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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유언
구민정.오효정 지음 / 스위밍꿀 / 2025년 2월
평점 :
오늘 처음으로 엄마 정기검진 병원에 따라갔다. 엄마의 병 확진 이후 늘 오빠가 동행했었다. 늘 장남으로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늘 무거운 짐을 혼자 졌던 오빠라는 변명 아래 나는 엄마의 병원행에 동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엄마의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들을까봐. 의사로부터 듣는 엄마의 병 진행 상태를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가장 두려울 것은 엄마일 것을 알면서 나는 두렵다는 이유로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40분 가까이 기다려 엄마의 검진은 기다린 시간이 무색하게 10분도 안 되어 끝났다. 치료가 아닌 지연만이 유일한 현재의 의학기술로서 의사는 엄마의 움직임만을 보고 약만 처방해 줄 뿐이다. 그렇게 엄마에겐 6개월치의 약봉투만이 남았다.
나는 가족임에도 아픈 누군가의 고통을 지켜보는데 약하다. 그런데 그게 가족도 아닌 친구라면, 그것도 동료라면 우리는 그 고통에 한 걸음 더 물러설 수 있다. 하지만 에세이 『명랑한 유언』의 KBS 구민정 PD는 동료이자 친구인 오효정 PD의 고통에 더 한 발 가까이 한다. 처음엔 동료로서 그리고 난 후엔 룸메이트와 친구로서 두 사람은 마지막 길을 함께 걸으며 글을 쓴다.

31세. 이제 연출 데뷔만 남은 나이. 그동안 히트작들을 찍어왔고 앞으로 꽃길만을 생각할 때 통지받은 위암 4기.
오효정 PD의 일상은 일시 정지가 되다 못해 역재생이 된다. 하던 일들을 내려놓고 일찍 독립하던 삶이 다시 어머니의 돌봄을 받는다. 우리는 흔히 암 또는 다른 병을 다룰 때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한다. 담배를 많이 피워서. 술을 많이 마셔서. 운동을 안 해서. 그 원인들 끝에 결과가 병이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오효정 작가는 이를 정정한다.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고. 결과는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이다. 이미 손을 쓸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살아 있다면, 방법이 있다면 그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 된다. 비록 건강한 사람보다 힘든 과정이겠지만 그 과정을 이겨낸다면 그건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니까.
내가 살아 있는 한, 지금을 '과정'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건강했을 때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자신의 행복을 유보한다. 그리고 미친듯이 앞을 달린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우리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가 많다. 오효정 작가 또한 비로소 자신을 위한 고민을 하며 운동을 하고 여행을 가며 자신의 삶을 향해 힘겹게 나아간다. 그건 아직 자신의 삶이 '과정'이라고 믿는 것이기 떄문에 가능한 몸부림이었다.
『명랑한 유언』 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오효정 PD는 끝내 삶을 떠난다. 그리고 그의 가족과 동료인 구민정 PD는 삶 속에 남겨진다. 인간의 무기력함에,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좌절하며 구민정 PD는 자신에게 묻는다.
내 시간의 끝이 여기라면,
나는 그 사이를 어떻게 채워야 할까.
『명랑한 유언』 의 초반과 중반이 구민정 작가와 오효정 작가의 마지막을 향한 여정에서의 교환일기라면 마지막 후반부는 그 사이를 채워나가는 구민정 PD 의 여정이다. 친구와의 사이에서 함께 했던 반려견 태양이와의 동행, 축구 클럽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웃인 천선란 작가를 비롯하여 반려견 태양이의 친구들까지 그 사이를 채워준다. 슬픔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크게 자리잡고 있지만 그들의 동행은 슬픔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어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얼마전에 보았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떠올랐다. 막내 아들 동명이를 잃고 슬픔에 잠겨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슬퍼하는 애순과 관식을 대신해 금명과 은명을 챙기며 그들을 위로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들을 살렸듯 구민정 pd 가 슬픔에서 빠져나오는데도 주위의 많은 지인들이 구민정 pd를 살게 했다.
때마다 입 속에 밥술 떠먹여주는 이들이 있어서 살아지더라.
유채꽃이 혼자 피나. 꼭 떼로 피지. 혼자였으면 골백번 꺾였어.
원래 사람 하나를 살리는 데도 온 고을을 다 부려야 하는 거였다.
<폭싹 속았수다>
생명이 꺼져가는 친구 오효정 PD와 함께 하는 여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건강한 자신은 앞서 갈 수 있겠지만 걸음이 늦춰진 친구의 발걸음에 맞춰 자신도 발걸음을 느리게 맞춘다. 그 동행이 매순간 불안하고 걱정하지만 서로의 발자국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기 위한 과정을 통과하려하고 구민정 PD 또한 그 동행에 끝까지 힘이 되어 준다.
삶과 죽음의 한 가운데. 그 과정에서 구민정 pd가 느껴간 것은 한 가지였다.
살아 있는 것과 태어나는 모든 것은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
일상을 바라보면 나는 살아가고 있고, 그곳을 바라보면 나는 죽어가고 있다.
그 사이에서 우리가 하는 건 끝까지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것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애도의 늪을 주위의 도움으로 통과하고 있다. 그래서 친구와의 동행은 산 자인 구민정 PD에게 명랑한 유언이 되어 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엄마는 병원 검진이 끝나자마자 다시 내려가셨다.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부쩍 힘들어서 오래 걷지 못하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엄마와의 동행을 생각한다. 나는 가정이 있기에 구민정 PD 처럼 깊은 동행은 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엄마와의 동행을 지금처럼 겁내지는 말자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엄마가 음식을 해 주고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지금의 삶을 더 깊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앞으로 나도 늙어가고 엄마도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정이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도록, 지금을 더욱 사랑하기로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겠지. 나의 마지막을. 그 끝을 생각하며 다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