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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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문근영이 출연했던 <바람의 화원>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여성의 신분으로 화원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남장을 하여 화원에 들어가 활약했던 드라마였다. 남장을 한 여주인공과 그 여주인공을 돕는 남주인공의 역할을 보며 매혹적으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여자라서 자신의 재능을 펼 수 없었던 이야기는 단지 조선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동양보다 더 빨리 여성들의 인권이 진보한 서양 역시 여성들에게는 화가의 꿈은 그들에게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싸우며 자신의 길을 개척한 여성 화가들은 늘 존재해왔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의 저자 김선지씨는 주로 미술사에서 이름이 누락된 여성미술가들과 그들 앞에 놓인 편견과 차별을 꼬집은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을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해 2019년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 연재물이 바로 이 책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으로 출간되었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은 3부로 이어진다. 1부에서는 억압적인 가부장제에서 자신의 역할을 펴낸 여성화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교육의 길이 제한되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15-16세기 화가를 아버지로 두거나 또는 부유한 부모 밑에서만 여성들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설사 배운다 하더라도 인체 데생 교육은 제외되었고 역사화, 종교화 등의 그림은 넘볼 수 없었다.

1부는 주로 아버지에 의해 궁중화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좌절된 마리에타 로부스티, 딸의 그림을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여긴 아버지에 의해 고통받은 엘리자베타 시라니, 남성화가와의 친분이 없이는 자신의 그림을 전시할 기회도 없거나 또는 친분이 있으면 스캔들로 매도해 버리는 당시 시대의 풍습들을 보여준다.

결혼 전에는 활발한 미술 활동을 하였지만 결혼 후에는 미술사에서 홀연히 이름이 사라져 버리는 여성 화가들의 한계와 제약이 주로 그려진다. 이 상황 속에서도 인정 받기 위해 끝까지 싸웠던 베르트 모리조의 발언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나는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그들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2부에서는 편견과 억압을 뚫고 운명을 만들어나간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등 9명의 화가들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화가는 바로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자신의 의지로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룬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이다. 열입곱 살에 스승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 법정 재판까지 회부되었던 젠틸레스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문에 시달려야 했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일들은 젠틸레스키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른 화가들이 주로 완곡하고 관능적인 여성 묘사를 한 데 비해 강하고 담대하게 표현한 작품들은 그녀의 경험이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하게 한다.




책 속에 묘사된 수많은 화가들은 자신들의 업적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때로는 남편의 작품으로 세상에 평가되었다. 아버지, 남편 등 남자의 이름으로 높게 평가되었던 작품들이 훗날 여성 화가의 작품으로 판매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어느 새 평단은 동일한 작품임에도 기존과 상반된 평가로 바꿔 작품을 끌어내린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에 수록된 여성 화가들은 부유한 부모가 있거나 화가를 둔 아버지의 교육이 있었기에 화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교육이 단절되고 외모와 교양이 함께 있어야만 가치를 인정받았던 그 때에도 조각상을 보며 독학으로 인체를 공부하거나 집 바깥의 곤충들을 관찰하며 그림으로 그리는 등 좌절하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설명해간다. 우리에게 익숙한 남성 화가들의 이름으로 독식하는 미술사이지만 분명 그 긴 세월동안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활동을 펼쳐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팀 버튼의 영화 중 <빅 아이즈> 라는 영화가 있다. 실화인 여성 화가 마가렛 킨과 남편 월터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보수적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내 마가렛 킨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도용하여 판매를 하며 명성을 쌓는다. 남편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던 마가렛 킨은 후에 자신이 원작자임을 밝히고 남편인 월터와 긴 저작권 공방을 벌이게 되는 실화이다. 현재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보수적인 시대에서는 흔하게 벌어지던 일이였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음지에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젠틀리스키는 성폭력과 자신을 둘러싼 추문과 싸웠고 수잔 발라동은 여성의 몸을 성적 매력으로만 제한시켰던 미술계에서 과감하게 있는 그대로 그려내며 남자들의 시선에 자신의 작품을 투영시키기를 거부하였다. 그렇게 여성화가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묵묵히 작품 활동을 해 나갔다.

책을 읽으며 과연 이 시대는 15-16세기의 사회에 비해 개선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쉽게도 현실에서 아직도 미투 운동은 진행중이고 성폭행의 주범들은 가벼운 형량만 받고 사회로 복귀한다. 이 반복되는 움직임에 분노가 때론 좌절이 표출된다. 하지만 기억하자. 지금보다 더한 차별 속에서도 여성들은 꿋꿋하게 자신의 일과 이름을 지켜나갔다. 그림 속에 몰래 자신의 얼굴을 투영시켜 자신의 작품임을 밝히고 자신의 그리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거부하기도 하면서 싸워 나갔다. 그렇게 미술사에서 포기하지 않고 싸워 온 여성들에 의해 여성 화가의 명맥은 이어져나갔다.

비록 사회가 더디게 변화할지라도 끝까지 싸워 온 그녀들처럼 우리도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걸 이 책에 수록된 여성들은 말해준다. 끝까지 싸워나갈 때 우리는 그들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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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 전문화된 세상에서 늦깎이 제너럴리스트가 성공하는 이유
데이비드 엡스타인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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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한 우물을 깊게 파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듣곤 했다. 한 분야에서 자신의 업적을 성취한 전문가들을 부러워하며 너무 늦었다는 후회감이 매번 나를 뒤덮곤 했다. 주변에서는 이 나이에 너무 늦었다고 말했고 나 또한 뭔가를 하기 틀렸다고 생각했다.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모든 게 불안정한 지금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 만난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이라는 책 제목은 의아함과 동시에 호기심을 일으켰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의 저자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자신이 바로 늦깎이라고 말한다. 논픽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지금 언론과 창작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는 환경 과학과 천문학을 전공했고 환경 과학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전문가이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주장한 대로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진로를 바꾸어 현재 이 자리에 이른 늦깎이이다. 자신이 경험하고 책을 저술하기 위해 취재한 수많은 늦깎이들을 만나면서 그는 자신의 이론을 확신하고 독자들에게 인공지능으로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은 전문가보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의 역할이 월등히 중요함을 이 책에서 설명한다.

아무리 스포츠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와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명실 공히 최고의 선수이다. 하지만 이들이 스포츠를 배워 온 과정은 전혀 다르다. 타이거 우즈는 어려서부터 타이거 우즈의 천재성을 알아본 아버지의 계획 하에 골프를 배워 왔다. 두 살부터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고 10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하는 등 천재의 두각을 나타내었고 조기 전문화의 전형적인 상징이 되었다.

반면 테니스의 강자 로저 페더러는 테니스만이 목적이 아닌 다양한 활동에 주력했다. 노는 것을 좋아했고 그의 부모 또한 테니스가 아닌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접해 보도록 격려했다. 로저 페더러의 어머니가 운동 코치임에도 그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려다 포기했을 정도로 그는 처음부터 테니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저자는 이 두 선수들의 교육 과정을 조기 전문화와 늦깎이 전문화로 칭하고 이 두 타입을 비교하면서 과연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 인재인가를 이 책에서 설명해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아이의 재능을 빨리 발견하고 키워주라는 말을 한다. 재능을 발견하면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갈고 닦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조기 유학을 가고 영재 프로그램에 보내며 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저자는 조기 전문화로 타이거 우즈를 예로 들었지만 한국에서는 김연아 선수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가장 놓치고 있는 부분을 주목한다 바로 조기 교육, 전문화가 필요한 부분과 여러 경험이 필요한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전문화가 필요한 부분을 골프나 음악과 같은 변수가 적고 규칙이 명확한 분야, 즉 친절한 분야의 경우 협소한 전문화가 승부를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골프, 체스와 같은 패턴을 학습하는 분야는 수많은 연습과 노력으로 성취가 가능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세계는 규칙이 아닌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강조한다. 특히 인간보다 학습효과가 월등히 뛰어난 인공지능에 맞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문화가 아닌 다른 역할이 요구됨을 강조한다. 저자는 지식을 단시간에 습득하는 인공지능과 맞서기 보다 폭넓게 종합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의 강점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은 바로 이 폭넓게 종합하는 능력이 한 우물을 파는 전문가보다 여러 가지를 접하고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며 여러 장에 걸쳐 저자가 만나거나 조사한 여러 인물들의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준다. 명화 <별이 빛나는 밤에>의 화가로 유명한 반 고흐, 닌텐도 위의 개발자인 요코이,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 걸스카우트 CEO 였던 프랜시스 헤셀바인 등등 그 외 수많은 실제 인물들의 사례 속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념에 과감히 반기를 든다.

저자는 이 사회가 결코 친절하지 않은 사악한 시대라고 말한다. 이 사회는 극도록 복잡해졌으며 한 가지 전문화된 지식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가 융합된 사회라고 말한다. 전문화의 늪에 빠져 내부에서만 해답을 찾는 우를 피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답을 구하는 이노센티브의 사례 또한 다양한 폭과 경험을 한 사람일수록 유추의 폭이 넓어지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생활고를 면하기 위해 쓴 동화가 베스트셀러가 된 J.K. 롤링 또한 늦깎이였으며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늦깎이 천재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창작자 또는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 또한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거나 늦게 시작한 경우를 이 책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며 회사 상무님이 내게 해 주신 조언이 떠올랐다. 해외 손님과 미팅 후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상무님은 자신의 옛 회사 동료 이야기를 말씀하셨다. 영어를 잘 하는 그 동료가 책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언어의 폭이 상당히 넓어지고 누구를 만나도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대화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하셨다. 책으로만 배운 언어에만 집착해서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약한 내게 언어란 언어 그 자체만이 아닌 폭 넓은 지식이 함께 어우러져야 함을 강조하셨던 상무님의 말씀과 다양한 경험으로 자신의 레인지를 넓힐 걸 강조한 저자의 글은 맥락을 같이 했다. 그리고 내게 무엇이 부족한 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여섯 살인 쌍둥이 아이들의 꿈은 한 명은 요리사이고 다른 한 명은 화가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내 바램이기도 한 의사가 되지 않을래 떠보면 아이들은 내게 대답한다. "엄마, 난 다 해 보려구요. 그림도 그리고 글자도 공부하고 다 해 볼 거예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걸 할 거예요." 내가 늦게 깨달은 정답을 여섯 살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하루가 다르게 인간의 생활영역을 위협하고 있다. 이 시대에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는 없다고 말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는 이 불확실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의 강점을 어떻게 키워나갈 수 있는지 알려주어 인공지능 시대에 자녀 교육을 고민하는 부모에게도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며 나와 같이 늦었다고 고민하는 독자들에게도 아직 늦지 않았으므로 끝까지 자신의 경험을 더욱 쌓아나가길 권유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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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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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 과연 나에게 맞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결혼을 한 후, 남편과 다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과연 우리는 서로 맞는 걸까? 내 선택이 잘못되었던 걸까? 자문하곤 했다. 상대방에게 일편단심일 순 없다. 어른들은 결혼 후에는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산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지켜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헤어짐을 택한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나만의 DNA와 일치하는 나의 짝을 맞는다면 과연 그 관계는 영원할 수 있을까?

소설 《더 원》은 자신의 DNA 정보를 제공하면 컴퓨터가 그 DNA 정보에 적합한 상대방의 DNA를 찾아 짝을 매칭해 주는 서비스로 만난 다섯 명의 이야기이다.

소설에는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두 아이를 유산한 아픔과 함께 자신 몰래 DNA 정보를 등록하고 그 짝을 찾아 떠나버린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맨디, 데이트어플에서 알게 된 여자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마 크리스토퍼,

결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커플 닉과 샐리,

먼 지구 반대편인 DNA 매칭 연인인 케빈을 두고 매일 장거리통화로만 사랑을 키워가는 제이드,

'DNA 매칭' 서비스의 창립자이자 과학자인 엘리가 그들이다. 소설은 이들의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전개되어간다,

맨디는 DNA 매칭으로 연하의 리처드라는 상대방을 알게 된다. 페이스북을 탐색하며 그와의 만남을 상상하며 희망을 꿈꾸지만 리처드가 뺑소니 사고로 죽게 되며 만나기도 전에 추도식에 참석하게 되는 불운을 겪는다. 맨디는 추도식에서 처음으로 리처드의 누나와 어머니를 마주하게 되고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병원에 보관 중인 리처드의 정자로 임신할 것을 권유받는다.

여자들만 죽이는 연쇄살인마 크리스토퍼는 매번 살인 후 사진을 찍어 시체 위에 사진을 올려 두고 훌훌 떠나는 화제의 살인범이다. 그 또한 호기심에 시작한 DNA 매칭으로 에이미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기 소개를 하는 중 에이미는 경찰임을 알게 되고 경찰과 사랑에 빠지는 연쇄살인마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범죄행각을 벌인다.

결혼을 약속한 닉과 샐리는 DNA 매칭 서비스로 만난 연인은 아니지만 주변의 강권에 정보를 입력하게 된다. 샐리는 아직 적합한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닉은 동성인 알렉스와 매칭이 되면서 이 커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DNA 서비스로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엘리, 하지만 항상 외롭고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엘리는 자신의 상대방인 팀을 만나게 된다. 자신에게 목적을 갖고 접근해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친 엘리는 팀을 경계하지만 순수한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순탄했던 연애는 DNA로 인하여 큰 변환점을 갖는다. 과학적 근거에 맞춰 사랑에 빠질 거라고 확신하며 자신의 DNA로 찾았으니 이 매칭으로 만나는 상대방이 자신의 완벽한 짝일 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결혼 생활 중에도 확신이 없을 때 이 매칭 서비스로 또 다른 짝을 찾아 떠나버림으로 부부들의 이혼율이 증가한다. 하지만 모두 올바른 짝을 찾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더 원》의 커플 또한 처음부터 사랑에 빠지는 맨디와 크리스토퍼가 있고 조금씩 사랑에 빠지는 엘리와 같은 커플도 있다.

과연 사랑이 DNA 정보로 완벽할 수 있는가? 소설은 과연 사랑을 선택할 자유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소설 초반은 DNA 법칙에 의해 사랑을 하게 되며 이 서비스를 확신하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조금씩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과연 인간의 순수한 마음이 아닌 이 서비스에 의존하여 선택하는 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부작용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과거 담배회사 소송에서 원고측에서는 폐암 등 각종 질병을 만들게 한 원인인 담배회사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소송이 있었다. 그 소송에서 회사는 비록 담배가 원인을 제공하나 흡연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졌으므로 회사는 책임이 없다고 강변한다. 소설 《더 원》은 바로 이 소송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 매칭 서비스로 가정이 깨지고 상처 받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과연 이 책임은 'DNA 매칭' 서비스의 책임인가 아니면 이 서비스를 신청하고 행동한 사람들의 책임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걸까? 서비스일까? 인간일까?

이 질문에 'DNA 매칭' 서비스의 창립자인 엘리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버튼을 누르고, 세상이 다시 실수를 저지르게 하세요."

이 엘리의 말 속에 인간의 욕심이 결국 이런 서비스를 창조하게 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인간의 숨겨져 있는 불안, 욕구 등을 반영하여 사람들은 이러한 서비스에 응답해왔다. 서비스 또한 잘못이지만 인간들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살인마인 크리스토퍼와 경찰인 에이미와의 매칭은 압권이다. 크리스토퍼가 경찰인 애인을 두고 살인 행각을 벌이며 목표치인 30명의 살인을 채워나가는 그의 행위는 매우 담대하다 못해 무모하기까지한다. 떄로는 옆에 범인을 두고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경찰 에이미의 행동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가장 큰 반전을 안겨주는 커플이기도 하다.

다섯 커플이 DNA 매칭을 두고 벌어지는 그들의 연애 이야기는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 다섯 커플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지금 나의 배우자,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이 사람이 맞을까? 하지만 선택은 분명 자신에게 있다. 분명한 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후회가 없을 순 없다. DNA 매칭 서비스를 만나도, 아니면 순수한 인간의 감정만 믿고 선택해도 완벽한 관계는 있을 수 없다. 다만 걱정하기보다 지금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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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 폭력의 시대를 넘는 페미니즘의 응답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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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이제 낯선 용어가 아니다. 시중에는 많은 페미니즘 서적이 출간되어 있고 많은 유명 인사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반발하는 거리감도 있다. 이 상승세와 다르게 세상은 텔레그램 n번방, 유명연예인들의 성추문, 성폭행 기사가 난무하다. 미투운동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저자 권김현영은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는 그 고민과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을 담은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에서는 현재 가장 큰 이슈라고 할 수 있는 성범죄에 대하여 이 범죄의 역사를 추적해간다. 텔레그램 N번방 이전에도 보이지 않는 여성 성범죄는 은연중에 널리 유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터넷 역사와 디지털 성범죄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 주목한다.

흥미로운 건 이 성범죄에 대해 주로 단속을 당하는 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위주라는 점이다. 저자가 예를 들자면 n번방 사건 이후 많은 부모들은 딸의 인스타를 단속한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딸의 인스타를 막으며 몸조심을 당부하는 방식이 딸을 가진 한국 부모의 보편적인 형태이다. 저자의 글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상케 한다. 버스 안에서 자신을 힐끔거리며 추행하는 남성을 피해 내린 후 당황하여 우는 김지영을 보고 아빠는 오히려 "그러게 치마 짧게 입지 말라고 했지?" 라며 김지영을 채근한다. 한국의 성범죄는 많은 경우 여자의 옷차림이나 몸조심에 대한 경고로 끝나곤 했다. 저자는 이 규범이 폐기되어야 할 담론임을 강조하며 다른 방식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한다.

섹스를 했든 하지 않았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아무것도 상관없어진 시대다.

무엇을 조심하라는 말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일찌감치 폐기되었어야 할 '몸조심'류의 담론이

더욱 강력한 규범으로 작동할수록

성적자기결정권은 고사하고 신체의 자유와 더불어

남은 자율성도 '안전'을 위해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빨간 마후라' '소라넷', 'n번방', '버닝썬'등 여러 디지털 성범죄의 역사와 그 판결을 보면 소량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최근 가수 정준영과 버닝썬의 판결, 위안부를 매도한 연세대 교수의 1개월 정직 처분의 가벼운 처벌은 이 사회에서 성범죄를 보는 사회의 지표가 낮음을 나타내며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냈다.

디지털 성범죄와 함께 정치권, 기업에서 널리 용인되는 성접대 등을 용인된 강간문화라고 칭하는 저자는 '몸조심'에 대한 담론보다 남성들을 분류하여 각 분류대로 다르게 나아갈 방법을 찾을 것을 제안한다.또한 사회에서 여성들을 겨냥하고 공격하는 각종 거짓말들을 유념하고 그 단호하게 대처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범죄를 극복할 수 있다.

저자의 전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이였을 당시 '여성'에 대한 담론이 화제에 있을 때 저자는 정작 중요한 여성에 대한 토론이 없었음을 지적한다. 이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은 단지 생물학적인 여성에서 지나지 않았음을 말하며 아직 이 사회에서 여성, 사회적 담론으로서의 '여성'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외에도 미투운동, 여성주의적 안보 기획 등 다양한 이슈들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저자의 글을 보며 몇 달 전에 본 윤이형의 소설 <붕대감기>가 떠올랐다. 같은 여성이라도 각자의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갈등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다른 인물들이 서로 다투면서도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이해되지 않는다 하여 문을 닫기보다 서로 끝까지 토론하며 나아간다. 나는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대해 고민하는 저자의 글을 보면서 이 <붕대감기>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르더라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 이해되지 않을수록 더 이야기하고 토론할 때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어쩌면 미투운동도, n번방도, 바로 포기하지 않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기에 힘겹게 이만큼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많이 발전했지만 사회의 변화는 아직도 여전하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는 '세상은 변하지 않게 보여도 여전히 우리는 나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저자 또한 늘 길을 찾아낼 것이고 이기고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새로운 국면에서 또다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까 봐

나는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혁명은 상상 속에서 먼저 실현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길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우리는 "이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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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
조안나 지음 / 지금이책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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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우울증으로 너무 힘들었다. 너무 외로웠던 그 때 '엄마의 꿈방'이라는 카페에서 글쓰기를 했다. 그 곳에서 내게 글쓰기는 글을 쓰기보다 내 마음을 표출하는 자리였다. 글쓰기라지만 남편 욕을 해대는 자리였고 그런 나를 공감해주는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그 때부터였다. 아.. 글을 쓰고 공감을 받는다는 것으로도 이렇게 큰 힘이 있구나..

글쓰기의 힘을 알고부터 많은 글쓰기 책을 읽었다. 모든 책의 글쓰기는 한 가지를 말했다. "매일 써라." "매일 읽어라." 특히 매일 쓰라는 조언은 글쓰기의 진리였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은 어떻게든 읽겠는데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회사와 육아 이 도돌이표 삶 속에서 특별할 게 없는데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막막했다. 모니터의 흰 화면에서 쓸 소재는 찾기 어려웠고 그 두려움과 부담감에 글쓰기는 내게 멀어졌다.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 또한 글쓰기를 적극 권장하는 책이다. 《월요일의 문장들》의 저자로 유명한 조안나씨가 글쓰기의 힘에 대해 쓴 글쓰기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그녀 (딸을 '그녀'라고 말한다.) 이야기, 미국 생활, 읽은 책 이야기, 도둑 맞은 이야기 등 주변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글쓰기란 바로 테크닉이 아닌 우리 일상의 일을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현재 나에게 좋은 주제는 가까이에 있는 것이고

나쁜 주제는 멀리 있는 것이다.


나는 욕심이 많다. 시간이 없지만 영어 공부도 하고 싶고 책도 읽고 싶다. 운동도 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를 재운 후 시간은 밤 11시 .. 항상 시간이 고프다. 저자 또한 한 아이의 엄마로 자신의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낼 수 없음을 호소한다. 글도 쓰고 요가도 하고 싶지만 모든 걸 다 할 수 없어 안타까운 내 마음을 같은 엄마로서 저자는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 바쁨을 알기에 저자가 내린 처방은 단순하다. 단 3문장부터 매일 쓰라는 것. 처음부터 큰 욕심을 부리기 보다 매일 3문장을 들여 습관을 가지도록 실질적인 조언을 해 준다.

매일 일기를 쓰라는 충고는 이제 식상하다.

그저 매일 세 문장씩 자신의 기분 변화나

일상을 적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글쓰기의 기교가 아닌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다. 기교나 방법이 아닌 내 주변의 일상부터 바라보고 쓸 수 있도록 격려해준다. 아마 다른 책처럼 많이 쓰라고 한다면 나는 이미 내 머리 속에 변명했으리라. "쓰고 싶다고요. 하지만 난 쓸 거리가 없다고요!" 라고 외쳤을 것이다. 저자는 바로 우리 일상에서 시작하고 세 문장에서 점차 늘려가 완성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내게 글쓰기란 전혀 어렵지 않음을 가르쳐준다.

그렇다.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는 바로 글쓰기란 누구나 할 수 있음을 저자의 일상을 통해 말해주는 책이다.

하지만 결국 글쓰기의 진리란 많이 쓰는 방법 이외 다른 길이 없음을 알고 있다. 저자는 시작하는 방법을 안내해 주는 동시에 열심히 쓰기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다.


"저는 그럴 시간이 없는데요"

라는 핑계를 대기 좋은 분야라고...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저마다 24시간 동안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 이야기를 쉽게 허공에 날려버린다.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을 읽은 후 나의 일상이 하나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단조로운 내 일상이 관찰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시시한 이야기도 마음껏 쓰라는 저자의 글에 용기를 받는다. "이까짓 것, 나도 한 번 써 볼까?"라는 객기를 부려본다.

다양한 저자의 글쓰기 책을 읽었지만 저자의 일상만으로 글쓰기를 말해주는 이 책이 너무 고맙다. 저자가 아기 엄마여서 더 고맙고 바쁜 일상 속에서 소재를 가져오고 하얀 백지를 채워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 너무 고맙다. 글쓰기가 멈춰있는 내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준다. 글쓰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처럼 소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좋은 글쓰기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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