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스노우 엔젤>의 작가 가와이 간지는 2012년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대상에서 『데드맨』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이다. 그 후 『드래곤플라이』.『잔』,『800년 후 만나러 간다』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며 그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 출간된 《스노우 엔젤》은 전작 『데블 인 헤븐』의 프리퀼로 목적과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욕망과 이를 둘러싼 암투를 그려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다.
소설은 초반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잔잔한 호수가의 풍경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이는 이 호수를 바라보는 한 노인에게 검은 남자가 찾아오며 그의 레시피를 요구한다. 샤로노프라는 노인이 한평생을 바친 그의 연구작 '최후의 레시피'는 순수한 평온만을 가져다 주는 약물이었다. 그의 약물을 탐내는 범죄조직은 노인을 공격하고 노인은 마지막 그들에게 말한다.
"이 세상은, 영원히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던 진정한 평화를 마침내 얻게 될 것이다. …다만"
"슬픔이나 사랑과 맞바꿔서 말이지."
"그리되면,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후, 이 세상은 …."
"천국이 될까? 아니면 지옥일까?"
노인의 죽음 이후 시간이 흘러 도쿄 시내는 환각 증세를 보이며 사고를 일으킨 후 자살하는 사건들이 발생되며 경시청의 만년 계장 기자키 헤이스케는 늘어나는 이 현상들의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답답할 뿐이다.
《스노우 엔젤》은 샤르노프의 죽음과 '최후의 레시피' 그리고 죽음 직전 '천사님'을 부르며 뛰어드는 범죄등의 강한 도입부에서 벗어나 전직 형사 진자이에게로 초점을 돌린다. 9년 전, 동료 여형사 히와라 쇼코와 변호사 추락사를 조사하던 중 역으로 공격을 받아 동료를 잃고 분노에 차 그 일당을 총으로 죽인 후 신분을 숨긴 채 도망자로 살고 있다. 그를 공격하던 범죄 조직으로부터 이 일의 배후에 '마슈'라는 자가 있음을 알게 되지만 9년이 지나도록 어느 단서도 찾지 못한 그는 돈도 없고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하루살이 인생으로 버텨나간다.
어느 날, 진자이를 찾아 온 옛 상사 기자기 계장과 후생노동청의 마약단속관 미즈키 쇼코가 찾아오고 미즈키 쇼코는 이 사건의 배후에 위험한 합성약물 '스노우 엔젤'이 있음을 이야기하며 이 '스노우 엔젤'의 제조자이자 유통자인 하쿠류를 잡을 수 있도록 사건협조를 청한다. 도망자 신분에서 마약단속관의 그림자가 되어 마약 범죄현장에 뛰어든 진자이의 위험한 추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저자 가와이 간지는 이 소설에 올해 개최 예정이었던 2020 도쿄올림픽을 소재로 더욱 현실성을 부각시킨다. 경기 부양을 위한답시고 몇 억, 몇십 조를 경기장 건설에 쏟아부으면서도 일반 서민들의 삶에는 무감각한 정치권을 향한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비록 도망자 신세였지만 자신이 형사로서 가졌던 자부심과 정의감, 그리고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지만 범죄행위에 동조하는 진자이의 고뇌,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미즈키 쇼코와의 마찰은 읽는 이에게 결과를 위해서는 과정을 중요시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게 한다.
《스노우 엔젤》의 가장 탁월한 점은 인간의 모든 욕망이 총집합을 보여준다. 이는 단지 범죄조직만의 욕망이 아닌 정치가들, 그에 협력하는 자들의 욕망, 그리고 마약을 원하는 많은 이들까지 천국을 갈망하는 한 사회의 욕망이 집대성된 느낌이다. 이들의 욕망을 조장하고 이용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음을 소름끼치게 보여준다. 마약상은 천국을 바라는 이들의 욕망을, 정치권은 그들의 부를 위한 욕망을, 서로의 욕망을 자극하며 그들의 목표인 '쾌락의 천국'을 완성하고자 하며 남모를 계획을 완성해간다.
또한 저자는 이 소설 속에서 범죄자의 입을 통해 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도록 하는 영리함을 선사한다. 그들이 내뱉은 이 사회의 빈틈은 목적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지고 그들의 목적으로 인해 범죄가 오히려 더욱 늘어나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이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약물만이 아녜요. 다른 범죄도 그래요. 사람 하나를 죽였는데 고작해야 십몇 년, 큰집에서 얌전히 있다 보면
10년 안팎이면 나올 수 있어요. 책임 능력이 없었다는 농리가 통하면 무죄까지도 가능하고요.
범죄에 대한 양형의 가벼움, 이것이 범죄가 줄어들지 않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저지른 놈이 득인, 안 하면 손해인 거죠."
"술도 미둑에선 금지되었던 시대가 있었어. 그 기간 동안 술은 마피아의 자금원이었는데, 큰돈을 버는 마피아가 부러워진 국가가 술을 해금했지. 그러자 예상대로 국가에 돈이 물밀듯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어.
국가는 손바닥 뒤집듯 주류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국민을 상대로 음주를 권장하게 되었어.
그리고 지금 미국은, 훌륭한 알코올 중독자 대국이지."
소설은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한 진자이의 계획에 더욱 진한 복선을 그리다가 마지막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이 암투 속에 아직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접점이 없을 것처럼 보이던 모든 인물들이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는 시작일 뿐이라는 점을 알리며 <데블 인 헤븐>의 화려한 시작을 예고한다.
각 인물 모두 생생한 캐릭터와 마약 현장에서의 진자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끝을 향해 갈수록 절대 긴장감을 놓칠 수 없게 만드는 반전, 그리고 국가 권력의 검은 그림자 등 모든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이 소설 한편만으로도 가와이 간지의 필력과 스토리텔링을 느끼게 한다. 선과 악의 경계가 없는 곳, '스노우 엔젤'을 둘러싼 이들의 암투 속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가 없다. 그래서 더욱 강렬하다. 더욱 진한 긴장감을 선사해 준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