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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동아일보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3기 알라딘 서평단 도서로 "그저 좋은 사람"을 만난 후에 인도인이자 미국인인 줌파라히리라는 작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미국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고, 미국의 구성원이면서도 조금은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특별한 경험이야기라기보단 누구나 한번쯤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인지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작가였다. 그리고 두번째로 읽는 것이 바로 <축복받은 집>이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더 먼저 샀음에도, 장편이어서인지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하루하루 미루다 결국은 단편부터 읽자 싶어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축복받은 집>은 누구보다도 가까운 존재지만, 한없이 먼 존재인 부부가 사랑을 잃어가는 모습과 그들이 사랑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가득 담긴 이야기와 멀리 있어도 그리운 존재인 가족과 쓸쓸한 사랑이야기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첫번째 이야기인 <잠시 동안의 일>과 표제작인 <축복받은 집>,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세번째이자 마지막인 대륙>이다.
첫번째 이야기인 <잠시 동안의 일>은 조금은 쓸쓸한 이야기였다. 너무나도 소중한 아이를 유산한 부부가 그 일로 서로 멀어지고, 전기공사를 하는 단 한시간의 정전동안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되었다. 예전에 드라마 <연애시대>를 볼 때에도, 한 때는 사랑했던 부부지만, 아이를 잃는 큰 슬픔을 겪은 후엔 계속해서 그 일이 발목을 잡아 서로 이혼을 하게 되고, 다시 서로를 잡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읽을 때에도 어쩌면 그런 해피엔딩식의 이야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단 5일이지만, 몇 달동안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 않던 부부가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서로의 비밀을 하나둘 꺼내다 보면 다시 하나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했는데.. 정말 그 부부사이의 5일간의 대화는 "잠시 동안의 일"이 되었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존재지만, 힘겨운 일로 인해 헤어짐을 선택하여 남이 될 수도 있는 "부부"의 모습.. 그러한 부부의 모습이 여전히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그리고 <축복받은 집>은 서로 남이었던 존재가, 사랑에 빠지고 부부가 되어 조금씩 서로에게서 낯선 모습을 보며 갈등을 겪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전에 살았던 사람의 흔적을 지우려는 산자브와 그런 흔적을 찾으며 기뻐하는 트윙클.. 내가 보기엔 트윙클이 조금은 제멋대로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 같았다. 만난지 얼마 안되어 결혼을 하게되었고, 서로를 조금씩 알아나가는 때, 산자브는 자신은 싫지만 트윙클이 원하는 것에 대해 절충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반면, 트윙클은 너무나도 태연자약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끝까지 얻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트윙클은 얄밉고, 산자브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결국 산자브의 시선에서 쓰여진 글이었기에, 산자브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낀 것이지, 너무나 얄미운 트윙클도 조금씩 자신의 것을 양보했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서로를 맞추어가며, 아직은 모르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하나의 부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마지막 이야기 <세번째이자 마지막인 대륙>.. <축복받은 집>에서 조금씩 갈등을 겪는 신혼부부의 모습과는 달리,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을 했고, 단 5일을 같이 지낸 뒤 드디어 같이 살게된 부부.. 닮은 것 하나 없고,사랑도 없던 그 부부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것도 남편이 처음 미국에 와서 살게된 하숙집의 노부인을 만나, 남편이 노부인을 대하는 모습에 웃고, 노부인이 아내를 칭찬하는 모습에 웃으며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남들에 비해 조금 늦게 사랑을 시작했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부부의 모습으로 지내는 것이 너무나 이뻤고, 그 어떤 부부의 모습보다 완벽해보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고,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결혼을 하여 가족을 이루어 산다. 이십몇년이란 세월을 서로 남으로 살아왔기에 성격도 다르고, 식성도 다르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이해"이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결국 이혼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서로를 이해해주는 <세번째이마 마지막인 대륙>에 나오는 부부가 그렇게도 완벽해보이고, 그렇게도 이뻐보이며, 아홉개의 단편 중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