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트넛 스트리트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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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이야기를 불행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다른 따스함으로 마무리하는작가의 필력이 놀랍다.돌리라는 열 여섯 소녀가 엄마를 바라보는 심리 묘사도 훌륭하지만 돌리와 어머니를 따스하게 맺음짓는 작가의 스토리텔링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훈훈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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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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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권에 이어 실크로드 편으로 돌아왔다. 중국편 1,2권에서 실크로드 동부 구간을 다뤘다면 이번 3권은 중부 구간으로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을 통과하는 구간이어서 이 3권의 여정이야말로 실크로드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3』의 오아시스 도시는 중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나라 누란, 교하고성, 폐허만 남은 고창고성 그리고 제국주의에 의해 침탈되어버린 아픈 역사의 베제클리크석굴의 모습 등등 오아시스도시의 슬픈 숙명이 유홍준 교수님의 설명과 함께 이 책 속에 그려진다.


1,2차 여정으로 답사를 하며 오아시스 도시를 여행한 저자의 일정은 서역 6강에 집중되어 있다. 고창국 (투르판), 언기국(카라샤르) 구자국 (쿠차), 소륵국 (카슈가르), 우전국 (호탄), 선선국 (누란)등을 역사의 순서대로 인천 -> 우루무치 -> 쿠차-> 타클라마칸사막 -> 호탄 -> 카슈가르 -> 파미르고원-> 서안->인천 코스로 1차 답사 후 완성도를 위해 쿠차와 투르판을 2차로 답사한 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3』의 집필을 시작하였다.


중국편 1,2권에 비해 3권의 오아시스 도시에 대한 여정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지금 이 지역들이 신강위구르지역으로 한족이 아닌 소수 민족의 지역으로 불교,이슬람교 등 다종교의 역사의 혼합등 독특한 문화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침입으로 불상을 모신 석굴이 파괴되고 이슬람 사원이 건설되기도 하고 흉노와 중국의 침탈로 인해 수많은 고난을 당해야 했던 그들의 아픈 역사가 있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편>의 돈황문서에서 제국주의 탐험가들의 침탈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 3편에서는 더욱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1893년 스벤 헤딘의 탐험을 시작으로 오렐 스타인, 알베르토 그륀베델, 알베르트 폰 프코크 등이 제국의 후원 아래 중국을 탐험하고 유적을 도굴함으로 얼마 남지 않은 유적은 씁쓸하면서도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에서 소장중인 '오타니 컬렉션' 벽화들 또한 일본 오타니 고즈이의 수집,약탈행위로 인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문화 유적을 주로 답사하는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특징은 박학다식한 교수님의 풍성한 해설도 한 몫하지만 그보다 문화 유산에 있어 절대 어느 한 쪽을 미화하기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문화 유산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에 비해 대체로 화려하고 웅장한 중국의 문화 유산을 소개한 중국편 1,2권에서도 저자는 중국의 문화를 더욱 높게 평가하는 국내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중국의 특징일 뿐 한국의 경우 좁은 지형에 최적화된 한국 고유의 문화 유산이므로 결코 모자르지도 폄하해선 안 된다고 하는 저자의 이론이 3권에서도 돋보인다.


우리도 중국을 바라볼 때

중원을 중심으로 했던 왕조만 생각할 것이 아니며

서역과 막북의 유목민족들을 함부로 '호(胡)라고 부르며

오랑캐로 대할 일이 아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3』에는 여행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간간이 나타나 있다. 저자 또래의 답사객들의 여행 코스 일정을 보며 연령에 따른 달라지는 선호하는 관광지나 문화 유적 답사, 도시 관광 그리고 자연 관광들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점 등등은 여행에 대한 참의미를 일깨워준다.


또한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지인의 설명으로 답사 일행의 이해를 돕고 이 유적들을 하나라도 더 잘 알게 해 주려는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침입과 폐허 속에 사라져간 도시, 결국 폐허로 남겨졌지만 그 남겨진 폐허에서 상상하며 그들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3』은 우리에게 익숙한 현장 법사와 서유기 이야기와 함께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또한 이 답사를 위해 저자가 참고한 일본 NHK 의 다큐멘터리등 설명을 참고하여 독자들이 사라진 오아시스 도시들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의 답사 인생 중 가장 감동적인 여행이라고 자평한 실크로드 답사 이후 중국의 8대 고도 중 하나인 서안과 낙양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워진 지금, 아마 저자의 다음 중국 답사기는 더 긴 시간을 기울여야 할 듯 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3편 』이 앞의 1,2편에 이어지는 본 편이니만큼 다시 1권으로 돌아가서 읽으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저자의 말대로 다시 한 번 읽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1-3편』은 분명 더 풍성한 이해와 더 큰 감동으로 돌아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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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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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김현진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김현진 작가를 페미니즘 테마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을 통해 알았다. 그 때 처음 만나 본 김현진 작가의 글은 내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작품으로 기억되었다. 그 후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의 출간 소식을 들은 이후 망설임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8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에는 <새벽의 방문자들>에 수록된 [누구세요?]도 포함되어 있다. 이 여덟 편의 이야기 속에 저자는 다양한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에서 저자가 그리는 여성들은 평범한 여성들이다. [정아]의 정아는 가난한 남자 친구 건호와 함께 살면서 빠듯한 생활을 해 나가지만 잠깐의 일탈로 다른 남성과 잠자리를 함께 하게 된다. 두 남자 사이에서 임신을 하게 된 정아는 그게 건호의 아이인지 또는 잠깐의 만남으로 생긴 남자의 아이인지 알지 못한다.

[정정은 씨의 경우]의 정정은씨는 교사이다. 오랜 세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남자 친구를 위해 많은 희생을 했지만 사법고시 합격 후 보란듯이 정정은씨를 버리고 돈 많고 어린 여자와 약혼했다. 그 실연의 상처와 주변의 시선에 점차 변해가는 정정은씨의 심리를 그린다. [아웃파이터]에서의 영진은 거래처 직원의 접근으로 데이트를 하며 결혼을 꿈꾸지만 후에 유부남인 줄 알게 되며 권투를 해 나가는 여성을 그리고 [공동생활]에서의 윤정화는 뚱뚱한 외모로 인해 어울리지 못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낸다.

저자가 그려내는 여성들, 정아, 정정은, 영진,윤정화, 지윤 등 그들은 모두 성인들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들은 그녀들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의지대로 다스리려고 한다. 아껴야 한다지만 자신의 생활방식을 정아에게 고집하며 낙태를 권유하는 건호,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애물단지 취급 받는 정은, 영진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며 "나 유부인 것 몰랐어?"라며 합리화하는 그 등등을 보면서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준다.





비록 소설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이다. 특히 정은을 향해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며 스물다섯 넘으면 쓸데가 없다며 말하는 주변의 말들은 지금까지도 여성의 나이를 조롱의 대상으로 그리는 작금의 현실을 보게 된다.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자 나이 30이 되면 계란 한 판이라 놀리고 여자 나이 30이 되면 아무도 받으려고 하지 않는 바람 빠진 공 취급을 받고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니 여성은 빨리 결혼해야만 한다면서 여성을 출산의 대상으로만 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남성의 나이와 튀어 나온 배는 연륜을 말한다고 미화하고 여성은 노화와 자기 관리 미숙으로 받아들이는 이 관념이 폭력이 됨을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는 폭력인 줄 모르고 우스개소리로 웃는 얼굴로 돌을 던진다.

그래서일까. [누구세요]의 지윤이 데이트 통장까지 전남친에게 빼앗긴 상황에서 다른 이웃남자에게 가하는 그녀의 행위가 더욱 공감있게 다가온다. 여성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며 여성의 두려움을 즐기는 바바리맨을 향해 끝까지 쫓아가 같이 관계를 갖자고 소리치는 화정의 모습은 매우 통쾌하다. 전반부의 소설이 남성 사회에 의해 소외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면 후반부에 수록되는 소설들은 역할이 전복되어 남성에게 가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통쾌함과 이제 결코 당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는 것 같아 그녀들을 응원하게 된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의 여성들은 결국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너와 나의 이야기이다. 강남역 여성피해 사건이 모티브인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요]의 수연의 죽음 또한 수연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의 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모든 여성을 가리킨다. 뚱뚱하다고 놀림받으며 살아가던 윤정화도 여성의 외모로 평가받는 모든 여성들이다.

작가는 상처 받은 한국 여자의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감당해 냈다고. 그러니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그 틀을 벗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와 나의 이야기,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여성들의 이야기가 쓰여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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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쾌변 - 생계형 변호사의 서초동 활극 에세이
박준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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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중에서 시청률 불패 드라마를 꼽으라면 의학드라마와 법조계 드라마를 말할 수 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일반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분야이기도 하려니와 생명과 정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학과 법은 우리에게 일종의 환상을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여기 우리의 환상을 와장창 깨뜨려 주는 변호사가 있다. 정의는 커녕 당장 눈 앞의 생계를 위해 의뢰인에게 시달리며 하루 하루를 버텨가는 생계형 변호사 박준형씨다. 카카오 브런치에 자신의 고달픈 좌충우돌 변호사 생활을 연재해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인 《오늘도 쾌변》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변호사 생활을 이야기한다.


《오늘도 쾌변》의 저자 박준형씨는 변호사 9년 차이다. 법에 문외한인 우리의 입장에서 변호사는 멋져 보이지만 박준형씨는 이 책에서 변호사가 일반 직장인과 달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버텨가는 변호사의 일상을 소개한다. 텔레비젼에서 보여지는 멋진 드라마의 이미지에 의뢰인이 많은 기대를 안고 변호사를 찾아오지만 실상과 다른 변호사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며 의뢰인으로부터 성공 보수를 받지 못해 끙끙대는 그의 고군분투가 펼쳐진다.

선과 악, 빌런과 히어로, 정의와 불의 등 법을 등을 따지기보다 자신에게 당장 월급을 줄 수 있는 의뢰인의 편을 들어주고 승소를 위해 전전긍긍하는 현실은 때론 회사에서 따르기 싫은 명령일지라도 꾹 참고 감내하는 일반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저자의 유머와 자조 섞인 말 속에서 동병상련을 느끼게 된다.



의뢰인의 편인 변호사에게마저 거짓말을 일삼기도 하고 약속한 보수를 받는 것조차도 끙끙 대는 저자의 일상은 우리가 흔히 보는 의뢰인에게 군림하는 모습이 아닌 때론 의로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역할이기도 하고 때론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의뢰인의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해 완곡한 표현을 쓰며 눈치를 보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직장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변호사가 이렇게 솔직히 자신의 이야기를 써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 글은 웃프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Ⅰ부에서 의뢰인과의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그려지고 Ⅱ부에서는 저자의 생계형 변호사란 이런 것이다라고 작정한 저자의 현타 (현실 자각 타임) 가 그려진다. 전혀 화려하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는 변호사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령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재판 법정의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변호사의 발언에 "존경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받아치는 판사의 모습, 단 10분만에 종결되어 버리는 허무한 재판, 때때로 다른 변호사의 복대리인으로 재판에 참석해서 망신을 당하기도 하는 일상에 때려치울까 결심도 하지만 대출원리금을 알리는 은행 문자에 다시 또 하루를 버텨가는 그의 모습 속에 남들에게 말 못하는 자신의 일상을 독자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저자의 하소연이 들리는 듯 하다.



작가는 브런치에서 자신의 글을 연재하게 된 계기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 뭔가 소소하게 재밌는 일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의뢰인에게 치이고 법정에서 치이고 아둥바둥 살아가는 생계형 변호사로서 다른 생계형 직장인들에게 다른 누구도 이렇게 치이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동병상련'이 되어 주고 싶다고 썼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그래도 변호사가 회사원보다는 낫지 않겠냐며 볼멘 소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출금을 갚기 위해 오늘도 사표를 가슴 속에 꺼내지 못하고 의뢰를 한 건이라도 더 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저자의 글 속에 변호사도 어쩔 수 없구나, 모두 사는 건 똑같구나라는 감정에 살며시 위안이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론문을 작성하며 맞춤법을 검사하는 변호사답게 유머러스한 작가의 필력이 매우 놀랍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를 알 수 있을만큼 생계형 변호사의 일상을 담담하면서도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재미있게 그려냈다. 좁은 세계이니만큼 미처 못 한 이야기도 많다고 한 저자의 경험담이 모두 펼쳐진다면 그건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가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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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말을 쏘았다
호레이스 맥코이 지음, 송예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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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저자 호레이스 맥코이가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마라톤 댄스 대회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이다. 영화화 되기도 했던 이 소설은 화려하해상 유원지의 무도회장에서 열리는 10,000 달러의 상금이 주어지는 마라톤 댄스 대회가 주 배경이다.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로버트가 법정에서 글로리아를 총으로 쏘았을 때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선처를 부탁하는 그에게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부분과 함께 그들이 처음 만남부터 마지막까지의 기억이 펼쳐진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로버트는 유명한 폰 스턴버그 감독의 영화에 엑스트라로 자리를 얻기 위해 스튜디오로 가지만

거절당한다. 그 곳에서 영화배우 지망생인 글로리아를 만나게 되고 글로리아는 로버트에게 우승 상금 10,000달러가 주어지는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하자고 제안한다.


마라톤 댄스 대회. 144쌍의 남녀가 대회에 참가하고1시간 50분 동안 춤추고 10분 동안만 쉴 수 있는 대회로 이 10분 이외에 잠시라도 몸을 쉬면 탈락하는 대회이다. 참가 첫 주는 계속 춤을 춰야 하고 그 후부터는 잠시라도 몸을 쉬어서는 안 된다. 이 대회의 스폰서는 많은 관람객을 모으기 위해 참가자들에게 돌발 경기로 관객의 흥미를 끌기도 하는 등 이 대회를 홍보하기에 전념한다. 인기 있는 참가자들은 스폰서의 후원 아래 제품을 받기도 하고 이 대회에 찾아오는 영화감독 및 유명인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이 쉴 새 없는 마라톤 대회에서 로버트와 글로리아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그려진다.


《그들은 말을 쏘았다》에서 다른 인물들에 비해 눈에 띄는 인물은 여주인공인 글로리아이다. 그녀가 예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다. 로버트가 매번 글로리아에게 지적하는 그녀의 비관주의가 그녀를 돋보이게 한다.

매번 죽음을 사모하지만 무서워서 죽음을 택하지 못하는 글로리아는 말 끝마다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불평한다.

"사는 게 지긋지긋한데 죽기는 무섭고..."라며 푸념하는 그녀에게 로버트는 질색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어려서부터 친척의 학대와 가난에 찌들려 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어떤 희망이라곤 조금도 없이 불행에 중독된 듯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푸념들 중 놀라운 건 바로 현재 우리 삶 속에서 많이 듣고 있는 불만들이라는 점이다.


"키울 돈도 없으면서 뭐하러 애를 낳아요?"

"말이 돼요? 저 여자 나이면 집구석에서 손주 기저귀나 갈고 있어야죠. 세상에, 저렇게까지 오래 살까 봐 무섭네요."

"가면 갈수록 죽고 싶은 생각 뿐이에요."


글로리아의 냉소적인 말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건 지금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맘충이라는 단어를 거리낌업이 쓰고 어르신들을 비하하며 무의미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글로리아의 모습이 결코 다르지 않다.

1930년, 미국 대공황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2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놀라울만치 흡사하다.


이는 글로리아 뿐만이 아니다. 이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또한 우승 하나만을 향해 달려나간다. 파트너와 함께 춤을 추고 있지만 그들은 동료라기보다 자기에게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대회의 흥행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고 주최측의 돌발 경기에 응하는 그들은 관람객들의 이목 속에 자신들을 소진해 나간다. 돈과 흥행을 위해서라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은 참가자들과 대회 주관자들의 모습은 최근 우리 사회에 논란이 일고 있는 리얼리티쇼의 악마의 편집을 떠올리게 한다. 쇼를 위해서라면 개연성 따위는 없이 더 자극적인 이슈를 만들어내는 현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글로리아가 더없이 냉소적이 되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마라톤 댄스 대회는 냉소와 이기심이 날뛰는 사회의 축소판이였다. 로버트와 글로리아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이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었고 이 소설이 결국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음을 저자는 매우 설득력있게보여준다. 그러하기에. 때로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를 보기도 할 만큼 극단적인 비관론에 젖어 있는 글로리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두껍지 않은 소설이지만 매우 빠르게 읽힌다. 이 소설은 현재 우리의 모습이 과연 그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묻는다. 그 질문 앞에 현재의 나의 모습을 비춰 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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