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의 시대 - 세대론과 색깔론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성장기
김시우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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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헬조선이라고 말한다. 개천에 용이 마르고 4포 시대를 넘어 5포 시대라고 말한다. 취업, 연애,결혼,출산 등을 포기하는 세대라는 이 신조어 속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사회의 불안을 느끼곤 한다. 더 이상 나아질 게 없고 기대할 것조차 없는 세대. 코로나와 함께 상황은 더욱 암울하며 이젠 실날 같은 희망도 없어져 버린 듯하다.

과연 우리는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 걸까라는 불안함이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희망을 말하는 책이라니, 더 나아지고 있다는 듯한 책 『추월의 시대』가 출간되었다.

『추월의 시대』는 김시우, 백승호, 양승훈, 임경빈,하헌기, 한윤형의 여섯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한국의 현주소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진보, 보수 논객이 아닌 젊은 연구자들의 눈으로 바라 본 한국의 모습과 대책 등을 제시한다.

사실 정치와 한국 현대사에 문외한인 내게 『추월의 시대』 는 쉽지 않은 책이였다. 특히 386세대를 설명하는 민주화 세력, 넥타이 부대등은 낯설었고 뉴라이트가 극우 역사 단체라고만 알고 있던 내게 '대륙 문화론'과 '해양 문화론'의 비교로 상세히 설명하는 내용 등은 처음 접하게 된 지식이라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내가 공감할 수 있고 새로웠던 내용들을 주제로 소개하려고 한다.

공저 중의 한 명인 한윤영씨는 먼저 애매해진 진보의 개념을 설명한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좌파로 애매하게 몰아가버리는 무리수. 더불어민주당을 '좌파'라고 몰아가며 무리수를 둠으로서 진정 진보세력들이 힘을 잃어버리는 이 현상을 정확하게 지적해낸다. 실상 국민의 힘 정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은 차이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야당 시절에는 잠시 진보쪽으로 기울이는 듯하지만 정권을 잡으면 기득권에게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은 좌익, 우익으로 내몰며 진보의 개념을 애매하게 만든다. 정의당, 민중당과 같은 진보들이 갈 곳을 잃어버린다.

1987년에는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갔다. 민주화를 위해 앞장선 세력들이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어느 곳에 속하지 않은 중도파의 모습을 보인다. 언젠가 한 지인으로부터 조국 전 법무장관의 가족으로 인해 상실감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애쓰게 노력해도 강남좌파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는 이유라고 했다. 그 후 많은 청년들이 방향을 잃었고 그들의 상실감을 채워 줄 수 있는 정당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만 되면 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좌절감. 6선, 7선을 해가며 영구 집권하는 정치 세력들 속에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정당의 변화가 아닌 정치 세력이 변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덜컹거릴 수 밖에 없다는 글은 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한다.

출산과 양육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보다 그로 인한 손해와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오기에 포기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삶과 욕망에 대한 문제다.

출산은 '보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일종의 '성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출산에 따르는 불편함을 개인이 감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여주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

저출산에 대해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 또한 매우 정확하다. 출산 장려금, 한 달에 10만원이라는 아동 보육 지원금이라는 단순한 '보상' 정책은 10년,20년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전혀 공감이 되지 못한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때때로 딩크족으로 사는 직장 동료를 바라보면 상실감을 느끼곤 한다. 내 욕구를 억누르며 아이들 위주로 살아야 하는 이 삶이 과연 현명했던 것일까라는 상실감 또한 자주 느낀다. 먼저 해고 순위 1순위라는 워킹맘의 입장, 아이들 일로 개인 생활이 사라지고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아야 하는 보호자의 고통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만으로 충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정부는 단순히 '보상'만으로 해결해왔다. 하지만 잠깐 받는 돈만으로 20년의 양육의 부담과 여러 위험들을 결코 만회하지 못한다. 정말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고 사회가 함께 아이들을 키워주는 정책이 아니면 '저출산'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첫 직장'은 신분이다. 첫 직장으로 대기업에 입성했으면 다음 직장도 대기업으로 갈 수 있다. 물론 한 직장에서 평생을 버텨도 된다. 대기업에 입사한 이들이 갑자기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을 가는 일은 잦지 않다. 보통 그것은 실패나 도전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채에서 획득한 신분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하기보다는 기업 안에서 잘 안착하고 안전하게 숨어 산다.

직장인들 사이에 '첫 직장'을 잘 잡아야 한다는 말은 진리이다. 첫 직장을 잘 잡으면 그와 비슷한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기 쉽다. 하지만 첫 직장이 좋지 않으면 이직하는 직장도 비슷한 곳으로 가게 된다. 나는 직원이 10명인 중소기업에 다닌다. 몇년 전, 사장님께서 대학 예비졸업생인 딸을 둔 부장님께 "OO이 졸업하면 우리 회사에 취직하라고 그래"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셨다.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부장님은 혼잣말로 '첫 직장이 얼마나 중요한대 이 곳으로 오라고 말할 수 있냐'라며 불쾌해하셨다. 첫 직장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기 힘든 사회. 한 번 발을 내딘 분야에서 신분 상승하기 어려운 사회 그래서 더욱 많은 청년들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기업 공채에 매달린다.

시험이 존재하는 한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시험 방법의 변경이 아닌 '시험'을 줄이고 '첫 직장이 낙인되지 않기 위한' 사회의 정책이 세워지는 것이 먼저이다.

『추월의 시대』는 젊은 30대의 학자들이 쓴 책이여서일까. 기성 정치인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일반 시민의 눈높이로 바라보아 공감이 많이 된다. 우리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에게 외치는 '탁상행정'의 철폐 '현장중심'의 정치를 요구하는 것도 이들의 시선이 시민들의 시선과 다르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니 국민이 원하는 해결책을 제시해 줄리 만무하다. 이 책은 한국 사회가 조금만 방향을 바꾼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헬조선이라고 비판하지 말고, 이제 끝났다고 포기하지 말고 문제를 정확하게 보고 나아간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해준다. 이 책은 나와 같은 평범한 국민보다 정치인들에게 꼭 읽어주고 싶다. 이 사회의 문제가 뭔지 정확하게 알라고 말해주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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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열쇠 열린책들 세계문학 265
대실 해밋 지음, 홍성영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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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과 똑같은 정치 세계의 긴장감이 책을 읽는 내내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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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열쇠 열린책들 세계문학 265
대실 해밋 지음, 홍성영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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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젼에서 연일 정치인들의 비리가 쏟아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성추행, 위장전입, 취업청탁,비자금 등의 이슈등 놀라지 않는다. "정치인들 중 깨끗한 놈 없다며" 이런 것쯤이야 사소한 일이라며 가볍게 넘긴다. 선거를 위한 물밑작업과 치열한 돈놀음은 당연하다. 왜? 정치판이니까. 돈과 힘 없이는 절대 살아날 수 없다. 그래서 정치인에게는 돈 가진 자가 항상 붙고 뒷일을 해결하는 자가 따라다닌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정의? 그건 선거에 당선된 후 정의를 부르짖으면 된다. 선거 전까지는 정의도 원칙도 없다.

대실 해밋의 소설 『유리 열쇠』는 정치인 폴 매드빅과 그를 도와주는 네드 보몬트가 재선을 앞두고 벌어진 살인 사건의 이야기다. 선거가 있으면 재임 중인 정치인은 자신의 업적을 대중들에게 어필한다. 거리의 전봇대에 매달린 국회의원들의 "~ 철도선 확정" 과 같은 전단지들이 펄럭거리며 마치 자신의 힘으로 해낸 듯 홍보한다. 폴 매드빅 또한 재선을 앞두고 상수도 계약을 따내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자신의 뒷일을 봐주는 네드 보몬트가 친구의 형을 빼달라는 청을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구설수에 휘말릴 수는 없다. 선거 앞에서는 어떤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폴 매드빅은 현직 의원인 헨리 의원의 딸 재닛 헨리와의 결혼을 꿈꾼다. 정치적 협력자인 헨리 의원과 절친하게 지내며 딸 재닛 헨리에게 마음을 두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헨리 의원의 아들 테일러 헨리가 폴 매드빅의 딸 오팔과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테일러와 딸 오팔의 교제를 반대하는 이 미묘한 관계가 지속되던 중, 테일러 헨리가 시체로 발견되며 네드 보몬트가 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살인 사건 발생 후 네드 보몬트를 비롯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정체 불명의 편지를 받는다. 단 폴 매드빅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렇게 사건은 폴 매드빅 한 사람을 지목하며 범인을 확정해 나간다. 이 소설이 정치판이여서일까. 1931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소설 속 상황은 현실과 결코 다르지않다. 아니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 정치인은 경찰서장을 압박해 당장 영업 정지라는 초강수를 두고 장사꾼은 뒷돈과 폭력배를 동원해 선거 방해 공작을 펼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감금, 폭력 등은 대수롭지 않다. 쉽게 배신하고 쉽게 재결합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뒷돈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딸을 감금시키는 것 쯤이야 대수롭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에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인물들이 새롭게 등장하며 이야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끌어간다는 점이다. 살인 사건 초반 단순히 돈이라고 생각했던 이 일이 폴 매드빅의 딸 오팔의 전면 등장으로 살인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고 존재감 없어 보이던 폴 매드빅이 결혼하고 싶어하는 재닛 헨리의 등장은 사건 수사에 전환점을 가져온다. 아니 어쩌면 읽는 독자들에게 '범인은 이 사람입니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게 나을 듯하다. 새로운 증인들이 나타나며 이제 범인은 밝혀졌다고 생각한 순간 대실 해밋은 가장 의외의 반전을 선사해준다. 결코 생각할 수 없던 방식으로, 섬뜩하고 정치인들의 가장 비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방법으로. 또 하나의 반전이 있다면 가장 더러운 인물인 줄 알았던 인물이 의외로 순애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영미 소설 『유리 열쇠』는 정치판의 뒷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와 동시에 완전히 선한 인간도, 악한 인간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이익을 위해 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남을 이용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그들은 이 삶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모든 인물들의 삶에는 결국 공허함만이 남는 듯하다. 어느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개의치 않아하는 이들의 모습은 씁쓸하게 느껴지기까지하다.



유리 열쇠는 자물쇠를 열 수 없다. 자물쇠를 열기 위해 돌리는 순간 압력에 못 이겨 산산조각이 난다. 그 산산조각난 유리 열쇠는 결국 당사자를 불행하게 한다.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 모두는 유리 열쇠를 들고 있는 자들이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 또는 누구를 상처입히든 상관 없는 유리 열쇠. 이 열쇠를 놓지 않는 한 끊임없이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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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정애리 지음 / 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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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보면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비록 그 사람을 알지 못해도 한 편의 글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과 마음을 알 수 있다. 배우 정애리씨의 에세이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또한 그렇다. 드라마 또는 월드비전과 같은 구호 단체의 홍보 대사로 수없이 얼굴을 봐 왔지만 이 책 한 권으로 정애리씨를 더욱 잘 알게 된 느낌이랄까. 자신의 느낌과 하루의 기록을 독자들과 대화하듯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한 편의 에세이는 정애리씨가 어떤 사람인가를 더욱 자세히 알게 해 준다.


공감할 수 없다면 가만히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훈수라는 이름으로 일일이 참견하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경우가 많으니까요.


정애리씨는 배우이다. 자의든 타의든 공인이라는 감투를 쓰고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유롭지 못한 삶. 어떤 행동도 남들의 집중을 받게 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많은 걸 요구한다. 무관심이 제일 무섭다지만 자신의 사생활과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며 훈수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로서는 매우 곤혹일 것이다. 공감이 아닌, 애정이 아닌 남의 관심은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한다. 함께 응원하며 가도 힘든 인생길, 공감이 되지 않고 참견한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힘들까.



나이가 든다는 건 포기를 배워가는 것 아닐까. 청춘 때는 모든 걸 이룰 수 있을 것처럼 움켜쥔다.

주먹을 쥐고 굳게 다짐한다. 하지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하며 울분을 터뜨리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는다. 인생은 우리의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것도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 둘 씩 포기가 쌓이며 이런 삶도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인다. 그 받아들임 속에 여유를 배워가며 나를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되면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방향을 잡아가며 살아나간다.


정애리씨는 건강에 좋은 아보카도가 인간의 욕심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어버린 '피의 아보카도'를 이야기하며 안타까움을 이야기한다. 아마 저자의 오랜 월드비전 홍보 대사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기후 변화는 아프리카의 사막화와 기후 난민, 빈부격차의 양극화를 더욱 촉진시킨 이 결과를 저자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힘은 작지만 노력이라도 해 보련다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행동하려는 저자의 태도를 알게 해 준다. 뭐라고 해 보겠다는 다짐. 그래도 해 나가겠다는 다짐. 그 태도가 정애리씨가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동행.

나는 정애리씨의 삶은 바로 동행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릴 수도 있지만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삶을 실천하는 것.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자신의 손그늘로 뜨거움을 가려주고 연탄은행에 자신의 조그마한 나눔을 전하는 것. 그건 바로 삶을 다르 사람들과 함께 가고 동행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자신을 나눠주고 비워주며 그 안에서 차오르는 감사. 비웠을 때, 나누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기쁨과 감사가 이 책에서 흘러넘친다. 이젠 자신의 삶이 되어 버린 나눔이 암투병 중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고 자신의 나눔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때 느끼는 가슴 벅찬 감동은 정애리씨가 다른 누군가에게 동행이 되어 주었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글은 사람을 닮는다. 글 속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비워내고자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주변의 사소한 풍경 하나에도 감사하며 사랑하고자 하는 정애리씨의 마음이 책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힘든 인생길, 그래도 힘내자고 등을 토닥이는 언니를 만난 느낌이다. 맑고 따뜻하다. 그 마음이 읽는 이를 따뜻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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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는 건 나야
조야 피르자드 지음, 김현수 옮김 / 로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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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지 7년차에 접어든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만 엄마이자 주부 7년차이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렵기만한다. 삼시 세끼를 챙기고 씻기고 청소 등 반복되는 일상은 버겁기만 하다. 혼자이고 싶어도 혼자일 수 없는 엄마이자 주부의 자리는 결코 쉽지 않다. 많은 희생이 요구되는 자리이자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불을 끄는 건 나야』 는 이란에 사는 아르메니아인 작가인 조야 피르자드로 주로 '여성'을 주제로 소설을 집필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첫 번째 소설로 10개국 이상에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불을 끄는 건 나야』에는 이란에 사는 주부 클래리스를 중심으로 가족과 이웃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심리를 다루는 소설이다.

클래리스에게는 아들 아르멘과 쌍둥이 아르미네와 아르시네가 있다. 아르멘은 쌍둥이 여동생을 매일 놀리고 클래리스는 아들을 말리기 바쁘다. 아이가 셋이 있는 클래리스의 집은 항상 바람 잘 날이 없다. 아이들이 하교 후 간식을 챙겨주며 가부장적인 남편 아르투시는 집안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다. 클래리스의 어머니는 매일 딸에게 와서 잔소리를 늘어놓고 여동생 앨리스는 결혼을 하고 싶어 안절부절하며 언니 클래리스의 심경을 긁는다. 북적북적하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삶이 비록 쉴 틈이 없지만 클래리스는 당연한 것처럼 살아왔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그냥 앨리스에게 좋다고 말하라고, 굳이 싸움을 일으키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주며 살아간다. 보통의 나날이 계속되던 중 새 이웃이 이사온다. 쌍둥이 자매의 친구 에밀리와 에밀리의 아버지 에밀, 마지막으로 신경질적인 에밀리의 할머니 사모니안 부인이 이사오며 클래리스는 자신의 감정에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잔잔한 일상을 보냈던 클래리스는 새 이웃과 지내게 되며 묘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분명 언제나 똑같은 일상이지만 뭔가 다른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특히 에밀리의 아빠 에밀과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며 그 불편한 느낌은 강해져만간다. 이제까지 자신의 도움을 당연하게만 여기고 클래리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가족들 곁에 지냈던 클래리스는 에밀이 자신을 칭찬해주고 걱정해주며 관심사를 공유하는 게 생소하면서도 왜 가족들은 특히 남편 아르투시는 자신을 생각해주지 않는지를 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나는 화가 났다. 비올레트와 에밀을 엮어 줘야겠다며 내 팔을 비틀어 억지로 저녁 파티를 열게 한 니나에게.

오로지 자기 생각만 하는 앨리스에게. 오로지 앨리스 생각만 하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신난 아이들에게. 그리고 머릿속엔 오직 체스 생각뿐인 아르투시에게.

왜 내 생각을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지? 왜 내가 뭘 원하는지 물어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지?

<불을 끄는 건 나야> 288p

돌봄을 당연하게 여겼던 클래리스는 에밀을 통해 자신이 소외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항상 챙겨주기만 했던 자신이 도움을 받는 것 또한 불편하게 여겼음을. 혼자 있고 싶어도 혼자 있지 못하며 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엄마의 버거움을, 아들 아르멘을 걱정하는 자신을 두고 자신을 불평하는 것밖에 모른다고 하는 아들의 험담 적힌 편지도 클래리스는 너무 버겁기만 하다.

나 역시 쌍둥이를 두고 있어서일까. 무너져가는 클래리스의 심리를 공감하며 몰입하게 된다.

'나는 하루에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어.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클래리스의 자아를 보며 버스를 타고 도망가버리고 싶었던 내 안의 충돌과 직면하게 되고 남편 아르투시가 이웃 남자 에밀보다 자신을 덜 배려하는 모습에 화가 나는 클래리스의 심리에서는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쏟고 정작 나에게는 무심한 남편을 보게 된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내가 항상 느꼈던 2%의 부족함이 클래리스에게도 느껴졌다.

소설은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클래리스는 불편함을 가족에게 자기 주장을 펼쳐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바쁘고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가부장적인 이란 사회에서는 작가가 더 큰 변화를 그려내기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설사 한국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똑같다는 것을. 그 일상 안에 서로가 약간의 변화를 시도하며 서서히 변화한다는 것이 우리의 최선임을.

그래도 나는 클래리스가 조금만 더 용감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더 큰 변화를 시도해봐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매일 밤 남편 아르투시가 '불 누가 끌래? 내가 꺼? 당신이 꺼?'라고 물을 때 남편에게 불을 끄라고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아들 아르멘이 자기를 험담할 때 그건 잘못된 거라고 훈계하며 집안일에 잔소리하는 엄마에게도 선을 지켜달라고 말하는 클래리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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