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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정리사 - 연꽃 죽음의 비밀
정명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5월
평점 :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칩거 중인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아버지 사망의 원인을 밝혀내고자 화연은 과천으로 내려가자는 어머니의 명령도 거부한 채 여종 곱분과 홀로 한양에 남는다.
사건의 진척 상황을 알기 위해 포도청을 드나들지만 담당 포교인 남완희는 기다리라고만 하고 도통 진척이 없다. 궁핍해져가는 화연의 생활고를 눈치 챈 포교 완희는 화연에게 죽은 여인의 시신과 유품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일을 10건 처리하면 아버지 사건의 관련 문서를 보여주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화연과 곱분은 아버지 사건으 실마리를 풀기 위해 유품정리사 일을 시작한다.
조선시대는 고려시대보다 후기이지만 엄격한 유교의 영향으로 여성에게 더욱 보수적이고 지아비에게 철저히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남존여비의 시대이다. 《유품정리사》는 그런 조선의 남존여비 사상에 고통받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약자인 여인의 사연은 중요치 않고 무시와 괄시만 가득했던 여성의 모습, 여자 혼자의 힘으로 일을 하는 것조차 온갖 조롱과 무시를 견뎌내야만 한다.
이 소설에서 화연이 맡게 된 죽음은 세 명의 여성들이다.
홀로 객주를 이끌다 자살을 한 객주 주인,
남편의 삼년 상을 치르고 남편을 따라 자결한 별당 아씨,
불륜 사건으로 덮인 김 소사의 죽음
이 죽음들에 덮인 진실을 추적해가며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괄시받았던 그들의 아픔 또한 하나씩 드러난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그 험한 객주를 운영하며 부를 일궜지만 주위에서 들러오는 건 주위의 조롱과 무시뿐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들 탐욕의 대상으로만 삼아버리는 그 모습은 현실과 그리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서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남편의 죽음을 따라 자신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희생당해야만 하는 젊은 여성의 비극을 사람들을 열녀라고 칭송한다. 여성은 한 소중한 생명이자 인격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오로지 남편과 가문의 소유로만 취급받는 조선 시대의 억눌린 여성의 모습이 대변된다.
시댁에서는 가문을 잇기 위한 수단이자 친정에서는 혼인과 동시에 남 취급해 버리던 조선시대에서 여성에게는 어떠한 보호책도 없이 홀로 모든 억압과 차별을 감당해내야만 한다.

비록 내용은 무겁고 시대는 조선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저자는 극의 분위기를 무겁지 않게 끌어나간다. 중심인물인 화연과 여종 곱분의 워맨스, 화연을 귀찮아하는 듯 하면서도 화연을 도와주는 포교 완희와 화연의 이야기, 이 글에서는 밝힐 수 없지만 극적 감동을 이끌어내는 여성들의 이야기 등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와 함께 감동을 이끌어 준다.
"세상의 절반이 여인입니다. 이런 남자들을 낳고 기른 것도 여인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핍박을 받고 살아야 합니까?
복이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도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복이는 죄인이 되었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복이처럼 살게 하지 않으려면
하나로 뭉쳐서 힘을 모아야만 합니다."
최근 드라마에서도 워맨스를 다룬 이야기들이 많은 호응을 받고 있듯이 이 소설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고통을 다루지만 이에 억눌리지 않고 여자이기에 함께 해 나가는 워맨스를 반전의 인물들을 통해서 펼쳐나간다. 그리고 그 워맨스는 비록 힘든 상황 속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임을 이야기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조선 시대, 억눌렸던 여성의 시선으로 쓰여진 소설《유품정리사》의 인물들은 모두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희망을 일구어나간다. 화연도, 곱분도, 그들을 돕는 완희와 다른 인물들까지..
각 죽음에 얽힌 사연과 함께 아버지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까 함께 맞추어져가면서 읽는 이에게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달해나간다. 역사에서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유품정리사라는 일을 이토록 흥미로운 소설로 탈바꿈하게 한 저자의 필력이 놀랍다.