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입.귀.촉 - 삶이 바뀌는 다섯 가지 비밀
박지숙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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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는 영성을 중시한다. 영성이 충만해야 신앙이 훌륭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예전에는 영성 충만만 강조되었다면 요즘에는 이에 붙는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건강한 체력"이 있어야 영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때론 불치병 속에서 신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신앙 생활을 잘 할기란 어렵다. 체력과 영성이 건강해야 신도 잘 믿을 수 있다. 《눈·코·입·귀·촉》의 저자 박지숙 마인드힐링 전문가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을 강조한다. 우리의 몸을 치료할 때 마음 또한 자연스럽게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눈·코·입·귀·촉》은 저자 박지숙 힐링 전문가가 병원과 기업체 컨설팅 코칭을 해 오며 다년간 경험한 치료와 입증된 효과를 기준으로 몸과 마음의 치료법을 설명해나가는 실용서이다. 바쁘게 변화하는 시대, 스트레스가 만연하고 정신과가 들끊는 이 시대,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은 대동소이하다.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하지만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지 저자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제안한다. 몸과 마음의 치료는 각자 있는게 아닌 함께 따라오는 결과물이다고 말한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먼저 몸을 치료하자고. 그 치료법의 기본인 우리의 오감, 눈, 코, 입, 귀, 촉을 먼저 치료하자고 제안한다.


마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몸을 먼저 다스리는 일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오감은 의학적인 건강은 차차하고 무엇을 보고 (눈) 냄새를 맡고 (코) 말하거나 먹고 (입) 듣고 (귀) 만지는 (촉) 것을 말한다. 우리가 무의식중으로 오감으로 행하는 행동들이 누적되어 몸에 독소를 만들어 건강을 해치는 근본 원인이 된다.

치료하기에 앞서 감정을 '알아차리는' 훈련이 중요하다. 우리가 먼저 몸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야 치료를 받을 수 있듯 우리의 감정과 반응을 알아야 오감을 다스릴 수 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생각, 감정을 제대로 알고 그 부정적인 반응을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귀는 끊임 없는 이미지와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뉴스에서 들리는 부정적인 소식과 자극적인 이미지는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우리가 모르는 새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의도적인 선택이 중요하다. 소음이 많은 곳을 떠나 자연의 소리를 듣거나 각 색상에 맡는 치료법에 따라 컬러 테라피를 제안한다.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 훈련이 되어야 한다. 습관이 될 때까지 오감을 훈련해야만 한다.

많은 내용 중 장의 건강을 강조한 부분이 흥미롭다. 인간의 면역세포가 소장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또한 행복과 안정의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세로토닌이 대장, 소화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단지 건강,다이어트가 아닌 감정과 마음을 위해서도 장의 건강을 위해 식사 생활과 운동에 주의를 기울여야했다.


장이 건강하고 상쾌해야

우리의 기분이나 감정 그리고 면역력까지 건강하고 편안해집니다.

편안하고 건강한 배 속은 평화롭고 안정된 심리와 직결됩니다.


오감을 바꾸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다른 누군가는 겨우 이걸로 우리의 인생이 바뀔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10년 넘게 병원에서 또는 여러 기업체에서 강연을 하며 만난 데이터들이 사실임을 입증해준다. 특히 병원에 가기를 극도로 두려워한 아이를 후각을 변화시킴으로 치료한 이야기들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오감은 결국 삶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 책은 말한다. 보고 듣는 것에 무방비로 노출되기보다 어떻게 보고 들을 것인가를 의도적으로 훈련하며 바꿔나갈 때 몸과 마음이 치료될 수 있음을 저자는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코로나블루를 호소하는 이 때 저자의 치료법은 누구나 쉽게 따라해 볼 수 있도록 쓰여져 있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 건강한 체력이 건강한 마음을 낳는다.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다고 막연히 말하기보다 먼저 우리 몸을 치료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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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양품계획 지음, 민경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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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 제품을 잘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무인양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표 없는 (無印) 양품(良品) 즉, 좋은 제품을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무인양품은 하얀 색 바탕의 깔끔한 디자인을 연상하게 한다. 1980년 세이유 자체브랜드에서 시작하여 독립 후 확고한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은 한 기업의 말을 통해 '무인양품'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그들의 사상과 본질을 알 수 있는 책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이 출간되었다.

먼저 무인양품을 지탱하게 하는 기둥, 즉 사상이 무엇일까? 그들은 이 사상을 '대전략'이라고도 부르며 모든 회사의 운영 방침은 이 대전략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무인양품'을 운영하게 하는 그들의 대전략은 바로 '도움이 되자'이다.

'도움이 되자'를 대전략으로 정한 것은,

결과여야 할 판매와 이익이

도리어 목적이 되어버린 회사가

너무나 많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27p


무인양품은 먼저 직원과 회사, 회사와 직원이 도움이 되어야 하며 회사와 사회, 더 나아가 회사와 세계에 도움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함을 사상, 즉 대전략으로 경영한다. 판매와 이익은 이 도움이 되는 관계에서 파생하는 결과물이다. 목적과 결과가 전도되지 않도록 그들은 항상 '도움이 되자'라는 대전략 아래 수단과 방법을 펼쳐나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 중 하나는 고급화로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노출시킨다. 신제품을 출시하지만 더 목마르도록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한다. '무인양품'은 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그들의 논리로 맞받아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더 많은 제품을 사도록 욕구를 자극하는 게 아닌 한 가지 제품에 만족감을 주어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제품. 바로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심플함. 간결함이다. 과한 디자인이 아닌 제품 자체의 기능에 최우선하며 더 이상 불필요한 소비를 지양하는 무인양품의 전략은 바로 '도움이 되자'라는 그들의 대전략 아래 운영되어진 제작 방침이었다. 사회와 지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무인양품의 사상은 포장의 간략화, 재생지 사용 등의 제작방법을 고집하게 했다.

한 회사의 사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 적자가 계속되면 오래 존립할 수 없다. '무인양품' 역시 회사의 사상이 훌륭하다해도 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공략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고전을 면치 못할 때가 있었다. 38억 엔의 적자를 기록하며 많은 직원들이 떠나기도 했던 그 때 '무인양품'은 시 기본으로 돌아간다. 작은 물고기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본능 속에 움직이듯이 회사 또한 '사상'을 제시하며 직원들간의 의사소통에 앞장서며 역경을 헤쳐나간다.

"생활이 아름다워지면 사회는 좋아집니다."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257p


'기분 좋은 생활'과 '기분 좋은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되풀이되는 원점, 되풀이되는 미래'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260p


도움이 되기 위해 무인양품은 끊임없이 원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생활을 아름답고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데 최선을 다한다. 불필요한 물건은 만들지 않으며 그 자체로 충분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 무인양품. 한 회사의 사상이 큰 그림이 되어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나가고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간다.

이 책을 읽으며 한 공동체의 사상이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 되돌아보게 한다. 개개인이 퍼스널브랜딩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 때 나의 사상은 무엇인지, 어떤 모토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해 준다. 올바른 사상이 올바른 제품을 만들어내듯, 올바른 모토가 올바른 삶을 만들어준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 공동체에 먼저 올바른 사상이 재정립되어야 함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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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2
스티븐 킹.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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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의 공저 《부적》 시리즈의 1권에서 잭이 늑대인간 울프를 만난 후 《부적 2》권에는 더욱 흥미진진한 잭의 모험이 펼쳐진다. 1권에서 주인공 잭이 스피디 파커로부터 또 다른 세계 테러토리의 존재를 알게 되고 본격적인 모험이 그려졌다면 2권에서는 늑대인간 울프와 함께 하는 모험담이 그려진다.

비록 용감한 잭이지만 10대 소년에 불과한 잭은 이제 늑대인간 울프까지 챙겨야 한다. 스프링필드로 가는 길에 경찰차를 만나게 된 잭과 울프는 돈을 받고 미성년자 수용 시설에 넘겨버리는 부패 경찰관과 판사들에게 붙잡혀 선라이트 가드너 수용 시설에 끌려간다. 19세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나올 수 없으며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감옥과 같은 이 수용 시설에서 잭은 이 수용시설의 주인이자 목사인 선라이트 가드너가 악당 모건 슬로트의 부하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1권에서 잭이 테러토리로 이동했을 때 잭에게 무차별 채찍질을 가했던 오스먼드의 트위너이기도 한 선라이트 가드너를 잭은 알아보지만 가드너는 낯이 익음을 확신하지만 어디에서 보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 수용소에서 잭과 함께 갇힌 울프의 존재는 내용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감정을 주체못하거나 때론 불의에 항의해 폭력을 행사하는 울프의 행동은 잭에게 버겁게만 한다. 극한 상황 속에서 울프는 점차 늑대가 되어 가고 잭을 구하고 목숨을 잃는다.

소설의 전반부가 잭과 울프가 함께 했던 선라이트 가드너의 모험이였다면 후반부는 잭이 울프를 잃은 후 모건 슬로트의 아들이자 절친한 친구인 리처드의 학교로 가 리처드와 함께 부적을 찾으러 가는 모험이 전개된다. 본격적인 트위너들이 등장하고 1권보다 더 강력한 공포를 그려내며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또한 아직은 어린 소년인 잭이 느끼는 공포 그럼에도 계속 가야만하는 잭과 리처드의 모험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소설 《부적 2》는 마지막 완결편인만큼 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가 자신들이 가진 모든 모험을 이 책에 쏟아낸 듯하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고난, 잭의 엄마 릴리를 괴롭히는 악인 모건 슬로트의 악랄함, 아버지 모건의 악행을 결국 알게 되는 리처드, 그리고 테러토리에서의 스피디 등등 이야기는 거침없이 전개된다. 특히 리처드 학교에서의 한밤의 소동은 이 책 내용 중 가장 압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한 밤 중의 공포극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울프와 리처드는 이 책의 모험으로만 가득찬 이 책에 감정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잭 또한 슬픔과 공포등의 불안감을 생생하게 그려내 입체적인 인물로 생동감을 부여한다. 1권과 2권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두께감이지만 지루한 줄 모르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선사해준다.

이 책이 1984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이야기가 2020년도인 지금까지 흡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탄탄한 필력의 두 작가가 과연 명불허전임을 알게 해 준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소재를 착안한 이 모험이 이토록 흥미진진한 다크 판타지로 탄생할 수 있다니 과연 놀랍기만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 할 예정이라고 하니 만약 개봉한다면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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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홈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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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난 내 아이들이 커서 집이 편안한 휴식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

동생이 내게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의아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집이 휴식처가 된다. 하지만 집이 오히려 힘든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우리 형제가 그랬다. 부모님은 훌륭하게 우리를 돌봐 주셨지만 너무 엄한 부모님과 체벌이 두려웠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집에서 온전히 쉬지 못했다. 그랬지만 불행했다는 건 아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헌신적이였으니까. 다만 집이 그립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곳. 그런 의미라는 말이다.

루시아 벌린의 《웰컴 홈》을 떠올려본다. 작가에게 집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살던 집을 추억하며 써내려가는 작가의 회고록은 그녀의 전작인 <청소부 매뉴얼>, <내 인생은 열린 책>의 문체만큼 담담하다. 인생의 굴곡진 시절또한 타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 만큼 불행하지 않고 자신의 있는 모습을 그려나간다.

통나무집 벽의 천장부터 바닥까지에 잡지책 낱장을 조각보처럼 붙여 빈틈없이 도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해놓으면 존슨 할아버지는 벽에 붙은 것을 읽으며 긴 겨울을 났다.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잡지의 종류와 페이지 들을 뒤섞어 붙이는 일이었다.

어느 잡지의 20페이지를 북쪽 벽 상단에 붙였으면 21페이지는 남쪽 벽 하단에 붙이는 식으로.

나는 그게 나의 첫 문학 수업, 또는 창조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배운 첫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 셋을 키우며 여러 일을 전진하며 힘든 삶을 살았던 루시아 벌린이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내게 대답을 해 준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산에 있는 존슨 할아버지의 집의 월동을 위해 잡지를 찢어 여기저기 붙이며 도배하는 그 때부터가 작가의 첫 출발이였다고 말한다. 문학 수업의 시작은 어느 할아버지를 위한 작은 행동이였다. 잡지를 도배하는 어린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도배하면서 작가는 그 문장을 읽어 나가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았을까? 연달아 붙인 잡지가 아닌 다른 내용과 종류를 붙이면서 그 여백을 채워나가는 상상력이 작가에겐 무엇보다 귀한 수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가 떠난 날 아침, 나는 제일 먼저 새들을 길 건너편에 사는 어떤 할머니에게 주었다.

몬드리안의 그림들을 떼어버리고 그 자리엔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들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포스터를 걸었다.

베이지색 소파에는 색이 야한 멕시코산 담요를 뒤집어 씌웠다.

어린 시절의 작가의 모습은 풍요롭진 않지만 친구들과의 풍성한 추억이 가득한 모습이 느껴진다면 성인이 된 후 작가의 모습은 루시아 벌린에게 다가온 역경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깊다. 가부장적이고 이기적인 첫번째 남편 폴 서트먼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자신과 아이 마크를 버리고 떠난 후 작가의 행동은 남편으로부터 억압되었던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였다. 작가의 소설들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굴곡들이 서글프지만 결코 슬프지만은 않았던 이야기들을 나는 그녀의 행동을 통해 추측해본다.

아이들이 낮잠을 잘 때 레이스는 피아노를 연습했다. 잠을 자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집에 없거나 하는 게 그의 인생의 전부인 듯했고, 나한테는 거의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밤마다 바느질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에드와 헐린에게 편지를 썼고, 심퍼니 시드와 이야기하거나 버디가 전화를 하면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을 하지 않는 남편, 커가는 아이들, 그 침묵 속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루시아 벌린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이 피아노를 치거나 부재 중 외로움을 육아와 집안일 후 조용한 방 안에서 글을 쓰는 작가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장편 소설이 아닌 단편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고단한 하루, 끊임없이 일해야 했던 작가는 외로움 속에 글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고단함으로부터 글을 쓰듯, 그 외로움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 작가는 열심히 글을 쓰거나 책을 읽지 않았았을까.

데이비드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설사와 구토로 더러워진 모두의 몸만 옷을 찢어 겨우 닦아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버디는 밴 앞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격렬하게 몸을 떨면서

작가가 미처 끝내지 못한 마지막 문장이다. 끝맺지 못한 문장은 과테말라 어느 집의 헛간이다. 퍼붓는 비, 뎅기열로 아파하는 아이들, 설사와 구토, 마약 후유증으로 떨고 있는 남편 버디.. 이 마지막을 쓰면서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토록 순탄치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갈 수 있었던 건 어떤 힘이였을까?

모두 네 옆에 있으니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생기면 네가 도움을 청할 수 있어.

하지만 누구보다 가장 큰 스승은 네 마음일 거야. 마음이 가볍고 가뿐해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지면 착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란다. 마음이 어둡고 더럽고 창피한 느낌이 들면 무언가 잘못 살고 있다는 뜻이지.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가 어린 루시아 벌린에게 써내려간 이 문장을 통해 작가는 힘들 때마다 이 편지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힘들수록 노래를 부르고 가볍게 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을 작가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할 수 있었던 작가는 바로 어린 시절 아버지의 편지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웰컴 홈》을 읽으면서 저자의 소설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단편 소설의 배경이 그려지는 듯하며 책에 비친 삶의 단편들이 이 회고록을 통해 더 명확히 보이는 듯 해 반갑다. 소설이 그토록 입체적이었는지 작가는 이 미완성 유작이 된 회고록을 통해 대답한다. 루시아 벌린. 작가를 알고 싶다면 꼭 이 회고록을 보기 추천한다.작가의 소설을 이미 읽었지만 다시 재독하고자 한다. 분명 또 다른 묘미로 소설들이 내게 다가올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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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 번역을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노경아 외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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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한다. 그리고 영어 또한 사랑한다. 책과 외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번역가를 생각해 본다.

나 역시 번역가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AI가 대세이고 사양산업이라고 하는 번역가들은 가장 먼저 위협받는 직업군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좋아서, 글이 좋아서 이 일을 계속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서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의 다섯 명의 번역가들 또한 너무 좋아서 번역을 한다. 직업병인 허리가 아프고 마감일에 쫓겨도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역서 하나에 온 시름이 없어지는 이들의 희노애락이 그려진다.

다섯 명의 번역가들은 모두 일본어 또는 중국어 번역가이다. (영어 번역가가 없다!) 그 중 처음부터 번역가의 길로 들어선 분도 있고 노경아 번역가처럼 생계를 위해 다른 업종에서 일을 하다가 퇴사 후 뒤늦게 번역가의 길로 뛰어든 분도 있다. 그들은 번역을 왜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답한다.

" 여전히 책이 좋고 글이 좋고 번역이 좋았습니다."

"일이 괴로우면 번역이 잘 될까요? 오래 이 일을 해나가려면 좋아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아요. 저는 그래요."

일에 대한 사랑, 좋아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회사원이라면 적든 많든 일정한 월급이 나오지만 번역가는 프리랜서로서 일을 헤쳐나가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프리랜서로 에이전시를 통해 일하기도 하지만 출판사를 직접 거래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다. 이 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결코 오래할 수 없는 직종 중 하나가 바로 번역가이다.

만화와 라이트 노벨 전문 번역가에게는 수시로 튀어 나오는 의성어, 의태어와 씨름하고 자기계발서는 우리말과의 싸움이다. 일욕심에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지 못하고 일을 하다가 결국 교정 천국이 된 원고를 본 실패를 통해 자신의 루틴을 만들어가고 자기 관리를 한다. 더 오래 일하기 위해 더 양질의 글을 쓰기위한 그들의 고군분투가 이 책 속에 펼쳐진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자신을 갈아 넣는 노력을 하지 않고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더 이상 '과연 저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미 자기 자신이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나 또한 번역가가 되기 위해 번역 아카데미 강좌도 듣고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 공부를 하곤 했다. 번역가분들이 하는 말들은 실력이 최우선이다. 번역가의 원고료는 매우 낮다. 만만치 않은 직업이고 먹고 살기 힘들어 도중에 포기하는 번역가들이 많다는 직언 또한 서슴치 않는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제대로 된 시작은 하지 않는다. 김지윤 번역가는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기보다 먼저 공부를 하고 시작을 하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확신이 없는 사람은 해 나갈 수 없다고 강조한다. 김지윤 번역가 또한 글 쓰는 번역가로 살기 위해 매일 메모하고 기록하며 공부를 계속해나간다.

이 다섯 명의 번역가들은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프리랜서인만큼 자신이 거래처를 확보해야 하고 작업 시간 또한 자신이 모든 걸 관리해야만 한다. 때론 막막하고 힘든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력과 시간이지만 무엇보다 동료 또한 중요함을 강조한다.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 서로 함께 도우며 격려할 때 이 일을 해 나갈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존경하는 함혜숙 번역가의 글이 떠올랐다. 힘든 번역가의 세계에서 열정페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낮은 원고료를 받는 행위는 이 시장을 더욱 파괴하는 행동이라고 함혜숙 번역가는 말했다. 이 번역가라는 직종이 인정을 받기 위해서 올바른 노동의 대가가 주어져야 하며 체불시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와 마찬가지로 프리랜서의 세계 또한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도미노처럼 파급력이 커질 수 있다. 나를 지키고 다른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동료의식을 가지고 정당한 대우를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

《도서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의 다섯 명의 번역가들은 어쩔 수 없는 번역쟁이임을 고백한다. "우리 정말 좋았는데 네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이야..." (190p) 라며 하소연하지만 울부짖지만 그럼에도 번역이 좋은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대로 번역가가 될 운명이었음을 말한다. 일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거래처를 확보해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도 이 일을 놓지 못하는 건 좋아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거북목을 하소연하고 허리 통증을 이야기해도 그들의 작업이 행복해 보이는 건 이 번역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꼴도 보기 싫은 일본어라 하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들에게서 일에 대한 애정을 본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번역가들의 모습이 내게 아직 늦지 않았으니 시작해보라는 용기를 준다. 좋아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 일을 즐기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매우 멋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이 뿌듯한 건 그들의 일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일에 대한 시작이 두려울 때, 일에 대한 권태기가 찾아올 때에도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일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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