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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맞지 않는 ㅣ 아르테 미스터리 18
구로사와 이즈미 지음, 현숙형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큰 아이 심리치료 선생님과 상담 중, 선생님께서 내게 "어머니, 누리가 제게 편지를 썼는데 보시겠어요?" 라며 접혀진 종이를 주셨다. 워낙 편지를 많이 쓰는 아이라서 선생님 사랑합니다 라는 편지겠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편지는 나의 기대를 어긋났다.
"선생님, 엄마는 잘 안 놀아주시는데 선생님은 저랑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편지를 받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피곤하다며 아이에게 너희들끼리 놀라고 했던 말들이 아이에게는 거절로 받아들여졌고 외로웠다는 걸 그 때까지 잘 몰랐다. 구로사와 이즈미의 소설 『인간에 맞지 않는』 은 큰 아이의 편지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일본소설 『인간에 맞지 않는』 은 주로 은둔형 외톨이인 10대~20대 초반 아이들이 인간이 아닌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바뀌는 '이형성 변이 증후군'으로 되면서 겪는 부모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에는 엄마 미하루가 고교 자퇴 후 은둔형 외톨이가 된 22살 아들 유이치가 벌레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미하루는 '이형성 변이 증후군'이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주로 발병한다는 기사를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과 감사로 버텨왔었다. 하루 하루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은 벌레로 변해버렸다.
인간이 벌레, 또는 동물, 식물로 변해 버리는 이 기괴한 현상에 정부는 '이형성 변이 증후군'으로 명명하지만 처리법은 간단하다. 이제 인간이 아니고 치료법도 없기에 치사성 질병으로 분류하고 사망을 통지하는 식이다. 이 증후군의 대상자가 주로 은둔형 외톨이다보니 주변에서는 사회의 쓰레기들을 청소한다는 냉소적인 발언마저 보인다. 변이된 아이들에게는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아 인권도,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인간에 맞지 않는』은 아들이 벌레로 변한 미하루, 개로 변한 딸이 있는 노노카 그리고 변이된 형제가 있다는 이유로 파혼당한 딸을 둔 엄마 등 변이된 자녀를 둔 엄마들의 시점에서 주로 그려진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 속에서 이들을 자녀로 인정해야 할지, 아니면 정부 방침에 따라 쉽게 사망통지를 하고 버려야 할지 부모들은 매번 갈등한다. 자식이기에 차마 버리지는 못하지만 이 현실을 견디는 자체가 고통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아이가 인간에 맞지 않다면 쉽게 아이를 포기할 수 있는가?
정부가 인정해 줬으니 쉽게 인간이 아니라고 명명하고 한 인생을 종결시킬 수 있는 권리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부모는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이 질문들 속에서 소설 속의 모든 부모들이 자유롭지 못하다. 미하루의 남편 이사오처럼 죽었다고 단정하며 자신의 갈 길을 가는 사람도 있지만 미하루와 노노카 그리고 하루마치 등등은 그 갈등에서 극단의 선택을 하곤 한다. 정부의 방침 또한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본 정책이기에 쉽게 변이자들의 사망으로 판정하고 부모들 또한 변이자들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일을 해결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좋아진 사람은 없고 증후군 환자들만 급속히 늘어난다.
소설 중반까지는 부모의 입장에서 쓰여졌기에 부모인 미하루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벌레가 된 아들을 둔 미하루를 더 불쌍하게 여기게 되고 개를 둔 노노카에게도 연민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변이자가 된 아이들의 마음이 밝혀지며 이 증후군의 큰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이 아이들의 마음이 드러나며 돌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당신은 끝까지 이 아이를 품을 수 있는가. 어떻게 품을 것인가.

변이자가 된 아들 유이치의 마음을 읽으며 나는 큰 아이가 선생님에게 엄마가 놀아주지 않는다고 했던 아이의 편지가 떠올랐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순전한 나의 입장이였다. 아이는 내게 서운함이 쌓여 있었다. 심리 치료 선생님은 내게 그 편지를 보여주며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놀아 주세요."
소설을 읽은 후 그 선생님의 조언이 유난히 내 마음 속에 메아리친다. 부모라면 꼭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