수가 지은 책이다.

 

스키너 교수는 당대 가장 위대한 심리학자 1위로 선정되었으며,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 연구를 수행한 걸로 유명하다.

 

동물이 자발적 행동을 한다고 여겨 스키너 상자를 개발하였다.

 

지금에서는 너무 당연하지만 스키너 교수는 인간과 동물을 동일시함으로써 심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남기기도 한다.

 

그는 70대 후반 <노년의 지적 자기관리>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이후 신문, 잡지 각종 방송에서 그의 논문을 책으로 내자고 제안한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일을 줄여야 한다는 신념과 당시 자서전을 집필 중이라 이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노년학 분야를 잘 알고, 논문을 집필할 때 도움을 준 마거릿 본 박사는 스키너 교수의 논문을 노인을 위한 일상생활의 주제로 제한하여 나온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노교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감동적이고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게 된다.

 

하나도 빠짐없이 50대 이후의 삶은 준비하게 도와주는 스키너 교수의 목소리가 전해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처음 가는 해외 국가를 가기 전, 그 나라에 관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알고자 한다.

통화, 대중교통, 숙박, 언어, 사람들과 문화, 주의할 점과 기본적인 언어와 인사말등 배우고자 한다.

 

노년이란 바로 이러한 낯선 나라에 가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곳에 가기 전에 준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새로운 생활이 더욱 즐거워진다.

 

책은 10가지 주제에 맞춰 57가지 실질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노년이라는 낯선 나라에 대해 사람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년이라는 나라에 관해서도 화려하고 매력적인 안내책자를 만들 수 있고 이 책은 노년에 대한 계획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스키너 교수와 본 교수가 전하는 조언을 알아보자.

 

 

1장 마음 : 오십 이후를 생각한다

 

2장 환경 :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든다

 

3장 생각 : 생각을 분명하게 하라

 

4장 일상 : 생활을 바쁘게 보내라

 

5장 관계 : 이런 사람들과 어울려라

 

6장 과거 : 기억을 소중하게 여겨라

 

7장 몸 : 세상과 끊임없이 접속하라

 

8장 감정 : 언제든 기분 좋게 지내라

 

9장 태도 : 피할 수 없는 마지막에 대해서

 

10장 역할 : 즐거운 노년에 보내는 갈채

 

 

이 책을 읽고 주위의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지인들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50이후인생을결정하는열가지힘 #스키너 #마가렛본 #더퀘스트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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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이창훈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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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시집은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이다.

 

저자인 이창훈 님은 남양주 심석고등학교 선생님이다.

 

끊임없이 바람 부는 섬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감동과 전율 때문에 주저 없이 그 작가가 다닌 경희대학교 국문학과에 들어가고 현재 어린 벗들과 문학을 공부하고 꿈꾸고 있다고 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그가 전하는 시는 사랑, 아련함, 그리움이다.

 

 

그가 전하는 인사말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스마트한 기술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내면을 채워 주지는 못한다.

 

세상은 많은 걸 가져야만 더 행복할 수 있다고

큰 소리로 외치지만

사랑은 많은 걸 주어야만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침묵으로 속삭인다.

 

여전히 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고

어린 벗들에게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나의 삶은 아직도 학교에서 시작해 학교에서 끝난다.

 

쓸쓸하고 외로울 때면 시를 쓰고 또 썼다.

마치 편지를 읽듯 고백을 하듯

어린 벗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사랑의 길을 선택한

한 가난한 영혼의 속삭임을 그러모아 보았다.

 

부디

사랑이 당신을 부르면 주저 없이 따라가시기를

 

 

그가 전하는 문장은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한 알의 약과 같다.

휴식 시간이면 나는 책상 한쪽에 있는 시집을 펼친다.

시인이 정성스레 새겨 넣은 글들을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이 창훈님의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을 거라 생각한다.

 

행복한 삶은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사랑이다.

그는 사랑에 대해 그리워하고 다시 올 사랑에 온 몸을 던질 것이다.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그 모든 감정은 외부요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고슴도치의 가시는 내 안의 뿌리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하루 일상을 지내는 나의 모습은 분필이다.

깨끗하게 지워진 칠판처럼 내일이면

사라지겠지만 서서히 작아져가는 줄 알지만 오늘도 우리는 온 몸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이제 그의 시 몇 편을 감상해보자.

 

 

조화 造花

 

꽃이 되고 싶었다

꽃으로 피고 싶었다

 

너만의 꽃이 되어

네 눈 속에

네 가슴 한복판

너만의 꽃으로 피어나고 싶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햇살 한 줄기 내려오지 않아도

뿌리내릴 뿌리 하나 없어도

 

밝고 화사한 얼굴을 들어

태어난 빛깔 그대로

그냥 말없이 너를 보고 싶었다

 

너 없는 봄날

너에게 영원한 꽃이 되고 싶었다

 

 

 

고슴도치

 

누군가 박은 못처럼

밖에서 들어와 박힌 것이 아니다

 

가시는

내 안의 뿌리에서 돋아난 것이다.

 

 

 

부메랑

 

던지면

아무리 멀리 던져도

 

내 손을 되돌아오던

부메랑처럼

 

떠나면

아무리 멀리 떠나도

 

내 가슴으로 되돌아오는

너였으면

 

 

 

분필

 

이라는 칠판

 

불태운 적은 없어도

궤도를 벗어난 적은 없지만

나의 길을 가고 또 갔다

 

슬픔을 아는 시를 사랑했고

먼저 간 슬픔의 시인의 시를 몰래 읽고는 했다

부끄러움을 알았고

그 부끄러움이 부끄러워 밤새워 시를 쓰기도 했다

 

이제 막 피어나는 봄날의 아이들에게

의자 하나씩 나누어 주며

함께 문학을 이야기했고

 

여전히 모르는 사랑에 대해

사랑의 시를 써서 들려주기도 했다

보여주기도 했다

 

한 땀 한 땀 새긴 삶의 문장들과

한 발 한 발 디딘 길의 발자욱들은

깨끗하게 지워진 칠판처럼 내일이면

흔적없이 사라지겠지만

 

닳고 닳아

서서히 작아져만 가는

온 몸으로 열심히 살았다

 

오늘도 나는 교탁에 선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너없는봄날영원한꽃이되고싶다 #남양주 #심석고등학교 #이창훈 #꿈공장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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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돈 공부 - 잘나가는 회사의 돈 쓰는 방법
고야마 노보루 지음, 조은아 옮김 / 시그마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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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사장의 돈 공부>이다.

 

책의 저자는 고야마 노보루라는 일본의 유명한 기업가이다.

그는 도쿄경제대학교를 졸업하고 무사시노에 입사했다.

 

한때 독립하여 사업체를 운영했으나, 1987년 무사시노에 다시 입사하여 1989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대졸자는 두 명뿐인 별 볼 일 없던 루저 집단을 매년 수익이 오르는 우량 기업으로 키워냈다.

 

90년대 일본은 산업 전반이 불황으로 접어들어 그가 보여주는 매출 성장세와 기업의 성장은 놀라운 것이다.

 

노보루 대표는 이 책에서 어떻게 돈으로 직원들을 자극했는지 그 비밀은 공개한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느낀 돈에 관한 비결을 모두 공개하다 보니 우리나라 실정에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돈 공부는 성공한 기업가의 돈에 대한 철학을 온전히 느낄 기회이다.

 

노보루 대표가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은 교육비와 성과급이다.

 

성과급은 말 그대로 회사의 매출에 이바지한 순서에 따라 S,A,B,C,D로 차등을 두어 다르게 지급한다.

 

직원들의 성과급은 회사 직원 전원에게 공개되어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가 된다.

 

이렇게 직원을 자극한 이유는 직원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라는 사실은 노보루 대표와 직원들은 모두 공감대를 가졌다.

 

본업인 청소용역업의 성공과 더불어 기업 컨설팅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낸 무사시노는 현재 700여 개의 회원사를 두고 있다 한다.

 

노보루 대표와 무사시노의 거침없는 성공신화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책 속으로]

 

무사시노는 최근 10년간 과장 직급 이상의 퇴사자가 2명인데, 그중 1명은 재입사했으니 실질적으로는 1명뿐입니다. 무사시노 직원들은 왜 회사를 떠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직원들에 대한 애정을 말뿐만 아니라 돈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무사시노는 상여금을 직원들에게 현금으로 직접 줍니다.

굳이 은행에 입금하지 않는 이유는 직원들이 회사의 애정을 실감하도록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7p

 

직원들의 급여를 올리고 야근을 줄이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최우선으로 신경 써야 하는 사항은 직원들 간의 대화를 활성화해서 소통이 잘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직률을 낮추는 가장 중요한 비법이다.

무사시노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수많은 회식 자리를 통해서 긴밀하게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70p

 

회사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은행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존재다. 현금이 없으면 회사를 지킬 수 없고, 중소기업에 있어 가장 현실적인 현금 조달 수단은 은행 대출이다. 은행과 얼마나 좋은 관계로 지내느냐가 중소기업의 운명을 가른다.

은행과 좋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효과적인 도구로 경영계획서, 경영계획발표회, 은행 방문 등 3종 세트가 있다. -125p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사장의돈공부 #고야마노보루 #조은아 #무사시노 #시그마북스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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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의 중국 문화대혁명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바바 기미히코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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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저자 바바 기미히코 교수와 장월철 교수가 옮긴 <세계사 속의 중국 문화대혁명>이다.

 

지은이 바바 기미히코는 와세다대학원 아시아태평양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학술박사로서 전문 분야는 동아시아론, 일중 관계론, 미디어론이다.

 

지금까지 저술한 책들은 <버마의 수금을 둘러싼 전후의 역사>, <전후 일본인의 중국 형상-일본 패전으로부터 문화대혁명, 일중 국교 회복까지>, <현대 일본인의 중국 형상-일중 국교 정상화로부터 톈안먼 사건, 천황 방중까지>등 중국과 동아시아 전문가이다.

 

이 책은 세계사 속의 중국 문화대혁명 특히 인도네시아 19659.30 사건과 문화대혁명과의 관계를 조명한다.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이 책의 내용에 빠져들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절친한 친구가 이민을 간 나라이고, 허니문을 그곳으로 다녀온 친구로 인해 늘 내 관심에 있는 나라다.

 

그러던 중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 역사에 관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1965년 인도네시아, 쿠데타 당시 군은 반공을 명분으로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 중국인들을 비밀리에 살해한다. 영웅으로 추앙받는 암살단 주범은 과거 살인을 재연하는 다큐를 만들며 후회하게 된다는 영화이다.

 

 

전후 시기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중국에 대해 과거를 속죄하는 마음과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친중국 감정, 그리고 근대 이후에 심해진 멸심감 등이 뒤섞여 남아 있었고, 동시에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감과 경계심이 존재하는 등의, 복합적인 대중對中감정을 마음속에 품은 채로 활발한 민간교류를 이어왔던 것이다.

 

특히 전후 시기 일본인의 이목을 끌었던 동시대 중국의 동향으로는 4가지 사건이 있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966년 문화대혁명 발발, 1972년 일중 국교 정상화, 그리고 1989년 톈안먼 사건이 그것이다. -4p

 

중국과 인도네시아의를 나란히 놓고 보아도 언뜻 떠오르는 이미지는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101일에 건국하였고, 인도네시아는 같은 해 1227일에 종주국 네덜란드로부터 주권을 이양 받았다. 두 나라 모두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하였고, 국가로서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양국의 유대 관계는 의외로 두터운 편이다. -42p

 

인도네시아에는 인도네시아공산당 PKI이 있었는데, 역사적으로 보자면 1920년대 네덜란드 식민 통치 시대에 코민테른의 지도하에 창설되었던, 사실상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공산당이었다.

 

당의 발표에 따르면 350만 명의 당원을 거느린, 인도네시아 최대의 정당이자 비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최대 규모를 과시했던 공산당이었다. -52p

 

19533월에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하고 나서 3년이 경과한 562월의 소련공산당 흐루쇼프 서기장이 스탈린의 개인숭배 및 독재 정치와 숙청 등의 사실에 대해 비판을 하였다.

그때까지 소련 일변도 입장을 보였던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소련에 대한 불신과 불화가 생겨났고, 점차 양국 간의 대립이 학대,첨예화되었다.

 

이렇듯 중소 대립이 격화되는 와중에 수카르노는 중국쪽으로 기울어지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54p

 

상황을 잠시 돌아보면 중국과 소련의 관계를 날로 악화되었고, 나중에는 국격분쟁으로 국지전까지 한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은 당시 국내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 보르네오 섬의 말레이시아를 몰아내고 인도네시아가 보르네오 섬을 전부 통치하길 희망한다.

 

중국과 인도네시아가 화합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AA 아시아 아프리카 반둥회이다.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열린 AA 회의에서 단연 스타는 의장국의 대통령인 수카르노와 회의를 주도하는 중국의 저우언라이이다.

 

그럼 659.30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당시 인도네시아는 세 세력이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싸우던 때이다.

한 세력은 수카르노이다. 두 번째 세력은 군사력을 독점한 군부였고, 세 번째 세력은 인도네시아 공산당 PKI 이었다. 공산당은 군사력은 없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잘 조직된 강력한 정당이었다.

 

수카르노는 군부를 견제하려고 공산당에 동조했다.

중국은 인도네시아와 외교적 관계를 강화하고, 두 나라는 자체 원자폭탄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한다.

 

PKI는 군부의 약점을 보안하기위해 농민과 노동자의 무장을 제안했고, 수카르노의 지지를 받았다.

 

군부 내에서도 수카르노 지지파, PKI 지지파도 있었지만 PKI 반대세력인 반공세력이 가장 우세했다. 이들은 확대되는 공산주의자들의 무장 조직을 막기 위해 장군 협의회를 설립한다.

 

1965101일 새벽3시 군부대의 좌익 지휘관들이 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들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해 핵심적인 장군 일곱 명을 체포하기 위해 군대를 그들의 집으로 보낸다.

그리고 7명의 장군들을 죽인다.

쿠데타는 엉망친창이었다. 수카르노를 찾으려 했지만, 그의 행방을 몰랐고 육군전략사령부를 점령했어야 하는데 그들은 점령을 시도하지 않는다.

 

육군전략사령부의 사령관은 제2의 대통령이 되었고, 그가 바로 수하르토이다.

수하르토는 정권을 잡은 후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들어간다.

이 사건이 바로 19659.30 사건이다.

 

 

이제 문화대혁명으로 알아보자.

 

중국의 마오쩌둥은 건국의 아버지이고, 인민들의 영원한 아버지로서 천안문 광장 앞에 모셔져 있다.

그는 장제스와의 대결에서 국공합작과 대장정을 통해 마침내 중화민국을 건립한다.

 

이후 농업과 공업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하여 그는 대약진 운동‘, ’인민공사‘, ’사회주의 건설 총노선을 골자로 하는 삼명홍기정책을 편다.

 

특히 대약진 운동은 속전속결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10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고, 15년 안에 미국을 이기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모든 가치를 많이, 빨리, 잘하고, 절약하자에 두고 고속발전을 추구한다.

 

이 때 나오는 그 유명한 사건들이 참새를 소탕하라‘, ’철강 목표량 달성을 위해 농민들은 쟁기와 농기구의 쇠붙이를 모두 당에 바치는 일이 벌어진다.

 

이 두가지 사건의 대약진 운동은 수천 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는 실패로 끝나게 되고, 마오쩌둥은 권력의 2선으로 물러난다.

 

이후 2대 주석인 류샤오치와 총리 덩샤오핑이 획기적인 경제 정책과 더불어 전면에 나선다.

 

소련과의 불화, 식량 위기로 2선에 물러난 마오쩌둥에게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몰락을 그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든다.

 

마오쩌둥은 부인인 장칭을 포함하는 4인방이 주도하는 혁명을 준비한다.

대상은 류샤오치와 덩샤오핑이다.

 

중앙 정부가 하는 일이 옳지 않다면 지방이 반란을 일으켜서 중앙을 공격해야 한다!”

 

모택동은 1966년 여름에 조반유리(모든 반항과 반란에는 나름대로 정당한 도리와 이유가 있다는 뜻)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에 홍위병을 내세워 부르주아와 자본주의를 공격하게 했다.

 

마오쩌둥이 동원한 홍위병은 중국 전역을 혼란 상태로 몰아넣었다. 홍위병은 청년 노동자와 소학생에서 대학생에 이르는 젊은이들로 구성되었다.

 

마오를 따르던 홍위병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10여회의 모임을 갖는데 이 때 모인 사람이 1100만 명이라고 한다.

 

특히 칭화대와 베이징대의 홍위병들의 투쟁은 내전으로 발전해 마오쩌둥은 군부의 린뱌오을 통해 홍위병들을 해산시킨다.

 

마오쩌둥은 홍위병들을 하방시킨 후 권력을 공고히 하던 린뱌오를 없애기로 하자 린뱌오 역시 마오를 암살하려고 하는 사건이 생긴다.

그는 러시아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비행기 추락사를 하고, 그의 딸이 전하는 인터뷰는 마오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환상을 깨버린다.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하자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하고자 기회를 노린다.

그 기회는 1971년 나고야에서 열린 탁구대회에서 열리고 키신저와 저우언라이의 회담을 핑퐁외교라고 한다.

 

미국과 중국의 화해모드가 조성되자 일본은 중국과 먼저 1972년 국교정상화를 맺는다.

 

10년 간의 문화대혁명은 전 세계 혁명세력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세계사 속의 중국 문화대혁명은 이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보여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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