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구판절판


어떤 경우에는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로를 바꿔가는 국지적인 모래 폭풍과 비슷하지. 너는 그 폭풍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폭풍도 네 도주로에 맞추듯 방향을 바꾸지. 너는 다시 또 모래 폭풍을 피하려고 네 도주로의 방향을 바꾸어버린다. 그러면 폭풍도 다시 네가 도망치는 방향으로 또 방향을 바꾸어버리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치 날이 새기전에 죽음의 신과 얼싸안고 불길한 춤을 추듯 그런 일이 되풀이 되는 거야. 왜냐하면 그 폭풍은 어딘가 먼 곳에서 찾아온, 너와 아무 관계가 없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 폭풍은 그러니까 너 자신인거야. 네 안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눈과 귀를 꽉 틀어막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가는 일 뿐이야. 그곳에는 어쩌면 태양도 없고 달도 없고 어떤 경우에는 제대로 된 시간조차 없어. 거기에는 백골을 분쇄해 놓은 것 같은 하얗고 고운 모래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있을 뿐이지.-17쪽

하지만 자연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평온함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위협적인 거야. 그 같은 배반성을 잘 받아들이려면, 그 나름의 준비와 경험이 필요해.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로 돌아가는 거야. 사회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도시로 돌아가는 거야.-298쪽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즉 네 선택이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너는 조금도 어김없는 너인 거고, 너 이외의 아무도 아닌 거야. 너는 너로서 틀림없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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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염천 -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터키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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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씨, 책임지세요!!"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의 여행기를 남겨놓아  쉽게 여행갈 수 없으면서도 가고 싶은 갈망에 며칠을 괴로워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여자는 갈 수도 없는 곳인 아토스반도와 지금은 많이 달라져 보지 못한 터키의 모습을 그려놓았으니 정말 원망하고 싶었다.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곳은 당연 아테네이다. 그 옛날의 흔적으로 가득한 파르테논신전과 아폴론신전이 가득한 곳, 하야 대리석과 파란 지중해가 어우러지는 그런 곳이 그리스라고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키가 여행한 아토스반도는 그런 곳과는 너무 동떨어진 장소였다. 파란 바다가 보이기는 하지만, 남자밖에 들어갈 수 없는 곳, 그리고 여행객은 3박 4일의 체류허가증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숙소라곤 수도원밖에 없는, 하지만 천혜의 자연만큼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런 곳이었다. 

 하루키가 여행을 했을 당시가 1988년이니 벌써 20년이 흐른만큼, 지금은 여행객이 자유롭게 드나들수도 있고, 여자도 방문할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지친 여행객에게 달콤한 그리스커피와 루크미, 그리고 몸을 따스하게 해주는 우조를 대접하는 20년전의 아토스반도에 가보고 싶다.. 하루키와 그의 동행자처럼 커다란 가방을 하나 메고, 길을 따라 반도에 있는 수도원을 한 곳 한 곳 방문하며, 따스한 커피와 달달한 루크미를 한입 베물고 그들의 소박한 친절에 감사하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의 아토스반도는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지만, 터키의 여행기는 그다지 끌리지가 않는다. 일본인을 자주 보지 못한 동네의 사람들이 차이를 대접하고, 딱딱한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사진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일본인에게 가라테를 배우며 좋아하던 모습은 한번쯤 나도 겪고 싶은 경험이지만.. 하루키의 말처럼 판에 박힌 듯한 질문과 대화를 하며 담배를 달라고 요구하는 어른과 아이떼를 피해가며, 편히 일기조차 쓰지 못하는 곳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아토스반도를 여행할 때와는 달리 불평불만을 많이 터뜨린 하루키때문에 그런 인식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여행이라는 것이 쉬워졌고, 그런 만큼 세계 곳곳 어디 한군데 빠지지 않고 여행객이 없는 곳이 드물어졌으며, 그래서 여행객을 상대로 하는 곳이 많아지다보니 예전에 비해 바가지를 씌우는 곳도 많고, 소매치기도 많아져 가끔씩 언짢아지는 것도 여행이다.. 그런만큼, 여행객이 낯선 20년전의 터키로, 3박 4일의 체류기간동안만 여행할 수 있는 아토스반도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정말 하루키 당신은 못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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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염천 -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터키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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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일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는다. 왜나하면 우리는 이국땅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장소 - 그것이 바로 타향이다. 그렇기에 모든 일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일들과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128~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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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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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가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쓴 에세이고,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달리기를 하며, 마라톤대회를 준비하며 드는 생각을 쓴 에세이라면 <비밀의 숲>은 그런 주제 없이 온전히 하루키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21년을 산 고양이 뮤즈이야기에서부터, 필명이 아닌 실명 "무라카미 하루키"를 쓰는데에 따른 고충, 그리고 사소한 것 같지만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하는 " ~엔 맡았습니다"와 같은 표현에 대한 불만과 우연히 관심을 갖게된 러브호텔의 이름, 그리고 길거리에서 자신을 마주치면 밥을 먹을 때에나 만원전철에선 제발 아는 체 하지 말아달라는 소심한 부탁까지 하나하나 새로운 이야기였다.  

물론 불의의 사고로 죽은 두 명의 육상유망주에 대한 이야기나 달리기를 좋아하는 하루키의 모습은 바로 전에 읽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알게된 모습이지만, 그래도 그 책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기에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달리기도 좋아하고, 고양이도 좋아하며, 음악에 돈을 아끼지 않는 매니아에 취미겸 직업으로 번역을 하고 있는 하루키였다.  

낮과 밤이 달리 살 것 같은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 10시전에 잠드는 바른 생활 사나이의 면모를 지니고, 어떤 소설가가 "하루키는 이제 한물갔다"라는 식으로 한 이야기에 당좌개설을 거절당한 뒤 모든 예금을 인출하고, 즉시 당좌를 개설해주라던 은행을 여전히 쓰고 있는 소심한 것 같으면서도 칼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하루키의 모습에 점점 반해버리게 되었다. 

정말이지 에세이를 통해 만난 하루키는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하루키라는 "작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매력 넘치는 사람이었다..

덧) 소심하게 이 책을 읽으며 찾아낸 어색한 문장을 이야기하자면.. 

p.112 이 대회에는 '매ㆍ죽 클래스 러너스 클럽'의 회장(회원번호 001)인 불초 하루키와, 부회장인 에이조(회원번호 002) 두사람이 참가했다.  

바로 이부분이다. "저"라는 단어와 "참가했다"는 뭔가 이상하다.. "저"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참가했습니다"를, "참가했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나"가 맞지 않나? 국어에 능통하지 못해 올바른 표현에 태클을 거는 것일 수도 있지만 뭔가 어색하다 느껴 저 문장만 내리 5번을 읽었기에.. 그냥 한번 소심하게 이야기나 해보자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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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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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가 있는 것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언젠가 어디선가 홀연히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것이라고. 그것이 인간이든 물건이든 간에..-34쪽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종류의 함정이 있어,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서 몸을 웅크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루하루 아무 일 없이 마음 편히 살아가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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