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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책을 받고 나니 완전 속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인터넷 서점에서 표지를 본게 전부이니 원래 어느정도 두께인지 모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300여페이지는 되는 책인줄 알았는데 120페이지가 안되는 매우 얇은 책이었다. 어쩐지 장편을 기대하다 맞닥뜨리게 된 너무 짧은 이야기에 약간은 서운한 듯 하면서도, 짧은 내용에서 전해주는 강한 임팩트에 이 책에 반하게 되고야 말았다.
책과 관련된 책엔 어떤게 있는지 모으다 발견한 <위험한 책>은 제목만 보았을 때엔 <꿈꾸는 책들의 도시>처럼 이빨이 있고 다리가 있어 스스로 걸어다니며 사람을 물기도 하는 그런 책(해리포터에서도 해그리드가 가르치던 수업에 쓰이던 책도 난폭했었는데.. 그 책에 의해 서점직원들이 손을 물리기도 하고, 책을 사는 사람들을 위해 가죽끈으로 꽉 묶어 포장해주던 장면이 기억난다.)일까 아니면 단 몇줄의 글만으로도 사람을 궁극의 경지에 빠뜨리는 오름을 가져오는 환상의 책일지, <끝없는 이야기>처럼 읽다보니 책 속에 빨려들어가 모험을 겪게되는 책일지, 아니면 역사적 탄압에 의해 읽는 것을 금지당했던 사상적으로 위험한 책일까라는 행복한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 책에서 등장하는 위험한 책은 단순히 두껍고 방대한 양으로 사람을 다치게 만들 수 있는 책들이었기에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합본한 <나니아 연대기>도 충분히 서가에서 떨어지면 발등을 다치게하는 위력이 있는 책이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집을 모두 묶어 떨어뜨린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텐데 이 정도의 책으로 위험하다곤 하지않을텐데라는 생각에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걷던 여자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 배달온 시멘트에 뒤집힌 책을 통해 진정한 위험한 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책은 그 자체로는 인간에게 한없이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보여주어 상상이라는 작업을 생략하는 텔레비전과는 달리 같은 문장을 읽고도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만드는 여백이 있으며, 똑같은 프로를 반복해서 볼 때의 지루함과는 달리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주며 옛 선조들의 지식을 배울 수 있고, 신지식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기에 책이란 하나의 오락거리이자 지식의 결정판이기에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책벌레>의 티니우스와 라인홀트처럼, 그리고 이 책의 브라우어처럼 책을 소장하는 것에 집착하고, 그 집착으로 인해그들의 인생은 끝도없이 망가지기에 어떤 종류의 책이던간에 그 소유자의 마음에 따라 위험한 책이 될 수도, 한 권의 소중한 책이 될 수도, 전혀 쓸모없는 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브라우어처럼 특정 분야의 책으로만, 한정판과 같은 희귀한 책으로 책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고, 이 사람처럼 이만여권에 달하는 장서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나 역시 끝도없이 책을 소유하고 싶고(나 역시 브라우어처럼 많은 유산을 물려받고 그 책들을 유지할 능력이 있었다면 나도 벌써 광적인 집착에 휩싸인 장서가가 되지않았을까 싶다..), 내가 읽은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작가의 이름을 보며 그들의 책도 읽어야되지않나라는 생각을 하기에 브라우어의 집착과 열정은 너무나도 공감이 되어서인지 한권을 읽으면 수십권을 읽고싶고, 초판이나 한정판같은 이름에 얽매이게 되는 책은 정말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