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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의 도시
데이비드 베니오프 지음, 김이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유머와 감동, 동시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비극과 희극을 완벽하게 혼합한~', '잔혹과 비애, 유머와 감동의 경계를~'이란 서평들은 공통적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더불어 그 속에서도 웃음이 있다는 그런 이야기라고 평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도둑들의 도시는 전쟁의 참혹함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물론 매력적인 얼굴의 콜야를 전형적인 유대인처럼 생긴 레프가 부러워하며 가끔 심통을 부릴 때 살짝 미소가 지어지기는 하지만 그 미소가 기억나기 보단 읽는내내 참혹한 현실에 눈살이 찌푸려질 뿐이었다.
독일군이 러시아의 레닌그라드를 900여일동안 포위하고 있을 때, 레닌그라드의 사람들은 항복을 하지않았다. 그저 독일군에게 저항을 할 뿐.. 그리고 그렇게 900여일이 지나는 동안 레닌그라드에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잘 곳도 남아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6.25를 겪으며, 일제치하하에 많은 고통을 겪었었다. 농사를 지어도 일제가 다 빼앗아가거나 일부 지주들이 착복하고, 소중히 키운 딸은 위안부로, 집안의 대들보인 아들들은 군인으로, 군인을 못할 것같은 사람은 탄광에서 일하도록 징집되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너무나도 먹을 것이 없어 인육을 먹었으며, 약간의 단백질을 보충하기위해 책의 접착제를 긁어모아 사탕을 만들어먹었다는 소문은 들어보질 못했다. 아무리 가난하고, 먹을 것을 빼앗겨도 여전히 농사를 지울 수 있어서였나?
하지만 러시아의 레닌그라드는 혹독한 추위에 사람들이 얼어죽을 지경으로, 배급카드가 없인 음식을 받아먹을 수도 없었고, 먹는 것이 부족하다보니 집안에서 키우는 애완동물들은 어느새 다 잡아먹어버린 그런 곳이었다. 죽은 사람의 몸을 뒤져 먹을 수 있는 것을 갖기라도 하면 도둑으로 몰려 총살을 당하는 그런 곳.. 레프도 하늘에서 떨어진 죽은 독일군병사의 술과 칼을 국가에 주지않고 훔쳤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탈영벙 콜야와 함께 허무맹랑한 임무를 받는다.. 대령의 딸 결혼식에 쓸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달걀 12개를 구해오라는 것.. 사람들은 굶어죽어가고있는데 고위간부는 역시 다른가보다.. 삐쩍 마른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령의 딸, 남들은 빵한조각 구하기도 힘든데 6월이후로 본적이 없는 달걀을 찾아오라니 말이다..
하지만 찾아오지않을 경우엔 죽일 것이라니..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협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죽지않기 위해 달걀을 구하는 동안 콜야와 레프가 겪은 사건들도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나무를 증류해 독약보다 조금 나은 술을 만들어 팔고, 어떤 고기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고기파이(이때까지만 해도 쥐나 비둘기, 그런 동물의 고기인줄로만 알았다...)와 접착제캔디, 그리고 설탕이 흠뻑녹아들어가있다는 흙을 파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을 유인해 잡아먹는 식인종이 되어버린 사람과 닭을 지키다 추위에 닭들이 죽자 같이 얼어죽어버린 할아버지,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접해서 더 이상 죽은 사람의 모습을 봐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는 콜야와 레프, 마취제도 없이 수술을 하고, 메스를 소독할 따뜻한 물조차 없는 환경에서 일하는 의사들, 그나마 군인이 지키는 레닌그라드는 소녀들이 그렇게 되진않지만 레닌그라드를 포위한 독일병사들에 의해 부모가 죽임을 당하고 성노리개로 전락해 먹을 것을 받아 사는 시골소녀들, 글을 아는 포로들을 골라 무자비하게 죽여버리며 소녀중에 한 명이 도망치다 잡히자 발을 잘라버린 잔혹한 군인들의 모습에 정말, 과연 이정도까지 였을까라는 생각만들었다.
어떻게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도망쳤다는 이유만으로 뻔히 눈을 뜨고 있는 상태에서 한발한발 천천히 자를 수가 있는지!! 차라리 군인들에게 글을 안다는 이유로 총을 맞아 죽은 사람들은 그나마 한두발의 총으로 쉽게 생을 마감하였으니 그나마 고통이라도 못느꼈을것이다.. 어떻게 여리고 여리기만한 소녀에게 이런짓을 하는지 위안부로 끌려갔던 우리의 할머니들도 이런 잔인한 일도 겪으셨던 것일까? 잔인한 현실에 눈물이 날 뿐이다.. 그들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무고한 사람들의 모습에... 이 책 특유의 유머를 느끼기도 전에 이런 잔인한 현실의 모습에 비애만 느껴질 뿐이었다..
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때 이름인 이곳은 러시아 문화사 수업에서 보았을 때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었다..러시아 특유의 양파모양의 교회와 교외에 위치한 화려한 여름궁전, 네바강이 흐르며 세계 3대 박물관 중에 하나가 있는 그런 아름다운 곳이었기에 처음 레닌그라드의 황량한 모습을 보았을 때엔 같은 도시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평화속에서 보는 풍경이 아름다운만큼 참혹함 속에서 보는 도시는 그저 무채색으로 뒤덮인 그저 하나의 공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쟁은 진행중이다.. 전쟁이라는 이름만 붙지않았을 뿐이지 티베트유혈사태나 위구르족의 모습은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과 뭐가 다를 것이며, 지뢰에 의해 수많은 소년소녀가 다치고, 끊임없이 대치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등 예전처럼 전 세계가 전쟁을 벌이진않고 있지만 세계곳곳에서 전쟁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전쟁속에 또 다른 레프와 콜야가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에 비애를 느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