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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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씨의 이름은 그 동안 자주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접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처음으로 이외수씨의 작품을 접한 것은 거의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2007년 무덥던 여름이었다. 입대한지 1년 반 정도 되어 군 생활도 절반 넘게 지나갔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에는 부대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빌려 읽는 것을 일종의 낙으로 삼으며 지냈다. 물론 그 때도 이외수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름만 듣고 작품은 거의 접하지 못하고 있었던 탓에, 독특하고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가진, 그의 작품에 대해서 어떤 동경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이름으로 쓰인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괴물>이었다. 총 두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이었는데, 역시 기대했던 만큼 재밌으면서도 남들과는 차별되는 그 만의 이야기였다. 읽던 당시도 <괴물>이 나온 뒤 5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특별히 제대로 챙겨보았다고는 결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2010년, 드디어 그의 신작을 통해 다시 한 번 이외수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불류 시불류>, 한자로 옮기면 ‘我不流 時不流’가 된다.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한자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저런 의미라는 것은 잘 알겠지만, 정작 저 문장 속에 작가가 담아놓은 진정한 뜻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추측컨대 ‘흐르는 시간은 절대 잡을 수 없으니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멍하니 있지 말고 내 스스로 행동하면서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나도 함께 물처럼 흘러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아, 아직 모르겠다. 
 


  제목 앞에 ‘이외수의 비상법’이라는 조그만 타이틀이 하나 더 붙어있다. 찾아보니 ‘~법 시리즈’는 ‘소통법’, ‘생존법’, ‘소생법’에 이어 이번 ‘비상법’이 네 번째 작품이었다. 그 전에 이름을 들었던 <하악하악>은 ‘이외수의 생존법’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다. 이 ‘~법 시리즈’는 이외수씨의 시와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책들로 이번 <아불류 시불류>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그 만의 시리즈물인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접해보는 이외수씨의 작품이었기에 마치 그의 글을 처음 접하는 듯한 느낌도 문득 들었다. 하지만 역시 나도, 그의 작품을 이제 겨우 두 번째로 보는 것이지만, ‘외수 마니아’중의 한 명이 될 것이라는 예감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작품을 ‘전작주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다. 데뷔한지 어느덧 35년이 훌쩍 넘어선 그 답게 작품들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하나하나 모두 찾아서 읽고 싶다. 
 


  <아불류 시불류>는 화천군 감성마을에서 칩거하면서 적어놓은 그의 생각들을 모아서 정리한 에세이집으로, 총 5장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속에는 총 323가지 이외수씨의 생각들이 화가 정태련씨의 세밀화와 함께 담겨있다. ‘역시 이외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또 이외수씨의 이런 탁월한 문장들과 함께 정태련씨의, 사진을 보는 듯 정밀하게 그린, 아름다운 그림들이 우리의 감성을 마구마구 자극한다. 이외수씨의 다른 책들에도 그의 그림들이 담겨있다는데, 그 책들에서는 이 책처럼, 또 얼마나 글과 그림의 눈부신 조화를 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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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20대,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
사마천 지음, 이수광 엮음, 이도헌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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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후의 역사학자 ‘사마천’과 그의 저서 <<사기(史記)>>. ‘2000년도 훨씬 넘은 고대 중국역사 이야기를 통해 꿈 많고 열정으로 가득한 20대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다.’는 모티브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어렸을 적(어렴풋이 추측하기로는 아마 초등학교 시절과 중학교 시절일 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다. 정말 책이 닳을 정도로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봐도봐도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수도 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수호지>와 우리나라 소설가 ‘이문열’ 씨의 <삼국지>까지 접했다. 그 당시에 그렇게 역사를 좋아라 하던 나였는데 지금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달달 암기를 해야만 하는 교과목으로 인식을 해버린 탓인지 예전만큼은 가까이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의 습관들 덕분에 <꿈꾸는 20대,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를 만나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 <삼국지>는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막상 사마천의 <<사기>>는,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기회가 아주 좋은 기회처럼 여겨졌고 신나게 술술 읽어 내려갔다. 오랜만에 찾은 재미 덕분인지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읽는 속도가 느린 나로서는 책의 분량이 읽고자 하는 책을 선택하는데 제법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꿈꾸는 20대,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는 춘추, 전국시대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다. ‘백이’와 ‘숙제’부터 ‘공자’, ‘오자서’, ‘사마천’, ‘관중’, ‘동방삭’, ‘손빈’, ‘의돈’에 이르기까지 삼십여 명의 인물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마천의 <<사기>>의 백미인 <사기열전>처럼 이 책도 열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기열전>은 ‘유협열전’에서는 협객을, ‘혹리열전’에서는 가혹한 관리를, ‘화식열전’에서는 부자들을 다루는 등 영웅이나 성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어서 이름만 알고 있던 인물들의 일화를 접하고, 그에 관련되어 파생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우리가 일상에서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는 고사 성어까지 다시금 되새겨 보는 시간이어서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4장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4장의 제목은 ‘타인의 마음 다루기’인데, 상대방의 심리를 다루는 소재다 보니 당대의 뛰어난 재상들의 지략과 모략대결이 내용의 주를 이루었다. 덕분에 그들의 두뇌싸움을 맘껏 감상할 수 있었다.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그들의 노력으로 빛을 발하는 그들의 능력을 읽고 있자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읽으면서 오래 기억에 남았던 몇몇 인물들에 관해 소개하고자 한다.

  서로 이해하고 믿고 정답게 지내는 깊은 우정의 사자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들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는 정말 인상 깊었다. 포숙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관중을 끝까지 신뢰했고, 관중 또한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포숙이다’라며 그의 믿음에 화답했다. 제나라 ‘환공’을 도와 천하의 패업을 이룩한 관중, 그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재상으로 꼽힌다. 그가 죽으면서 반드시 이 네 명을 조정에서 추방할 것을 진언했다. 그 네 명은 ‘역아’, ‘수조’, ‘당무’, ‘개방’이었다. 궁궐 요리사였던 역아는 출세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아들을 삶아 환공에게 바쳤으니,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찌 군주를 사랑하겠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내궁의 일을 맡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거세한 수조, 모름지기 사람은 자신의 몸을 아끼는데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는 자가 어찌 주공 아끼겠냐는 것이 관중의 말이었다. 당무는 환공의 피부병을 고쳐 총애를 받은 의관인데, 특별한 이유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개방은 위나라 공자이면서 제나라에서 15년 동안이나 관직을 하고 있었던 자였다. 뛰어난 행정 처리능력으로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지만, 15년 동안 한 번도 부모를 찾아가지 않으니 부모도 돌보지 않는 자가 어찌 주공을 끝까지 돌볼까하는 마음에 관중이 쫓아낼 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관중의 죽음 이후, 환공은 이들을 국외로 추방시켰다. 하지만, 늙고 병든 환공은 관중이 당부했던 말도 잊고 결국 그들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이게 된다. 관중의 걱정대로 이들에 의해 환공을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된다.


  춘추전국시대 700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재상들이 활약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재상으로 꼽히는 이가 있다. 바로 합리적인 정치력을 발휘한 천재 재상 ‘안평중’. <안자춘추>를 후세에 남기기도 한 그는, 왜소한 체구에도 뛰어난 능력과 지략으로 제나라의 명재상이 되었고 3명의 제후를 모셨다. 그가 남긴 “임금이 누가되든 상관없고, 오로지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말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정말 요즘 우리나라에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도 어떤 일의 시작을 의미하는 ‘효시(嚆矢)’와 눈에 띄는 경치의 특색이라는 의미의 ‘경관(景觀)’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유명한 ‘동방삭’의 괴이하고도 기묘한 특출하고도 신묘한 이야기도 재밌게 읽었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을 그대로 실천해 옮긴 <손빈병법>의 저서 손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동문수학했으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사제를 배신한 ‘방연’에게 앉은뱅이가 되어서도 복수에 성공하는 손빈의 모습에 가슴 뻥뚫리는 통쾌함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동양의학의 신’이라 불리는 ‘편작’도 기억에 남는다. 중국 역사상 의성(醫聖)으로 불린 인물로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화타’만 알고 있었는데 편작도 화타못지 않게 대단한 인물이었다. 죽은 괵나라 태자를 살린 유명한 전설을 남기고, 부인과, 안과, 소아과, 노인과, 피부과 등 전문 병원을 열어 한방 의학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그는 진정 의성이라 불릴 만 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사기열전>과 같이 열전의 형식을 취한 덕분에 편하고, 부담 없이, 재미있게 책을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이야기 마지막마다 ‘사기 상식 열전’이라는 조그마한 코너를 마련하여 인물이나 당시 상황 혹은 기타 사항들에 관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20대, 길을 묻다’라는 제목에 맞추기 위함인지 인물에 관한 이야기 후, 그저 마지막에 간략하게 몇 줄로 이어놓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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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소유 - 법정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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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3월 11일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신 이후로 스님의 저서들이, 시중에 나와 있었지만 아직 팔리지 않고 창고에 쌓여있던 스님의 저서들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고, 모두 절판이 결정되면서 자동적으로 한정판이 되어버린 책들의 가격이 폭등하는 등 한바탕 진통을 겪은 일이 있었다. 지난 주 학교 교양수업시간에도 그에 관해 교수님이 잠깐 말씀하셨지만, 법정스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무소유’의 의지에 따라 절판을 결정된 것이었는데, 그 <무소유>를 ‘소유’하기 위한 소유욕으로 책 가격이 열 배 이상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법정스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직 그 여파가 완전히 가셨다고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도 그 당시에 진작 법정스님의 저서에 관심을 기울이고 몇 권 가지고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했었다.


  그 때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인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바로 읽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비록 앞에 ‘소설’이라는 두 글자가 붙긴 했지만 말이다. 법정스님의 입적이후로 ‘무소유’라는 글자만 보이면 반사적으로 눈이 돌아가곤 했었다. <소설 무소유>는 법정스님으로부터 법명과 계를 받은 무염(無染) 정찬주가 쓴 작품이다. 그는 ‘샘터’사에 십 수 년 동안 근무하면서 법정스님의 책들을 십여 권 만들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법정스님과 사제의 정을 맺은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다. 저자의 법명 ‘무염’은 법정스님께서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내리신 법명이다.


  ‘작가후기’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는 재가제가가 된 이후 법정스님이 사시던 불일암에 더 자주 내려갔다. 이 책 속에 담긴 많은 일화들은 그 시절 법정스님께서 저자에게 들려주신 것들이다. 스님의 저서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소년시절과 학창시절의 고독하고 힘들었던 이야기들.


  작가는 ‘작가후기’에서 밝혔듯이, 이번작품을 통해 ‘깨달음을 이룬 고승의 초월적인 정신세계를 쓰기보다는 고독한 실존의 인간이 어떻게 맑고 향기로운 꽃이 되는가를 써보고 싶었던’ 평소 바람을 이뤘다. ‘법정스님께서 남기신 인간적인 법향(法香)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도 작가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군인이던 지난 2007년, 부대에서 법정스님께서 류시화 시인과 함께 쓰신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부대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것이 내 생에 처음으로 법정스님의 글을 접하게 된 계기였다. 어리던 그 당시에도 그 책이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과 감동을 주었었는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이후 법정스님의 글은 다시 멀어져갔고 3년이 훌쩍 지나버린, 스님께서 입적하신 지도 벌써 2달이 더 되어버린, 오늘 다시 스님의 흔적과 자취를 쫓는 나를 보게 됐다. 다시는 법정스님의 새로운 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많이 가슴 아프고 아쉽지만, 지금껏 우리에게 남겨주신 주옥같은 말씀과 함께, 법정스님이 그렇게 사셨듯이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인생을 꿋꿋이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되새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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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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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청소년 문학상>이 작년 11월 13일 수상작을 발표했다. <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에 이은 세 번째 수상작이다. 솔직히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기 전까지는 <창비 청소년 문학상>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 <완득이>도 <위저드 베이커리>도 아직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명성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꽤 높은 것인 듯싶었다. 그런 촉망받는 문학상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됐다는, 그리고 우리문학에서 가장 취약한 미래소설 부문에서 빼어난 성과로 기록되리라는 평가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강하게 내 관심을 끌었다. 이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며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는 수상작의 이름은 <싱커Syncher>다. ‘싱커’란 소설 내에 등장하는 게임(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해야 할까?)의 이름으로 신세계 아마존 속에서 사는 동물들(소설 속에서는 반려수(伴侶獸)라고 한다.)의 의식에 접속(싱크)하여 그 동물의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게임을 말한다. 이 단어의 어원인 Sync는 ‘동조’ 혹은 ‘동시발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게임 ‘싱크’를 아이들이 즐기는 장면에서 자꾸 영화 <아바타>가 떠오른 것은 나뿐일까?

 

  21세기 중엽, 유럽연합과 미국 등의 강대국에 대항해 출범한 ‘동아시아연합’이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지구를 벗어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으려고 시행한 ‘베타지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백년의 역사를 가진, 거대 지하도시 ‘시안’과 열대우림을 그대로 재현한 ‘신(新) 아마존’을 그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시안’은 거대기업 ‘바이오옥토퍼스’의 명예회장 파에타가 사욕을 채우기 위해 기만과 거짓으로 쌓아올린 장난감 도시이다. 이 도시에서는 ‘시민권자’만 인간답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비(非)시민권자’는 그 어떠한 권리도 가질 수 없다. 이 세계에도 빈부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에 따라 시민층을 일생에 걸쳐 온갖 값비싼 유전자 상품들을 시술받는 부유층인 ‘유전자 귀족’들과 수정란 단계에서 장수 유전자 삽입 시술만 받는 것이 전부인 빈곤층 ‘늦둥이’, 이렇게 커다랗게 둘로 구분할 수 있다. 늦둥이들은 장수 유전자 삽입 시술에 따라 성장기가 길어지고 2차 성징도 늦게 나타나며 추위에도 약하다. 작은 체구와 발육부전의 몸 그리고 허약한 면역 체계가 특징이다. 덕분에 시안의 아이들은 공장에서 찍어 낸 듯이 모두 비슷비슷한 외양을 갖고 있다. 반면, 유전자 귀족들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훤칠한 키에 미모를 갖춘 젊은이의 모습을 갖고 있다. 부의 배분이 그렇듯이 부유층보다 빈곤층이 훨씬 많은 시안에서도 늦둥이들이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주인공 ‘미마’, ‘부건’, ‘다흡’ 등도 이런 늦둥이 출신 아이들이다. 미마가 우연한 계기로 ‘싱커’라는 게임을 알게 되고 그를 통해 자연 세계에 접속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름다운 원시림과 미지의 야생동물, 태초의 변화무쌍한 기후를 간직한 ‘아마존’이라는 이국적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해방감, 부모님의 따스한 사랑 그리고 포근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은 친구 그리고 그 이상의 친밀감으로 뭉쳐 하나의 거대한 조직을 이루게 되고, 점점 이 세계에 애정을 갖게 되어 자신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시안이상으로 아끼고 지키고 싶은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중 바이오옥토퍼스의 음모를 알게 되고 이에 대항해 힘을 합쳐 대항하기에 이르는데…….

 

  <싱커>는 미래 사회와 경이로운 자연에 동시에 접속하는 새로운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미마를 비롯한 늦둥이 아이들의 편이 되어 그들의 행동에 뭉클해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힘내라고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이 소설이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어른들이, 아니면 미래의 어른들이 <싱커>속의 세계와 같은 환경을 후세들에게 물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생각해봤다. 물론 급변하는 과학문명과 나날이 파괴되는 자연환경 그리고 한정적인 자원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시안’과 같은 세상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괴로움, 고통 그리고 아픔의 시간들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자연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며, 이 자연을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그 누군가의 말이 책을 읽는 동안 가슴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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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
조이 슬링어 지음, 김이선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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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코미디. 이 단어는 어렴풋이 예전에 어딘가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정확한 정의를 잘 몰랐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백과사전에서는 ‘블랙코미디는 일반적인 유머나 코미디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웃기면서도 인간존재의 불안, 불확실성을 날카로이 느끼게 하는 것으로 현대인의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면을 보여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커다란 맥락에 접근한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이러한 ‘블랙코미디’라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에 불필요하고 지나치게 얽매이다 보니 책을, 소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어려운 것으로서 내 스스로 무게를 지운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역자 역시 <역자 후기>에서도 “노인들이 누구를 왜 선택하여 어떻게 죽이는가에 주목하며, 사회 풍자와 유머가 뒤섞인 블랙코미디로서의 비장함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인 조이 슬링어는 캐나다의 저널리스트로서 사십 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언론업계(구체적으로는 신문업계)에 종사해온 베테랑이다. 토론토의 한 신문에서 유머러스한 칼럼을 통해 명성을 쌓아온 그가 내 놓은 첫 번째 소설이 바로 <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어!>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몸 담았던 직종이 직종이니 만큼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고 생각하고 글을 써왔던 분야가 그의 첫 번째 소설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그가 어떤 칼럼을 썼었는지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상 사회의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부분을 꼬집고 지적하는 글들을 썼던 경력이 있었기에 블랙코미디라는 장르가 그에게 가장 매력적이고 적합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어!>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려다 우연한 사고에 의해 전설적인 살인자가 되어버리는 여든 한 살의 ‘밸런타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밸런타인 이외에 그와 의기투합한 수많은 괴짜노인들 이를테면 ‘마운트 러시모어’, ‘시스터 버니스’, ‘보롭스키’ 등이 등장하고 나름 다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건, 사고, 소동이 소설의 중심 줄거리이다.





  아내와 사별하게 된 여든 한 살의 노인 밸런타인. 그는 남아도는 시간, 그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시간을 보낼, 그 시간을 알차게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자신의 아내를 겁에 질려 죽게 만든 망나니 세 명에 대한 복수.(이 부분에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겁에 질려서도 죽을 수 있는 힘없고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슬프고 가슴 아픈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의도하지 않은 방법으로 첫 번째 복수를 성공하고 ‘수도원’이라는 이름의 양로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만난 노인들과 뜻을 함께해 사회 정화 활동을 벌이게 된다.





  평소 책을 읽는 속도는 느린 편이지만 소설 위주의 독서를 하기 때문에 소설은 나름, 다른 책에 비해, 빨리 읽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어!>를 읽는 데는 유독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학교를 오가는 지하철 속에서만 틈틈이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용이 쉽게 와 닿지 않고 뭔가 꽉 막힌 답답한 기분 속에서, 말 그대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보는 수준에서, 책을 읽었다(보았다고 해야 할까?). 이에 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사람이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죽는다. 물론 밸런타인과 그의 친구들이 펼치는 활동이 살인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가볍게 보이는 죽음들을 보면서 흥미도 많이 반감되고 정서가 메말라 가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외국문화를 접할 때 흔히 말하고는 하는 ‘정서의 차이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블랙코미디’라는 익숙지 못한 장르 때문인지 어디서 웃어야 할지 포인트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드라마(이하 미드)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하는 걸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평소 미드를 즐겨 보는데, 특히 미국시트콤을 볼 때도 이런 경험을 해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방송 속 웃음소리가 삽입된 부분에서 나는 웃지를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적으로 보다보니 그들의 정서가 이해가 된 것일까 나도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도 다시 여러 번 읽다보면 좀 더 제대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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