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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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미국 최초 흑인 퍼스트레이디인 '미셀 오바마'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긴박감 넘치던 백악관 생활에서 나와 평범한 (?) 생활로 돌아온 미셀 오바마는 회고록 《비커밍》을 통해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미셀 오바마는 첫 장에 [내가 되다]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1층 로비 할머니로부터 피아노 교육을 받을 수 있던 과거부터 시작한 그녀의 터전은 시카고의 사우스사우드 지역이다.

미셀 오바마는 호숫가 정수장에서 보일러 기사로 재직하셨던 아버지와 전업 주부로 가정에 헌신적인 어머니 그리고 농구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던 오빠 그리고 미셀 오바마 네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태어났다. 다발성 경화증으로 평생에 걸쳐 고생하셨지만 병원을 다니지 않으시고 묵묵히 출근하신 아버지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장애'에 눈을 뜨게 되었고 책임감을 배우게 되었다.

노예 해방이 되었지만 아직도 인종 차별이 행해지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미셀의 가정 또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셀의 고향에서 백인들이 점차 다른 부자 동네로 이사하고 흑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 거의 흑인들로 가득한 현실, 이사간 옛 이웃의 집들이에 놀러간 사이 누군가 차를 긁어 흠집을 냈지만 이러한 만행을 덤덤이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미셀은 미국에 사는 흑인으로서 감당할 짐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프린스턴 대학 입학 등 여러 사건이 있지만 미셀 오바마에게 최고의 사건은 바로 남편 버락 오바마의 만남이었다.

이 자서전을 읽기 전까지 버락 오바마가 미셀이 근무하던 로펌의 인턴이였다는 사실은 매우 뜻밖이었다. 인턴 첫 날부터 지각에 흡연가였던 오바마의 첫 인상은 그닥 좋지 않았으나 버락 오바마와 가까워져가는 그들의 연애담은 읽는 내 마음까지 설레게 했다.

《비커밍》에서는 버락과 결혼 후 본격적으로 정치 판에 뛰어든 버락으로 인해 정치인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뇌, 자신의 일을 내려놓고 남편의 정치 활동을 내조에 집중해야 하는 현실 등 많은 고민이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이대로 멈춰주었으면, 이 상태로 만족했으면 하는 미셀의 바램과 달리 사회를 바꾸고 싶었던 버락 오바마의 꿈을 알기에 남편의 정치 행보를 막지 못했다.

특히 인상적인 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자신에게 가해진 미국 언론의 차별적인 보도였다. 미셀 오바마는 기성 언론들이 남자인 '버락 오바마'의 연설에는 관대하면서 여자인 자신이 한 연설이나 힐러리 클린턴이 연설을 하면 한 부분만을 도려내 마치 전체인양 부풀러 문제를 일으키는 언론의 남녀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이였다. 경쟁자였지만 같은 여자로서 동일하게 겪는 차별에 대해 분개하는 미셀의 모습은 같은 여자로서 너무 멋있었다.


그것도 물론 또 하나의 고정관념, 또 하나의 올가미였다.

여성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손쉬운 방법은

그를 잔소리꾼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먼저 자기 자신을 규정하지 않으면 타인에 의해 규정되어질 것이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게 된다.


내가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규정하지 않으면,

남들이 얼른 나 대신 나를 부정확하게 규정한다.

퍼스트레이디는 엄밀히 따져 직업이 아닌다. 그러하기에 특정한 지침이 없다. 미국 최초 흑인 퍼스트레이디라는 최초의 타이틀과 남편 버락 오바마의 정치 일정 동행 이외 미셀은 자신의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간다.

'텃밭 가꾸기', '군인가족 지원'등등 힘을 모을 수 있는데 함께 하며 흑인 또는 소수 인종들에게도 주류인 백인들과 같은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기 위해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미셀은 노력한다.

《비커밍》에서는 미셀 오바마가 자신의 업적을 강조하기 보다 흑인이었기 때문에 겪는 고민, 흑인으로 최초라는 타이틀에 대한 무게감, 출산 후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워킹맘으로서의 고충,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지 못하는 대통령 가족으로서의 고민등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그녀의 고충이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미셀 오바마에게는 흑인으로서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 있었고 결혼 후 둘이 되고 백악관에 들어가고 퇴임한 현재도 계속해서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남편 버락 오바마가 힘들게 세워 놓은 정책들이 후임자인 트럼프에 의해 철회되기도 하며 역행하는 듯한 미국의 행보에 화가 나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그녀의 글은 어려서부터 고모할머니 피아노 선생님과 논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녀의 인생과 닮아있다.

으레 많은 자서전이 그렇듯 자화자찬으로 가득한 글이려니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인생 고비고비마다 마주친 그녀의 삶은 많은 고뇌의 결과였고 그 어쩔 수 없는 결과에서도 최선을 다해 나가는 여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먼저 자신을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셀 오바마는 자신의 역할이 징검다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이제 더 많은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수가 동등한 기회를 받을 수 있는 징검다리로의 역할에 앞장서나갔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의 역할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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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을 권리 - 이유 없이 상처받지 않는 삶
일레인 N. 아론 지음, 고빛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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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에 익숙하다. 회사에서도 직장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기보다 나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기꺼이 혼자를 택하고 혼자라는 사실에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혼자라는 사실에 익숙하지만 외로워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누군가와 친밀해지기 직전, 나는 부담을 느껴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곤 한다. 나는 내 문제를 잘 몰랐다. 그냥 내성적인 내 성격이겠거니 생각했다. 이 책 《사랑받을 권리》를 읽기 전까지는.

《사랑받을 권리》의 저자 일레인 N. 아론은 심리학계 최초로 '민감함'이라는 문제를 제기함으로 민감함과 심리학의 연관성을 밝혀낸 심리학자로 이 《사랑받을 권리》에서는 저자가 수십 년간 수많은 내담자를 상담해오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못난 나'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며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는 심리서이다.

먼저 저자는 우리의 인간 관계가 '관계 맺기'와 순위 매기기' 혹은 '사랑'과 '권력'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한다.

친구와의 우정, 가족 관계 등이 '관계 맺기'에 가깝다면 '순위 매기기'는 관계 속에서 서열을 다투는 관계로 승진, 경쟁 등을 일으키는 관계를 뜻한다. 문제는 '관계 맺기'에 가까워야 할 집단 , 즉 가정이나 친구 사이에도 '순위 매기기' 가 강하게 개입되어 온전한 관계를 이룰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왜 순수한 가족 공동체에도 '순위 매기기'가 문제점이 될까? 그에 대해 저자 일레인 아론은 자신이 상담한 여러 내담자들의 예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도와준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받았던 상처 또는 트라우마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망각 등의 정신적인 보호막을 둘러싸지만 비슷한 상황 발생 시 잠재되어있던 상처는 바로 우리를 공격한다. 그리고 그 회복되지 않은 상처가 '못난 나'를 만들어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여섯 가지 방어 기제를 설명해 주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설명해 준다.

이 '못난 나'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결국 자기 자신을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감추지 않고 직시하지 않으면 '못난 나'는 타인에 의해 현실이 되고 만다. 우리에게 생긴 트라우마는 우리 책임이 아니지만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건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못난 나'를 만들어낸 '순위 매기기'의 결과를 역으로 '관계 맺기'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권력 다툼이 우선인 관계보다 순수한 '관계 맺기'로 스위치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어떻게 관계 맺기를 시작하고 강화해 줄 수 있는지를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해 주며 이 관계들이 회복할 때 상처받지 않을 수 있으며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건강한 나로 될 수 있음을 설명해간다.


답은 '관계 맺기'에서 찾아야 한다.

치유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순위 매기기를 관계 맺기로 대체한다."


이 책에는 자신의 '못난 나'를 알 수 있기 위한 체크리스트가 수록되어있다. 책을 읽고 체크리스트에 답을 해 나가면서 내게 떠 오르던 두 가지의 장면이 떠올랐다.

한가지는 고등학교 때 요즘 언어로 '인싸'에 해당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주로 동성인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모든 친구들이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했다. 그 친구에게는 단짝이 있어 항상 그 친구와 어울러 다니곤 했다. 나는 그 친구의 이름을 지금까지 기억한다. 하지만 그 인싸였던 그 친구는 자신의 단짝과 싸울 때만 나를 찾았고 나는 이 친구가 다시 화해하면 나와 어울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함께 있고 싶어서 일회용 친구 노릇을 기꺼이 하곤 했다. 그 시절 내 뇌리에는 '나는 일회용이다'라는 못난 나를 형성해 나갔고 내가 친밀한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게 바로 그 영향이 컸다라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순위 매기기'에서 남편과의 관계를 떠올렸다. 서로의 성격이 강하고 자존심이 세다 보니 우리가 부부싸움을 하고나면 화해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아이들을 유독 예뻐하시곤 하던 친정엄마의 질환으로 인해 번번이 남편에게 한 발 물러서곤 했던 나의 경험이 누적되어 동등하지 못한 관계를 만들어왔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먼저 친밀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동등한 관계'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와 남편의 관계에서 '동등한 관계'가 전제되어 있지 않았기에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많았다.


저자 또한 독자에게 이 책이 실용적인 지침을 많이 주고 있지만 관계란 복잡한 것이며 심한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함을 말한다. 나의 경우에는 답을 찾기 보다 바로 앞에서 든 예처럼 나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그리고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답은 문제를 알아야 찾을 수 있다. 문제를 제대로 알았으니 답도 곧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길잡이 역할을 해 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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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관계 1
얏꽁 글.그림 / 경향BP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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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관계 1,2》는 버프툰에서 연재되었던 웹툰으로 많은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작품입니다.

연재가 좋은 호응을 얻어 연재 종료 후 이렇게 만화 단행본으로 출간되게 되었습니다.

《이상적인 관계》에서는 표지처럼 두 쌍의 커플이 주인공입니다.

네 명의 남녀 주인공은 모두 중학교 때부터 절친하게 지낸 친구들로 대학에 갓 입학한 20살 새내기들입니다.


저는 남주인공 도세빈을 보면서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남주인공 도경석 역의 차은우씨가 자꾸 떠올랐어요. 비주얼도 그렇고 차도남 이미지가 봐도 봐도 닯았어요^^. 유노아와 유지아는 이란성 쌍둥이 남매랍니다.

이 네 명의 친구들은 같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함께 자취를 하게 됩니다. 대학 입학 전 먼저 자취집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 모인 네 명의 이야기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네 명이 함께 모여 화기애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유지아가 중학교 때 만들었던 고백 팔찌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싸늘해집니다. 사희도, 세빈과 노아의 반응이 싸해지며 조용해지는 이유는 바로 그들 사이에 얽힌 비밀이 있습니다.

사희가 팔찌를 만들어 세빈의 사물함에 놓아 두었지만 그 다음날 자신이 준 팔찌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는 걸 목격합니다. 이에 상처받은 사희는 마음을 접고 남사친 여사친으로만 지내기로 하고 그 관계가 지금까지 지켜져 옵니다.

사실 저 같았다면 친구 하기 싫을 것 같은데 마음으로만 감추고 친구하는 사희도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풋풋한 청춘이지만 이 네 명에게는 각각의 고민이 그려집니다. 동생만 챙기는 부모님때문에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하는 사희, 엄마의 인정을 받고 싶어 모델 일을 하지만 자신에게만 차가운 엄마로 인해 외로운 노아, 잘 나가는 쌍둥이 남매 노아와 항상 비교당하는 지아. 이 네 명은 오랜 시간만큼 서로의 고민을 잘 알고 위로해주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하지만! 남녀 사이에 함께 있으면 자신의 감정이 조절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죠.

사희와 세빈 그리고 노아 세 사람 사이에서 감정이 생겨나며 이들 사이에 균열이 시작됩니다.

대학생이 되어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지며 그동안 숨겨져 있던 고백 팔찌의 비밀도 드러나게 됩니다.

《이상적인 관계》는 너무 소중한 관계이기에 이 우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은 네 명의 주인공의 고민이 현실적으로 그려집니다. 감정은 피어오르지만 친구가 상처 받을까봐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그들의 고민도 공감되고 현실에서 버거워하는 사희도 안쓰럽습니다. 그 사이에서 친구들의 중재 역할을 하는 지아까지 모두 공감이 되는 캐릭터들입니다.

《이상적인 관계》는 과거와 현재가 적절하게 어울러져 이 주인공들이 왜 지금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를 도와 줍니다. 그리고 급반전을 이루는 캐릭터는 정말 의외의 주인공이라서 깜짝 놀라게도 합니다.

마지막에 이 만화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서로 상처를 줄 수 밖에 없었는지 드러나며 훈훈하게 마무리 되는데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마무리가 너무 급하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사희를 둘러싼 세빈과 노아의 갈등이 한 사건으로 인해 급하게 마무리되고 이 사건으로 노아 부모님의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하기 보다는 좀 더 갈등과 해결 과정이 좀 더 촘촘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관계》는 풋풋했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절대 악인이 없이 따뜻한 캐릭터들로 인해 편하게 볼 수 있고 가끔씩 튀어나오는 얼굴을 크게 확대한 유머 캐릭터도 볼 재미를 안겨 줍니다.

무엇보다 대학때 친했지만 지금은 연락이 끊긴 옛 친구들을 떠올리게 되어 좋았습니다.

이 네 명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 지금 인기중에 방송 중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5인방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이 두 권으로 끝나기가 아쉬워서 후속작으로 사회인이 된 네 명의 관계가 그려지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코로나로 인해 마음이 지친 요즘, 간만에 유쾌한 만화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 《이상적인 관계》는 쉼이 되어 줄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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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 - 무민 골짜기, 시작하는 이야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토베 얀손 지음,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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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시리즈'의 첫 이야기인 《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가 출간되었다.

무려 26년 동안이나 여러 무민 시리즈가 출간되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 첫 번째 이야기인 《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가 세상에 나온 시기가 1945년이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토베 얀손이 쓰기 시작한 책으로 해티패티와 함께 떠나버린 아빠를 찾아 무민과 무민의 엄마가 찾아 떠나는 동화이다. 무민과 무민 엄마는 어두운 숲을 지나던 중 작은 동물을 만나 함께 동행하게 되고 왕뱀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위기의 순간, 튤립으로부터 나온 여자 아이 튤리파로 인해 목숨을 구한다. 이들은 노신사를 만나 아이스크림과 여러 다과가 가득한 숲에 초대되기도 하고 해티패티를 만나 배를 타고 가던 중 폭풍우도 만나며 섬의 한 소년의 집에 머무르던 중 사라진 무민 아빠의 소식을 듣는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모든 등장인물들은 서로 당연하게 친절을 베풀며 함께 동행한다. 처음 만난 작은 동물에게 무민의 엄마는 자연스럽게 함께 할 것을 제안하고 친구가 그리웠던 작은 동물 또한 그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노신사도, 작은 소년 또한 어서 오라며 그들의 문을 낯선 이에게 닫아두지 않는다. 동화라고 하더라도 한 두명의 악인이 나올 수도 있지만 이 무민 시리즈에서는 가족을 남기고 떠난 무민 아빠에게도 원망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이 친절이 가장 두드러지는 건 바로 홍수가 발생하고 무민 일행이 본격적인 구조 활동을 하면서이다. 모자를 찾아주고 무민 아빠를 찾아 나서면서 대머리황새 아저씨는 자신이 날아다니면서 본 수많은 인파들을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자인 토베 얀손은 이 홍수 이야기에서 소재의 쓰임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의자에 실려 떠내려가는 고양이들, 병에 담긴 무민 아빠의 구조 편지 등은 그 시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작가의 생각에 감탄하게 된다.

토베 얀손이 이 첫 번째 이야기를 처음으로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를 썼다는 건 아마 저자가 집필하던 시기가 세계대전이라는 시점이 큰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하게 한다. 긴 전쟁으로 생활 거처를 빼앗기고 가장이 전쟁에 징집되며 모두가 힘든 이 시기 토베 얀손은 서로가 힘이 되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첫 시작을 따뜻하게 그려내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 홍수라는 이야기 속의 배경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현실의 축소판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친절, 동행, 구조, 희망 등은 이 암흑기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던 작가의 소망이였으리라 추측하게 한다.

무민 가족이 정착하게 되는 이 첫번째 이야기에서 각 캐릭터가 더욱 잘 이해하게 되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제 완전체가 된 무민 가족이 어떤 모험을 펼칠지 다시 한 번 지난 연작소설들을 들춰보게 한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만화 캐릭터에만 친숙한 내 아이들에게 새로운 친구 무민을 본격적으로 소개해 주고 싶다. 정형화된 만화 속 캐릭터보다 귀엽고 엉뚱한 친구 무민의 이야기와 함께 더 큰 따뜻함으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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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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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소설의 인물은 난해하다. 처음에 그 난해함에 당황하지만 읽다 보면 그 난해함에 공감하게 된다.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는 첫번째 소설 《아일린》의 자기 혐오 강한 여주인공으로 《내 휴식과 이완의 해》의 주인공은 모든 현실로부터 휴식을 선언하고 동면에 잠자기로 한 스물 여섯 여성을 그려냄으로 자신만의 강렬한 개성을 드러낸다.

《내 휴식과 이완의 해》에서의 주인공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매우 회의적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경제적인 부도 있지만 어머니는 술과 약에 취해 있었고 아버지는 존재감이 없이 암으로 쓸쓸이 돌아가셨다. 전 남자친구 트레버는 바깥에서는 전망 있는 금융인이지만 심심풀이용으로 '나'를 만나고 자신의 성적 취향에만 따를 것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남자이다. 직장에 손쉽게 취직했지만 해고 당하고 친구인 리바는 자신의 세계로 편입되고 싶어하는 속물이다. 이런 현실에 '나'는 살아가기보다 잠을 택한다.

세탁물 자동 수거, 속옷 배달, 공과금 자동납부 처리, 실업수당 자동응답 서비스 등등.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유산으로 돈 걱정없이 동면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모든 인간이 24시간 잠을 잘 수는 없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수면제를 처방해 줄 수 있는 정신과 의사인 '닥터 터틀'을 찾아 여러 핑계를 대며 수면제와 안정제를 처방받는다. 깨어있는 동안 볼 영화 비디오테이프도 대여하는 등 주인공은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세팅한 후 본격적인 동면에 들어간다.

잠에 빠져들기로 결심한 '나'의 모습이 무책임할 수 있다. 스물 여섯, 청춘의 나이에 잠으로 한 해를 보낸다는 게 무책임하게 느껴지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과 전 애인과의 만남 그리고 친구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어느 곳에도 그녀는 의지할 곳이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나'의 안에 축적된 회의감이 이제 주변에 눈을 감고 잠이라는 회피 수단을 택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잠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행동이 염세적이지만 그만큼 더 외로웠음을 알게 되며 잠이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 그녀 나름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김하나 작가는 추천사에 이 이야기가 우리가 삶이라는 고통에 내동댕이쳐질 때 눈을 감느냐 뜨느냐의 문제를 말한다고 했다. 처음에 이 추천사가 공감이 가지 않아다. 하지만 주인공 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이 추천사야말로 이 소설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에게도 삶은 녹록치 않다. 만만하지 않은 삶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눈을 뜨고 살아갈 것인가. 눈을 감고 회피할 것인가. 보통 많은 사람들은 회피야말로 비겁한 수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주인공처럼 잠시 현실 속에서 회피하며 쉴 시간이 필요하다. 이건 비겁한 게 아니라 다시 살기 위한 행동이다. 결국 주인공의 '잠'이라는 수단도 다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휴식과 이완의 해를 보낸 주인공은 과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주인공이 또 다시 눈을 감지는 않을 것 같다. 78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여자가 완전히 깨어 있다고 말하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 그래도 깨어 있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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