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류덕환씨가 목사로 출연합니다.
천국은 이미 모든 게 완벽한 곳이니 사람들은 교회나 신을 찾지 않습니다. 주인공 이해숙이 교회를 찾기 전까지 목사는 홀로 교회를 지킵니다.
사실 이 목사에게는 지상에서의 슬픈 상처가 있습니다.
다섯 살에 버려진 고아. 교회 앞에서 버려졌기에 천국에서도 교회를 지키는 목사로의 삶은 천국에서도 부모를 기다리는 그리움이자 원망이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자신을 찾아오길 바라는 어린 아이의 기도는 목사로 살고 있는 천국에서도 계속됩니다. 그렇지만 부모는 끝내 오지 않았고 목사는 신을 믿으면서도 침묵하는 신에게 분노합니다.
긴 침묵에 지친 목사는 천국지원센터장에게 묻습니다.
"이 침묵의 의미를 좀 알고 싶어서요.
평생 이어진 제 기도에 대한 이 침묵이 도대체 뭘 뜻하는 건지."
목사는 자신의 기도에 대한 침묵을 신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찾지 못했으니 응답되지 않은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천국지원센터장은 유명한 성경 구절을 들려줍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그리고 기도는 상황이 아닌 '느낌'이자 '마음'의 상태라고 말합니다.
"원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졌음을 느낌으로 아는 것.
그리고 그 이루어짐의 기쁨을 오롯이 음미하는 것."
그러므로 신이 침묵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오롯이 믿고 음미하고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마음이 믿고 느끼고 음미하며 감사하면 그 기도는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 대사는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라틴어 수업>의 저자로 유명한 한동일 교수는 저서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에서도 똑같은 성경구절을 인용합니다.
크레도 Credo.
나는 믿습니다.
라틴어 'credo'는 '마음에 두다' '자신의 마음을 신뢰하다'라는 뜻으로 '마음'을 의미하는 '고대 인도유럽어' 'kerd'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는다'라는 말의 근원이 '마음에 두다' '자신의 마음을 신뢰하다'라는
뜻이라면 복음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 저마다 무엇을 두는가에 따라
그 이루어짐은 시작된다' 고 말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
내 마음에 무엇을 두고 그 마음을 신뢰하는 것.
한동일 교수의 문장은 '느낌이자 '마음의 상태'라고 말하는 것과 결을 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한동일 교수는 말합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에 무엇을 청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바라는 씨앗이 이미 마음 밭에 뿌려졌다고 믿으라고 말합니다.
떄론 자신을 찾아오는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공부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으면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해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럼 자신이 천재가 아닌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느냐고 학생들은 기겁합니다.
하지만 한동일 교수의 또 다른 책 <믿는 인간에 대하여>에서 저자는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 Jaen-Paul Sartre 의 말을 인용합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능력'을 언급하면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아직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그려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 -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능력' 저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
그 희망을 '마음'에 두고 그 마음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자
이루어졌다고 믿으며 감사하는 상태가 바로 이루어짐의 시작이였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에 두니 믿음의 시작을 거둡니다.
하지만 이루어졌다고 믿으며 감사하는 상태를 누리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이 사회의 부조리에 신을 원망하고 분노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루어짐의 시작을 하지 못했기에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믿는 게 아닐까요?
아직도 세상은 전쟁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이제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으로 평화는 멀리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존재할 가능성 '평화'를 생각해야 하고 상상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루어짐의 시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