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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로 유명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신작이 나왔다길래 아무런 고민없이 읽기시작했다. "다른 남자"란 제목이나 까만 표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않았지만 35살 한나와 15살 미하엘의 심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잔잔하게 그려낸 것이 마음에 들었기에 이번 이야기도 기대를 하며 읽게되었다. 처음엔 장편인줄 알았던 이야기였는데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아버지의 서재에 걸려있던 그림을 사랑하게 되고, 그 그림의 숨겨진 이야기를 밝혀내던 <소녀와 도마뱀>, 아내를 지키기위해 아내의 사상을 비약한 남편, 그리고 그런 남편모르게 남편의 친구와 하룻밤을 보내는 아내의 이야기였던 <외도>, 아내가 죽은 후 아내에게 있던 또 다른 남자의 존재를 알게되는 <다른 남자>, 부인 외에도 2명의 여자와 사랑을 하던 한 남자의 이야기였던 <청완두>, 죽음의 순간 다른 사람이 아닌 아들을 떠올리며 죽는 아버지의 이야기였던 <아들>, 낯선 곳에서 낯선 여인과의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살려는 준비를 하는 이야기였던 <주유소의 여인>..
이렇게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다른 남자>는 이전에 읽은 <더 리더-책읽어주는 남자>에 비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더 리더>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한나 슈미츠와 미하엘의 사랑이 공감도 되지않을 뿐더러 이해가 되지않았지만 법정에 선 한나의 모습, 그리고 감옥에 간 한나를 위해 책을 녹음하여 보내주던 미하엘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던 반면, <다른 남자>의 경우 한 번 읽어봄으로써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던 책이다. 그렇기에 유난히도 책을 빨리 읽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3일에 걸쳐 읽은 내용을 읽고 또 읽고, 그렇게 두세번을 읽어야만 간신히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하고싶어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었다.
6편의 단편 중 유난히도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소녀와 도마뱀>과 <청완두>였다. <청완두>의 경우, 한 남자가 지붕증축에서 다리설계로, 다리설계에서 그림으로, 그림에서 의료전문클리닉으로 한가지일에 만족하지 못한채 계속해서 다른 일을 시도하며 각각의 일에 자신을 도와주는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는 이야기였다. 만약 단순히 자신의 일과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일과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였다면 그다지 인상깊은 이야기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일들을 모두 버렸을때, 그리고 자신이 불구가 되어 돌아왔을 때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였기에 여자들의 모습에서 섬뜩함을 그리고 분명 그가 잘못했음에도 안쓰러움을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서재에 걸려있던 그림 속의 소녀를 사랑하게되고 그 그림의 비밀을 파헤쳐가던 <소녀와 도마뱀>은 어릴 적 겪은 인상과 경험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줌을 알 수 있던 이야기였다. 어릴 적 그림속의 소녀를 보며 그림 속의 소녀와 사랑에 빠지고, 그 그림에 대해 조금씩 알게되고, 그러면서 아버지의 비밀에 대해 알게되는 아들.. 유대인을 도와주어서 선물로 받았다는 그림이라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을 뿐이었다. 다만 아버지는 남에게 상처를 주고 용서를 빌기보단 자신을 합리화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용서를 할 수 없었다.. 어쩐지 나치시대 많은 독일인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자신의 아버지도 잘못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 용서를 구하기보단 자신의 행동을 변명만 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진상을 파악하려는 아들과 모든 것을 거짓과 자신의 아문상처로 가리려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대조적이며, 자신의 잘못에 대처하는 독일과 일본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분명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용서로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독일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단 끊임없이 타당했던 일임을 강조하는 일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나의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2~3번 반복해읽었음에도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은 건지를 잘 알수가 없었다. 어쩌면 단순한 글을 읽으며 내가 너무나도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일수도, 진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글의 모호함이 주는 어려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내용에 포기하기보단 어떤 이야기일지 계속해서 읽게되는 매력이 있는 그런 책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