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만 보고는 또 공부하라는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 굳이 안하고 싶은데, 제 입에서도
나오는걸 보고는 할말이 없어졌지만요.
공부해야하는 이유.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공부는 해야한다는데
왜?
누구보다도 책을 좋아한 저자가 책을 통해 통찰한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우선은, 지금 우리 아이들이 받는 공부 중압감과 더불어 시대 흐름에
맞지않는 교육방식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것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교육방식의 문제인가.
그래서, 저자는 유교 교육의 대표 공자이야기부터
꺼내봅니다.
공자의 성장배경부터 소육예, 대육예를 공부한 경위,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을 후대 제자들이 정리한
<논어>를 통해 드러난 공자의 교육방식을 보게되었습니다.
오?
공자왈, 맹자왈 이야기하면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런 스승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지적호기심이 왕성한 학생들이라면 기꺼이 제자로 받아들이고, 제자들의
수준에 맞춰 그들의 질문에 답하며
제자들의 변화를 이끌어낸 스승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월적인 신과 같은 존재대신 서경에 나오는 요,순임금이야기를 하며
그 시대에 평화체제에 필요한 효, 제를 더욱 강조해
이야기했구요.
무조건 배우라고만 했느냐면 그것도 아니네요.
가르친 것에 의문이 생기면 질문하도록 한 것. 그것이
학문(學問)이었지요.
오늘날로 말하면 질문이 토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를 통해 만나게 되는 장회익, 파인만등 공부 도둑, 공부의
달인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함께 누려봅니다.
이분들은 이렇게 인생을 사시고 공부를 하셨구나, 그리고 더욱
주목하게되는 그들의 '아버지'.
다음세대에 지적 흥미와 자극을 준 그 모습이 자녀들의 모습에 영향을
주었구나..
(어제 오늘 본 책에서 모두 '아버지'의 역할에 주목하니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 과학과 빅히스토리를 다룬 책들을 통해
공부는 사고의 혁명임을 다시 이야기합니다.
모른다고 선언하고 계속해서 질문할 때 열리는 새로운
세계.
그럼,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앞서는 듯 보이는 지금 시대에도
공부가 유용한가.
책이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를 받는 용도로서 만이 아니라,
나만의 질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에
읽는다고 말이죠.
기존에 나온 이론들과 책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창조, 혁신, 창작의 자리.
창조의 기쁨.
그럼 이런 유익이 있는 책읽기, 누가 하는가?
창조하는 무리는 읽는다고한다. 앎의 영역을 충족하기
위해서.
읽기 위해 읽지 말고 창조하기 위해 읽자는 것.
신선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단지 읽는 것이 좋아서 읽는 차원을 넘어서, 창조의 영역에까지
초대받는 느낌.
그러고보니, 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읽고 나서의 새로운 창조,
글쓰기였다는 새로운 발견!
(나의 경험을 투영해 이야기하면 더 깊은 치유의 효과도
가져오겠지요)
읽고 쓰고, 다시, 쓰고 읽고.
그러면 다시,
공부는 왜 해야한가.
성취, 성공,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위해?
그렇지 않음을 우리가 '입신양명'이라고 알고 있는 효경의 원전
이야기를 끄집어 냅니다.
입신과 양명 사이에는 '행도'가 있다는 것. 이것의 원래목적은
부모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란 것.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 같은 이것은 도를 행하는 것 아래서
이뤄져야 하고 결국은 부모님 - 타인-을 위한 것이 된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것까지.
'공부를 왜 하는가' 라는 질문에
동 서양 고금의 인물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를들어보고
생각했습니다.
학과 문. 질문, 새로운 창조, 자신을 위하는 것인 동시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는데 이르기까지
[배우면 나와 세상을 이해하게 됩니다]라는 제목이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공부해야하는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시리즈, 아우름 34번째책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