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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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이후로 여자, 엄마의 존재는 많이 부각되었지만 할머니의 존재는 여전히 관심 밖에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끝까지 자식 손녀들의 뒷바라지 역할을 하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할머니들이 늘어나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희생을 어쩔 수 없다며 당연시한다. 뒤에서 쓸쓸해하는 그들의 모습까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나의 할머니에게》는 한국 문학계의 젊은 작가들이 여러 할머니의 모습에 대해 쓴 단편소설집이다. 부제 제목 그대로 이제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할머니'를 내세운 첫 소설집이다. 그리고 이 여섯 편의 작가들 모두 여성들이라는 점도 매우 인상깊다. 이 소설 속에는 6명의 할머니들이 나온다. 재혼하여 전처의 자식을 키웠지만 자식을 위해 집을 팔지 않는다며 매정해하게 여긴다는 오해를 받는 할머니, 어린 시절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엄마 역할을 해 주며 프랑스에서 쓸쓸해하던 할머니, 치매에 걸려 손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 부자 할머니를 두었던 손녀, 템플 스테이를 하는 모습까지 각각 그 모습들이 여러 모습으로 그려진다.

윤성희 작가의 <어제 꾼 꿈>에서는 자식들이 자신을 매정한 할머니라고 내세우는 모습이 전개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당연히 작은 집으로 이사해 남은 돈을 줄 것을 요구해하는 자식들. 그 자녀들의 모습 속에 끝까지 퍼 주기를 바라는 자녀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소설에서 자녀들이 전처의 자식들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도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동시를 외우며 꿋꿋이 살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가 후에 되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여섯 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쓸쓸하면서 여운이 남는 작품은 단연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였다. 죽은 며느리를 대신해 손주들 뒷바라지를 해주고 파리까지 가서 손주들을 보살피지만 한 마디도 못하는 불어로 인해 쓸쓸해 하는 할머니의 모습. 그 모습에서 나는 가끔씩 부모님이 서울로 오실 때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후 쓸쓸해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발견했다. 직장으로, 어린이집으로 가는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정적이 흐르는 집에서 홀로 집을 지키는 부모님의 모습. 솔직히 바쁘다는 이유로 그분들의 외로움까지 헤아리지 못했다. 이 소설이 단지 할머니의 외로움을 부각시켰다면 마음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프랑스 타지에서 만난 낯선 할아버지와의 로맨스를 대입시키며 할머니에게도 할머니대의 삶과 사랑 그리고 추억이 있음을 감동 깊게 이야기한다.

요양원으로 보내지는 노년의 현실, 죽음에 대한 노년의 모습, 외로움, 자신의 삶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이기적이라며 내몰리는 할머니의 모습 등은 현실 그대로의 노년 모습을 보여 주지만 결코 수동적이 아닌 끝까지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민자와 세대 문제를 통해 씁쓸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손원평 작가의 <아리아드네 정원> 또한 강한 여운을 남겨 주는 등 여섯 편의 소설 모두가 반짝 반짝 빛이 난다.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고 이제는 할머니,할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노년에 과연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까 상상해보며 빠르게 다가오는 나의 노년 생활이 과연 어떻게 다가올지 많은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존재들이 이렇게 하나씩 세상의 전면에 부각되고 더 많이 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이 바로 그 첫 시발점이 된 것 같아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의 할머니에게》 바로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미래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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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요스트 더프리스 지음, 금경숙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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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소재로 한 소설 및 영화 작품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때로는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기도 하고 다른 작품 같은 경우는 히틀러의 만행을 철저하게 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히틀러를 연구하는 학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접하기 힘든 분야의 사람들이고 그 학문 조차도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과연 그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능할까? 


소설 《공화국》으로 황금부엉상을 수상 작가 요스트 더프리스는 이 작품에서 히틀러를 연구하는 학회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찬란한 지식으로 우리에게 소개한다. 


책 표지 앞면, "자네는 나를 이을 후계자인가? 나를 지울 혁명가인가?"라는 부제는 이 책의 이야기 방향을 소개한다. 히틀러 학문의 권위자인 브리크 교수의 소개로 히틀러에 관한 잡지 <몽유병자>의 편집장 프리소는 소설 초반부터 자신과 브리크와의 친분을 강조한다. 네덜란드인인 자신이 미국으로 오게 된 계기가 브리크의 추천이였으며 <몽유병자> 또한 브리크의 강력 추천이 있었기에 일할 수 있었고 따라 브리크의 책을 편집한 사람도 자신이다라고 자부한다. 브리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브리크가 칠레에 있는 동명의 히틀러를 만나 볼 것을 권해 칠레에 간 프리소는 뜻하지 않은 감염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병상에서 브리크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다. 투병 중 장례식과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프리소는 귀국 후 브리크의 사망 소식에 관한 기사를 읽던 중 대부분의 기사들이 브리크를 잇는 후계자로 자신이 아닌 처음 접하는 필립 더프리스를 지목하게 됨에 분개한다. 흥분한 프리소는 연인 피파에게 대체 필립이 무슨 말을 했기에 모두 그를 후계자로 지목하느냐며 열변을 토하면서 필립에 대한 질투심에 불타오른다. 


《공화국》은 후계자 자리를 되찾아오려는 프리소가  빈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가하게 되며 사람들이 자신을 필립 더프리스로 오해하고 프리소 또한 필립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벌이는 복수가 일파만파로 퍼지는 사태에 관해 이야기한다. 간혹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신을 필립이라고 강조하는 프리소의 모습과 자신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필립이라고 받아들이는 학회 사람들, 기자, 이스라엘 첩보부, 과격 단체등들이 그를 방문하면서 프리소는 그들과 히틀러에 대한 변론을 펼친다. 


이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히틀러 본인이 아닌 학자들의 입에서 이토록 풍성하게 알 수 있는 작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는 다양한 히틀러의 이야기를 풀어준다. 단편적으로만 알던 지식이 아닌 프리소의 입에서 나오는 히틀러의 이야기를 통해 단지 광적인 독재자 히틀러가 아닌 여러 모습으로 보게 된 다는 점은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저자가 자신의 성 더프리스를 작품에 똑같이 이용한 부분은 저자의 재치를 엿보게 한다.


다만 아쉬운 건 이 분야가 우리에겐 생소한 부분이고 저자의 해박한 지식의 향연이라 할 만큼 굉장히 많은 주석들로 가득차있어 가독성이 떨어진다. 모르는 부분이 많다 보니 주석을 보기 위해 읽는 내내 주석을 살펴보느라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재독을 한다면 이러한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또 다른 도전을 안겨준다. 다시 한 번 읽어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말겠다는 도전 욕구를 불태운다. 


브리크를 잇는 후계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벌이는 복수극이였지만 전개될수록 그 흐름과 역행하기도 하면서 과연 후계자인지 또는 혁명가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이 프리소의 이야기 속에 마약처럼 단숨에 몰입하는 가독성은 없지만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저자의 재치와 풍자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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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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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선생님께 질문했던 경험이 많지 않다. 그냥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할 뿐이었다. 성인이 된 후,내가 진지하게 묻기 시작한 건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기혼녀, 엄마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굴레를 알면서부터 나는 진지하게 이게 맞는 것일까라는 질문 앞에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대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아마 질문의 경험이 많지 않는 내게 답을 찾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천년의 수업》의 저자 김헌 교수는 '차이나는 클라스'의 명강의로 일반인인 우리에게 익숙한 저자이다. 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를 바꿀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저자의 강의는 이 《천년의 수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고 있는지 묻는다.

상황에 순응하며 끌려가는 삶인지, 끊임없이 질문하여 정답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물으며 저자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묻는 이 아홉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에서 찾는다면 아마 의아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단편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 표면적인 이야기의 이해에 그치며 재미있는 옛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저자의 질문은 매우 심오하며 진지하다. 이 질문들에 대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천년의 수업》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아울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화 속 수많은 인물들에게서 지금의 우리와 대입시켜 질문을 하며 답을 찾아간다. 저자가 신화를 읽으면서 신화가 단지 한 두 명의 신과 영웅들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 아님을, 그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이 거대한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었음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삶 중 소중하지 않은 것임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 예가 바로 로마공화정이 수립될 수 있었던 이야기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지만 그에 동의하고 공감한 한 명 두 명의 시민들이 모여 로마 왕정을 무너 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한 계기를 예로 들며 저자는 결코 자신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말도록 조언해준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많은 예를 들지만 이 책의 강의는 주로 저자의 깊은 혜안과 경험에서 우려나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교육자로서 프랑스 유학 시절 느낀 프랑스와 한국의 교육에 대한 단상과 죽음이 있는 유한한 삶과 영원한 무명의 삶 중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 묻는 저자의 강의 등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학창 시절 선생님이 수업 시간 후 들려주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또한 인문학이 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류층에 집중되어 있고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오히려 먹고 살기에 바빠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없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고민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저자는 "답은 틀릴 수 있지만 질문은 틀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왜 저자는 질문의 중요성을 이토록 강조했을까? 아마 질문을 하는 삶과 하지 않는 삶의 극명한 차이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역사는 이게 옳은 것인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답을 내리며 행동으로 옮긴 이들로 이루어져왔다. 질문이 있을 때 답을 찾기 위해 변화를 시도해온다. 그리고 저자는 이 답을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찾아왔고 우리에게 그 여정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아마 이 책을 읽노라면 어느 새 그리스 로마 신화를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읽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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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측, 부의 미래 - 세계 석학 5인이 말하는 기술·자본·문명의 대전환
유발 하라리 외 지음, 신희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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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한 인공 지능 발달로 하루마다 급변하는 사회를 살고 있다. 전에는 많은 예측을 쏟아 내던 석학들조차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한다. 과연 우리는 바로 내일의 일조차 확신할 수 없는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이 다가오고 있으며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툭히 인공 지능으로 하루마다 수많은 직종이 없어지는 지금 해법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초예측 부의 미래》는 이 고민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 석학 5인이 예측하는 경제 전망서이다. 국내에서는 부의 미래이지만 이 책의 시작인 일본 NHK 다큐멘터리 <욕망의 자본주의 2019: 거짓된 개인주의를 넘어서>의 내용을 엮은 책으로 곧 이 시대의 시장 경제, 자본주의의 방향을 말한다. 이미 한국에서도 <사피엔스>의 저자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 『플랫폼 제국의 미래』의 저자이자 뉴욕 스턴 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인 스콧 갤러웨이, 201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장 티롤을 포함하여 찰스 호스킨슨, 마르쿠스 가브리엘 등 다섯 명의 석학들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대의 경제 흐름은 단연코 '자본주의'이다. 과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경쟁에서 국가 기획경제가 실패하고 북한을 제외한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시장 경제, 자유롭게 경쟁하며 소비를 중시하고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 유발 하라리는 현대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종교의 자리를 대신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대두한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각성의 목소리가 높지만 자본주의를 대신할 경제학이 없는 시점에 자본주의는 과연 영원할 수 있을것인가 묻는다.

이 자본주의에 영속성에 다섯 명의 석학들이 공통으로 제시되는 예측은 바로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에 반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전제로 한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고객의 선택을 많이 받아 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경쟁이 보장되어야 하는 자본주의가 GAFA, (Google, Apple, Facebook, Amazon)의 IT 글로벌 기업의 독식으로 인하여 경쟁이 사라지고 새로운 산업들이 사라져감을 지탄한다. 그리고 이 GAFA의 중심에 세계 수억명의 이용자들의 접속 기록을 활용한 데이터가 있으며 이 빅데이터를 좌우하는 자에게 부가 집중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GAFA 등이 제공하는 '무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동안

우리가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이, 성별, 거주지, 학력, 직업, 경력부터 취미, 친구, 구매 이력 등

온갖 개인 정보가 GAFA의 데이터베이스로 흘러갑니다.

GAFA는 그 정보를 팔거나 그것을 이용해 막대한 광고 수익을 냅니다.

우리는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아니라

그들의 '상품'이 되었습니다.

GAFA는 우리의 영혼을 매일 팔아넘기고 있어요.


이 거대한 GAFA가 보유하는 정보, 빅데이터가 초래할 위험인 감시자본주의, 그리고 그들의 권한을 어떻게 분산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석학들의 예측은 무의식적으로 SNS를 이용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경고등의 역할을 해 준다.

흥미로운 건 암호화폐에 대해 예측한 찰스 호스킨슨과 장 티롤의 판이한 예측이다. 암호화폐 카르다노 개발자이자 인풋아웃풋홍콩 CEO인 찰스 호스킨슨은 암호 화폐야말로 자본이 없어 시장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사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단이자 공룡기업 GAFA의 독점을 막을 수 있는 대체수단으로 예측한다. 반면 201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독과점 기업 규제로 유명한 장 티롤은 암호화폐는 실물로 보증되지 않는 거품이라고 진단하며 시장과 연동되지 않는 암호 화폐가 주는 위험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초예측 부의 미래》는 자본주의의 방향, 암호화폐, 인공 지능. 기술 등에 대한 예측을 어렵지 않게 설명해간다. 그리고 그 가운데 GAFA, 데이터가 있음을 말한다. 정부가 이들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아마 그들이 독식하는 사회를 살 수 있음을 경고해 준다. 인공지능으로 인간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는 이 때 진정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강조한 유발 하라리의 글도 매우 인상깊었다.

이들의 예측이 100% 정확하다고 예단할 수는 없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우리는 유발 하라리의 글처럼 현재 우리가 유일하게 불가능한 건 바로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결코 올바른 예측을 할 수 없다. 올바른 현재 인식으로부터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분명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다섯 명의 석학 들의 예측 속에서 우리가 갈 방향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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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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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향한 범죄가 급증한다. 남성에 비해 힘이 약한 여성들은 피해의 대상이 되기 쉽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항상 조심하며 두려워해야 한다. 이유는 없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여성 범죄에 대하여 사회는 그다지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왜? 이제 이건 흔한 범죄이니까.

《레이첼이 돌아왔다》는 미국 추리작가 협회상인 에드거상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동생 노라가 언니 레이첼의 집에서 언니와 키우던 반려견 페노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갑작스런 언니의 죽음에 노라는 언니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깊은 상실감에 노라는 넋을 잃지만 노라에게는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고 뒷수습을 해야만 한다.

경찰은 언니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노라는 조사 과정에 자신이 알지 못했던 진실을 목격하게 된다. 일반 개라고만 생각했던 반려견 페노가 특별 방범 훈련을 받은 개였다는 것도, 언니가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노라에게는 생소하기만 하다. 이제껏 언니를 가장 잘 안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이건만 경찰로부터 접하는 언니의 이야기는 노라에게 혼란을 가져다 준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경찰은 언니가 15년 전 파티가 끝난 후 귀가길에서 알지 못한 범인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했던 과거로 거슬러간다. 끝내 잡히지 못한 이 사건의 가해자가 언니를 죽였으리라 추정한 경찰과 노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찾기 시작한다. 과연 15년 전 언니를 폭행한 가해자가 범인일까?

《레이첼이 돌아왔다》에서 내가 주목한 건 이 폭행을 당한 후 피해자인 레이첼의 반응과 동생 노라의 입장이었다. 보통 여성들은 폭행을 당한 후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자신이 겪은 사건을 증언하길 불편해한다.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종종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으로 2차 피해가 되는 일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안희정 수행비서로 성폭행의 진실을 밝혔던 김지은씨도 그 사건의 하나이다. 그렇게 여성들은 침묵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언니 레이첼은 적극적으로 범인을 찾아나선다. 자신이 겪은 사건을 설명하며 혹시 보지 못했느냐면서 포기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동생 노라는 언니에게 그만 잊으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됐다고,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마지 못해 포기했다고 말하지만 레이첼은 15년이 지났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언니가 교통사고라고 거짓말을 할 줄 알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두들겨 맞았어요. 그 남자는 키가 18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데

검은 머리를 턱까지 길렀고 캔버스 재킷을 입고 있었고요.

길고 좁은 얼굴에 이마뼈가 눈에 띄는 사람이에요."


15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사건은 언니와 노라의 삶에 깊게 박혀있었다. 노라 또한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도 이 사건은 지워지지 않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한 범죄가 마무리되면 곧 잊힐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범인이 잡혔다 하더라도 그 범죄의 파장은 피해자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마음 속에 내재해 있다 불쑥불쑥 튀어 나오곤 한다. 《레이첼이 돌아왔다》는 노라가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나서면서 여성을 향한 범죄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이 평소에도 두려움에 휩싸여 있음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선배와 자취했던 때의 사고가 떠올랐다. 보안장치가 허술했던 자취방에서 강도의 침입으로 인해 큰 일을 당할 뻔했던 그 때의 기억을 소환해냈다. 천만다행으로 큰 일은 피할 수 있었고 미수로 끝난 사건인지라 경찰 또한 레이첼의 15년 전 사건처럼 형식적인 수사만 할 뿐 사건을 종결시켰다. 하지만 그 당사자인 나는 2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당시의 상황, 범인의 말투, 느꼈던 공포는 절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 때의 두려움은 종종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비슷한 경험으로 인해 나는 감정이입할 수 있었고 레이첼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반전은 매우 강렬하다. 평이하게 진행되던 사건이 후반부에 들어가며 예측 불가의 방식으로 이야기가 바뀌어가고 읽는 독자를 또 한 번 혼란속으로 몰고 간다. 15년 전 폭행과 현재의 범죄가 맞물려가며 범인을 찾아가는 이 소설의 구조는 매우 영리하고 교묘하다. 여성 혐오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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