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 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박민영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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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좁은 개념의 의미를 생각한다. 가령 보수의 태극기부대, 일본의 한국 혐오현상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라고 말한다면? 아마 대부분은 부인할 것이다. 자신은 혐오하지 않는다고. 그건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강하게 말할 것이다. 나 역시 진보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예멘 난민사건 이후로 나의 믿음은 흔들렸다. 그리고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나 자신역시 생활 속에 혐오가 길들여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의 저자 박민영씨는 문화평론가로 <경향신문>, <인물과사상>, <교육과사색>등에 글을 기고했고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사회라고요?]를 쓴 인문 작가이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는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숨은 혐오와 그 의미를 되새겨주는 책이다.

혐오란 뜻이 무엇일까? 우선 위키백과의 표현을 들면 어떠한 것을 증오, 불쾌,기피함,싫어함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강한 감정 을 뜻한다. 이 표현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나는 그렇게 증오하는 대상이 없는대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당당히 아니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증오하는 대상이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세대' '이웃' '타자' '이념'의 네 가지 의미로 우리의 생활 속에 혐오가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었는지 설명해준다.

가장 먼저 세대에 대한 혐오는 청소년, 20대, 주부, 노인등의 혐오로 설명된다. 그 중 나에게 가장 익숙한 혐오는 바로 주부 혐오이다. 나라에서 출산을 장려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임신을 두려워한다. 아이를 낳는 순간 이 사회의 혐오 현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아이 자체가 민폐가 되고 노키즈존까지 생기며 아이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엄마들은 죄인이 되어야 한다. 전업주부가 되며 돌봄노동으로 자신을 희생하지만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시댁과 남편에게 당당하지 못한다. 커서는 아이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며 이리 저리 소외되어 버리는 주부의 현실을 저자는 알려 준다.

청소년 혐오도 다르지 않다. 무상급식 논란이 일 때 복지포플리즘이라고 비난하던 정치권의 공격은 '급식충'이라는 비속어를 만들어냈고 저소득층의 아이들을 더욱 움츠려들게 했다.

'이웃'에 대한 혐오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혐오라면 단연 '여성혐오'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로 사람 자체가 상품이 되어 버린 현재 여성 연예인, 또는 일반 여성의 몸매를 평가하고 폄하하는 미디어들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요를 누른다. 그 기준 몸매에 맞지 않는 여성들은 자기 관리 부족으로 게으름의 표상으로 취급한다. 왜 그럴까? 저자는 여성을 물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한 인격은 이유불문하고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여성을 물건을 평가하듯 똑같이 평가한다.


여자에게만 '여배우'라고 칭하고 '여류 작가'라고 칭하는 현상 또한 '남성'을 기본값으로 보는 이 사회의 혐오를 드러낸다. 작가라면 당연히 여자와 남자를 포함하지만 이 사회는 여성은 별도의 의미로 정의한다.

내가 혐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했을 때는 바로 예멘 난민 입국시였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난민 입국에 부정적이였다. 저자는 이 예멘 난민에 대해 한국 정부의 무기력한 방치 그리고 한국인들의 거부 반응을 보여 주며 한국인의 난민 혐오의 현실을 보여준다. 500명의 난민 중에 단 2명만이 난민 인정을 받고 3D 업종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그들을 혐오하는 이유를 저자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가 제주도라는 특수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제주도'라는 이유가 컸다. '효리네 민박'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행을 꿈꾼다. 시간과 자본이 넉넉한 연예인들의 경우 제주도로 내려가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그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의 여유로운 생활을 꿈꾼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요원한 소원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열심히 돈을 모아도 제주도의 삶이 어려운 나인데 난민들이 이 제주도에서 산다고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이 그들을 환영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제주도 삶을 그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느끼는 거부감은 바로 나 역시 나보다 못한 상황에 있는 그들이 제주도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 안에 숨겨져 있던 혐오였다. 저자는 혐오의 원인을 무제한 경쟁사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로 부가 대물림되며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끊겨진 지금, 그 열등감이 혐오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가 그들을 거부했던 원인을 정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가끔씩 회사 상사들과 이야기하거나 어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의 일에 쉽게 생각하는 그분들의 마음을 느끼곤 한다. "우리 때도 그랬어." "우리 때는 더 힘들었어." 단편적으로 보이는 삶만을 보고 쉽게 말하곤 한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는 그 단편을 넘어 맥락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서사를 제대로 이해하라고 강조한다. 왜 청소년들이 주부들이 여성들이 난민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지 그들에 대한 이해가 먼저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지가 막연한 두려움을 만들고, 막연한 두려움이 혐오의 토양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안다면 그들이 경쟁 대상이 아닌 하나의 이웃이며 함께 나아가야 할 대상임을 알게 된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는 혐오를 멀리 보지 않는다. 바로 우리 안에, 우리의 생활 속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이웃의 시선이 두려워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혐오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있음을 깨닫는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 속에 우리는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점검할 수 있었다. 내 안에 숨겨진 혐오를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 꼭 한 번 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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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 인류의 상처, 여성 폭력
일레인 스토키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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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아동 포르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를 인도 요청했으나 한국 법원에서 이를 거부해 단 18개월만의 형량만을 받고 풀려난 일에 대해 온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연예계 정준영, 최준형의 집단 성폭행 사건, 정치계의 안희정, 박원순 성추행 사건등은 우리 현실의 민낯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살인, 사기 등의 피해자의 후유증도 크지만 젠더 범죄의 경우는 더욱 심한 상처를 남긴다. 사기를 당해도 한 사람의 정체성이 흔들리진 않지만 강간, 성추행 등의 젠더 범죄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혐오, 젠더 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상처에 비해 너무 가벼운 형량만을 받고 풀려나온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은 전세계적으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젠더 폭력의 민낯을 고발한다. 저자인 일레인 스토키는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30년간 정의와 젠더 이슈를 열정적으로 지지해 왔고 기독교 국제 구호 단체인 '티어펀드(Tearfund)dptj 17년간 대표로 일했고 여성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단체 '리스토어드 (Restored)'를 2010년 남편과 함께 창립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을 날아가며 만난 젠더 폭력의 피해 현장과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요청한다.

먼저 저자는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여성 범죄들의 현실을 낱낱이 공개한다. 성 감별 낙태와 여성 살해, 여성 성기 훼손, 아동 강제 결혼, 명예 살인, 가정 폭력, 인신매매와 성매매, 강간, 전쟁과 성폭력 등 특히 여성에게 집중된 이 범죄들, 알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되었던 그 현장을 알게 해 준다.

이 폭력 중 성 감별 낙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지금에서야 아들 선호사상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들만을 낳기를 요구하는 남아선호사상은 최근까지도 한국에서 존재했다. 가문을 잇고 부모를 봉양할 아들과 달리 딸의 경우 출가외인, 살림밑천 등의 수단으로 격하되며 결혼과 동시에 남의 집 사람이라며 딸이 겪는 고통을 나 몰라라 했다.

아들을 낳기 위해 몇 차례나 임신했지만 딸만 줄줄이 낳는 바람에 그만 낳으라는 의미로 '막딸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웃픈 과거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이제 아들선호사상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저자가 만난 인도의 현실은 법이 있음에도 암암리에 성 감별 낙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계 일부와 정치인과 관료의 든든한 관계가 이 불법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곤 했다. 그 결과 남녀 성비가 심각하게 불균등해지며 결혼 할 여자를 구하기 위한 제2의 폭력이 발생하는 악순환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일명 여성 할례라고 일컬어지는 여성 성기 훼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아프리카 거주의 경우에 한 해서만이였다. 저자 일레인 스토키는 이민의 자유와 더불어 이제 아프리카, 아시아를 넘어 영국, 프랑스 등 유럽으로 건너 온 이주민들이 암암리에 행하는 성기 훼손 시술에 대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소변이 나올 구멍만을 남겨놓고 덮어 버리는 이 시술이 생명에 위협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저자는 이보다 더한 외로움, 수치심의 문제를 말한다. 다른 문화권으로 건너 온 여성들이 보건 의료진 앞에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성기를 내보이며 그들의 시선을 감당해야만 하는 이 수치심은 익히 알고 있던 나 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 여성 할례의 원인이 바로 여성 몸의 소유권이 여성 본인에게 아닌 남성들에게 있으며 처녀성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의 전통 사회는 남성의 정절은 별로 요구하지 않으면서

여성의 처녀성은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여자아이의 순결을 강요하고 규제하는 것은

신랑을 제대로 존중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여성의 순결성을 위해서 성욕을 감소시키고 처녀성을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강제로 행하는 이 음부 봉합술은 비록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지만 이 일이 일어나는 근원에 대해 한국 또한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성생활이 자유롭지만 한국 또한 성교육이 여성들의 몸조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 번 훼손되면 복구되지 않는 처녀막을 강조하며 절대 순결할 것을 강조했던 한국 사회였다. 이 가르침 속에 강간, 성추행 등으로 당한 여성 피해자들만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성매매와 인신매매는 따로 구분할 수 없다. 인신매매가 일어나는 곳에는 성매매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이는 바늘과 실의 관계로 함께 보는 게 바람직하다. 저자는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과 네덜란드, 강하게 저지하는 스웨덴의 경우를 예로 들어준다. 성매매를 근절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들이 고용 계약서를 쓰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독일의 정책이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현실에 나는 호주를 추가하고 싶다.

호주 또한 성매매가 합법화한 나라이다. 내가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있을 시 한국에서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며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호주로 건너왔다. 그 때 당시 농촌의 부족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워킹홀러들을 대상으로 농장에서 3개월 일한 후 증명 서류를 제출하면 1년을 연장할 수 있었다. 정부의 정책은 농촌 인력 보충이었지만 그 1년 추가 연장을 위한 서류는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돈을 주고 사고 파는 행위로 변질되었다.

성매매 종사자들은 합법이 아닌 불법으로 체류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권리는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저자가 설명한 독일과 네덜란드의 예와 내가 호주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은 성매매 합법화는 결코 그들의 권리에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당당히 일하게 하기보다는 이 성매매가 얼마나 여성을 착취하며 대상화하는 것인지를 알게 하는 노력이 없는 한 이 악순환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명예살인, 성 감별 낙태, 아동 결혼 등의 경우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집중되지만 강간은 전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폭력이다. 한국에서도 하루에 강간 사건이 발생하며 미국, 유럽 등에도 강간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에서 저자는 강간을 대하는 대처 방법이 전세계를 막론하고 모두 대동소이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제기한다. 강간의 가해자인 남성들을 조심시키기 보다 피해자인 여성들에 대한 몸단속을 강조한다.


이는 캐나다의 한 경찰관이 "여성들은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창녀처럼 옷을 입지 말아야 합니다."한 발언은 한국과 다를 바가 없어 더욱 놀랍다. 교회 또한 다르지 않다. 내가 속했던 교회에서는 남성도 문제지만 짧은 치마를 입어서 남성을 자극하지 말라는 식의 가르침을 주었고 항상 일찍 다녀라 넓은 길로 다녀라며 여성만을 단속했다. 하지만 아들에게 몸조심을 시키는 부모나 교역자는 없었다.



이는 남성은 성욕에 약한 인간이라며 그들의 강간 행위를 어쩔 수 없는 행위라며 정당화시켜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시각에 약하니 어쩔 수 없이 여성이 조심하라며 여성에게 짧은 치마 입지 마라 술 취하지 말라며 강조한다.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강간 피해자가 블라인드 인터뷰를 한 장면을 보았다. 자신이 더럽다는 생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해도 힘들다는 그녀를 보며 남자 진행자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딸에게 조심하라고만 하는데 정작 필요한 건 아들 교육입니다.

여러분의 아들에게 조심할 것을 교육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여성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 이 교육이 또 다른 피해자들을 더욱 움츠리게 만드는 행위임을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기술이 발달하고 교육열은 높아져 가지만 왜 젠더 폭력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이 젠더 폭력의 원인을 진화록적 이론에서, 권력과 가부장제 사회 구조에서, 그리고 종교인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에서 원인을 분석해 나간다.

특히 아직까지 가부장제의 그늘이 사회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이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폐해가 종교의 비호 아래 이 사회에서 굳건히 설 수 있었음을 말한다. 특히 이슬람은 물론이고 성경 텍스트 자체로만 이해하는 교역자들로 인해 기독교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젠더 이슈를 저자는 텍스트가 아닌 맥락과 서사로 제대로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여성 신도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남성 목사와 남성 장로가 지배하는 한국 교회, 비록 주님을 섬긴다지만 남성이 지배하는 기독교에서 젠더 이슈를 대하는 태도가 세상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은 놀랍지 않다. 이는 이슬람 페미니스트 아미나 와두드가 '여성의 참여가 없으면 샤리아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이다라고' 주장한 부분과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젠더 폭력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법의 이행과 정치권의 의지 그리고 문화적 태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성을 대하는 사건에 여성을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현실이다. 남성 기득권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을 대하는 법률만큼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최근 있었던 낙태 합법화가 그토록 논란이 되었던 이유도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현실과 의사는 무시되고 일부 남성 기득권에 의해 강제로 소유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 또한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사회에 알리고 여성이 참여하는 법률과 함께 병행되어야 이 젠더 폭력으로부터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에서 저자는 변화가 느린 현실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지만 이 제목 그대로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느리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멈추지 않는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비록 더디지만 씨앗은 열매를 맺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연대와 노력이 함께 한다면 이 열매가 활짝 만개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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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0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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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건 '삶'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있는 한 끝까지 견뎌내야 하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지만 죽지 못해 꾸역꾸역 살아가는 인생. 살아가는 동안 인생은 점점 차가워진다. 뜨거웠던 혈기가 점차 식어가고 마지막 싸늘한 시신이 되기까지 우리는 차가워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인생의 차가운 면들을 가장 깊게 들여다보는 소설가라면 나는 감히 2018년 작고한 故 정미경 작가를 말하고 싶다. 담담한 듯 그리면서도 인생의 어두운 면까지 어떤 감정의 개입없이 그 사실 날 것 그대로의 면을 보여주는 정미경 작가야말로 우리에게 인생의 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제는 더 이상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없지만 그야말로 작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소설집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 총서'로 재단장해 출간되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표제작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비롯해 <호텔 유로, 1203>, <성스러운 봄>, <비소 여인>, <나릿빛 사진의 추억>,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등 여섯 편의 단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남편이자 소설가인 김주현 작가의 사망 후 딸과 함께 살아가는 유선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남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남편을 잃고 난 후 계속되는 유선에 초점을 맞춘다. 도서관 사서와 과외로 살아가는 유선에게 한 출판사 대표가 알려지지 않은 남편의 유작을 출간하고 싶다며 제의한다.

마지못해 남편의 컴퓨터를 살펴보던 유선은 남편이 일기 형식으로 쓴 문서를 발견한다.


나의 어디가 좋아?

모르겠어.

말해 줘.

모든 게 좋아. 너의 모든 것.

그렇게 많이?


남편의 죽음의 원인조차 알 수 없었던 유선이었기에 다른 여자와의 대화가 담긴 이 글은 유선의 영혼을 좀먹는다.

알 수 없는 원인의 가려움이 그녀를 잠식하며 이 글을 생각할수록 가려움의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최근 스트레스를 심하게 겪은 일이 있냐는 의사의 반응에 유선은 강하고 단호하게 그런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소설은 유선이 결국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남편의 글에 잠식된 듯하다. 그 잠식된 듯한 삶에서도 유선은 과외를 이뤄나가고 자신과 함께 홀로 남겨진 딸을 챙기고 사서와 과외 일을 해 나간다. 미칠 것 같은 마음과 반대로 그녀의 표면은 언제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작가의 서늘함이 가장 강하게 발현되는 때는 유선이 출판사 대표에게 전화해 남편이 남겨 놓은 어떤 글도 없다고 통화하는 마지막에서이다.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그 글을 없던 것으로 정의하고 죽은 남편을 향해 사람들에게 당신은 끝까지 나의 연인으로 남아있으라는 그녀의 말은 이 모든 걸 감당하고 살아가겠다는 그녀의 다짐으로 들린다.


당신은 내 속에서, 언제까지나, 마지막 보여 주었던 그 모습처럼,

나의 피투성이 연인으로 남아 있어야 해.

지나고 보니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어떤 일도 견뎌 내는 게 인간이더라.


여섯 편의 단편 중 인생의 고통에 대해 가장 서늘한 작품은 <성스러운 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불치병에 걸린 딸의 병원비로 두 개의 보험설계사 일을 하며 동분서주하는 나는 대학교 시절 교양수업을 들었던 은사의 차 사고에 대한 보험금 청구 처리를 하기 위해 연구실을 방문한다.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는 교수와 피해자의 실수로 몰아가며 지급하지 않으려고 교수를 극한의 상황에 몰아치는 이 상황은 주인공이 딸의 병원비를 추궁하는 의사의 무미건조함과 어떻게든 딸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빚을 지며 살아가다 결국 딸의 병원비를 포기하며 죽음에 내몰리게 된 딸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자신이 보험설계사로서 대학 은사를 궁지로 몰아가고 은사의 숨겨진 비밀을 들춰내며 고통으로 내몰릴수록 주인공 나가 애써 묻어두고 있던 자신의 고통 또한 선명해진다. 애써 고통을 감당해냈지만 남는 건 아이를 포기했다는 아내의 냉소와 침묵 그리고 생활고 속에 고통을 느낄 수조차 없었던 나의 고통을 통해 인생의 잔인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치부를 들켜버린 은사, 돈 때문에 아이의 치료를 중단한 나, 고통의 무게는 다르지만 끝까지 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라는 사실이 끝내 주인공을 울게 한다.


희망은 있는 겁니까?

이건, 질문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저희도 보호자에게 물어보아야 하지만,

이게 질문이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질문이란,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어딘가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걸 말하겠지요.

이럴 땐 의사나 보호자나 질문이 아닐 딜레마에 부딪치는 거죠.

끝내 답을 찾을 수 없는.


인생에서 질문조차 될 수 없는 고통. 어떤 답도 있을 수 없다는 게 고통이 주는 극한점이 아닐까.

그 정답 없는 삶 속에서 매번 극단의 선택을 해야 하며 감당해야 하는 인생. 고통을 감당해냈건만 끝내 돌아온 건 또 다른 고통 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삶이 완벽하다는 걸 가장 늦게 깨달았을 때는 생명을 포기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딸의 카테터를 뽑아 버린 순간 깨닫게 되는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 인생은 끝까지 고통을 안겨준다.


이 단편집에서의 인물들은 모두 힘든 상황을 살아간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뒤로 하고 자신에게 명품백을 사주기 위해 호텔로 향하는 나, 삶에 대한 적의와 냉소로 가득찬 연인 윤이 주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비소 연인, 떠들썩하고 인정 많은 동네이지만 끝내 치정살인으로 귀결되고 부유한 연인 윤조를 포기하지 못하는 나 등등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가 이 소설에서 그려진다. 놀랍다면 이들에게 동정이라기보다는 삶이란 이런 것이다라며 담담하게 말하는 저자의 내러티브가 이야기 속에 스며드는 듯하다.


고통을 마주하고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는 삶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소설 속에 나의 모습을 투시해본다. 나의 고통과 내 삶의 무게를 대조해본다. 동네 뒷골목의 사람들을 향한 그대로의 모습을 찍으며 행복해하던 승우가 끝내 포기하고 인생의 화려한 모습 결혼식의 사진사로 남기로 했다는 승우의 결심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행복했던 때를 복기하며 그 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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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 직장을 넘어 인생에서 성공하기로 결심한 당신에게
김호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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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친구 자녀들에 비해 어린 아이들을 보며 항상 마음 속으로 질문하곤 한다. "과연 내가 언제까지 일 할 수 있을까?" 법정 정년이 60이라고 하지만 평생 직장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기대할 수 없는 없음을 알고 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시대, 항상 치고 올라오는 동료들과 AI의 현실화 속에 이제 나만의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는 나와 같은 걱정을 마음 속에 품는 직장인들을 위한 책이다. 직장을 나오는 순간 회사의 직책으로 정체성을 찾곤 했던 수많은 직장인들을 위해 퇴직 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성공학 개론이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의 저자 김호 더랩 에이치 대표는 글로벌 제약회사를 거쳐 독립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사 한국 대표를 역임한 후 더랩에이치를 설립해 리더십 조직문화 코칭 및 워크샵 퍼실리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직업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과 상담하면서 느낀 제 2의 직업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가상의 인물 호와 보람의 대화로 각 장의 주제를 소개해준다. 홍보회사 과장으로 재직 중인 보람은 은퇴 이후를 두려워하는 일반 직장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며 친구 호는 저자의 역할로 주제에 맞는 질문을 하고 그에 맞는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직장인과 직업인의 차이는 뭘까? 말 그대로 직장인은 한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을 말한다면 직업인은 조직 근무 여부와 관계없이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직장인은 회사를 나오는 순간 정체성과 일이 사라지지만 직업인은 정체성도 일도 사라지지 않는다. 직장인은 분명한 끝이 있고 그 끝은 날마다 가까워 오지만 직업인은 노력하는 한 끝을 유예시킬 수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직업인으로 가야 함을 잘 알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저자 김호 대표는 직업인으로 가는 첫 걸음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함을 강조한다. 직장인들 대부분은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기본 8시간과 야근 또는 출장등 회사일에 매여 하루 이틀 보내다보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정년이 가까워온다. 회사일에 치여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하거나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맞이하는 은퇴 앞에 직장인들은 속수무책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저자는 먼저 직장에 있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며 자신의 욕망을 분명하게 알 것을 제시한다. 단지 회사에서 임원으로 성장하며 더 높은 연봉을 목표로 하지 말고 은퇴 후에도 쓸 수 있는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는 성취형으로 나아갈 때 직업인으로 갈 수 있다.

내가 끝까지 하고 싶은 욕망을 찾기 위해 강제적인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설계해야 함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유용한 도구를 알려주어 읽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저자는 나와 같이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워킹맘들을 위해 김서현 에델만 상무의 예를 들어주며 이는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임을 강조한다.


자기만의 시간과 함께 자신만의 직업을 찾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현 직장과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전혀 다른 분야라 하더라도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음을 예로 들어준다. 회사원이였다가 육아로 그림책을 접한 후 진로를 바꾼 <어른의 그림책> 저자이자 '그림책37도'의 대표인 황유진 대표와 대기업 취업 후 무용 심리학을 접한 후 퇴직한 박유미 대표 또한 좋은 예이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전문성을 찾았다면 그 후 어떻게 관리를 하며 커리어를 쌓을지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해준다. 처음 전문성을 찾기 까지는 온전히 자신에게 투자해야 하므로 남이 아닌 자신을 보는 관점에 충실할 것을 이야기했다면 전문성을 쌓는 과정은 타인이 보는 나를 신경써야 하는 단계로 가야 한다.

가령, 남들에게 내 전문성을 입증할 수 있는 경험과 평판 인맥 관리 방법등에 관한 팁을 제시해 주며 끊임없이 자신의 전문성을 이카이빙 (자료화) 할 것을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 직업인으로 발돋움하며 오래 일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워킹맘이다 보니 사람들은 내게 분발할 것을 예전처럼 기대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타임 푸어로 일과 육아에 시달리는 워킹맘들은 직장에서 버텨나간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이 상황을 저자 또한 자신이 상담한 예를 들어 임원으로 갈수록 여성 임원이 남성 임원에 비해 현저히 적은 현실을 이야기한다. 여성에게 주어지는 교육, 돌봄의 굴레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인지하며 일과 가정을 놓지 않고 이어온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 중 의도적으로 '하루 한 시간과 한 평의 공간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B씨의 인터뷰가 매우 인상깊었다.

"모성애는 의심받을지언정, 나를 지키는 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기를 스스로 다짐 중"이라는 인터뷰를 읽으며 동생이 떠올랐다. 아이 둘의 엄마이자 같은 워킹맘인 동생이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화상 영어 강좌도 너무 피곤해 집중하기 힘들다며 울었던 동생을 보며 엄마가 일에서 성공한다는 게 남들보다 몇 배 이상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 한 권 읽기도 벅찬 워킹맘, 전업주부들에게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 처럼 더욱 노력하여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해야 함을 알면서도 쉽지 않은 현실에 씁쓸해졌다. 비록 힘들지만 끝까지 나아가야 하며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죄책감을 줄이며 협업과 네트워크 관리에 충실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워킹맘들에게는 완벽한 부모, 좋은 며느리와 아내 역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현재 나의 직장을 돌아보았다. 과연 내가 이 곳에서 나의 전문성을 키워 나갈 수 있을 수 있을까?

수입업무와 해외업체와의 코레스 업무만 하는 내가 퇴직 후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대답하지 못했다. 앞으로 내게 남겨 진 시간이 더 없다는 생각에도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조급하다고 저자가 강조하는 첫 단추를 무시할 수 없음을 알게 해 준다. 늦은만큼 나를 위한 시간과 투자를 더욱 많이 해야함을 깨닫는다.

이 책은 사회 신입생보다는 30대 중반의 직장인들이 읽는다면 더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듯하다. 직장 생활에서 커리어와 평생 직업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책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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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 나다움을 찾는 확실한 방법
모종린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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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소확행' 또는 '워라벨' 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신조어가 생겨났다. 예전처럼 조직에 충성하며 정형화된 삶을 살기보다 자신의 여가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물질에 집착하기보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각자의 다양한 생활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재건하다》는 <골목길 자본론>으로 유명한 모종린 교수님이 라이프스타일의 역사를 따라 나다움을 찾아가는 인문서이다.

먼저 이 책에서 라이프스타일을 분류하는 기준은 물질과의 독립성과 추구하는 탈물질주의의 가치이다. 물질을 대하는 태도와 생활방식에 따라 부르주아, 보헤미안, 히피, 보보, 힙스터, 노마드 등 6개 유형으로 분류하여 이 유형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특징 그리고 이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기업들과 도시들까지 설명해준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면서 자신에게 속한 유형이 어떤 유형인지 알게 해 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도와주는 책이다.

가장 역사가 견고하고 물질 안정을 추구하는 유형은 부르주아이다. 차별적 소비, 신분적 편익을 획득하며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부르주아는 전형적인 지금의 기득권자들이다. 어떤 가치보다 물질적 안정을 우선시하는 이 부르주아 계급은 폐쇄된 그들의 문화와 맞게 높은 담장, 그들만의 교육을 지키는 게이티드 커뮤니티 (Gated Community)를 지향한다.

물질 안정에 충실한 부르주아 계급과 유사하지만 탈물질을 추구하는 보보의 라이프스타일을 저자는 강남좌파에 비유해준다. 교육 받은 엘리트 세대인 보보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진보를 이끌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미국의 경우 보보 문화가 형성된 예와 달리 정치권의 386세대의 정치적 보보 외에 라이프 스타일로는 정착되지 않은 한국 보보의 특징은 한국 사회가 미국에 비해 탈물질화가 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재건하다》에는 각 라이프 스타일에 맞춤화된 비즈니스 형태 또한 흥미롭다. 부르주아부터 노마드까지의 기업 형태 중 아마존에 인수된 미국의 홀푸드 마켓과 한국 연희동의 사러가쇼핑센터는 의미심장하다. 전국 체인의 형식을 띤 홀푸드마켓에의 몰락과 지역 상권의 성격을 띤 사러가쇼핑센터는 대기업에 잠식되어 가는 동네 상권에서 진정 살아남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사실이 인상깊었다.

현재까지 굳건한 부르주아들과 이 부르주아에 도전하는 보헤미안, 보보,힙스터 그리고 현재 급부상하는 노마드까지 각 라이프스타일은 보완되기도하며 대체되기도 하였다.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재건하다》를 읽으면서 독자는 과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느 유형에 가장 근접한지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살아갈 것인지 저자가 제안을 곰곰히 되씹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코로나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급변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던 물질주의를 반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저자 또한 이 코로나가 경제와 생활의 흐름을 바꾸었듯이 앞으로의 세대는 부르주아를 대체할 수 있는 탈물질주의를 향한 움직임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그 흐름을 찾는 이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어줄 듯하다. 또한 무조건적인 도시 재개발을 계획하는 정치권들 또한 이 책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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