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
앤 가디너 퍼킨스 지음, 김진원 옮김 / 항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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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여성의 역사가 인종 문제보다 더 뒤쳐져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역사에서 디폴트인 남성들은 인종 문제 뒤에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투표권 뿐만 아닌 교육 받을 수 있는 권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미국 일류대학교인 하버드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가 타대학보다 여성들에게 입학 허가가 늦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기만 하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는 남자들만의 터전이었던 예일대학교에서 첫 여자 입학생으로 들어와 자신의 길을 가기까지 고군분투했던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이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는 먼저 예일대 총장인 킹먼 브루스터 총장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그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화제였던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인종문제에 있어서도 흑인에 우호적이며 진보적이던 명망있는 브루스터 총장이건만 여성 입학에 대해서는 극도의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모습이 부각된다. 젠더 이슈에 관해서는 다른 정치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던 그의 정책은 예일대학교에서 능력 있는 여교수들의 극히 드문 현실 또한 무관하지 않았다.

여학생 입학에 부정적인 예일대학교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입학의 문을 열기로 결정하며 예일대학교에는 많은 변화가 그려진다. 여학생 기숙사, 화장실, 보건소, 성상담소 등등을 구비해 나가는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다. 여성들에게 학업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차이가 나는 남녀성비, 여성이 같은 급우라는 개념보다 성(sex)적인 부분에서만 관심있는 구태의연한 남학생들의 개념, 남성들만의 전유물인 클럽 등등 많은 장애물들이 가로막혀있다. 심지어 학교 응원단까지도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의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는 예일대 최초 여학생들이 처음부터 페미니스트가 아니였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단지 최고의 대학에 공부하고 싶었던 학생들일 뿐이였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녀들에게 '슈퍼우먼'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지만 그녀들은 10대 여학생일 뿐이었다.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 여학생들이 장애물 앞에서 굴복하느냐 또는 뛰어넘느냐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뛰어넘는 것을 택했고 투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페미니스트로 변모해갔다.

저자는 이 여학생들의 투쟁 과정에서도 여학생 입학을 주도하며 입장을 대변해 온 올가 교수와 투쟁 방식에 있어서도 이견이 있음을 말한다. 같은 여성으로서 여학생의 입장을 총장에게 강조하지만 어른이자 학교 교직원으로 강경한 입장보다는 온건파에 속했던 올가 교수에 비해 여학생들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때론 정학 위기도 있었지만 투쟁을 수정해가며 여성 입학생 비율을 확대해 나가는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고 느리게 해 나갔음을 보여준다. 느리게 진보해가는 이 역사 속에 저자는 헤비스터와 같은 일부 남학생들의 협조와 도움이 함께 했음을 말한다. 언젠가 조남주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떠오른다. "우리는 분명 좋아지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계속 진보하고 있음을 말하는 작가의 글이 비록 더디지만 예일대에서 터전을 힘들게 다지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리고 이 역사 속에 함께 동참하는 남학생들과 함께 이 힘든 산을 들어올리는 그들의 움직임 속에 한국의 페미니즘이 더욱 넓혀지기 위해서 남성들에게 이 페미니즘이 단지 여성에게 국한된 이론이 아님을 알리는 일이 시급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남성과 여성 모두 페미니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때 이 사회는 변할 수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남성이지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극히 소수일 뿐이다. 남녀 모두에게 확대될 때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더 큰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비록 지금은 큰 바위이지만 그들에게 다가가기를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예일대의 최초 여학생들이 들었던 핀잔과 장애물들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에 막막함을 느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포기한다면 우리는 장애물들을 인정하게 된다. 예일대 여학생들이 끝까지 장애물을 인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듯이 우리에게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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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의 아주 작은 성공 습관
딘 그라지오시 지음, 권은현 옮김 / 갤리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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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의 재산이 곧 재력이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계급은 양극화되고 부의 대물림이 심한 이 시대, 헬조선이라는 푸념과 함께 비관론이 이 시대에 만연하다. 부자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말하는 이 시대,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과연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백만장자의 아주 작은 성공 습관》의 저자 딘 그라지오시는 자신 있게 말한다. 저자가 무일푼에서부터 백만장자가 되기까지 쌓아온 작은 성공 습관들을 실천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해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연 우리는 그를 신뢰할 수 있을까?



《백만장자의 아주 작은 성공 습관》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기계발서이기도 하자 저자의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성공 습관들마다 저자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경제난, 가족 이야기 등을 풀어내며 이 습관들이 자신의 인생에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이야기해간다.

먼저 이 성공 습관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저자는 그 출발점을 자신의 현재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내 재무 상태가 어떤지 알아야 하며 나의 인간 관계, 건강 등등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자신의 현실을 확실히 인지한 후 저자는 마음 속의 가장 확실한 목표가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단, 저자가 설명하는 목표는 우리가 아는 단순한 성공, 부의 획득이 아닌 내면의 진정한 목표가 제대로 서야 함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을 근본적인 목표로 착각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근본적인 목표를 알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7단계 질문법'을 제시한다.



《백만장자의 아주 작은 성공 습관》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스토리를 재창조할 것을 이야기한다.

먼저 나의 예를 들어본다면

나는 이제 더 이상 청년이 아니다.

늦은 나이에 여섯 살 쌍둥이 아이가 있는 워킹맘이다. 심지어 육아를 도와 줄 수 있는 분도 없다.

서울 집값을 따라잡기에 힘이 든다.

나의 스토리는 부정적이다. 늦깎이 엄마로 어린 나이에 양육할 아이가 많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부정적인 스토리를 긍정적인 스토리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의 경우는 나이와 아이들, 금전 상태가 걸림돌이다. 하지만 저자는 부정적인 스토리들을 긍정적으로 바꿀 때 우리의 생각의 프레임 또한 긍정적으로 바뀌어 갈 수 있음을 말한다.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되 절대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스토리를 바꿀 때 우리는 비교할 수 있다. 비록 지금 내가 아이들 육아로 시간이 부족하지만 육아는 걸림돌이 아닌 나의 성장을 위한 하나의 역할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나의 스토리는 바뀌게 된다.

습관은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정해주는 나침반이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잘못된 노력을 1만 시간을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시간 낭비일 뿐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정답은 자기자신이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 자신의 고유한 능력이 바로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자신의 강점에 주목하고 약점은 과감히 포기하거나 다른 이에게 일임함으로 우리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당신의 고유한 능력은

곧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 원한다. 성공을 꿈꾸고 자유롭고 온전한 삶을 희망한다. 저자 딘 그라지오시는 부자가 되기에 앞서 우리의 우선 순위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집을 사야겠다는 막연한 목표가 아닌 삶의 목표가 우선시되어야 하며 돈을 벌기 전에 가장 먼저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털어놓으며 이 습관을 믿고 따를 것을 제시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습관들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야말로 이 습관들의 수혜자이자 자신의 성공 비결이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잘 못 가고 있었던 자동차의 방향을 바꿔 이 습관들을 따를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열쇠는 바로 실천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




- 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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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어 필 무렵 - 드라마 속 언어생활
명로진 지음 / 참새책방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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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좋아한다. 내가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은 내게 다가와 "엄마, 드라마 봐?"라고 물을 만큼 나는 드라마 매니아이다. 화면 속 인물들의 대사에 설레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그들의 대사는 때론 이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고 때론 사이다 발언으로 많은 이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해 주기도 한다. 명로진 작가의 《동백어 필 무렵》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작년 최고의 화제작 [동백꽃 필 무렵]을 패러디한 드라마 속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총 25편의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비록 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누구나 제목은 한 두 번씩 들어보았을 드라마들을 선정하여 나와 같은 드라마 매니아들의 호기심을 부추긴다.



이 책을 통해 명로진 작가가 배우였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다. 그동안 인문학 글쓰기 전문가로만 알고 있던 내게 배우라는 저자의 직업은 놀라웠다. 30편의 드라마 출연 배우로서 저자는 드라마 이야기와 함께 저자의 경험 또한 수록해서 더욱 흥미를 돋운다. 같은 드라마를 보아도 사람들은 느낌과 생각은 다르다. 저자의 글 역시 나와는 생각이 다른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응답하라 1988>의 네 남친사와 한 명의 여 친사의 구조를 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에 대한 욕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부분은 과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연 시청자들이 그 욕망에 근거해서 이 드라마에 열광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수록된 25편의 드라마 대사 중 가장 감동 깊은 대사를 꼽으라면 김혜자와 한지민이 출연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말할 수 있겠다. 김혜자씨의 수상 소감으로도 감동을 주었던 이 드라마의 대사는 저자의 글과 함께 어우러져 또 한번의 감동을 재현해준다. 시간의 유한함 속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오늘 지금을 눈부시게 살아가는 것 뿐이라는 대사는 언제 들어도 눈부시다.


《동백어 필 무렵》은 저자의 유머와 저자가 들려주는 드라마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다. 이 드라마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저자는 쉽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저자가 느꼈던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각 인물의 심리 또는 사회상을 이야기한다. 다만 아쉬운 건 이 책의 포맷에 맞게 등장 인물들의 대사가 생각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각 드라마 장 말미에 추신은 생략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때론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때론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지만 저자가 해 주는 이야기에 따라 왜 그 땐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드라마 인물의 대사를 통해 말하지만 단지 드라마에만 그치지 않고 저자의 전공인 인문학으로까지 확장해가며 설명해 주는 이 책은 지적인 재미까지 충족해 준다. 쉽고 재미있는 인문학 공부가 드라마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언어는 사람의 인격이다. 그 인격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우리는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이 그 쉽고 재미있는 가이드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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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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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기차에 내린다. 개인 박물관 기사 면접을 보기 위해서다. 그를 마중나온 한 소녀가 그를 인도한다. 어느 사전 정보도 없이 구인공고를 낸 채용자를 본 남자는 깜짝 놀란다. 100세라 해도 믿을만큼 굽은 허리와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새겨진 한 노인이 못마땅한 눈길로 그를 쳐다본다.

노인에게 어떤 박물관을 생각하고 있는지 묻자 의외의 대답이 들려온다.



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그 무엇,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이지.


한 사람의 생애를 뚜렷하게 정의할 수 있는 물건. 그 물건이 없이는 그 사람의 생애를 설명할 수 없는 유품을 모아 박물관 전시를 기획하는 노파의 계획은 다소 황당하기만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말고 유품을 챙겨 올 것을 강조하는 노파의 으름장에 남자는 이 마을에 사망자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노파의 집에는 남자를 마중 나왔던 노파의 양딸 소녀와 부부이자 이 집안의 일을 도맡아 하는 가정부와 정원사가 있다. 소설에서 이들은 모두 이름이 없이 노파, 소녀, 정원사,가정부 역할로만 불리운다. 이 네 명과 박물관 기사인 남자 다섯 명은 박물관 기획을 시작한다.

박물관 건립에 시작하기 전, 노파는 자신의 박물관 설립을 시작하기 전 세 가지 당부사항을 주었다.

"절대로 도중에 그만두면 안 돼. 이것이 세 번째 진리야."

어느 누구도 일을 시작하면서 도중 하차를 기대하지 않는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 말이 후에 어떻게 그의 삶을 얽매이고 결정하게 되는 무서운 암시가 있을 줄 생각하지 못한다.

노파의 양녀인 소녀는 그에게 마을을 구경시켜 주던 중 '침묵의 전도사'를 만나게 된다. 북쪽 수도원에서 일체 말을 하지 않으며 침묵으로 수행하는 전도사들은 말을 할 수 없다. 묵언으로 수행하는 그들은 완전한 침묵 속에서 죽는 걸 이상으로 삼는다.

그는 사람이 죽기 원하지 않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한 법. 죽음은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먼저 109세 전직 외과의사가 죽어나가고 그는 소녀와 합세에 불법 귀 축소 수술 전용 메스를 가져온다. 박물관 건립의 계획은 느리지만 진행되고 그는 곧 태어날 조카의 선물을 사기 위해 소녀와 함께 마을의 특산품인 알공예품을 고르던 중 마을에 큰 폭파 사건이 일어난다.

조용한 마을에 폭파 사건이 일어나고 정적이던 마을은 불안에 휩싸인다. 소녀 또한 심한 부상을 당하고 박물관 건립은 다소 느려진다. 폭파 사건의 여파와 함께 유두가 잘려 나간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마을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다.

박물관 기사인 그와 소녀는 침묵을 수행하는 수도원에 가는 배를 태워주는 수습 전도사를 만나게 되고 침묵 수행에 관해 자세히 알게 된다. 아직은 수습 중이지만 조금씩 머잖아 자신도 침묵하게 될 거라는 수습 소년은 침묵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전도사들이 추구하는 건 말의 금지가 아니라 침묵이예요. 침묵은 바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죠."

신비의 세계로 여겨졌던 침묵의 수도원이 노파가 살고 있는 대저택과의 관계가 연쇄 살인 사건과 맞물려가며 연관 관계가 드러난다. 조금씩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게 되는 소년 전도사처럼 박물관 기사인 그 역시 대저택의 침묵의 세계로 끌려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였다. 마지막 진실을 그가 알게 될 때, 그 역시 일종의 침묵을 수행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침묵박물관》 소설은 자신의 생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를 강하게 묻는다. 109세의 외과의사에게는 그가 불법적으로 수술을 자행해 온 메스 도구라는 부끄러운 유품이 있었다. 69세 무명 여류화가의 유품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물감을 먹으며 버텨야 했던 유품이 있었다. 주인공에게는 어머니의 유품인 책 <안네의 일기>가, 한 여성 점원에게는 마른 헝겊 등의 물건에서 그들의 생애가 보인다. 과연 나의 유품이라면 어떤 물건이 나의 생애를 대표해줄까?

사람들은 침묵 전도사의 일을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결국 우리 모두가 침묵의 길로 가는 것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아무리 울어봐야 다가오는 겨울을 피할 수 없듯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우리의 삶은 결국 침묵하는 물건으로 그 사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박물관 이름인 <침묵박물관>이 무엇보다 더 어울리는 듯하다.

강하진 않지만 미세한 감정의 여운을 부족한 내 글로 표현할 수 없어 아쉽다. 나는 이 소설을 노파의 말로 매듭짓고자 한다. 비록 하찮은 유품 하나라도 그 사람의 생에 일어난 일들은 가치가 있다는 말이라는 것 아닐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고. 모든 생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유품은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생을 기억하고 추모하듯이.


우리의 신상에 일어나는 일 가운데

쓸모없는 건 하나도 없어.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고, 그리고 가치가 있어.

유품 하나하나가 그렇듯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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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 읽기
손문숙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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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책을 읽고 난 후의 감동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나에게 좋은 말동무는 동생이다. 나만큼 책을 좋아하는 동생을 만나면 우리는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한다. 내가 좋았던 책에 대해 동생이 공감하면 기분이 좋지만 동생이 기대보다 떨어진다고 말할 때는 의기소침해진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은 최고의 이야기상대이다.

『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읽기』는 현직 공무원인 저자 손문숙씨가 독서토론을 하며 읽은 책에 대한 소회를 남긴 글모음이다. 책을 느끼고 생각하며 반추하는 읽기를 통해 자신이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글이다.

총 27권의 읽기에 대한 소회가 담겨 있는 이 글은 인간, 죽음, 여성 그리고 사회 네 파트로 구분지어 읽기를 이야기한다.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책장에 꽂혀있지만 읽지 못하고 있는 책을 미리 읽는 즐거움도 있다.

그 중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알게 되어 구매한 [필경사 바틀비]가 눈에 띈다. 저자 손문숙씨는 이 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김용균 군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이익창출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어린 청춘들이 죽어가지만 아직까지 변변한 규제 하나 못 마련하고 있는 이 현실을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바틀비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시대가 지나도 형태만 바뀔 뿐 없어지지 않는 불평등, 형태만 변주된 채로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이 현실을 저자는 자본주의로 인한 인간 소외로 담담히 소개해준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영화로 본 아들의 반응 또한 흥미롭다. 남자로서 여자의 입장을 서 보지 않고 김지영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보며 저자는 두터운 벽을 느낀다. 나 또한 남편에게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자고 이야기했을 때 "82년생 김철수"가 나오면 그 때 보겠다며 일축해버린 남편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페미니즘이 단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이론이 아닌 남녀노소 모두를 아우르는 이론이며 이를 알고 이해하는 움직임이 없이 거절해버리는 남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통해 이야기한다.

동생은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지고 완강해지는 자신을 다스리고 다른 생각들을 배우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동생의 말을 떠올렸다. 저자 또한 평범한 공무원이지만 독서토론을 하고 읽고 나누며 세상을 깨우쳐간다.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페미니즘을 보고 코로나 시대를 보며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를 사유한다. 그 사유는 글쓰기로 이어지고 오십에 작가가 되기 위한 삶을 위해 정진한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재정의해간다. 읽기를 통해 삶의 폭이 넓어지고 글을 쓰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반성해간다.

『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읽기』는 무엇을 만드는가. 나는 읽기는 '삶'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삶은 달라져야하고 달라진다. 나의 고정관념이 깨지고 나의 삶이 달라진다. 책을 읽기 전과 후의 삶이 같을 수 없다. 그 모습을 저자는 글을 통해 보여준다.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름 읽는다고 하는데 과연 나의 삶은 달라져있는가. 나의 읽기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자문해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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